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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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 중에 '러너스 하이(runners's high) '라는 감정에 중독된 것 같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격렬한 운동 후에 맛보는 도취감이 바로 러너스하이지만, 글쓰기 같은 정신적인 노동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희열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마라톤 주자가 42.195 킬로 미터의 고통스러운 질주를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 사점(死點)을 넘기면 신기하게도 기이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가 찾아 온다고 하지 않는가. 내게 여행 중의 글쓰기가 그렇다. (p201)


나는 정여울님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이 대목은 특히 신경쓰였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 자신의 문장 속에 마라톤과 러너스하이를 언급할 때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고, 러너스하이를 체험해 본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라는 단어를 쉽게 언급하지 않는다. 마라톤을 오래 해 왔던 유명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더라도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마라톤은 일상이지 고통이나 희열은 아닌 거였다. 상상이 어떤 편견을 만들고, 마냥 그럴 거라는 추측을 잉태한다. 물론 하나의 이벤트선 경기도 아닌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면서 거치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자 습관인 거다. 정여울씨는 그런 면에서 자신의 여행에 대해 언급할 때 마라톤의 특징에 대해 가볍게 쓰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으로 남아 있다. 마라톤은 고통과 결부짓는 것이 우리의 편견으로 굳혀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여울씨의 기행문이다. 작가로서 쓰여지는 세번째 기행문, 정여울 님은 여행에서 자신이 마주했던 작가와 문학 작품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있었다. 특히 저자의 유럽 여행에서 눈에 들어왔던 여행지는 더블린과 리스본이었다. 더블린은 노벨 문학상을 다수 배출한 지역이며, 피네간의 경야, 율리시스를 쓴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가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적 영감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 곳에서 쓴  <더블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제임스 조이스가 추구했던 문학적 실험에 대한 퍼즐을 맞춰 나가게 되었고, 정여울 님도 그들과 같은 과정을 거쳐가면서 문학적인 이야기, 작가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리스본은 <불안의 서>를 쓴 페소아가 살았던 곳이다. 그의 문학적인 세계가 태어난 리스본에서 정여울 씨는 책속의 한 구절을 읇어나가고 있었다. 페소아는 스스로 왜 인간의 내면 깊숙한 불안의 깊이를 들여다 보았는지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으며, 페소아의 불안은 우리들의 삶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불안을 끄집어 내고자 한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페소아라는 작가의 삶이 궁금하였던 게 사실이었다. 


여행은 그런 거다. 나에게 익숙한 곳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상처와 아픔이, 낯선 곳에 스스로를 내몰림으로서 치유하고 회복하게 된다.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인간은 상숙하지고 성장하게 된다. 여행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같은 상황과 같은 조건임에도 시간과 장소를 바꾸고 상대를 바꿔 버리면, 많은 것들이 이해하게 되고,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 자신의 익숙하지 않는 생각들을 털어나갈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여행에서 경치를 보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맛을 보는 것과 달리 여행에서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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