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미않 - 나는 퇴직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김석 지음 / 유심(USIM)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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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해 4월 초 회사는 노사 상생의 방법이라며 특별 명예퇴직 시행을 발표했습니다.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저는 당황하지 않고 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대규모 인원이 대상이었고, 많은 직원들이 신청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p25)


퇴직은 결과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즉 삶이라는 여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중간에 거치는 하나의 장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절대 정년퇴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세번째는 '일이 싫고 힘들 때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생겼을 때 떠나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p42)


어떤 사람이든 변화는 두렵습니다.익숙함이 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변화는 하고 싶습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고 익숙함과의 이별에서부터 먼저 실천되어야 합니다. (p85)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나의 삶을 즐길 것이다.언젠가 그 하루 전체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삶은, 온통 자유로운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얻기 위한 싸움과 인내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건져낸 슬픔과 깨달음 그리고 행복인지 모른다. 나는 오직 내가 되어, 60억 인류 속에 서로 같지 않은 하나로 살다 가고 싶다. 그때 신은 나에게 '자신이 허락한 유일한 인생을 낭비한 죄'를 나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p156)


많이 바쁜가요? 정말 많은 일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일의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일을 줄이는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가정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일은 많지 않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부러 바쁜 듯 살아가고 있다면 삶의 방식을 바꾸기 바랍니다.바쁜 삶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삶의 질은 즐겁게 일과 여가 생활을 함께할 때 높아집니다. (p211)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지금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요소이다.직장내에서 열심히,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던 그 시대에는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성과를 중시하고, 나이가 들어가면 언젠가는 스스로 나와야 할 때가 온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밀어내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성찰하게 된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다가 밀려날 때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자칭 오륙도라 부르는 이들이 직장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을 때, 그 순간을 기회로 잡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강제 은퇴를 하는 것이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을 통해 배워 나갈 수 있다. 


직장인으로서 워라벨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책에서 저자는 20여년간 일을 해왔고, 명예퇴직에 몰리게 된다. 스스로 그 순간을 변화의 출발점이라 생각해 왔으며,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써먹는 기회로 삼았다. 정보통신기술사와 학교에서 석박사를 따내 엔지니어링 회사의 정보통신 감리로 일하게 된다. 남다른 도전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의 횡보는 특별한 건 아니었다. 일의 포트폴리오에 대해서 남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자의 삶의 변화였고, 일에 대한 가치관을 새로이 설정하게 된다.자신이 배웠던 일에 대한 관점과 전공에 대한 지식들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하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것, 그것의 모범적인 사례가 이 책을 쓴 김 석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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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하 - 발췌본 제2차 세계대전
윈스턴 처칠 지음, 차병직 옮김 / 까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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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참전함으로써 독일이 영국 공습에서 눈을 돌리게 되어 침공의 위협을 감소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지중해 문제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반면에, 엄청난 희생과 소모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겨우 장비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할 때였다. (p688)


오킨렌의 임무는 먼저 적군의 기갑부대를 무너뜨리면서 키레나이카를 탈환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는 트리폴리타니아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적으로 앨런 커닝엄에게 새로 명명된 제8군의 지휘를 맡겼다. (p724)


싱가포르 시내의 상황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민간 노동시장은 궤멸되었고, 수도 공급의 실패로 단수는 임박했으며, 창고를 이미 적군이 점령함으로써 군대에 보급할 식량과 탄약의 재고량이 심각한 상태로 줄어들었다. 그때 이미 조직적인 파괴 계획이 수행되기 시작했다. (p785)


의회의 상황은 신속한 설명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싱가포르 함락에 따라 이미 한 차례 투표한 후였기 때문에, 하원에서 또 신임 투표를 요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6월 25일,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불신임 투표 동의안을 발의한 것은 오히려 매우 편한 방식이었다. (p847)


날씨는 쾌청했고, 바람은 순방향이었으며, 나는 모스크바로 빨리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쿠이비셰프 [볼가 강변의 항구 도시/역주] 의 한쪽 모퉁이를 가로질러 바로 수도로 향하는 여정이 준비되었다. 성대한 연회와 진짜 러시아식 환대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p891)


나는 지금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는데, 당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수백만명의 남녀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비극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틀림없이 올 것이며, 먹을 것은 확실히 늘어나고 스탈린의 이름은 칭송의 대상이 될 터이다. 나는 "정의를 해치지 않고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나는 개혁을 포기하겠다"고 한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반복하지는 않겠다. (p913)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속에서 과오를 찾아내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역사 속의 주요 사건들의 흐름을 되짚어 나가고 있다. 반면에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특히 역사 속 전쟁을 들여다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과거의 사람들이 죽음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굼심부에 있었던 지도자는 살기 위한 전략을 만들어 나가는데 반해 민간인과 군인들은 예기치 않은 이유로 죽게 된다. 내 가족이 죽을 수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죽게 되면, 살아남은 사람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에 기존의 역사서와 차별화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사와 야사가 섞여있으며, 후대 사람들이 역사를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그 역사의 주연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칠의 회고록이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쟁에 있어서 각각의 전략들을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전쟁은 어떤 대형으로 만들어지는지,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남는자와 죽음을 마주하는 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눈부신 전략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전쟁은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게 되는지, 독일의 기갑부대와 히틀러가 자행하는 전쟁이 형태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전쟁의 부분 부분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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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월의 말 1 : 마스터스 오브 로마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2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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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웃음을 터뜨렸다."상황이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하는군. 루프리우스! 내 전령이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진지에서 돌아왔네. 나,나는 저들이 자랑하는 삼각주 운하를 이용하지 않았네.전령에게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서 가게 했지. 15킬로미터마다 새말로 갈아타면서 말이야. 당연히도 포테이노스가 보낸 전령은 여와에게 당도한 적이 없었네. (p83)


이집트에서는 바람이 항상 북쪽에서 불어왔으므로, 강 하류로 내려갈 때는 티로스 자주색 돛을 이용해서 갔다. 그런 뒤 되돌아갈 때는 지중해를 향해 북쪽으로 흐르는 거센 물살이 노의 동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카이사르가 노잡이들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다. (p187)


소크라테스는 눈물이 줄줄 흐를 때까지 웃어댔다."마르쿠스 카토당신이 가는 곳은 실피움이 우거진 벌판입니다. 당신의 노새와 염소와 황소가 맛있게 포식할 키 작은 관목이지요. 프실리라는 종족이 실피움에서 라세르피키움을 추출합니다. 프실리족은 키레나이카 서쪽 끝에 살고 있고 필라이노룸이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습니다. 고기 과잉 섭취가 지중해 인근에서 일반적인 식단이었다면 프실리족은 지금보다 훨씬 부유했을 겁니다. 큰 수익을 내는 건 프실리족이 아니라 필라이노룸에 들르는 약살빠른 상인들이죠."(p279)


카이사르의 시선은 그가 7년 전에 착공한 공공건물들을 좇을 여유가 없었다. 포룸 로마눔 낮은 구역의 율리우스 회당, 새 원로원 회의장, 그 옆의 원로원 사무실들.
(p11) 그렇다. 그의 시선은 썩어가는 시체들,쓰러진 조각상들,부서진 연단,허물어진 구석과 틈새 들을 좇기에도 바빳다. 피쿠스 루미날리스에는 상처가 생겼고, 다른 두 그루의 신성한 나무도 낮은 쪽 가지들이 갈라졌으며, 쿠르티우스 연못은 피로 더렵혀져 있었다. (p404)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로마에서는 카이사르의 동향을 찾아다니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집정관이나 원로원들, 카이사르의 잠재적인 적들에게는 그가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속주 총독으로서 넘어서는 일을 했던 카이사르는 사실 이집트에 머물러 있었다. 카이사르와 함께 운명공동체가 될 클레오파트라와의 동침이 있었고, 카이사르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구상을 이집트에 하게 된다.하지만 로마에서는 그의 횡보에 대해서 눈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책에는 바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어머니 세르빌리우스와의 관게가 정리되고, 카이사르는 이집트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데 극도의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브루투스의 행동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 예고되지 않는 브루투스의 행위를 느낄 수 있고, 브루투스의 운명과 카이사르의 운명적인 사건은 그렇게 이유없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폼페이우스와 안토니우스,그리고 카이사르,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카이사르가 넘어서야 하는 장벽이다. 카이사르는 가문으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인물 면으로 보나 그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카이사르의 선택이며, 그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질 것인가, 실패가 될 것인가에 대한 탐색전이다.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묘한 관계들, 그것은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와의 관계들을 엿보면서, 칼푸르니아는 전쟁을 준비하고, 로마의 독재자가 되려는 카이사르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상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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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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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와 조비가 오나라 사신에게 준 전복 1000개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송나라 이후 또 1500년이 흐른 17세기 명나라 무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으니 전복 구하기가 옛날처럼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이때도 전복은 여전히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p52)


"옛날 요순시대에 팽조는 800세까지 살았다는데 이는 얼굴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폐하 생일 잔칫상 국수를 보니 가늘고 긴 것이 평조 얼굴보다 몇 배나 더 긴지 모르겠습니다. 주방장이 폐하의 만수무강을 빌며 이런 국수를 만든 것 같습니다."(p79)


기원전 2세기 장건이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를 처음 열었을 때 전해진 새로운 종자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참깨는 원산지가 중동이다. 장건이 서역엣서 돌아올 때 종자를 가져와 퍼뜨렸다고 하는데 이후 동양에서는 참깨가 불로장수 식품으로 통했다.조선 후기의 '산림경제'를 보면 참깨를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불로장생의 비약으로 여겼던 기록이 있다. (p154)


필리핀 루손섬을 떠난 그는 일주일 동안의 항해를 거쳐 고향인 푸젠성으로 무사히 돌아와 고향 땅에 고구마를 심었다. 혹시 풍토가 달라 고구마 종자가 잘 자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와 달리 푸젠성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았는지 고구마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때가 명나라 신종 때로 15923년 무렵이다. (p203)


15세기부터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중심에는후추가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른 인도 항로의 발견, 1519년 스페인을 출발해 필리핀을 찍고 1522년 스페인으로 되돌아온 마젤란의 세계일주가 모두 값비싼 후추를 비롯해 다양한 향신료를 찾아 떠났던 새로운 항로 개척 여행이었다. (p185)


한자를 보면 조개 패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부수에서도 많이 나온다. 과거 조개는 화폐대용수단이었고, 귀한 음식이다. 지금으로 치면 조개 하나가 건물 한채에 맞먹는다. 중국의 역사에서 조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삼국지에서 조식이 아버지에게 바친 조개의 값어치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고 있다. 조개의 경우에서 보듯이 지금은 널리 먹고 대중화 되었지만 처음에는 비싼 음식이었고,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후추는 중국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후추를 얻기 위해서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무역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던 상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땅에 상륙하게 되었고, 역사를 바꾸게 된다.그런데 유럽인들이 추구했던 후추는 중국에서도 비싼 제품이다. 그건 후추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향신료였지만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여서이다. 


겨울이면 빠지지 않는 고구마가 우리의 식탁에 널리 사용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과거에 각 나라마다 종자를 사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고구마의 종자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책에서는 고구마가 중국의 인구를 증폭시키게 된 계기라 말하는데, 그 이유는 고구마가 보급됨으로서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자 전쟁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게 되엇고, 풍복한 삶 속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며, 이 책에는 전쟁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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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찰살인 - 정조대왕 암살사건 비망록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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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가 그토록 정약용을 쫒아내려고 혈안이 된 이유는 명확했다. 정약용은 남인을 재건한 채제공을 이어 남인의 영수가 될 재목이었다. 주상도 정약용이 남인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라고 보고 그를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그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정약용을 무너뜨려 이번 참에 남인을 조정에서 완전히 몰아내려는 심산이었다. 정약용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지만 자기 때문에 형들이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사직을 청하고 낙향을 결정했던 것이다.(p38)


"동덕단은 상감을 가장 가까이서 은밀하게 호위하는 밀병 조직이다. 상감의 명령으로 내가 15년 전에 그들을 조련하고 훈련시켰다. 장용위 소속 무사 중에 타고난 무골을 가진 자 30명을 선발하여 특별히 만든 조직이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데, 단원이 지금쯤 100명이 넘을 것이고, 조직도 훨씬 커졌을 것이다. 너를 공격한 자는 동덕단 소속의 밀병일 가능성이 있다. "(p122)


"주상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겠지. 주상께서는 대왕대비와 벽파의 결속을 원하지 않으시네. 만약 그들이 결속한다면 훗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 벽파와 대왕대비가 한통속이 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야." (p184)


"일월처럼 밝디밝은 성상께서 내리신 분부는 모두가 지극히 정밀한 의리였으며, 이번에 연석에서 분부하신 뒤로는 털끝만큼도 미진한 점이 없게 되었으니, 비록 우매한 서민이라도 그 누가 성상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며, 또 누가 감히 그사이에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p236)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의 영조 임금의 손자 이산 정조 시대이다. 정조 임금에 대해서 우리는 그의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널리 퍼져 있다. 책에서는 사도 세자를 장헌 세자라 부르고 있으며, 장헌 세자는 이산 정조 임금의 아버지다.영주의 아들 장헌 세자와 효장세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빚어지게 된 왕위세습과정에서 피바람이 불었으며, 이산 정조는 영조의 대를 잇게 된다. 소설에는 이산 정조의 삶과 업적들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첩쳘되어지는 부분들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정조의 삶을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허구와 역사를 오가면서 재현하고 있다.


정조 임금 시대에 남인 정약용이 있었다. 실학의 선구자였던 장약용은 영조임금부터 헌종 임금떄까지 생존하였고, 조선시대 권력 다툼에 빚겨나 있었다. 노론 벽파의 영주였던 심환지와 남인이면서 소론이었던 정약용, 역사적 인물들간에 권력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정약용은 권력다툼에서 자칫 집안이 몰랄 수 있었기에 귀양을 자처하게 된다. 정약용이 살았던 당시 임금은 조선의 정통에 따라 선택되었지만, 그 권력의 바닥에는 외척들이 존재했다. 왕의 주변에 외척들이 누가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임금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조선의 운명 또한 그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소설은 제 22대 임금 정종의 삶을 그랴내고 있는데, 피바람의 근원은 권력쟁탈에 있다.


소설은 암살 뒤에 숨어있는 정조의 병에 대해 관찰해 보게 된다.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던 정종은 자신의 병의 실체를 의관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종 임금의 썩어들어가는 피부는 수은에 중독된 상황이었고, 손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금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제도들을 악용하는 부분들이 나오고 있는데, 정조 임금 을 대체하는 분신이 있다. 그 분신은 정조 임금을 대신하며, 임금이 무언가를 먹거나 처방을 내리기 전에 분신이 먼저 임금이 먹을 수랏상을 자처하게 된다. 그건 병에 있어서 처방전이 내려질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독특한 서사적 구조속에서 임금이 쉰이 되기 전에 죽음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점점 더 또렷하게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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