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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강응천 지음 / 동녘 / 2019년 11월
평점 :
공화를 처음 republic 의 한자 번역어로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었다.공화라는 말 자체는 중국고사에 나온다.주의 여왕이 폭정을 거듭하다 국인들에게 쫒겨나자 소공과 주공 두 재상이 왕 없이 정치를 행한 시기(기원전 841~828) 가 있었다.사마천은 <사기>,<주본기>에서 그 시기를 가리켜 공화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고사를 근거로 일본의 미쓰쿠리 쇼고가 1845년 자신의 저서 <곤여도식>에서 처음 공화를 republic 의 번역어로 사용했다.세습 군주 없이 유력자들이 함께 통치하는 정체를 가리키는 republic에 공화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1-)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이승만의 화법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 좌익의 예비 국호인 조선에 반대해 대한이라는 예비 국호를 옹호하고 있다.그러나 해방당시 대한이라는 국호의 정치적 저작권은 이승만의 라이벌인 김구의 임정 세력에 있었다.이승만은 이를 염두에 두고 대한을 국호로 확정하는데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77-)
헌법의 제목과 제1조를 장식하는 것이 국호다.제헌헌법을 둘러싼 논의가 국회 안팍에서 전개되는 가운데 국호에 관한 논의도 다시 한 번 불붙었다.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이 통일정부 수립 놋헌을 견지하면서 단선에 참여하지 않았고,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중도 세력도 상당수가 단정에서 배제되었다.따라서 제헌국회의 구성은 우익 중에서도 단정을 추구해오던 이승만 계열과 한민당 계열로 기울어 있었다. (-122-)
대한민국 국호는 '대한'과 '민국'으로 구성된다.대한은 조선왕조가 서구 중심의 근대 세계로 진입하면서 만들어낸 근대 국가의 코드였다.민국은 근대 국가의 대표적 정치 이념인 민주주의와 대표적 정체인 공화정을 아우른 국체의 이름이었다.대한은 처음에는 근대적 전제군주국의 민족적 칭호로 채택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민국과 결함해 오늘에 이르렀다. (-157-)
1948년 시점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호는 후진국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실험의 코드였다.또한 진보적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실험의 코드였다.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이 북위 38도선에서 막혀 있다는 북한의 인식을 보여주는 분단의 코드이기도 했다.상호결합된 두 가지 코드는 소련이 해체되고 북한이 고립된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도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주문으로 남아 있었다.(-171-)
지금의 대만,즉 타이완은 '중화 타이페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국호는 '중화민국'이다.베트남 또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리되었을 때도 베트남이라는 국호를 공유하고 있었다.그리고 독일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한국은 두개의 나라로 분리되었고, 남쪽은 '대한민국',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으며, 두개의 국호는 명분만 민주주의였지, 공유하는 접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서로 이질적인 국호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삼한 중 하나인 대한에 있다면, 북한은 조선에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전에 우리가 선택하려고 했던 또다른 예비국호가 '고려'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왜 북한과 남한은 서로 공유하는 부분 없이 지금까지 분단된 형태의 두개의 국가로 남아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여지가 있다.
문득 대한민국의 뿌리와 정체선은 통합보다는 분열이 더 익숙하다는 것은 생각해 보게 된다.지금도 여전히 여당과 야당은 서로 화합하지 않고,서로 다툼에 따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적인 정치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서로의 반목과 갈등이 익숙한 가운데, 공수처와 필맂버스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은 형편이며, 그들의 통합이나 화합에 대해 별반 기대하지 않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딛치고 있었다.즉 이 책에서 보듯, 1945년 광복 이후 18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까지, 근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제헌 헌법 초안을 만들때까지 수많은 진통이 있어왔으며, 졸속으로 국호가 선정되었음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며,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우리의 국호에 대해서 분석해 본다면,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해 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역사에 대해서,다양한 지식들을 얻었고,관심 가져왔었다.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이 사건과 그 시대의 권력에 대해서 집중하고,관심 가졌던 게 사실이다.반면에 그 시대의 국호에 대해서 무지몽매해왔으며,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도 아쉬운 대목 중 하나였다.고조선,신라,백제,고구려, 발해,가야,마한,진한,변한, 고려, 조선,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수많은 국호들이 한반도의 정체성과 엮어 나가게 되었다.여기서 1945년에서 1948년까지 고려라는 국호에 꽃혀 있었던 이유는 바로,고려의 정체성이 자주독립국가의 첫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고려 라는 국호를 쓰지 않는다.그건 1948년 이전에 김구, 이승만,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임정 세력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북한이 조선을 쓰면,한반도는 조선으로 쓰면 안된다는 익식을 같이 하였고, 북한이 인민을 쓰니, 우리는 다른 걸 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그 정체성이나 본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이 쓰니 우리는 안 쓰겠다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즉 1948년과 지금을 비교해 볼 때 정치지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여전히 정치인들은 갈등과 반목이 익숙하고, 누군가 성을 쌓으면 무너트리거나 재를 뿌리게 된다.이런 작금의 현실은 어쩌면 서로 다른 이념 추구와 나라의 기틀을 형성하면서, 근대화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고,지금까지 70여년동안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서 자주 독립국가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강제 교육 아닌 강제교육을 시켰던 게 아닌 생각되니 씁쓸함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