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자동차 산업혁명 CASE
타카키 나카니시 지음, 최영원 옮김, 하규수 감수 / 골든벨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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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란 자동차 산업의 멸망을 이끌어내는 변혁이 아니다. 필요한 개혁과 대처를 강화하면서 주도권을 잡아 스스로가 진행시키는 파괴와 창조이다. Iot화,지능화,전동화라는 3가지 운석이 충돌해 마치 거대한 별동별을 퍼뜨리듯이 자동차 가치를 파괴시킬만한 폭발력이 충분하다.(p64)


자동운전을 위탁한 곳은 거대한 자동 운전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업체 바이두다. 도시계획은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자회사인 알리윈에 ,의료 영상은 소셜네트워킹 서비스 업체인 텐센트에, 음성인식은 IT 기업인 아이플라이텍에 각각 위탁했다. (p94)


커넥티드란 자동차가 IoT단말기로써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확산되는 플랫포머 전체를 망라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방송을 이용한 자동차의 펌웨어 업그레이드, 자동 운전 자동차의 원격조작, 빅데이터와 연결을 통한 완전 새로운 서비스 등의 전개까지 포함한다. 즉 커넥티드가 텔레매틱스의 상위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p133)


인간을 관찰하면, 뭐가 독특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인간은 예측 가능할 때와 예측 가능하지 않을 때 상반된 모습과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된다. 예측가능하지만 그 결과물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때와 예측 불가능하지만 작은 피해를 입힐 때, 이 두가지 경우에서 오판을 하게 되고, 결과로 보자면 후자를 선택해야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도입이며, 일반인이 직접 운전할 때 생길 수 있는 교통사고의 비율보다 자율주행자동차를 타면서 생기는 교통사고 비율이 낮음에도 우리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선택하는 걸 꺼려한다. 단적인 예로 매일 수많은 교통사고나 나타나지만, 뉴스에 잘 언급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하자면, 테슬라가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작은 교통사고를 대서틀필하는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자율주행자동차가 대세라는 걸 알고 있으며, 사람들의 반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혁명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구글, 아마존, 테슬러, 우버와 같은 기업이라면, 중국에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있다. 이들은 무역 전쟁을 넘어서 신기술과 관련한 제4차 산업 혁명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이 중국에 앞서 있다. 하지만 중국은 물적 인적 자본을 앞세워 미국을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자동차 생산기법과 달리 자율주행자동차는 일반 자동차 회사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에서 벗어나 제품 생산은 기존의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내부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장치는 구글 ,아마존,애플과 같은 IT 기업에서 담당하고 있다.그건 기업과 기업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협력하는 관계이며, 자율주행자동차가 도래함으로서 인간은 소유의 개념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특이점이란 바로 이런 순간에 ,새로운 변화와 마주할 때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는 그 순간이다.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 사물인터넷을 장착하는 걸 넘어서 인간이 없음에도 인간을 대체하려는 그 무언가를 만들고 구현하려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음성인식기술까지 만들었으며, 서로 동떨어진 기술이 아닌 서로 협업하고 융화가 되는 기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이처럼 앞으로 도래하는 자동차 혁명은 하나의 기술과 그와 관련한 다른 기술들이 연결되는 커넥티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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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 - 3.1운동부터 임시정부까지 그 길을 걸은 사람들 표석 시리즈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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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나라 천주교는 파리 외방전교회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들 프랑스 주교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한 일에 신도들이 가담하는 것은 무의미한 희생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뮈텔 주교와 드망즈 주교는 교인들의 만세운동 참가를 금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만세운동에 참가할 수 없었다. 물론 안중근처럼 주교들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p104)


사진 설명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청사 보창로 309호'라고 적혀 있다. 번듯해 보이는 2층 건물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런데 같은 사진에 관한 1937년 4월 30일자 한민을 보면 그 주소가 '하비로 321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첫 청사는 '바로 여기다'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p181)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포함해 대한 독립이나 근대화에 이바지한 비선교사 외국인들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이들은 병원과 학교 등을 설립하여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이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많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 (p314)


후세 다쓰지는 1923년 의열단원 김시현에 대한 변호도 맡았다. 김시현은 의열단원들과 함께 총독부, 경찰서, 동양척식회사 등 주요 건물을 1923년 3월 15일에 일제히 폭파하기 위하여 사전 준비를 하던 중 의열단 안으로 파고든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흉계'로 포박함은 정치 도덕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후세 변호사의 변론에 김시현은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지만 5년 5개월 동안만 수감 생활을 했다.이 일을 계기로 조선인들은 그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P344)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한번 지나간 시간적 흐름과 시간의 스펙트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00년전 과거의 시간이든 10년전의 시간이던지 간에 상관없이,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히 앞으로 흘러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시간을 증언하는 역사적인 장소는 항상 고정불변하며, 그 장소는 그 장소에 있었던 고유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의 프리즘 안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가치를 얻고 싶은 마음들이 표석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얻을 수 있고, 장소를 기억하게 되는 하나의 무형적인 상징물이 되고 있다. 표석이 있음으로서 우리는 그 안에서 역사에 대한 교육적인 의미와 가치들을 발견하게 되고, 경제발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 대한민국의 역사가 퇴색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표석은 근현대사의 발자취를 드러내는 무형적 가치이므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표석으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인 기록물들과 현존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어우러져 장소와 얶임으로서 우리의 선조들의 내밀한 삶과 주요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탄생되기 전 , 상해임시정부의 위치에 대해서 진실찾기에 골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표석 중에는 대한민국을 탄생시켜준 자신의 목숨을 다바쳤던 열사와 의사들의 집터를 알 수 있는 표석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삶 전체와 인생의 발자취를 기억하려고 애쓰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로 보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책이다. 3.1운동에 대해서 관심있다면, 그 사람은 3.1운동과 관련한 표석들을 찾아다닌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쳤던 안중근의사의 삶이 궁금하다면 안중근 의사 집터를 먼저 찾아갈 것이다. 표석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역사기행이 될 수 있고, 우리는 표석을 통해서 과거에 살았던 그들의 삶을 반추하게 되고, 그들의 고통이나 아픔들을 상상하게 된다. 더 나아가 텍스트로만 전해졌던 역사들을 물리적인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되돌아 볼 수 있으며, 다시는 그러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얻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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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온 소년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9
캐서린 마시 지음, 전혜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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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맥스는 아흐메드를 만나러 내려갔다. 와인 창고는 맥스가 원예점에서 사다 준 식물성 램프의 불빛으로 가득했다. 아흐매드는 맥스한테 난초뿌리가 썩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물을 줘야 하는지 알려줬다. 또 주변 온다고 18도가 적절하며 한여름에는 남향의 직사광선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맥스는 자기 또래가 식물을 이렇게 잘 보살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p137)


맥스는 활짝 웃었다.맞는 말이다. 아흐메드 같은 소년은 랄프처럼 맥스도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아흐메드를 만났을 때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흐메드를 집 밖으로 쫒아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p231)


소설 속 주인공은 아흐메드 압둘라 나세르이다. 시리아에 살다가 내전으로 인하여 난민으로 살아가게 된 아흐메드는 위조 여권을 가지고,부모님과 자스민,누리와 함께  고국을 탈출하게 되었다. 아흐메드 가족이 시리아를 탈출하면서, 정착하게 된 곳은 맥스가 사는 곳 와인창고 였다.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고, 음침하고, 조용한 곳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곳으로 와인창고는 최적의 장소였다. 와인창고에  아흐메드 가족이 살면서, 맥스 가족의 삶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게 된다.맥스 가족이 집에 없는 동안 맥스 집을 기웃거리면서, 배고픔을 겨우 해결하게 되는데, 결국 맥스에게 들키고 만다. 맥스와 아흐메드의 우연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두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흐메드는 매순간 불안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했으며, 마침 파리테러사건이 일어나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들이 불안감을 느꼈던 이유는 시리아 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얻지 못하기 때뭄이다. 위조여권은 그들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파리 테러 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과정에서 아흐메드 가족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동안 맥스만 알고 있었던 아흐메드 가족의 정체는 맥스의 누나 클레어에게 들키고 마는데,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맥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 소설은 아흐메드 가족에 대해서, 난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맥스는 아흐메드를 통해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삶의 가치들을 하나 둘 배우게 된다.그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삶의 지혜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난민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이 유럽 사회에 정착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난민이 늘어남으로서 유럽 국가의 국민들의 세금이 난민에게 고스란히 지출된다. 사회적 복지 혜택이나 경제적 자유를 느끼고 싶은 유럽인들이 난민들을 곱게 보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유럽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기에 예민하며, 그들이 유럽 사회,특히 독일 사회에 정착함으로서 독일인의 권리가 박탈된다. 그럼에도 난민의 기본적인 권리는 국가으 제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 과거 우리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들이 난민이 되어 세계곳곳을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질 때 그 국가의 국민들은 난민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시리아 난민과 같은 상황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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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땅, 코카서스 -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70일 여행기
현경채 지음 / 띠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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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뻣고 ,볼거리는 구시가에 모여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성과 조지아 어머니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시온 교회와 안치스카티 교회 등의 교회와 시계탑이 보였고, 중세 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초현대적인 평화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코카서스의 첫 도시부터 신구조합의 아름다움에 압도 된다.(p10)


아르메니아는 일찍 기독교로 개종했고, 기독교를 국가의 종교로 선포한 최초의 나라이며,4세기에 이미 교회가 건설됐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수장은 에치미아진에 살고 있다. 교회의식은 예배와 성가 등의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축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기독교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p23)


아제르바이잔은 전통음악으로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 음악장르 중 많이 알려진 것은 '무감'과 '아쉽크'다. 이러한 음악의 배경은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민속을 바탕으로 한 아제르인들의 전통음악으로 완성되었다. 수많은 세기동안 아제르바이잔 음악은 독특한 박자와 선법으로 다양한 멜로디를 만들어 내며 진화해 왔다. (p153)


이 책은 코카서스 3국의 여행과 문화,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코카서스 3국이란 수도 예레반을 두고 있는 아르메니아, 수도 바쿠를 두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수도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하는 조지아가 있다. 조지아는 다른 말로 그루지야라 부르고 있으며, 세 국가는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세 국가의 여행이나 정보들은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론리플래닛 영문판을 통해 찾아봐야 할 정도로, 세 국가의 여행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이유는 이 세국가에 대한 메리트가 국내 여행객들에게 회피의 대상이 되었으며, 공산주의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행하기 힘든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루지야는 과거 미수다체 나온 출연자 중에 그루지야 출신이 있어서 관심가지게 되었다. 그루지아는 스탈린의 고향 고리가 있으며, 스탈린의 사회주의 체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물론 고리에는 스탈린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는박물관도 있으며, 그가 소련 사회를 바꿔 놓았던 그 변화의 가치를 깊이 되새기게 된다.저자는 그루지야에 가서 만년설의 카즈베기산의 만년설을 눈으로 보게 된다. 자연의 설경을 깊이 느낄 수 있고, 그곳에 위치한 수도원은 자연과 교회의 절묘하게 어우려져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축복받은 그루지아의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 


아르메니아는 푸쉬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아르메니아 특유의 음악과 문화가 있으며, 다양한 축제가 함께 하고 있다. 속담와 우화, 민속문화가 발달한 아르메니아는 20세기 문화와 문학에 긍정적인 발전에 공헌하였으며, 기독교를 국가의 종교로 선포한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가 아르메니아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잇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인구는 300만명에 미치지 못하지만, 나치 박해의 제노사이드 학살로 인한 역사적 아픔으로 인하여 800만명의 교민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맞닿아 있으며, 무슬림 세계와 충돌이 다수 있었다. 고대 원주민은 부를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였으며, 기독교를 거쳐 이슬람으로 강제 전환이 이뤄지게 된다. 또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영토분쟁이 있으며, 나고르노 카라브흐 독립을 위한 분쟁이었고, 국경이 폐쇄된 경우가 다수 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은 시와 음악의 나라 답게 도시 곳곳에 시인의 동상이 있으며, 오일머니로 인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는 중동의 두바이 못지 않게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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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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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일제감점기를 통하여 많은 변화를 거친다. 제주도는 기미년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이미 5개월 전, 독자적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일으키기도 했고(서귀포 법정사의 스님들이 주동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축출과 국권회복이라는 양대목표를 세우고, 1918년 10월 7일 700여명의 도민이 무장 봉기한 사건, 이틀만에 집압되었지만, 그 봉기가 소리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제주도민의 특유한 단합심을 과시한다.),1930년대에는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 7천여명이 참가해 일제 식민지약탈에 저항했던, 역사 이래 여성 집단이 주도한 최대규모의 항일투쟁,"제주해녀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p203)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그런 역사왜곡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면, 부끄러움을 먼저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에도 분명 역사 왜곡이 있었고, 그 내막을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그 단적인 예가 제주도 4.3 사건과 여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1948년 이승만 정권때 일어난 사건으로 ,그들은 권력을 가지기 위한 역사적 왜곡과 빨갱이 프레임을 내세워 많은 제주도민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동족에 의해 자행된 제노사이드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겐 눈에 가시였고, 그들을 축출해야만 자신의 목적을 잘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운형과 김구는 축출되었고, 미군정에 의해 이승만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이런 가운데 제주 4.3 사건에서 서북 청년단에 의해 자행된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지지 않았다.그동안 역사 속에 감춰진 서북 청년단이 부각되었던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기득권은 그처럼 교묘하고, 잔인하게 민중들을 버렸으며, 민중은 피로서 자신의 삶을 지키려 했다.


제주 4.3 사건의 소요를 저지하기 위해서 여수,순천에 있는 제14연대를 제주도에 보내려 했던 이승만 정권은 그에 불응한 제 14연대에 반란이라는 죄목을 내세워 제거하려 했다. 그것이 여순 사건의 첫 시발점이었고, 여수 순천의 과거 임진왜란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사실부터 짚어 넘어가고 있다.그건 여수와 순천 사람들의 지리적 특성과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들의 과거의 모습을 보아야만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서 목적 달성을 하지 못했던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여순 사건을 여순 반란사건으로 규정해 제거하려 했다. 이처럼 역사적 아이러니는 알다시피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여전히 빨갱이 프레임을 들이대고 잇으며, 이승만 우상화 작업을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해 이해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과오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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