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편의 중단편으로 엮인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집 살인 출산은 아~ 하는 탄식을 뱉어내게 되는 소설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것, 더구나 21세기 오늘 우리네가 믿는 합리주의가 빚어낸 이성, 과학이 마침내 도달할 초월적 인간 세계의 무수한 형상들에 어린 모든 가능성들..., 이것이 빚어낼 또 하나의 미래에서 지식과 사유를 결별하기 시작한 바로 지금의 인간의 광기와 어리석음(1)’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표제작인 중편, 살인 출산살인출산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규정된 윤리관이 새롭게 정의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성들의 출산행위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새로운 생명의 출생을 견인하기 위한 제도로서 10명의 아기를 출산하면 1명을 살인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러한 사람을 출산자(出産者)’로 부르고, 피살자로 지목된 사람을 망자(亡者)’라 부르며 그 희생을 고결한 죽음으로 칭송하는 세계이다.

 

1. 사유(思惟)의 요청

 

시선을 달리하면 이는 곧 아이들은 살인으로 태어난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살의(殺意)가 미래로 생명을 이어가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동의 할 수 있겠는가? 실증적 공리주의자들은 과연 무어라 말할까? 인간 살해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는 제도주의자들은 또 무어라 말할까? 이러한 의문들을 지니고 그 정의를 내리려는 일련의 과정을 사유(思惟)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린 정말 사유하는 것일까? 그런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가 그저 올바르다고 믿고 있지 않은가? 혹여 자신의 생각이란 것이 집단의 지혜가 위임한 판결의 무기력한 집합소(2)’라고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암송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극단까지 밀고 나간 살인에 대한 윤리적 의심인 이 소설의 주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터무니없게도, 대립하지만 자신이 믿는 세계에 대한 맹신이라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없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의 두 적대자인 약제사 오메와 신부(神父) ‘부르지니앵을 떠 올리게 된다. 19세기 판 정의(正義)21세기에 반복되고 있다, 라는 생각에서이다.

 

살인이 인간의 미래를 이어가는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출산자에 지목되어 살해되는 망자에 대해 신부보다 순결한 존재잖아”, 혹은 죽음의 가능성이 바로 옆에 있는 게 삶의 가치를 한층 더 강하게 깨닫게 해준다고 할까라며,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한 치의 회의도 없는 이 대화를.

이에 대해 살인은 엄연한 죄라는 믿음에 기초한 사키코라는 여성은 왜곡된 불의의 세상이며, ‘무지한 맹신의 세계라고 말 할 것이다. 출산자인 다마키를 언니로 둔 이쿠코라는 여성은 이를 다시 비판한다. “세계를 맹신한다는 의미에서는 사키코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과거 세계를 굳게 믿느냐, 지금 문 앞에 펼쳐진 세계를 굳게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세계를 의심하지 않고, 사고가 정지돼 있다는 의미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P 49)

 

위 문장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오늘 우리들이 처한 첫 번째 문제의 제기이다. 맹신과 생각 없음이라는 근대 계몽주의 이래 인간의 오만이 야기한 몽매성의 반복이 몰고 올 재난에 대해서. 그럼 19세기 신앙과 과학의 분열로 대립하는 부르지니앵과 오메가 얼마나 맹신이라는 동일성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자.

 

단 한 권의 책(성서)밖에 모르는 무지하고 편협한 부르지니앵은 절대자가 하늘에 있다고 주장하며, 합리적 사고라는 유일한 법아래 인간을 위치시키고 싶어 하는 오메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경도된 오메, 단독자인 그리스도의 말에 교조적으로 의존하는 부르지니앵, 이 둘 어느 한쪽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하고 있을 뿐이다. 무사고(無思考), 틀에 박힘, 즉 각자 자기의 우상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신념을 지킨다. 어떤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양자 모두 흔들림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아는 것을 반복하고, 암기한 구호를 거듭 반복하기만 할 뿐이다. 이 두 인물은 동류(同類)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게 된다. ‘인류의 몽매주의와의 싸움은 단지 절대자의 이동, 즉 후견인의 교체에 그치고 말았다(3)’는 점이다.

 

소설 살인 출산은 이처럼 몽매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금 우리들의 세계에 대한 자극의 수위를 극도로 높인 환기일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보다는 복종한다. 쉽게 믿는 정신이 비판정신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지닌 오늘은 인류의 역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무사유가 더욱 횡행하고 있다.

 

10명 째 아기의 출산이 임박한, 1명을 살해할 권리를 취득하기 직전의 다마키를 찾은 사키코는 인간 살해라는 잔인성을 역설하며, 출산자로서의 고통을 버릴 것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다마키는 예기치 못한 살인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는 세상은 옛날과 다르지 않아요. 보다 합리적으로 변했을 뿐이에요. 세상은 늘 잔혹해요.” (P 86)라고 반박한다. 그리곤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있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 (P 90)라며, 맹신주의가 어떻게 세계와 화해해야하는 것인지 답변한다. 이 답변이 여전히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여기에는 사유의 흐릿한 그림자가 있지 않은가? 의심과 믿음과 용서의 어떤 변증법적 승화(昇華)같은 것을?

 

2. 새로운 앎의 역설

 

아마 소설의 본질적 의미를 해독할 필요 없이 어휘와 문장의 표면에 떠오르는 선정성만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19()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장장 여섯 쪽에 이르는 자매의 살해 장면은 나는 자기가 하는 살인에 감동해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P116)라는 문장만큼 곤혹스러우며, 이질적이고, 혼란스럽다.

 

살인의 권리를 얻은 다마키는 특정한 인간에 대한 살의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대상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살기 위한 기도로서의 제지 할 수 없는 살인 충동이 있을 뿐이다. 그것의 실현 행위가 펼쳐진다. ‘광기’, 인간의 흉포한 원색적인 폭력성. 이렇게 극한적 장면의 묘사에 이르러야 했던 작가의 생각을 읽고 싶어진다. 다마키의 살인 행위에 가담하여 그녀보다 더욱 그 행위에 전념으로 빠져드는 이쿠코의 살인의 정의에 대한 자기 확신의 언어들에서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우리들은 두 번째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 새로운 윤리 세계로의 안내, 인류의 정신을 지체시킨 무사유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특정한 정의에 세뇌당하는 건 광기에요라며, 또 하나의 클리셰(cliché)로 사키코를 반박했던 이쿠코는 바로 그 광기의 향연에 참여함으로써 무지의 몽매성으로부터 탈출한다.

 

방 안은 사키코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힘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가. 이 세상의 정의가 파열된 것처럼 우리에게 말려들었다. ... 청결한 살의 세계로 들어가서 생명을 가로채는 행위.” (P 115~116)

우리들의 믿음에 기초한 담론들은 마치 한정된 수의 카드를 변화시켜 만든 극히 빈약한 조합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일반화된 지식의 유형에 갇힌, 처음부터 어떤 끝맺음을 할지 뻔히 예상되는,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념들.

 

이 잔혹한 장면을 통해서야 비로소 파편처럼 튀어나오는 새로운 앎의 역설은 사유의 치열(熾烈), 극한(極限)성을 시사(示唆)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결코 일반화 될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에서야 발견 될 수 있는 것이라고. 21세기 오늘, 인류의 존재론적 위기를 인식하는 많은 지성들은 말한다. 비판적 사고를 잃지 않을 때, 자기 사유의 한계를 직시할 수 있을 때에만 인류는 올바를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린 혹시 삶의 고통 속에서 작은 빛과 위안을 찾아 고백하러 온 엠마 보바리에게 고해 신부가 내리는 필경 소화가 잘 안되시는 모양이지요? 부인, 댁에 돌아가셔서 차를 조금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4)” 와 같은 처방처럼 갇힌 사고, 무사유의 말과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얼마나 우스운가, 생각 없음이란 것은 이처럼 자기만의 소리를 웅얼거리는 귀머거리의 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들의 미래 사회는 어떤 윤리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될까 지금 우리는 정녕 올바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1) 인간의 조건, P 69 한나 아렌트, 한길사

(2)(3) 사랑의 지혜, P84,85 알렝 핑켈크로트, 동문선

(4) 보바리 부인, P158 귀스타브 플로베르,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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