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강응천 지음 / 동녘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화를 처음 republic 의 한자 번역어로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었다.공화라는 말 자체는 중국고사에 나온다.주의 여왕이 폭정을 거듭하다 국인들에게 쫒겨나자 소공과 주공 두 재상이 왕 없이 정치를 행한 시기(기원전 841~828) 가 있었다.사마천은 <사기>,<주본기>에서 그 시기를 가리켜 공화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고사를 근거로 일본의 미쓰쿠리 쇼고가 1845년 자신의 저서 <곤여도식>에서 처음 공화를 republic 의 번역어로 사용했다.세습 군주 없이 유력자들이 함께 통치하는 정체를 가리키는 republic에 공화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1-)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이승만의 화법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 좌익의 예비 국호인 조선에 반대해 대한이라는 예비 국호를 옹호하고 있다.그러나 해방당시 대한이라는 국호의 정치적 저작권은 이승만의 라이벌인 김구의 임정 세력에 있었다.이승만은 이를 염두에 두고 대한을 국호로 확정하는데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77-)


헌법의 제목과 제1조를 장식하는 것이 국호다.제헌헌법을 둘러싼 논의가 국회 안팍에서 전개되는 가운데 국호에 관한 논의도 다시 한 번 불붙었다.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이 통일정부 수립 놋헌을 견지하면서 단선에 참여하지 않았고,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중도 세력도 상당수가 단정에서 배제되었다.따라서 제헌국회의 구성은 우익 중에서도 단정을 추구해오던 이승만 계열과 한민당 계열로 기울어 있었다. (-122-)


대한민국 국호는 '대한'과 '민국'으로 구성된다.대한은 조선왕조가 서구 중심의 근대 세계로 진입하면서 만들어낸 근대 국가의 코드였다.민국은 근대 국가의 대표적 정치 이념인 민주주의와 대표적 정체인 공화정을 아우른 국체의 이름이었다.대한은 처음에는 근대적 전제군주국의 민족적 칭호로 채택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민국과 결함해 오늘에 이르렀다. (-157-)


1948년 시점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호는 후진국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실험의 코드였다.또한 진보적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실험의 코드였다.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이 북위 38도선에서 막혀 있다는 북한의 인식을 보여주는 분단의 코드이기도 했다.상호결합된 두 가지 코드는 소련이 해체되고 북한이 고립된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도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주문으로 남아 있었다.(-171-)


지금의 대만,즉 타이완은 '중화 타이페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국호는 '중화민국'이다.베트남 또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리되었을 때도 베트남이라는 국호를 공유하고 있었다.그리고 독일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한국은 두개의 나라로 분리되었고, 남쪽은 '대한민국',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으며, 두개의 국호는 명분만 민주주의였지, 공유하는 접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서로 이질적인 국호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삼한 중 하나인 대한에 있다면, 북한은 조선에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전에 우리가 선택하려고 했던 또다른 예비국호가 '고려'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왜 북한과 남한은 서로 공유하는 부분 없이 지금까지 분단된 형태의 두개의 국가로 남아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여지가 있다.


문득 대한민국의 뿌리와 정체선은 통합보다는 분열이 더 익숙하다는 것은 생각해 보게 된다.지금도 여전히 여당과 야당은 서로 화합하지 않고,서로 다툼에 따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적인 정치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서로의 반목과 갈등이 익숙한 가운데, 공수처와 필맂버스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은 형편이며, 그들의 통합이나 화합에 대해 별반 기대하지 않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딛치고 있었다.즉 이 책에서 보듯, 1945년 광복 이후 18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까지, 근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제헌 헌법 초안을 만들때까지 수많은 진통이 있어왔으며, 졸속으로 국호가 선정되었음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며,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우리의 국호에 대해서 분석해 본다면,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해 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역사에 대해서,다양한 지식들을 얻었고,관심 가져왔었다.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이 사건과 그 시대의 권력에 대해서 집중하고,관심 가졌던 게 사실이다.반면에 그 시대의 국호에 대해서 무지몽매해왔으며,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도 아쉬운 대목 중 하나였다.고조선,신라,백제,고구려, 발해,가야,마한,진한,변한, 고려, 조선,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수많은 국호들이 한반도의 정체성과 엮어 나가게 되었다.여기서 1945년에서 1948년까지 고려라는 국호에 꽃혀 있었던 이유는 바로,고려의 정체성이 자주독립국가의 첫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고려 라는 국호를 쓰지 않는다.그건 1948년 이전에 김구, 이승만,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임정 세력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북한이 조선을 쓰면,한반도는 조선으로 쓰면 안된다는 익식을 같이 하였고, 북한이 인민을 쓰니, 우리는 다른 걸 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그 정체성이나 본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이 쓰니 우리는 안 쓰겠다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즉 1948년과 지금을 비교해 볼 때 정치지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여전히 정치인들은 갈등과 반목이 익숙하고, 누군가 성을 쌓으면 무너트리거나 재를 뿌리게 된다.이런 작금의 현실은 어쩌면 서로 다른 이념 추구와 나라의 기틀을 형성하면서, 근대화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고,지금까지 70여년동안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서 자주 독립국가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강제 교육 아닌 강제교육을 시켰던 게 아닌 생각되니 씁쓸함만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지음 / 책들의정원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한권의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김한솔이 아닌 키만소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첫번째 포토에세이집 <엄마, 배낭 단디매라>에 이어서, 2년 뒤,2019년 출간된 책은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다. 이 책은 평범한 어머니를 맨 앞에 내세우고 있었다.환갑이 지나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저자의 어머니의 이름은 평범한 '현자씨'였다. 딸과 엄마 사이,애증관계인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친근한 관계였다.서로 닮은 것과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친밀한 관계,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의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그것이 가져오는 나비효과들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차가운 기운이 따스한 기운으로 바뀌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그리고 그 따스한 기운들이 이유없이 울컥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그 이유는 현자씨의 인생이 바로 우리의 또다른 인생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그 인생 속에서 우리는 매순간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평생 컴퓨터 한번 만저보지 못했던 '현자씨'는 초보 컴맹 탈출을 감행하게 되었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독수리 타법에 의존한 편지쓰기를 시작하게 된다.자신의 딸에게 보내는 이메일 편지 속에는 정감 어린 오타들이 눈에 보여지고 있었다.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욕심도 부리고 싶은 나이, 그렇게 편지 곳곳에은 인생의 엑스트라로 살아온 저자의 삶이 보여지고 있다.


딸은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를 기록하고 있었다.참고 견디고,인내하는 게 당연했던 그 엄마의 삶 속에 자꾸만 자신의 거울이 비춰지는 것이었다.어릴 적 엄마가 보여줬던 젊은 시절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할머니가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어도 두려워질 수 있는그때, 필요한 것은 작은 용기였다.엄마의 두려움은 딸의 두려움이었고, 엄마의 용기는 딸의 용기였다. '현자씨' 의 용기는 우연히 시작된 것이었으며,그 안에서 자신의 일상들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낄 수가 있다. 컴퓨터 배우기에서 시작된 핑계들은 어느덧 작은 희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해 나가면서, 누구나 인터넷 기자가 될 수 있음을 '현자씨'는 보여주고 있다.


'현자씨'는 우리 각자의 부모님을 상상하게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환갑이 지나게 되면, 다리와 무릎 관절에 바람이 들어오고, 손주들이 집에 왔다가 빠져 나갈때의 헛헛함은 수많은 '현자씨'들의 공통된 정서였다.분주함과 조용함의 경계선에서 스스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속의 '현자씨'와 달리 책 속의 '현자씨'는 때로는 무모하고,때로는 무계획적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들을 받아들이게 된다.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일탈이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음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 한국사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은 폐쇄적인 농업국가였다.따라서 평상시에도 농사를 망치게 되면 굶주림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임진왜란은 7년에 걸쳐 진행되었고,한반도 거의 모든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전란 속에서 농민들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한 채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다.간신히 농사를 지었다고 해도 조선군과 명군, 그리고 왜군에게 빼앗기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40-)7


광해군은 개혁군주라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별다른 개혁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오히려 쌀로 모든 세금을 내도록 하는 획기적인 세금 징수 방식인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반대하고 궁궐의 증축에 지나치게 힘을 기울였다.재위 기간 내내 옥사를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렸다. (-125-)


인조는 광해군의 적폐를 없애겠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집권한다. 하지만 인조가 즉위한 이후에도 변한 것은 벼로 없었다.부정부패를 저지른 광해군의 측근들은 반정에 참여한 공신들로 대체되었다.그러나 인조를 비롯한 반정세력들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겠다는 것보다 정권을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그래서 쓸데없는 의혹에 집착해 이괄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으며, 남이홍 같이 충성스러운 무장조차 군사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208-)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홍타이지는 1636년 12월 2일 친왕들과 패륵들을 이끌고 출정한다.팔기군의 주력은 물론이고, 몽골군의 항복한 명 출신 장군들까지 참가한 원정군 규모는 댛략 12만 정도로 팔기군 7만, 몽골군 3만,그리고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끄는 명 출신 군대 2만 명이었다.약 3만 정도를 동원했던 정묘호란 때보다 네 배나 넘는 규모였으며, 홍타이지가 직접 이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280-)


전영갑이 화를 내자 홍한수는 씁쓸하게 웃었다.자신이 후금군에게 붙잡혔던 안주성 전투엣거 남이홍이 한 얘기가 떠올랐던 탓이다.최씨는 시신들이 낭떠러지에 산처럼 쌓여서 밟고 내려갈 수 있을 정도라는 빈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얘기까지 하고는 돌아갔다.한숨을 쉰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봤다. (-322-)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에 시작하여, 1598년 11월 19일에 종식되었다.그리고 38년 뒤 1636년 12월 9일 후금이 조선으로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조선 본토에서 발발하게 된다.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안주성이 후군 군사에 의해 점령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보앗듯이 삼전도 굴욕의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이렇게 아이러니한 현상들을 보면 조선 팔도의 입지적인 지정학적인 위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고, 전쟁의 목적은 어디에 있고, 우리는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물론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전쟁이 치뤄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강자의 입장과 약자의 입장은 서로 엇갈리기 마련이다.특히 조선은 왜군과 명나라 사이에 끼여 있었으며, 중국 본토는 후금과 명나라가 양분하고 있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조선의 왕이 되면서, 임진왜란의 휴유증에 벗어나기 위한 정책들을 시행하게  된다. 광해군은 이런 조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중립적인 외교젗책을 시행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친명배금 정책을 취하게 된다.여기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에 조선의 임금은 광해군이었으며, 그 당시의 조선의 왕과 그 주변인물을의 인식과 자각이다.즉 그들은 전쟁에 대한 인식이 요원하였고, 전쟁을 바라보는 기준이 모호하였음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후금이 조선에 들어온 목적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그건 일제가 한반도를 율린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지금 우리의 실정을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복잡다단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즉 지금을 광해군 시대로 되돌려 본다면, 후금이 중국 본에 해당되며, 명나라는 미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더 나아가 지금 우리가 돈의 관점으로 보면 친중 성향을 지기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친미배중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걸로 비추어 볼 때,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정확한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광해군과 인조로 권력 교체가 이뤄지는 17세기 조선의 현주소를 보면,조선의 신하들은 친명 정책을 원하였다.반면 광해는 명나라보다는 후금과 함께 항는 것이 조선의 국익으로 볼 때 더 유리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신들의 생각은 광해와 달랐다.실리를 원했던 광해와 명분을 추구했던 대신들이 충돌하게 된다. 지금으로 보면 광해를 지지하고, 그의 선견지명을 칭찬하지만, 조선시대 그때의 시점으로 본다면, 광해의 선택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오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거다. 이 책을 보면, 우리의 현주소를 예측할 수 있고, 우리의 정치적인 기준점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38년이라는 시간 속에 답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룩한 접촉 -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성화의 삶은 거룩한 접촉으로 시작된다
김우성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그러기에 우리는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점검해야 한다.가정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사용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으 말인지, 아니면 부정적이고 어두운 불신앙의 원마으로 가득한 말들인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육신의 말들이 더 이상 당신의 입 밖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기도를 통해 내면을 청소해야 한다.이렇게 기도를 통해 내면을 청소하면 생각이 밝아지므로 영의 생각을 하게 된다. 영의 생각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선물한다.(-42-)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인생으로 평가를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누구보다도 지속적인 믿음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이다.잠시만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보인 게 아니라 가난할 때도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왕이 되어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여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찬양했다.또한 어린 목동시절 산과 시냇가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찬양했다.사람의 처음과 끝이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 전혀 변함이 없었다. (-130-)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인생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온전한 사귐에 있어서 솔직하지 못한 것들은 사귐에 큰 자애가 되어 질투와 오해를 유발시킨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서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사귐의 끈을 놓거나 자르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이다.다만 우리가 우리의 죄악을 자백하고 시인하면 예수님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204-)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다. 종교에 귀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간 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싶어서다.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존재와 절대적인 존재와 접촉함으로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하나님과의 거룩한 접촉은 결국 나를 위한 길이며,내 삶을 세상의 모든 고난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다면 하나님과의 거룩한 접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앞서 살아온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다행스럽게도 바로 다윗 왕이라는 좋은 예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었다.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죄인으로 살아가며, 그안에서 매순간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하나님을 찬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치유와 회족의 힘을 선물해 주고, 자신을 세상 속에 내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 주시는 것이다.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감추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왔다.문제를 봉합하지 못함으로써 또다른 문제를 키워나가게 되었다.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솔직함과 유혹됨을 하나님앞에 진정으로 고백한다면, 스스로의 삶을 정화할 수 있는 힘과 거룩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계어 없이 이해하는 암호화폐 - 비트코인부터 시작하는 블록체인 & 가상화폐 입문서
송범근 지음 / 책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오류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블록체인 또는 '코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리는 것이다.하지만 블록체인은 단순히 기술을 의미할 뿐이다. 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나 네트워크의 구조, 특성은 매우 다양하다.(-18-)


전자화폐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간단하다.기존의 화폐들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귀찮고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잔돈도 안 생기며, 시간이 니자도 변질되거나 파손되지 않는다. 그런데 전자화폐도 처음 생겨났을때는 큰 문제가 있었다.디지털 데이터는 복사하기 쉽다는 점이었다.게다가 복사한 돈과 원본은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는다.가진 돈을 복사해서 계속 쓸 수 있다면, 화폐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25-)


은행을 없애려면 먼저 은행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은해은 전자화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2가지 일을 한다.
첫째, 거래 내역이 담긴 장부를 안전하게 보관한다.즉 ,누가 누구에게 돈을 보냈는지, 누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는지 그 데이터를 은행 서버에 보관한다. 둘째, 거래 내역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한다.새로운 거래 요청이 들어올 때 돈을 중복해서 쓰지는 않았는지, 잔고가 없는데 돈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고 걸러낸다. 따라서 블록체인이 은행을 대체하려면 이2가지 (보관, 검증)를 대신해야 한다.단, 2가지 일을 단일 주체가 해서는 안 된다.(-37-)


비트코인의 개방성은 특히 금융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 더욱 가치를 가진다.전자화폐는 일단 은행 계좌가 있어야 사용 가능하다.그런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은행 계좌가 없는 나라도 적지 않다.세계은행에 따르면,금융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에 20억 명이 넘는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시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61-)


블록체인과 디앱도 마찬가지다.블록체인은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을 신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사람들이 블록체인을 믿고 정보를 공유해 그 위에서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160-)


퀀텀은 비트코인 방식과 이더리움 방식의 장점을 모두 활용하고,'작업 증명 방식'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려는 데서 출발했다.이를 위해 두 가지 방식을 호환시키는 '어댑터'와 함께 '지분 증명 방식'을 도입했다. (-185-)


'특정 주체가 운영하지 않는 화폐시스템'이 목표인 비트코인은 이를 지켜내기 위해 효율성을 포기하고 복잡한 장치들을 고안해야 했다.반면 '은행 간 거래를 효율화하는 시스템'이 목표인 리플에게는 탈중앙화보다 효율성이 중요하다.그래서 리플은 실시간으로 거래를 처리할 수 있고, 컴퓨팅 파워도 적게 들며, 채굴자도 없는 효율성을 택했다. (-223-)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세계경제가 휘청거렸다.그 과정에서 기존의 화폐 운영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으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다.비트코인은 기존의 현물을 대체할 수 있으며, 화폐의 가치와 신뢰를 보증하는 중앙기관이 있다.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이며, 미국은 미국연방은행이 바로 우리의 화폐시스템의 중앙기관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 중앙기관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인식을 바꿔 놓으며, 천재적인 지변이나 전쟁,국가 부도와 같은 초유의 사태에 무방비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행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화폐가치에 대해 국가가 주도하면서, 사람들은 화폐의 주체가 국가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중앙집중이 아닌 탈중앙화가 그 답이라고 생각했으며, 기존의 화폐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중앙집중호가 사라진 새로운 형태의 화페시스템을 모색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비트코인의 실체였으며,누가 비트코인을 개발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은 기존의 현물을 대체하지 못한다.그 이유는 비트코인의 장점이 단점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비트코인의 화폐의 가치가 실시간 변동폭이 크며, 그 과정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거래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초창기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암호화폐를 개발하였고,이더리움,퀀텀이 등장하게 된 이유이다.하지만 여전히 이더리움과 퀀텀은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으며, 해킹을 당해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화폐의 가치가 반토막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비트코인의 주체가 되고 있는 블록체인의 효용가치는 무궁무진하다.먼저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의 가치와 신뢰를 담보해 주고 있다.소멸되거나 사라지는 일이 없으며,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조작 가능성을 오픈 시스템을 활용해 원천 차단하고 있다.여기서 블록체인은 화폐거래 뿐 아니라 조작하면 안되는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는데 응용할 수 있다.현재 인감 도장을 블록체인 시스템을 활용해 대신할 수 있으며, 유언장이나 종이 문서를 블록체인 안에 가두어 버리면 디지털 문서가 영구적인 형태로 소멸되거나 위변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관할 수 있다.


이 책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길잡이다.그래서 복잡한 비트코인의 거래나 전체적인 시스템의 특징은 나열하지 않고 있었다.또한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해서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기준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익숙하고 친근함이 들게 된다.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 더 나아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응용가능성에 대해서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블록체인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