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천
이매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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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에 인두를 올려놨다. 조금 있다가 손가락에 침 칠을 해서 인두에 대보니 치지직 소리가 났다.내일 입고 갈 연초록색 치마저고리를 다림질 했다. 사람들이 첩이라 부르겠지. 첩,소똥이 땅바닥에 철떡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소실이라고도 하겠지.소실, 이 말은 옛날 조선 시대 때 양반들이 마음대로 소실을 삼아 집안이 그린 여자들로 우글거렸던 시절을 연상케 했다. (-34-)

음천을 돌아다 봤다. 나의 마음을 꽉 움켜잡고 있는 둥그런 얼굴, 입은 뿌루퉁해서 나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봉황의 눈은 결국 나의 혼을 뺏어간 거였다. 어젯밤 마지막으로 끌어 안았을때,처음부터 끝까지 오래오래 끝까지 가도록 심장을 태우면서, 울면서 하긴 처음이었다. (-85-)

이렇게 돈벌이하는 걸 십년만 할수 있다면 미나를 서울대학교 법과에 보내는 건 부질없는 꿈으로 끝나지 않아도 되었다. 미나가 판사의 가운을 입은 걸 상상해보니 아들 열 둔 여편네들이 시기가 나서 입들을 삐쭉거리는 게 보이고 머릿 속에는 태평가가 신나게 터져나왔고 나도 모르게 그 장단에 맞춰서 엉덩이를 덩실덩실 돌렸다. (-149-)

"그런 거 같습니다. 미나야, 내가 부엌에서 따뜻한 물 갖고 올테니 그동안에 엄마 깨끗한 옷 좀 갈아 입혀드릴래?"

미나가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어깨와 팔을 움직여서 미나가 가지고 온 잠옷 윗도리와 바지를 입히는 걸 도와줬다. (-213-)

왜 계집아이가 제물이 되었을까?남자애가 훨씬 귀중했으니 종의 신령님께 바치는 제물은 사내아이를 받쳐야 마땅하지 않았을까.아무래도 신령님이 신통치 않은 제물을 그냥 덥석 받으신 것 같았다. 음식점 들어가는 입구의 바른편에 나무로 된 종각이 있었고, 종각 창살 안으로는 해태 단 위에 안치된 에밀레종이 있었다. 해태의 동자 없는 하얀 눈은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표정이 없었다. (-303-)

소설 『음천 音天』은 1950년 일아난 6.25 한국전쟁 직전인,1949년에 어떤 일이 있었고, 전쟁 직후의 상화을 엿볼 수 있다.1948년 남한 단독 정부가 들어서고,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게 된다. 그 당시 남존여비 사상이 대세였으며,여자아이를 낳을 때,대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생 차별과 멸시를 겪게 된다. 소설 속 음천과 음천의 딸 미나가 주인공이다. 물론 음천은 남자 아이를 낳치 못했다.

그 당시 조선과 대한민국 국호를 얻게 된 시점까지, 우리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으며, 전쟁 직후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했다.이 소설에서, 한 집에 두 엄마가 있었고, 정실과 소실로 구분했다. 소실의 자식을 첩의 자식이라 하여, 무시하고,천시했다. 서로 어울리지 못한 정서를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음천이라는 주인공은 1930년대 생 어머니의 표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내 아이가 출세하면, 자신이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천이 내 딸 미나가 출세하길 원했던 이유도, 미나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자신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대를 이을 자식 하나 낳지 못해서, 항상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음천의 삶의 인생 역전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이 1949년에서 2005년까지 아우르고 있는 이유, 음천의 삶과 미나의 삶이 서로 겹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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