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감을 상실한 순간들이 밀려왔고, 세상이 인식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을 겪었다."

이런 감정의 무정함에 놓여있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책 읽기에 매달리게 된 것은 이러한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작가 '헬렌 맥도널드'와 교감하기 시작한 것은 위의 203페이지에 이르러 접하게 된 문장에서 비로소 출발되었다.

 

그녀는 웃는다. "삶의 신호들을 죽음의 현실에 끼워넣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항상 내 곁에 존재한다고 여기던 사람의 부재,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애도를 현실의 세속성이 얼마나 무참하게 하는지 달리 할 수 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책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앞에서 당혹해하는 중년의 여인이 있으며, 현실을 이해한 그녀의 치열한 자기 치유의 행로이다.

 

그래서 애도와 치유, 삶과 죽음과 같은 진부한 소재의 연속이거나, 삶의 치유라는 경험사례식의 회고담에 머물렀다면 이 책을 읽어내는 데 힘겨웠을 것이다. 책의 중심에 있는 20세기 초 동성애이자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던 소설가 'T.H.화이트'의 아마추어로서의 조련기인 [참매]의 기록들과 헬렌의 유대감은 이를 극복시켜준다. 이 유대감에는 잃어버리고 잊힌 것과의 교감을 위해 매가 있으며, 언제나 겁먹는 것을 통해서 사물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매와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닮은 꼴의 발견이 있다.

 

그녀의 참매, '메이블' 조련행위는 "자신을 다른  인물이나 상황으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믿음으로써 자아의 상실과 이성의 상실을 견디는 능력"을 갖고자하는 노력이다. 그녀는 말한다.

"솜씨있게 사냥하는 동물을 조련함으로써, 그것과 밀접하게 교류함으로써, 그것과 동감함으로써, 모든 생생하고 진지한 욕망을 완전한 순수속에서 경험할 수 있을 터였다. ~ 중략 ~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

 

그리곤  "먹먹한 가슴에 매가 돌아오는 것만큼 약이 되는 것은 없었"으며,  그녀의 "가슴과 매를 따로 생각하기가 몹시 어려"울만큼에 이른다. 그녀가 매를 길들이고 있는 것은 시간을 다 사라지게 하기위한 행위이다. 시간이 무가 되어버리게 하려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과연 이게 전부일까? 내게도 수없이 자문했던 질문이다. 그저 위안에 그치는 것, 사라지게 하는 것, 무언가가 부족하지 않은가? 헬렌과 메이블의 교감과 조련의 성공은 화이트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헬렌은 화이트를 통해, 또한 메이블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을 확인한다.  "사랑을 얻었지만 그 사랑을, 그 사랑을 믿을 자신이 없어서 겁 먹은 사내처럼 행동했다." T.H.화이트는 자신의 참매 '고스'를 마침내 자신의 주먹위에 돌아오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고스에 대한 믿음에 주저하며 다른 매에게 시선을 돌림으로써 영원히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참매는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이며 시무룩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중략~도무지 합리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후에 그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사귄 남자와 헤어진 헬렌, 사람에게 사랑을 돌려 받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화이트에게 사랑에 대한 믿음만큼 절실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영원한 좌절만큼 서글픈 것은 없다. 소외, 무관심, 이별, 죽음, ...

 

헬렌에게 메이블의 조련은 곧 삶을 견디는 법 자체이며, 미숙한 삶을 마무리짓는 전환이자, 사랑의 간절함에 대한 비로소의 인식이다. 그녀가 한 작가의 작품을 빌려 "심리적인 살풀이 굿, 과거의 삶을 태워 없애려고 쓴 통렬한 이야기"라고 해석한 것은 바로 헬렌 자신의 이야기인 바로 이 [메이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뭔가  아주 간절히 보고 싶어서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중략 ~ 얼마나 보고 싶은지를 기억하고 참아야 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