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찰살인 - 정조대왕 암살사건 비망록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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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가 그토록 정약용을 쫒아내려고 혈안이 된 이유는 명확했다. 정약용은 남인을 재건한 채제공을 이어 남인의 영수가 될 재목이었다. 주상도 정약용이 남인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라고 보고 그를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그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정약용을 무너뜨려 이번 참에 남인을 조정에서 완전히 몰아내려는 심산이었다. 정약용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지만 자기 때문에 형들이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사직을 청하고 낙향을 결정했던 것이다.(p38)


"동덕단은 상감을 가장 가까이서 은밀하게 호위하는 밀병 조직이다. 상감의 명령으로 내가 15년 전에 그들을 조련하고 훈련시켰다. 장용위 소속 무사 중에 타고난 무골을 가진 자 30명을 선발하여 특별히 만든 조직이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데, 단원이 지금쯤 100명이 넘을 것이고, 조직도 훨씬 커졌을 것이다. 너를 공격한 자는 동덕단 소속의 밀병일 가능성이 있다. "(p122)


"주상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겠지. 주상께서는 대왕대비와 벽파의 결속을 원하지 않으시네. 만약 그들이 결속한다면 훗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 벽파와 대왕대비가 한통속이 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야." (p184)


"일월처럼 밝디밝은 성상께서 내리신 분부는 모두가 지극히 정밀한 의리였으며, 이번에 연석에서 분부하신 뒤로는 털끝만큼도 미진한 점이 없게 되었으니, 비록 우매한 서민이라도 그 누가 성상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며, 또 누가 감히 그사이에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p236)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의 영조 임금의 손자 이산 정조 시대이다. 정조 임금에 대해서 우리는 그의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널리 퍼져 있다. 책에서는 사도 세자를 장헌 세자라 부르고 있으며, 장헌 세자는 이산 정조 임금의 아버지다.영주의 아들 장헌 세자와 효장세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빚어지게 된 왕위세습과정에서 피바람이 불었으며, 이산 정조는 영조의 대를 잇게 된다. 소설에는 이산 정조의 삶과 업적들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첩쳘되어지는 부분들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정조의 삶을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허구와 역사를 오가면서 재현하고 있다.


정조 임금 시대에 남인 정약용이 있었다. 실학의 선구자였던 장약용은 영조임금부터 헌종 임금떄까지 생존하였고, 조선시대 권력 다툼에 빚겨나 있었다. 노론 벽파의 영주였던 심환지와 남인이면서 소론이었던 정약용, 역사적 인물들간에 권력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정약용은 권력다툼에서 자칫 집안이 몰랄 수 있었기에 귀양을 자처하게 된다. 정약용이 살았던 당시 임금은 조선의 정통에 따라 선택되었지만, 그 권력의 바닥에는 외척들이 존재했다. 왕의 주변에 외척들이 누가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임금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조선의 운명 또한 그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소설은 제 22대 임금 정종의 삶을 그랴내고 있는데, 피바람의 근원은 권력쟁탈에 있다.


소설은 암살 뒤에 숨어있는 정조의 병에 대해 관찰해 보게 된다.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던 정종은 자신의 병의 실체를 의관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종 임금의 썩어들어가는 피부는 수은에 중독된 상황이었고, 손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금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제도들을 악용하는 부분들이 나오고 있는데, 정조 임금 을 대체하는 분신이 있다. 그 분신은 정조 임금을 대신하며, 임금이 무언가를 먹거나 처방을 내리기 전에 분신이 먼저 임금이 먹을 수랏상을 자처하게 된다. 그건 병에 있어서 처방전이 내려질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독특한 서사적 구조속에서 임금이 쉰이 되기 전에 죽음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점점 더 또렷하게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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