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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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스미스는 1723년 6월 5일, 포스만의 작은 항구 도시인 커콜디에서 태어났거나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커콜디는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도시였다. 스코틀랜드의 여느 지식인들처럼 스미스의 가족도 사회의 중간 계급 신분에 속했다. (-22-)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는 우리가 도덕적 감정을 나누는 방식을 《국부론》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거래를 인간 본성에 내재된 결핍에 깊이 뿌리를 두고 다뤘다. 그리고 이를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자 하는'타고난' 듯 보이는 욕구의 측면에서 설명하자 했다.실제로 "모든 사람은 평생 타인을 대상으로 연설을 연습한다." 스미스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모든 감정(도덕적, 정치적, 지적,미적 감정)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며 다듬는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훨씬 더 광범위한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 이론은 인간 성격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했다. (-165-)

스미스는 이제 동감의 의미를 기존의 범위보다 훨씬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는 자기 이론이 기쁨과 슬픔에 대한 우리의 반응, 심지어 증오나 분노같은 '혐오스러운 '반사회적 열정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픔보다는 기쁨에, 미움이나 원한보다는 앞의 두 감정에 동감하는 것이 더 쉽다고 언급했다. 이 단순한 관찰에는 중대한 사회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 관찰을 통해 합리적으로 잘 규제된 정치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인 사회적 복종과 정치적 안정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찬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9-)

이 모든 과정에서 스미스는 글래스고에서 제기했던 시골과 도시,농업와 상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질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프랑스 중농주의 경제학자들과 만난 이후 이런 질문을 잘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래스고를 떠날 때 그는 이미 사업이라는 유익한 관행이 유럽에서 왜 그렇게 느리게 발전했는지 질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상업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킨 상태였다. 그리고 봉건제도가 농업의 진보와 노동 분업에 미치는 복잡한 악영향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답을 구했다. (-306-)

『국부론』, 『도덕감정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 『인간이란 무엇인가 (오성 정념 도덕 본성론)』는 쓴 데이비드 흄과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영국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스코틀랜드인으로서,그 시대의 윤리학, 사회학, 철학을 완성하였으며,애덤 스미스(Adam Smith) 는 1723년에 태어나 1790년에 사망하였다.애덤스미스는 그가 쓴 저서 『도덕 감정론 』,『국부론』를 제외하고, 나머지 애덤스미스가 생전 써오고 연구하였던 소논문은 유언에 따라서 불태워지게 된다.

자가 니콜라스 필립슨 이 애덤 스미스의 삶, 평전을 쓰기위한 어려움을 토로한 이유도 그러했다.그는 애덤스미스의 발자국을 찾아갔으며, 도덕적, 정치적, 지적,미적 감정, 인간의 본성을 경제와 어떻게 엮는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다행스럽게,그가 쓴 서신 193통과 받은 서신 129통이 남아 잇어서,그의 삶을 들여다 보고 , 자료에 근거하여, 평전을 쓸 수 있었던 게기를 만들어 나갔다. 18세기 영국은 또다른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여전히 종교에 근거한 경제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중농주의 경제학자가 대세였다. 애덤스미스는 장로교에 의존했다, 하지만 영국 소유의 미국 식민지가 독립을 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게 경제에 관한 도덕철학에 근거한 경제 철학서를 씀으로서,영국 사회의 경제적 대안을 만들 수 있었다.국부론이 출간 된 이후,그는 개정판을 낼 때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 당시 유럽사회가 자본에 의한 사업활동에 대해 경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애덤 스미스는 쥬류 경제학자를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되었다. 중농주의를 중상주의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수였아. 스코틀랜드 인으로서 데이비드 흄 ( 영어: David Hume , 1711년 4월 26일 - 1776년 8월 25일) 과 다양한 방법으로 사상적 교류를 지속하였으며, 중농주의 유럽 사회를 중상주의 유럽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종교에 근거한 사회분위기를 자본에 근거한 사회로 탈바꿈했다.18세기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그의 책 국부론을 성경에 버근가는 위대한 저서라고 손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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