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이 그립다 - 서로의 마음속에 온기가 스며들다
이현주.노주선 지음 / 소울메이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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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간관계에 대해 다양한 책을 접하고, 그것을 일상 속에 접목했으며, 사람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가랑비에 옷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인간관계가 조금씩 부드러워졌으며, 이젠 이성과 가볍게 대화하고 수다를 즐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청에 대해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 되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나타나고 있다. 그건 상대방에 대해서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 짓지 못하고, 그 사람과 내가 '다름'을 틀리다고 단정짓고 생각하는 나의 사고 방식이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그건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체득된 습관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 방식은 다름 보다는 틀림에 익숙하다. 정답과 오답을 구별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답을 찾아 나간다,. 그런 습관이 교육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방해 요소가 된다.포용보다는 배척하고, 친밀감보다 왕따가 익숙한 이유는 그런 행동을 함으로서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익숙함에 먼저 손이 가고, 편리하다고 생각하면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 빫아진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따스한 온정이 사라지고, 이해관계만 남는 결과를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감정을 상대방의 입장과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엄마의 입장과 자녀의 입장이 매우 다르며, 상사의 입장과 부하 직원의 입장도 매우 다릅니다. 이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의 행동은 이해가 안 되고 불합리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이해가 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쉽게 포착됩니다. (P33)


나와 상대방의 입장. 입장 차이가 좁으면 좁을수록 그건 서로의 인간 관계가 원만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인간관계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진다. 특히 남녀간의 입장 차이는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의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충돌이 빈번하게 일아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어딘가 표출시켜서 자신을 위로받으려는 심리가 존재한다.여기서 서로의 경험이 접점을 이루고, 서로 경험하는 것이 겹쳐지면, 입장차이는 좁혀지고, 그렇지 않으면, 입장차이는 커진다. 시어머니의 입장과 며느리의 입장 차이가 항상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두 사람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상대방을 파악해야 새로운 답이 도출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분석하려는 심리가 너무 강하고, 상식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지 못하고 하나로 정해질 수 있다. 세대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 생기는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성격은 개인의 긴 역사를 반영함을 기억합시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분명히 비난받아야 할 행동이지만, 그 사람이 지나온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문제가 되는 행동패턴은 단순히 현재의 직장생활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짧든 길든 살아온 개인의 역사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축적된 경험으로 인해 개인의 성격이 형성됩니다. 즉 각자의 인생을 놓고 보면 당사자에게는 의미가 있고 필요했기 때문에 형성된 특성입니다. 비록 지금 적응을 못하고 인간관계에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P154)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까운 친척이 생각 났다. 그분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이 호용하지 않는 성격이며, 상당히 거칠고 폭력적이다. 가끔은 멀리서 그 사람의 행동을 바라 볼 때가 있는데, 그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나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나오고 있다. 그 사람을 이심전심으로 바라 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을 측은지심, 즉 불쌍하게 바라 보는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스스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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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하라 히로코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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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을 보면 어린 아이가 트렉터나 경운기를 손수 운전하는 것을 비출 때가 있다. 다른 기계와 달리 농기계는 타인에게 위험하진 않지만 그것이 가지는 차체 무게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농기계는 어린 아이들도 직접 운전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보자면 아이들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아이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보편적인 생각이 나타난다. 아이는 고개를 돌리면 위험한 행동을 하고, 통제되고 관리해고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해어인디언들의 삶을 모습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관, 문화에서 벗어나 있었다. 


캐나다 북부에는 해어 인디언이 있다. 일년중 절반은 영하 20도 이하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해어 인디언들의 삶의 중심에는 생존이 있다. 간간히 문명 세계의 해택을 누리고 있지만, 오랫동안 추구했던 수렵인으로서의 생존 방식을 해어 인디언은 버리지 않는다. 특히 해어 인디언의 육아 방식을 본다면, 우리와 다른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건 아이와 어른의 개념이 없고, 아이를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도와 줘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 즉 아이 스스로 자유로운 상태로 둔다면 아이들은 고유의 잠재력을 세상에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게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관찰하고, 관찰한 것에 대해서 행동으로 바꿔 나가게 된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것은 누군가 가르쳐 줘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워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 배우는 것과 남이 가르쳐 주는 것, 이 두가지 차이점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가르쳐 주게 되면, 수평적인 구조가 수직적은 구조로 바뀌게 된다. 같은 동급생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깨우친다면 수직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그건 남녀간에 해야 할 일이 구별되는 우리의 문일반적인 정서와 다른 해어 인디언만의 독특한 문화이자 관습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부모가 내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엿볼 수 있다. 자기 주도적 학습, 창의력 학습을 강조하면서 정작 많은 부모들은 내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 주지 못한다. 부모의 생각 속에는 내 아이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창의력은 가르쳐야 하고, 누군가에게 배워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주도적 학습, 창의력 학습은 아이 스스로 배워 나갈 수 있다.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가 어떤 걸 하고 싶을 때 부모가 정해주는 하나의 안전한 영역 안에서 아이 스스로 자유롭게 둔다면, 그것이 바로 해어 인디언들이 추구하는 교육방식이며, 우리가 원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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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본소득 - 자유로운 사회, 합리적인 경제를 향한 거대한 전환
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홍기빈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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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고, 위기가 될 수 있다. 자본가는 제4차 산업혁명을 기회로 인식하게 되고, 리스크를 줄여나가면서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다.그에 반해 노동자는 위기를 먼저 감지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추구했던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들의 기본적인 삶의 패턴과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시작은 제조업 분야에서 먼저 ㄴ타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필리프 판 파레이스가 쓴 <21세기 기본 소득>은 제4차 산업혁명과 무관하다. 이 책은 쓰여진 시점은 2005년이며, 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왜 기본 소득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건 우리 사회의 변화에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사회적 인프라가 전혀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미제 물건, 일제 물건을 떼와서 돈을 벌었던 시기가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우선이었던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은 생존하기 위한 절실함이 있었다. 먹고사니즘이 급하였고, 우리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먼저 생각한 것이 교육이다. 자원이 부족하고, 물자가 부족했던 우리가 수출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노령력과 노동자에게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편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편리함을 우선하면서 살아간다. 돈이 우선이었던 과거의 우리 모습은 이제 편리함이 우선인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삶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은 복지이다. 이재명 성남 시장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정치에 도입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혁신이다. 물론 거기에 반감을 표시하는 이들은 바로 보수정치를 지향하는 보수 정치인들이다.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이무렵이며, 미디어는 보수 정치인들의 입과 눈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기본 소득에 대한 인식이 도입되는 그 시점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유가 아닌가 싶다.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최저 임금에서 엿볼 수 있다. 국가가 최저 임금을 올리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자본가나, 공무원들에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다수의 자본가들,생계를 연명하는 것조차 힘든 이들은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24시간 편의점이 바로 그런 다수의 자본가 집단이며, 그들이 최저 임금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본 소득을 국민이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내가 낸 돈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에 있다. 기본 소득을 국민한 사람당 20만원을 준다면 20만원 *5000만명=10조원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것을 다섯배 증가시켜 100만원을 준다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에 있다. 노동의 가치과 퇴색되고, 교육의 목적이 점점 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본 소득을 대다수의 국민에게 준다면 인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최저 임금을 올림으로서 자연스럽게 물가가 같이 올라가는 걸 본다면, 기본 소득을 도입할 때 생기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국민들은 기본 소득을 얻고 물가도 안정적이길 원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시스템 하에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엄마와 아기들에게 지원하는 돈이 늘어나면서, 완구 시장, 건강 관련 시장이 더 확대된 것을 본다면, 어떤 하나의 정책이 추진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한 결과를 만들어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 소득이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를 잉태하는지 저자의 남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소외 계층에 복지의 형태로 기본 소득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나가고 있다. 물론 그것이 비현실적으로 낮다는 게 문제이며, 국민연금이나 공무원 연금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정책이 추진되면 그것이 정착되고, 부작용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 원할하게 이뤄 져야 하는데 그것이 이상적으로 중요한 절차들이 생략된 채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우리는 빈곤에 있어서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만인에게 최소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무수히 많은 반대 논리가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 대부분은 그 어떤 해결책도 , 심지어 너무나 현실적인 해결책마저도 전혀 생각하지 않으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면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파괴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노동의 동기부여를 파괴하는 최상의 환경은 바로 우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현행 복지 시스템 자체다. 우리는 빈곤한 이들에게 소득을 주었다가, 수급자들이 아주 형편없는 일자리라도 가지게 되면 바로 그 소득을 빼앗아버린다. 이렇게 우리는 복지 수급자들의 한계 소득에 대해 100퍼센트, 심지어 그 이상의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다. 최소소득 제도를 실시하면 사람들이 노동시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득이 불충분한 이들 모두가 일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빈곤에 대한 해독제로서 그 효과가 확실한 것은 소득의 제공만 한 것이 없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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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 어느 난민 가족의 여행 철학하는 아이 10
마그리트 루어스 지음, 이상희 옮김, 니자르 알리 바드르 사진, 정우성 해설 / 이마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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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주 화요일에 방영되는 '이웃집 찰스'를 즐겨 봅니다.그 방송에는 한국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 방송을 볼 때마다 느낀 점은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살아갈 때 겪는 어려운 것처럼 그들도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백인에 우호적인 한국인의 성향은 한국인과 백인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들에게 비우호적이고, 때로는 인종적 차별을 가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권 사람들에게 특히 반감을 표하고 있으며, 최근 예맨 난민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 내에 머물러 있는 난민들을 퇴출시키자는 청와대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난민을 퇴출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우리는 과거 우리가 겪었던 역사를 잊고 살고 있으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다 보니 우리 스스로 한때 난민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걸 놓치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 한국 전쟁 이후 우리의 삶이 바로 나라를 잃고 지금 현재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니는 난민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겁니다. 이 책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일상을 살았던 라마와 남동생 사미가 행복을 잃어버리고, 전쟁으로 떠돌아 다니는 그 모습을 본다면 난민들의 처지가 어떤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라가 없고 자신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 터전이 사라진다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 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걷고 또 걷고, 작은 배 위에 올라가 자유와 평화를 찾아 가지만,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꿈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아직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동화책에서 엿볼 수 있으며, 라마와 사미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을 이해한다면, 결코 난민들을 배척하지 못할 것입니다. 난민을 우리가 포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위헌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배척하는 건 잘못된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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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백신
스튜어트 블룸 지음, 추선영 옮김 / 박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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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여전히 전 세계적 차원의 질병 퇴치 목적에 동참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한정적이든 아니든, 각국이 직면한 건강 문제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전 세계적 질병 퇴치 목표가 우선시되는 것이다. 수년 전 하프단 말러 WHO 사무총장이 경고했음에도 질병 퇴치라는 생각은 대체로 미국 출신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채택해 여전히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 덕분에 보건의료 시스템이 매우 취약한 더 빈곤한 국가들은 일상적 백신접종을 비롯한 기초 보건 서비스를 그 대가로 치르고 있는 형편이다. (p348)


이 책을 읽고 나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백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백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실체는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으며, 정부는 왜 건강을 강조하고, 백신접종을 권장하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돌이켜 본다면 우리는 백신접종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엄마가 임신해 아기를 출산하면, 아기는 다양한 백신 접종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정해 주는 백신접종 일정에 따라서, 엄마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된다. 아기가 주사를 맞고 울고 있고 안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은 잠깐 뿐이라고 생각하며, 대다수의 엄마들은 내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백신 접종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왜 우리는 백신 접종을 맞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있는 토론과 의견을 모으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백신접종은 당연한 거고, 백신 접종을 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우리의 저 밑바닥에 숨어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백신접종에도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백신 접종 캠패인이 한 국민의 정책이 아닌 전 세계에서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공공의 영역이라 생각해 왔던 백신접종이 미국과 같은 나라의 제약회사의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하여도 우리는 백신의 효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예방 접종을 실시하게 된다.미국이 아프리카 전역에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이유는 바로 구소련 때문이다. 소련은 아프리카에 천연두 백신 접종으로 그들이 안고 있는 전염병을 퇴치 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으며, 어느 정도 효융 가치가 있었다. 소련이 천연두 퇴치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이유는 아프리카 국민들을 공산주의에 편입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말라리아 접종을 아프리카에 펼친 이유는 바로 소련의 공산주의 확대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전쟁이 빠지지 않는다. 전쟁하면, 총과 칼, 비행기,배, 탱크,함포와 같은 전쟁 무기에 대해 언급하고, 전쟁의 승리에 대해서, 전쟁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망자 숫자에 대해 관심가지고 있다. 정작 전쟁과 결부되는 전염병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거나  단편적으로 언급할 뿐이다 어쩌면 총과 칼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가 더 많을 수 있으며,그 원인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굶어 죽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사람들의 굶주림을 먹고 살아간다. 먹을 게 없고, 배고픔에 허덕 이는 이들은 전염병 예방 접종에 대해서 신경쓸 겨를이 없다.,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에서 수많은 전염병이 도처에 샘솟고 있다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길거리에 시체가 곳곳에 널려있고, 부모를 잃은 고아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헤매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죽어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바로 전염병과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연결짓고 있으며, 천연두, 홍역, 소아마비,말라리아,에볼라 바이러스 퇴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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