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문명의 지도 - 세계의 질서를 만든 4000년 법의 역사 Philos 시리즈 13
퍼난다 피리 지음, 이영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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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법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3000년 우르의 왕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약속하는 선언을 하고, 서기관들에게 점토판에 법전을 기록하라고 명령했다. 몇 세기 후 중국 중부 지역의 호전적인 지도자들은 대나무 조각과 청동 그릇에 표의 문자를 새겼는데, 여기에응 범죄와 처벌에 대한 긴 목록이 적혀 있었다. (-17-)



초기의 법은 단순히 도시 생활을 규제하고 개별 청구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재판관과 조정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왕들은 관리들에게 세금을 올리고 범죄를 진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쫓아낼 방법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법이 있어야 하는 이들은 정의를 위한 자원으로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인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법이 필요했던 사람들이며, 이것이 바로 함무라비가 그들에게 준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64-)



기원전 1세기 말에 또 다른 집단인 웅변가들이 로마의 법적 절차에 관여했다. 포럼에서 열린 많은 회의와 집회는 가장 설득력 있는 연설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원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변호할 기회를 제공했다. 어떤 소송 당사자들은 친구와 친척 또는 존경받는 법학자들에게 자신의 법적 사례를 제시하도록 요청했고, 웅변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사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법을 이해하고,사용된 방식문과 증명되어야 하는 사실에 대해 길고 기술적인 논쟁에 참여해야 했다. 다만 그 사실은 승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했고,'형평'과 정의의 문제가 심판인의 결정에 근본적일 수도 있었다. 이런 사항들은 분명히 중대한 사건이나 부패 혐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143-)



앨프레드의 법에 따르면, 누군가가 창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다가 부주의하게 방향을 틀어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경우 차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배상을 해야 한다. 법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창과 관련된 사고에만, 그리고 창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이 조항은 실제 사례를 반영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우발적인 부상과 창의 각도처럼 평범한 요소가 의미하는 부주의의 정도에 대한 중요한 원칙을 나타내기 때문에 법에 포함됐을 것이다. (-194-)



1896년 ,카이로를 여행하던 스코틀랜드 여성 두 명이 희귀한 히브리어 문서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상인은 그 문서가 게니자(Geniza) 에서 왔다고 말했다. 게니자는 오래된 문서를 보관하던 중세 회당의 창고였다. (회중은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어떤 것도 파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중국의 무덤 문서나 둔황의 두루마리 문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법률 문서였으며, 대체로 11~12 세기의 것이었다. (-257-)



판사와 조정자가 법정에서 일관된 규칙을 적용하고자 하고 사람들이 권위 있는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조정과 타협의 오래된 체계의 모든 층위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법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비인격적인 기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 심지어 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는 언어 역시 제공했다. 법정에서 도시 집정관은 자작의 주장에 저항할 수 있고,자작은 대주교의 주장에 대응할 수 있으며, 대주교는 집정관들에게 도전할 수 있고, 그들 모두가 왕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더 강력한 사람들에 대한 논쟁에서 법을 인용할 수 있었다. (-315-)



고문은 진나라가 법전을 초안한 기원전 3세기에 이미 확립돼 있었다. 중국 관리들이 잘못된 유죄판결의 결과에 대해 기독교인 관리들과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타락한 지상 재판관들은 영적 재판관들이 탄원을 듣고 증거를 취하고 재판하는 저승에서 신의 응징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현령(지현) 들은 자백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61-)



20세기 동안 이 사상은 매우 지배적으로 되어 전 세계의 새로운 국가와 탈식민주의 체제가 유럽의 법 모델로 눈을 돌렸다. 식민지화되지 않은 국가들조차도 새로운 경제 및 상업 질서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새로운 법 제도의 기초로 『프랑스 민법』을 선택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탈식민 국가들은 이미 유럽 모델을 채택했다. 브라질의 법은 주로 포르투갈에서 유래했고, 이 법은 아르헨티나에 영향을 미쳤다. 1855년 칠레 민법은 나폴레옹 법전과 스페인의 『칠부전서』, 교회법의 요소에 기초했다. 19세기 일본의 메이지 헌법은 독일(프로이센) 모델을 기반으로 했고, 1932년에 수립된 태국의 입헌군주정은 힌두교 다르마샤스트라에서 파생된 법을 대륙법 원칙에 기초한 법전으로 대체했다. (-427-)



국제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은 고대의 선례를 가지고 있다. 2000여 년전 실크로드를 따라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인들은 기장하고 기록하기 위해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다. 상인들은 먼 나라에서 온 무역상들과 복잡한 거래를 할 때 이전에 동의한 방식으로 상품이 배달되고, 돈이 계산되고, 손실이 배분될 것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들이 개발한 규칙과 도구는 초기 성문법 일부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세에 아랍 상인들은 인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향신료를 가져왔고, 아프리카 캐러밴들은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러 튀니지로 금을 운반했고, 몽골의 낙타를 모는 사람들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하역했고, 그곳에서 선박들은 비단과 도자기를 북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으로 가져갔다. (-491-)



법은 일단 명시적으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부패와 학대에 반대하기 위해 인용하고, 의존하며,사용할 수 있는 규칙이다. 함무라비는 누구든지 자기 화강암에 새겨진 법을 읽고 정의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런 규칙을 무시하는 후계자에게 내려질 끔찍한 저주를 묘사했다. 그는 법의 지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법률 전문가들은 거의 항상 정치권력에 맞설 수 있었다. 인도의 브라만들은 왕이 장당성이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 법을 언급할 정도로 강력한 다르마의 비전을 지지했다. 주에 교황은 유럽 왕의 관할권를 규정할 권한을 주장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카디가 강력한 칼리프의 후원을 받았지만, 무프티는 우월한 권위를 주장하며 자신들을 분리했다. (-526-)



문유석 작가의 소설 『미스함무라비』 가 있다. 무론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도 JTBC를 통해 16부작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최근 들어서 법정 드라마,법정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현실 속의 법과, 드라마 속의 법이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며, 부정의한 판사,검사가 즐비한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 판사와 검사는 정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어필하고 있다.



뜬금없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 『법, 문명의 지도』을 소개하기 위해서다.고대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있었다. 그가 기원전 1750년 성문법으로 만든 법이 함무라비 법전이여, 우리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자신이 지은 죗값을 그대로 돌려주라는 기본 성문법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며, 21세기 지금 현재, 가해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적용에 대한 반발 심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면, 초기의 법이 만들어질 때, 그 법이 지금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처음 법이 만들어졌고, 점토판에 새겨지게 된다. 고대 메소포티미아가 법을 만들면서,사회적 기틀을 만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이후 법은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였고, 로마법으로 이어졌다. 집정관이 지배하던 로마에서, 법은 규칙, 처벌, 보상의 개념과 함께 한 가지 기능도 존재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정치권력이 높은 지위를 가진 정치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기능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의 대원칙이 이 당시에 만들어지게 된다. 물론 현재에도,이런 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가 있으니,북한과 같은 독재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왕이 나라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도 있었다.



법은 관습법에서, 처벌과 징벌,보상을 위한 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법은 체게적으로 만들어질수 있었고,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법에 대한 주석서 『당률소의』가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당나라의 법이 이후 대명률에 어떤 영향을 끼쳣는지 법의 역사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처벌을 위한 법도 존재하지만,정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법률도 존재한다.물론 국가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고,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법이 대명륭에 따라서,시행되었고, 죄의 형평에 따라서, 참수형,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그 정도에 맞게 법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법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고,실크로드로 무역을 해왔던 이슬람상인에게 법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도구였으며,힘이 될 수 있었다.거래의 신뢰를 위해서,법을 통해 거래의 규칙을 정하게 된다. 법이 상인에게는 보험의 특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슬람법에 코란의 경전을 기초로 한 법이 만들어졌으며,상법,무역법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근대로 들어오면서, 낡은 법 체계를 유지하였던 나라들이 서서히 다른 선진나라들의 법을 수영하고, 참고하였다.일본의 메이지 헌법과 한국의 유신헌법이 독일츼 프로이센 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도 여기에 있으며, 전세계의 무역량이 급증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법체계도 그에 발 맞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들은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며, 앞으로도, 법은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국가의 정치 제도와 국민의 수준에 따라서, 환경의 번화,조건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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