창악집성
하응백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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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대엽(三數大葉)


낙동강상(落東江上) 에 선주범(仙舟泛) 하니 취적가성(吹笛歌聲)이 낙원풍(落遠風)이로다

객자정참문불락(客子停驂聞不樂) 은 창오산색(蒼梧山色) 이 모설중(暮雲中 )이로다.

지금에 정호룡비(鼎湖龍費) 를 못내 설워하노라. [작자 미상]

석양에 취흥을 겨워 나귀 등에 실렸더니

심리계산이 몽리(夢裡)에 지나거다

어디서 수상어적(數聲漁笛) 이 잠든 나를 깨우나니 [조준]

삭풍(朔風) 은 마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 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 에 일장검(一長劍) 짚고 서서

긴 바람 큰 한소래에 거칠 것이 없에라 [김종서]

우레같이 소래난 임을 번개같이 번뜻 만나

비같이 오락가락 구름같이 헤어지니

흉중(胷中) 에 바람 같은 한숨이 안개 피듯 하여라 [작자 미상] (-50-)



길군악(行軍樂)



오늘도 하 심심하니 길군악이나 하여 보자.

아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를 봐라

노나느니 나루 노나니루 느니 로느닌니루나니 나를니루 히히

나니나루 노나니나니나루 노오오 나니나루 우우노너

가소가소 자네 가소 자네 가다가 내 못 살랴

정방산성(正方山成) 북문(北門) 밖에 해 떨어지고 저 달이 돋아온다.

눈비 찬비 이슬 맞고 홀로 섯는 노송(老松) 남기 짝을 잃고서 제 홀로 살아나니

각씨는 이리로 하대서 내 못살랴.

어이업다 이년아 말들어를 봐라

조고마한 상좌(上佐) 중이 부도(釜刀) 채를 두루쳐 메고

만첩청산(萬疊靑山) 들어를 가서 기다란 고양남글 이리로 찍고 저리로 찍어서

제 호롤 찍어 나리느니 각씨네 이리로 하다가 내 못 살랴

어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봐라.

어이업다 이년아 말듣거라

네라 한들 한궁녀(漢宮女) 며 매라 한들 비군자(非君子) 랴.

남의 딸이 너뿐이며 남의 아들이 나뿐이랴

죽기 살기는 노늘날로만 결단(決斷)을 하자

어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를 봐라. (-97-)



<수심가> 는 서도의 대표적인 소리이다. 내용은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수심가>의 유래에 대해서는 서북인의 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병자호란 때의 기생 부용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이다. 가사를 살펴 보면 여기저기 시에서 차용한 흔적이 두서없이 보이는 점, 그리고 한문 문투의 혼합적 사용이 보이는 점 등으로 보아, 오랜 세월에 걸쳐 평양 지방을 중심으로 기방(妓房) 등에서 구전되면서,소리하는 자에 따라 변형되고 증편에 증편을 거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8-)



배치기

어영도 칠산을 다 쳐다 먹고

연평 바다로 돈실러 갑시다.

어허어 어허어어 어허으어 어허으어 어어허어 어화요

돈실러 간다 돈 실러 간다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갑세다

간곳마다 치는 북은

우리 배가 다 치고 났단다

이물 돛댄는 사리화 피고

고물 돛대는 만장기 띄었다.

연평 장군님 귀히 보소

우리 배불러서 도장원 주시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새우젓 잡기가 재미가 난다

정월부터 치는 북은

오눨 파송을 내 눌러 쳤단다

연평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 드려라.

암매 숫매 맞 마춰 놓고

여드레 바다에 두둥실 났단다.

에 -헤이이 에-헤이이 에-헤이에 -헤이에 에이 에헤이 어하요. (-300-)



금드렁 타령


놀구나 싶은 맘 태산과 같은데

원수의 금전이 허락질 않네

금드렁 금드렁

세월이 가기는 바람결 같구요.

인생이 늙기는 흐르는 물 같네

간다네 가누나 유정(有精) 님 버리고

동설령(東雪領) 고개로 나 넘어간다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도

변하기 쉬운 건 사람의 맘일세

못 살것 같더라 죽을 것 같더라

유정님 떨어져 나 못 살갔네

저 달이 밝기는 내 맘과 같아도

속사정 펴 보긴 샘물과 같다네

저산에 붙은 불 일꾼이 껄지라두

내 가슴 타는 불 꺼내지 못하네

비야 뭐 올래면 소낙비 좋지

실타래 느려서 내 속을 얽나요.

입쌀에 좁쌀은 독독이 있어도

재미쌀 없이는 나는 못 살갔네

일상에 놀기는 풍악이 좋은데

절구통 춤에도 세월만 간다네

동산에 달 뜬 건 가득 차 메워도

덧 없는 세월엔 백발만 성성

당신의 사랑이 물밀 듯 깊어주

내 가슴 쓰린 건 어제가 오늘. (-332-)



이렇게 세 집서 하나씩 낳기는 낳았는데 신수가 불행턴지 한 집은 딸을 낳고 도 한 집은 계집애를 낳고 또 한 집은 여자를 낳았읍네다 이 세 아기의 이름을 짓되 어떻게 짓는고 하니 이 정승의 딸 이름은 태몽 꿈꿀 적에 달 세개를 받아 보았다는 꿈을 꾸고 그 애를 낳았다고 해서 꿈을 따라서 세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김 정승의 딸 이름은 꿈에 달 네개를 받아 보았다고 해서 네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최정승네 딸의 이름은 백발노인한테 달비 한쌍 받아서 배배 틀어 치마 폭에다 썼다는 꿈을 꾸고 애를 낳았다고 배뱅이라고 이름을 지엇습니다 (-456-)



님아 믿을 것이냐 못 믿을 건 님이로구나

꿈에라도 보인단 말은 그도 역시 못 믿을까

꿈아 무정한 꿈아 날과 무슨 원수길래

오는 님을 노내느냐 가는 님을 붙들어 놓고

잠든 나를 깨워 주지 지금쯤은 잠을 자느냐

다른 처자 뉘였느냐 모두 다 꿈에 그쳤구나. (-523-)



평양가 (平壤歌)


갈까 보다 가리갈까 보다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잦은 밥을 다 못 먹고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부모 동생 다 이별하고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불붙는다 불이 불붙는다.

평양성내 불이 불붙는다.

월선(月仙) 이 집에 행여 불 갈세라

월선이 집에 불이 불붙으면

육방관속(六房官屬) 이 제가 제 알리라

가세 가세 노리 놀러 가세

월선이 나와 소매를 잡고

가세 가세 어서 들어들 가세

놓소 놓소 노리놓소그려

직령(直領) 소매 노리놓소그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직령(稙領) 소매 동이 동떨어진다.

상침(上針) 중침9中針) 다 골라 내어

세모히 당사(唐絲) 로 가리감춰 줌세. (-622-)



까투리타령


까투리 한 마리 부두둥 허니 매방울이 떨렁

우여우여 허허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을 넘어 무등산을 지나 금성산을 당도허니

충청도라 계룡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충청도를 올라 계룡산을 넘어 경상도 가야산 당도허니

경기도라 삼각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걍기도를 올라 삼각산을 넘어 광주산성을 당도허니

경상도라 태백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경상도르 내려 문경을 넘어 청량산 보현산 당도허니

가원도 금강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옫재산에 올라 금강산을 복 태백사에 당도하니

황해도 구월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구월산에 올라 금강산을 보고 태백산에 당도하니

황해도 구월산ㄹ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구월산에 오라 달마산을 보고 불타산에 당도하니

평안도 묘향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묘향산에 오라 천마산을 보고 평양 모란봉에 당도하니

함경도라 백두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백두산에 올라 용왕담을 보고 보래산성에 당도하니. (-754-)



날 오라네


날 오라네 날오란메 건넌 말 벗님이 날 오라네

오라는 데는 다 뜨면 가고 동네나 술집은 낮에나 가지

청삽사리 짖지마라 낯익은 벗님이 찾아갔다.

님을 찾어 내 왔누라 그리운 벗님이 찾아왔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정 많이 든 님아 날 좀 보소

그립던 님 만나러 왔소 그대 얼굴을 보러 왔소

내 가슴에 깊이 든 병 그대로 인하여 병이 들어

골수에 깊이 드니 그대 아니면 고칠 수 없네. (-844-)



그 자리에 엎드러

[아니리]

이렇듯 목욕을 하고 수변에 나와 심봉사 옷을 입을 양으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의복이 없거날,

아, 내가 분명 여기다 지팽이로 누러 놨는디 아디로 갔을가?

바람에 날라 갔는가.

허허, 거 누가 나하고 농할라고 실쩍 감춘 것 아니여?

아,이리 내 놔.내 의복 내놔.

아무리 찾고 헤메어도 적막강산에 대답이 없거날

그제야 도둑 맞은 줄 짐작하고

[창]

그 자리에 엎드러져서

허허 이제는 꼭 죽었네 허허 이제는 영 죽었네

불꽃같은 이 더위에 옷을 훨씬 벗었으니 디여서도 죽겠구나

알몸이 되었으니 굶어서도 꼭 죽었네

백수풍신(白首風神) 늙은 몸이 황성 길을 어이 갈이거나

이 무지하 도적놈들아 내 의복 가져오너라.

머고 입고 남은 허다헌 부자집 다 버리고 내 것을 가져가니

그게 차마 될 말이냐

봉사 것 가져가면 열두 대 줄 봉사 난단다.

옷 가져 오너라 나 어쩌다 훨씬 벗었오.

귀머거리 앉인뱅이 날보다는 상팔자라

일월이 밝았으나 동서분별9東西分別)을 내 못하니 살어 있는 내 팔자야

모진 목숨 죽지도 못 허고 내가 이 지경이 웬일이냐. (-921-)



<적벽부> 는 원래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가 1082년 귀양을 가서 쓴<적벽부>에서 유래한다. 원래의 <적벽부>(이를 '후적벽부'라 한다) 가 있는데, 한문 원본 그대로만 토만 달아서 송서(誦書) 로 부르는 경우(경기 송서) 도 있고,<적벽부> 의 원문을 우리말 속으로 재성하여 가사를 새롭게 만든 서도 송서도 있다. 누가 우리말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도 송서로는 오래전부터 붕여왔던 듯하다.


내용은 소동파가 벗(양세창) 과 술잔을 기울이며 뱃놀이를 하면서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의 대군이 일전을 겨룬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1972년 발매된 김정연과 오복녀의 『서도소리대전집』에서도 <적벽부>는 송서로 분류하고 있다. 수심가 자락으로 끝을 맺는다.<적벽부> 는 묵계월, 유창 등에 의해 경기 송서로도 전승되었는데 ,가사는 소동파의 <적벽부>원문에 토만 단 것으로 서도 송서와는 조금 다르다. (-1039-)



문화평론가 하응백 작가의 『창악집성 昌樂集成』 이다. 가곡, 가사, 시조, 서도민요, 서도좌창, 서도입창, 서도시창, 경기민요, 경기잡가, 경기입창, 경기재담소리, 남도민요, 충청도민요, 제주도민요, 단가, 가야금병창, 경상도민요, 가원도민요, 송서,불가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가난과 아픔, 소시민의 서글픔,그이룸,허무함을 소리로서 , 구전으로 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국악이 익숙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국악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잇는지 알게 해주고 있었다. 오래전 영화 서편제를 소환하느 책이기도 하다. 인생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대도 있다. 그것을 한풀이로, 민요나 가사로 대신하곤 한다. 지금은 사라진 자연의 멋을 가사와 소리로 접근할 수 있다. 사진 속 기생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조선이의 생활사은 상상해 볼 수 있다. 문학,소리, 음악은 장르는 다르더라도,우리의 삶과 일치하고 있다. 삷ㅁ이 노래가 되고 ,삶니 가사가 되고,삶이 시조가 되었다. 지역마다 가사와 시조, 민요가 다른 이유다.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악집성』을 필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풍류에 대해서, 국악전문가 혹은 국악 전공예정자에게 국막,민요한자락에 대해서,정확한 소리를 전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소리(昌) 와 음악(樂) 을 집성(集成) 하여서, 우리의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과 슬픔,희노애락에 대해서,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고,전근대의 시와 시조, 한시, 현대시에 숨겨진 정서를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우리의 정서라는 것을 글이 아닌 소리로 느껴야 한다.그것이 매우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이런 경우,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면, 음악이 추구하는 느낌 뿐만 아니라,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으며,기록되어 있지 않아서,구전으로 흘러운 소리들,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나감으로서,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느낌을 다시 체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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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문명의 지도 - 세계의 질서를 만든 4000년 법의 역사 Philos 시리즈 13
퍼난다 피리 지음, 이영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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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법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3000년 우르의 왕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약속하는 선언을 하고, 서기관들에게 점토판에 법전을 기록하라고 명령했다. 몇 세기 후 중국 중부 지역의 호전적인 지도자들은 대나무 조각과 청동 그릇에 표의 문자를 새겼는데, 여기에응 범죄와 처벌에 대한 긴 목록이 적혀 있었다. (-17-)



초기의 법은 단순히 도시 생활을 규제하고 개별 청구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재판관과 조정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왕들은 관리들에게 세금을 올리고 범죄를 진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쫓아낼 방법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법이 있어야 하는 이들은 정의를 위한 자원으로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인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법이 필요했던 사람들이며, 이것이 바로 함무라비가 그들에게 준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64-)



기원전 1세기 말에 또 다른 집단인 웅변가들이 로마의 법적 절차에 관여했다. 포럼에서 열린 많은 회의와 집회는 가장 설득력 있는 연설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원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변호할 기회를 제공했다. 어떤 소송 당사자들은 친구와 친척 또는 존경받는 법학자들에게 자신의 법적 사례를 제시하도록 요청했고, 웅변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사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법을 이해하고,사용된 방식문과 증명되어야 하는 사실에 대해 길고 기술적인 논쟁에 참여해야 했다. 다만 그 사실은 승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했고,'형평'과 정의의 문제가 심판인의 결정에 근본적일 수도 있었다. 이런 사항들은 분명히 중대한 사건이나 부패 혐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143-)



앨프레드의 법에 따르면, 누군가가 창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다가 부주의하게 방향을 틀어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경우 차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배상을 해야 한다. 법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창과 관련된 사고에만, 그리고 창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이 조항은 실제 사례를 반영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우발적인 부상과 창의 각도처럼 평범한 요소가 의미하는 부주의의 정도에 대한 중요한 원칙을 나타내기 때문에 법에 포함됐을 것이다. (-194-)



1896년 ,카이로를 여행하던 스코틀랜드 여성 두 명이 희귀한 히브리어 문서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상인은 그 문서가 게니자(Geniza) 에서 왔다고 말했다. 게니자는 오래된 문서를 보관하던 중세 회당의 창고였다. (회중은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어떤 것도 파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중국의 무덤 문서나 둔황의 두루마리 문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법률 문서였으며, 대체로 11~12 세기의 것이었다. (-257-)



판사와 조정자가 법정에서 일관된 규칙을 적용하고자 하고 사람들이 권위 있는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조정과 타협의 오래된 체계의 모든 층위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법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비인격적인 기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 심지어 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는 언어 역시 제공했다. 법정에서 도시 집정관은 자작의 주장에 저항할 수 있고,자작은 대주교의 주장에 대응할 수 있으며, 대주교는 집정관들에게 도전할 수 있고, 그들 모두가 왕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더 강력한 사람들에 대한 논쟁에서 법을 인용할 수 있었다. (-315-)



고문은 진나라가 법전을 초안한 기원전 3세기에 이미 확립돼 있었다. 중국 관리들이 잘못된 유죄판결의 결과에 대해 기독교인 관리들과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타락한 지상 재판관들은 영적 재판관들이 탄원을 듣고 증거를 취하고 재판하는 저승에서 신의 응징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현령(지현) 들은 자백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61-)



20세기 동안 이 사상은 매우 지배적으로 되어 전 세계의 새로운 국가와 탈식민주의 체제가 유럽의 법 모델로 눈을 돌렸다. 식민지화되지 않은 국가들조차도 새로운 경제 및 상업 질서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새로운 법 제도의 기초로 『프랑스 민법』을 선택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탈식민 국가들은 이미 유럽 모델을 채택했다. 브라질의 법은 주로 포르투갈에서 유래했고, 이 법은 아르헨티나에 영향을 미쳤다. 1855년 칠레 민법은 나폴레옹 법전과 스페인의 『칠부전서』, 교회법의 요소에 기초했다. 19세기 일본의 메이지 헌법은 독일(프로이센) 모델을 기반으로 했고, 1932년에 수립된 태국의 입헌군주정은 힌두교 다르마샤스트라에서 파생된 법을 대륙법 원칙에 기초한 법전으로 대체했다. (-427-)



국제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은 고대의 선례를 가지고 있다. 2000여 년전 실크로드를 따라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인들은 기장하고 기록하기 위해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다. 상인들은 먼 나라에서 온 무역상들과 복잡한 거래를 할 때 이전에 동의한 방식으로 상품이 배달되고, 돈이 계산되고, 손실이 배분될 것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들이 개발한 규칙과 도구는 초기 성문법 일부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세에 아랍 상인들은 인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향신료를 가져왔고, 아프리카 캐러밴들은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러 튀니지로 금을 운반했고, 몽골의 낙타를 모는 사람들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하역했고, 그곳에서 선박들은 비단과 도자기를 북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으로 가져갔다. (-491-)



법은 일단 명시적으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부패와 학대에 반대하기 위해 인용하고, 의존하며,사용할 수 있는 규칙이다. 함무라비는 누구든지 자기 화강암에 새겨진 법을 읽고 정의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런 규칙을 무시하는 후계자에게 내려질 끔찍한 저주를 묘사했다. 그는 법의 지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법률 전문가들은 거의 항상 정치권력에 맞설 수 있었다. 인도의 브라만들은 왕이 장당성이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 법을 언급할 정도로 강력한 다르마의 비전을 지지했다. 주에 교황은 유럽 왕의 관할권를 규정할 권한을 주장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카디가 강력한 칼리프의 후원을 받았지만, 무프티는 우월한 권위를 주장하며 자신들을 분리했다. (-526-)



문유석 작가의 소설 『미스함무라비』 가 있다. 무론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도 JTBC를 통해 16부작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최근 들어서 법정 드라마,법정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현실 속의 법과, 드라마 속의 법이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며, 부정의한 판사,검사가 즐비한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 판사와 검사는 정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어필하고 있다.



뜬금없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 『법, 문명의 지도』을 소개하기 위해서다.고대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있었다. 그가 기원전 1750년 성문법으로 만든 법이 함무라비 법전이여, 우리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자신이 지은 죗값을 그대로 돌려주라는 기본 성문법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며, 21세기 지금 현재, 가해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적용에 대한 반발 심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면, 초기의 법이 만들어질 때, 그 법이 지금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처음 법이 만들어졌고, 점토판에 새겨지게 된다. 고대 메소포티미아가 법을 만들면서,사회적 기틀을 만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이후 법은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였고, 로마법으로 이어졌다. 집정관이 지배하던 로마에서, 법은 규칙, 처벌, 보상의 개념과 함께 한 가지 기능도 존재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정치권력이 높은 지위를 가진 정치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기능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의 대원칙이 이 당시에 만들어지게 된다. 물론 현재에도,이런 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가 있으니,북한과 같은 독재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왕이 나라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도 있었다.



법은 관습법에서, 처벌과 징벌,보상을 위한 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법은 체게적으로 만들어질수 있었고,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법에 대한 주석서 『당률소의』가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당나라의 법이 이후 대명률에 어떤 영향을 끼쳣는지 법의 역사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처벌을 위한 법도 존재하지만,정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법률도 존재한다.물론 국가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고,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법이 대명륭에 따라서,시행되었고, 죄의 형평에 따라서, 참수형,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그 정도에 맞게 법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법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고,실크로드로 무역을 해왔던 이슬람상인에게 법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도구였으며,힘이 될 수 있었다.거래의 신뢰를 위해서,법을 통해 거래의 규칙을 정하게 된다. 법이 상인에게는 보험의 특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슬람법에 코란의 경전을 기초로 한 법이 만들어졌으며,상법,무역법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근대로 들어오면서, 낡은 법 체계를 유지하였던 나라들이 서서히 다른 선진나라들의 법을 수영하고, 참고하였다.일본의 메이지 헌법과 한국의 유신헌법이 독일츼 프로이센 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도 여기에 있으며, 전세계의 무역량이 급증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법체계도 그에 발 맞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들은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며, 앞으로도, 법은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국가의 정치 제도와 국민의 수준에 따라서, 환경의 번화,조건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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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지키는 바다의 수호신 개양할미가 있다. 개양할미 신화는 삼국시대부터,지금까지 이어져 있으며,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칠산 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개양할미는 여덟 딸을 낳았다고 한다. 여기서 여덟 딸은 우리가 말하는 여덟 팔괘와 연관되어 있으며, 조기잡이 어선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어부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변산반도는 예로부터 거칠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곳이 거칠다 하여, 배가 안 지나갈 수 없었다. 개양할미에게 제시를 지낸 것이 어느 덧,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졌으며,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크다고 한다.



개양할미는 바다 위를 걸어 다니면서,위험한 곳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표시해 둔다고 한다 육지 흙을 가져와 깊은 바다를 메꾸는 일도 하였다. 물살이 거센 곳에 사람의 손으로 들기 힘든 큰 돌을 치맛자락에 들고와서, 물살을 잠재우는 것도 개양할미의 힘에 의해서다. 굽나막신을 신고 걸어다니는 개양할미.비바람이 불거나 태풍이나 폭풍이 몰아닥쳐도, 어부가 어선이 바다에 표류해 있을 때면,어김없이 개양할미가 나타나 고해주었다. 개양할미는 우리 어선 뿐만 아니라,이 바다를 지나가는 중국 어선,일본 어선에게 길을 알려주었으며, 어부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면, 부안 수성당에서, 수성할미를 모셔서 ,풍어와 안전하게 어선이 지나가기를 , 극진히 제사를 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전래 동화집은 어부들의 마음와 아픔을 품어주는 개양할미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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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이패스 사회조사분석사 2급 1차 필기 3주 합격 - 최근 3개년 기출문제 완벽분석, 기출문제 포함 600문제 수록
심우진 지음 / 이패스코리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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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조사분석사 2급 은 위업 준비생을 위한 자격증이며, 기업, 정당,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등 시장 조사, 여론조사 등을 통해서,계획을 수립하고, 조사를 수행하고, 결괄르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직접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다. 선거철, 정권이 바뀌거나, 정기적으로 여론조사 기관에서, 설문조사가 전화기를 통해서 응답할 때가 있다.이 여론조샤는 사회기관이나 기업에서 돌리는 경우가 있으며, 사회조사 분석 결과를 통해, 시자의 트렌드 변화를 이해하고, 사업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수립하고, 공약을 만들고, 사회 안에 문제들을 발굴하여, 분석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사회조사분석사 란, 그 일을 정확하게 하는 전문가이며, 정확한 자료,데이터, 통계를 얻기 위해서, 사회조사분석사 출제 경향과 학습전략을 만들수 있으며, 사회조사분석사 2급 1차 시험의 합격률이 낮아지고 있어서, 시험문제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책 『2024 이패스 사회조사분석사 2급 필기』은 수학이나 통계에 대해 모르는 수험생을 위해서, 3주만에 합격할 수 있는 시험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과목으로는 조사방법과 설계,조사관리와 자료처리, 통계분서과 활용으로 구분한다.  이 책에는 최근 3개년 기출문제 완벽 분석, 기출문제 600문제 를 수록하고 있어서, 시험 문제 경향 뿐만 아니라. 이론과 연습문제를 통해, 나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으며,틀린 문항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고 있어서,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사회조사분석사 2급 이론 파트다. 처음 문제집을 공부할때는 누구나 어렵다.하지만, 이론- 문제풀이-이론- 문제 풀이 를 반복하다보면, 사회조사분석사 이론과 문제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게 되고,이론 만으로,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론이 이제는 눈에 익음으로서, 쉬워지며, 사회조사분석사 관련 용어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이해 ,난이도, 정답 까지 큰 무리없이 풀수 있다. 기출 문제에서 자주 틀리는 문항은 반복해서 틀릴 수 있기에,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실수르 최소화하는 공부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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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부처의 말 - 2500년 동안 사랑받은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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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번뇌 리셋 연습장』,『생각 버리기 연습』 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초역 부처의 말』을 접하게 되었다. 이 세 권의 책은 마음 공부를 다루고 있었다. 길에 보이는 개를 보면, 개팔자를 부러워 하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공허와, 집착과 결핍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기와 질투, 반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처의 삶 또한 지금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부처 또한 2500년 전 고행의 길을 걸었고, 깨달음을 얻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됨으로서,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 『초역 부처의 말』에는 「법구경」, 「증지부경전」 등의 책 에 나오는 부처의 말씀을 옮기고 있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生)하고, 멸(滅)하기 마련이다.앙갚음, 복수를 한다는 것은 인간이 그 단어를, 앙갚음, 복수 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이 생각을 낳고,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나에게 복수를 하면, 반드시 복수로 앙갚음한다는 것은 야생동물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는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눈앞에 죽음을 보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며, 현재를 살아간다.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복수하지 않기 위해서, 앙갚음 하지 않기 위해서,수행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우리에게 필요한 인생 가치들을 담아볼 수 있었다. 선엄을 쌓고,나쁜 업, 악업과 멀리하라, 복수를 하지 않으며, 생명을 앗아가지 않는다.

 


속박과 집착, 고인이 되신 법정 스님과 성철스님이 끝끝내 내려놓고자 했던 두가지 속박과 집착이였다.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 타인의 삶에 관심을 드러내고, 그 관심에서, 내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두가지를 내려놓을 때,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 선업을 쌓을 수 있다. 욕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비로소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유지하면서,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결국 내 삶의 행복과 불행은 나의 선택에서 시작한다. 나의 나침반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구하고, 서쪽으로 가게 된다. 인간의 욕심이 나침반에 어긋난 선택을 하고 있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과 가까이 하는 친구와 멀리해야 하는 친구를 선택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꾸어야 하며, 스스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내 마음이 흔들린다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명상과 좌선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는다. 그것이 내 삶을 스스로 바로 잡는 유일한 길이 된다. 내가 만든 길이 나가 선택한 길이었다.



더러워지는 것도 , 깨끗해지는 것도 모두 자업자득입니다. 타인이 타인의 마음을 깨끗이 해줄 수는 없으니 쓸데업는 참견은 하지 마세요. -법구경(-108-)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충고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면 당신은 언제든 마음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습니다.(-169-)



게다가 당신의 업은 반드시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당신의 마음은 번뇌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222-)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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