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 시인이면서 가수이면서 자신의 자서전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차려 그 것 마저 성공해 버린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의 단편적인 생각과 느낌들을 글로 썼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만약 이 책 소개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정보 없이 읽게 된 책이고 그래서 더 좋았다.
인도 캘거타에 서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흙탕에 쓰려져 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굶주림에 지친 할머니 곁을 지나간다. 그 할머니한테 껌처럼 붙어 있는 뼈만 남은 아기 곁을 지나간다. 상처에서 흐르는 고름에 파리떼가 들끓는 쓰레기 더미에 묻힌 늙은이 곁을 지나간다. 남은 한쪽 다리로 땅바닥을 기며, 작은 손으로 나를 붙잡으려는 아이 곁을 지나간다. 시끄러운 클랙슨 소리 'Japanese! Money! Money! Please!' 라는 노한 음성을 뒤로 하고 배기가스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본다. 캘커타의 저녁 무렵. 도쿄에서 분명 가져왔을 꿈꾸는 나 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쿄에서 분명 가져왔을 '세치 혀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쿄에서 분명 가져왔을 '나 자신'은 의외로 무력했다. ' 지금 이 가슴의 아픔이,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보잘것없는 내 마음이 이렇게 중얼거릴 때 " 뭐든지, 좋다. 지금 여기에서 뭐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용기를 내 한마디, "도와드릴까요?" 쓰러져 있는 할머니에게 한마디 말을 건넨다. 어색하지만 내 영혼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미소까지 곁들이며, 그 순간 놀랍게도 할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매우 따뜻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무엇인가 '소통'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존 레논의 'Imagine'이 견딜 수 없게 듣고 싶은 밤. 나는 조금씩. 분명하게 변화를 느낀다.
작가인 다카하시 아유무는 류시화보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류시화보다 젊다. 그래서 꾸밈없이 느껴진다.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처음으로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젊은이답다.
어제, 메인 스트리트에서 흰 팬티 하나 달랑 걸친 채 노래부르며 돌아나니는 아저씨를 만났다.
어제, 해변에서 일흔 넘은 할머니와 젊은 남자 커플의 프렌치 키스를 보았다.
어제 붐비는 슈퍼마켓의 한 구석 바닥에 곤히 잠든 어보리진을 보았다.
어제, 한낮의 공원에서 섹스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어제, 사는 것이 마냥 즐거운 부랑자를 만났다.
어제, 얼굴에 30마리 정도의 파리가 붙어있는데도 싱글거리는 아줌마를 보았다.
어제 'Good Morning' 하며 일어나자마자 맥주 한 병을 나발부는 녀석을 만났다.
어제, '죽는 것도 꽤 괜찮은가봐. 제법 기대되는군' 이라며 들뜬 소리로 떠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때? 유쾌하지 않아?
대 초원의 한가운데 앉아 동서남북 하늘 가득한
별에 둘러싸여 똥을 싼다.
이 해방감,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은 쾌감. 완전히 오르가즘이다.
이런 글들에서 재미난 장난감을 처음 발견하고는 놀이에 푹 빠져있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젊은이의 패기를 읽을 수 있다.(컴백에 성공한 박진영을 보는듯하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도전하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열적인 그렇지만 세상에 고민하기 시작하는 건장한 젊은이를 만난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