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싼 값에 산 당신, 퇴직금이 대신 내줬다!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은 5000원, 홈플러스 착한 생닭은 1000원, 지름 45㎝짜리 이마트 피자는 1만1500원, 두께 8㎝짜리 GS수퍼 위대한 버거는 7990원.... 이렇게 피자와 통닭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한 대형 마트들의 가격 경쟁에서부터 파격 반값으로 급성장한 소셜커머스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말 그대로 ’가격 파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런 마당에 <가격 파괴의 저주>(민음사)라니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 같은 제목이다.  

   현실에서 보면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제목이지만 직접 들여다보면 가격파괴에 대한 숨은 진실을 그 무엇보다 잘 이야기한 책이다.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고든 레어드가 쓴 책, 원제목은 The price of a bargain, 풀어보면 가격할인(바겐세일)의 (진짜)가격 정도 되겠다.    

   요즘은 IMF 시절 못지않게 가격 할인이 범람해서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오히려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과연 값싼 제품이 정말 소비자에게도 좋기만 할까?

   저자 고든 레어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값싼 물건에 대한 소비자의 탐닉은 21세기에 발생하는 모든 위기의 근원이다”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싼 것 좋아하다가는 결국 큰 코 다친다.”고 소비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경쟁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다. 요즘은 할인했다 하면 거의 대부분이 ‘반값’, 그래서 ‘과연 이 가격으로 팔고도 남을까?’ 사면서도 걱정될 정도다. 소비자들은 이들 덕분에 정말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횡재한 기분이다.

   이같은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경쟁은 올초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지나칠 만큼 과열 양상을 보이지만 그 시작은 '가격 거품빼기' 였다. 대형마트가 보기에 피자나 치킨 등을 판매해온 기존의 업체들이 판매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보고 그 거품을 제거해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경제위기 이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뉴스였다. 이들의 마케팅에 대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고, 뒤늦게 뛰어든 다른 업체에서도 치킨이나 햄버거 심지어는 자전거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할인제품의 수량이 한정적이어서 그것을 사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줄을 선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샀고, 심지어 자전거 같은 경우는 급하게 제품을 찾다보니 조립불량과 상표권 침해 논란이 있는 제품을 수입해 전량 리콜 하는 일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주변 상권에서 치킨과 피자를 팔았던 영세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원성을 샀다. 



  이와 같은 사정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만 하더라도 집값이 올라 서류상으로 재산이 크게 불어나자 카드를 마구 그으며 소비해 개인저축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미국 소비자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값싼 제품을 사려다가 난리가 났다. 

   2008년 블랙 프라이데이(본격적인 추수감사절 명절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첫 번째 금요일), 북미 지역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7200만명이 쇼핑에 나섰는데, 그 중 뉴욕 롱아일랜드의 월마트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던 엄청난 인구의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경비원 1명이 문자 그대로 고객들에게 밟혀 죽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는 새벽부터 줄 서다 열 받은 소비자들이 총격전을 벌여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것이 ‘가격 파괴의 저주’가 아니고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원인으로 세계화를 들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평평한 세계’를 주장하며 세계화는 대세이고, 세계화 과정을 통해 값싼 제품을 손쉽게 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했다. 소비자 역시 예전보다 싼 가격에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세계화가 주는 혜택’으로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 

   하지만 제품 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같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했고, 돈을 버는 노동자는 중국 노동자들과 같이 값싼 노동력 국민들이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과 노동자의 숫자만큼 국내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이는 제조업을 살펴도 마찬가지다. Everyday low price (매일 낮은 가격)을 모토로 싼 제품만 찾아 전 세계를 뒤지는 월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 재래시장이나 영세상인들은 폐점을 해버려 결국 지역 상권이 붕괴되어 버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소비자가 되어 값싼 제품을 탐닉할 때, 일자리는 잠식을 당하는 셈이고, 결국 실업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가격이 싼 제품만 찾는 행위가 결국 나와 내 이웃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당장 먹기는 곳감이 달다’고 우리는 오늘 저녁에도 마트에 가면 싼 제품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격 파괴는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 

   할인점과 대형 마트의 가격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 값싼 에너지, 값싼 운송 시스템 덕분이었다. 저자는 세계화의 상징인 월마트의 가격파괴 시스템은 결국 유가와 중국으로 인해 브레이크에 걸릴 거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고갈이다. 장기적으로 세계가 에너지 부족에 직면할 것은 불가피한데, 글로벌 경제는 운송에 의지하므로 유가 상승으로 운송비도 상승해서 월마트와 같은 대형마트의 저가 정책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한 만년 생산자일 줄 알았던 중국인들이 소비자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선부론을 계기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를 채택하며 세계 가장 싼 제품을 만들어낸 중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10% 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달러를 긁어 모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소비자가 되어 돈을 쓰는 세력도 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 근로자들의 생산임금이 올라가고, 원자재가와 유가가 급등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평균 가격은 2007년 상승세로 돌아서고 말았다. 세계 초저가 생산품 제조국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놀라운 현실은 많은 서구 경제에서 보호할 만한 생산 역량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안보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무역 관계가 흔들리고 국가의제가 달라지며, 또 팍스 아메리카나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가 아는 ‘세계화의 종말’일 것이다.” 

   ‘저가만을 쫓는 소비자’가 대세인 시장에 대해 이 책의 저자가 내다보는 미래는 우울하다. 머지않아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 조상들처럼 절약이 미덕이고, 빚을 경계하는 태도가 주류(主流)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결책으로 우리 속담인싼 게 비지떡”에서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비지떡은 두부가 될 물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다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고 빈대떡처럼 부친 떡으로 값이 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치처럼 꼭 있어야 할 음식도 아니고, 별 맛도 없는 이 비지떡을 값이 싸다는 이유 만으로 한꺼번에 왕창 사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양도 많고, 맛도 없어 다 먹지 못해서 남겼다가 결국 하루 지나 금방 쉬어서 못 먹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필요한 물건을 자기의 소득 안에서 여러 가지를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라는 뜻을 의미한다. 

   ‘언제나 최저가’를 지향하고, 싼 것만 찾는 소비생활을 하다보면 정체불명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되거나, 혹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제 3국의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거나, 사랑하는 자녀에게 재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짝퉁 장난감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서 더 싸게 살까?’를 걱정하는 ‘저가의 노예’가 되지 말고, 과연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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