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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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와 조비가 오나라 사신에게 준 전복 1000개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송나라 이후 또 1500년이 흐른 17세기 명나라 무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으니 전복 구하기가 옛날처럼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이때도 전복은 여전히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p52)


"옛날 요순시대에 팽조는 800세까지 살았다는데 이는 얼굴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폐하 생일 잔칫상 국수를 보니 가늘고 긴 것이 평조 얼굴보다 몇 배나 더 긴지 모르겠습니다. 주방장이 폐하의 만수무강을 빌며 이런 국수를 만든 것 같습니다."(p79)


기원전 2세기 장건이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를 처음 열었을 때 전해진 새로운 종자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참깨는 원산지가 중동이다. 장건이 서역엣서 돌아올 때 종자를 가져와 퍼뜨렸다고 하는데 이후 동양에서는 참깨가 불로장수 식품으로 통했다.조선 후기의 '산림경제'를 보면 참깨를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불로장생의 비약으로 여겼던 기록이 있다. (p154)


필리핀 루손섬을 떠난 그는 일주일 동안의 항해를 거쳐 고향인 푸젠성으로 무사히 돌아와 고향 땅에 고구마를 심었다. 혹시 풍토가 달라 고구마 종자가 잘 자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와 달리 푸젠성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았는지 고구마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때가 명나라 신종 때로 15923년 무렵이다. (p203)


15세기부터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중심에는후추가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른 인도 항로의 발견, 1519년 스페인을 출발해 필리핀을 찍고 1522년 스페인으로 되돌아온 마젤란의 세계일주가 모두 값비싼 후추를 비롯해 다양한 향신료를 찾아 떠났던 새로운 항로 개척 여행이었다. (p185)


한자를 보면 조개 패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부수에서도 많이 나온다. 과거 조개는 화폐대용수단이었고, 귀한 음식이다. 지금으로 치면 조개 하나가 건물 한채에 맞먹는다. 중국의 역사에서 조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삼국지에서 조식이 아버지에게 바친 조개의 값어치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고 있다. 조개의 경우에서 보듯이 지금은 널리 먹고 대중화 되었지만 처음에는 비싼 음식이었고,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후추는 중국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후추를 얻기 위해서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무역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던 상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땅에 상륙하게 되었고, 역사를 바꾸게 된다.그런데 유럽인들이 추구했던 후추는 중국에서도 비싼 제품이다. 그건 후추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향신료였지만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여서이다. 


겨울이면 빠지지 않는 고구마가 우리의 식탁에 널리 사용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과거에 각 나라마다 종자를 사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고구마의 종자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책에서는 고구마가 중국의 인구를 증폭시키게 된 계기라 말하는데, 그 이유는 고구마가 보급됨으로서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자 전쟁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게 되엇고, 풍복한 삶 속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며, 이 책에는 전쟁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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