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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방파제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란 옮김 / 새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연인』백인소녀, 쉬잔, 그리고 뒤라스
하나의 소설이 그것만으로 온전히 읽혀지지 않을 만큼 아득한 것이었다면 바로 이 작품이 그렇다. 이후 작가의 또 하나의 소설,『연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 느낌을 가졌으니, 두 작품은 서로의 틈새를 메워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물들이 완벽하게 중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신적 외상을 남긴 광기어린 가족의 기억, 소소한 소재들이 연결시켜주는 외연의 확장으로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진의를 엿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태평양의 방파제』는 식민지에 이주해 사는 프랑스인 가족, 어머니, 오빠 조제프, 그리고 열일곱 살 소녀 쉬잔, 그리고 쉬잔의 연인 무슈 조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인물들에게 이름이 주어져 있다. 아마 뒤라스의 초기작으로서 소설의 허구성을 위한 치장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연인』에서는 굳이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백인소녀인 나, 어머니, 작은오빠, 나의 연인인 중국인 남자 그가 있다. 의도적으로 자전적 작품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작품 속의 가족들과 쉬잔이자 백인소녀는 작가 뒤라스를 배제하고 읽을 수가 없으며, 이것은 곧 실존 인물에 대한 탐구, 혹은 정신분석적 탐색이란 묘한 흥분으로 이어지게 된다.
1. 소설의 제재들
식민지 토지관리국이라는 점령국의 약탈적 탐욕이 자국민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만큼 부패해 있으며, 남편을 여윈 여인이 자식들과 살기 위한 방편으로 구입한 토지는 바닷물에 침수되는 곳이다. 농작의무 불이행시 환수한다는 조건을 달고 농작할 수 없는 토지를 판매하는 것이다. 부패한 토지국 관리는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의 재산을 이렇게 반복적으로 착취하여 배를 불린다. 여기에 저항하듯이 여인은 방파제를 쌓지만 태풍에 여지없이 방파제는 허물어지고, 바닷물이 넘실대는 토지에서 농작은 불가능하게 된다. 관리(官吏)는 의무 불이행으로 환수를 위협하고, 여인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의 도움으로 이들을 쫒아낸다. 결국 ‘방파제’는 조제프와 쉬잔의 어머니인 여인에겐 생존, 삶의 궁극(窮極)인 것이다.
이것은 이 가족의 모든 것으로 이해되지만 점차 어머니 광기, 생존을 버티는 공허함임을 조제프와 쉬잔은 이해하게 된다. 가난이 고착화된 가족, 어머니는 딸 쉬잔에게 관심을 보이는 외소한 청년, 부잣집 아들인 무슈 조를 자신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수단화하려 한다. 쉬잔은 자신의 여체(女體)가 유용한 도구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뜻에 부응한다. 남자는 쉬잔을 소유하기 위해 물질로 보답하고, 축음기, 그리고 고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에 넣는다. 다이아몬드의 처분 자금으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도약을 예견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을 알게 된다.
식민지, 방파제, 육체, 다이아몬드, 이들은 착취와 폭력, 관능과 무능함의 언어이다. 여기에 의존하고 있는 삶이란 공허와 낙심, 피폐와 상처만이 남는다. 이러한 소설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암담하기만 한 이들의 현실을 뚫고 조제프와 쉬잔이라는 두 젊은 영혼들의 미래를 향한 탈주의 꿈틀거림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그네들의 운명 앞에 선 길이 평범치는 않아 보인다.
2. 소설『연인』과 함께
『태평양의 방파제』에서 굳이 쉬잔의‘연인(戀人; L'Amant)’을‘무슈 조’라 하겠지만 사실 쉬잔의 입장에서는 연인이랄 수 없다. 애초 가족을 가난으로부터 구원할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상대에 불과하며, 쉬잔은 욕실의 문틈으로 잠깐씩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어 남자를 자신에게 묶어둔다. 결국 다이아몬드를 얻어내는 것으로 이들의 연인관계는 막을 내리지만, 소설『연인』의 열다섯 살 반의 백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와의 연인 관계는 이처럼 기만적이지 않다.
물론 메콩강을 건너는 나룻배 위에 옅은 화장을 하고 헐렁한 원피스에 남성용 중절모를 쓴 원주민 사이에 선 백인 소녀는 다분히 의도된 것이며, 기사가 있는 고급승용차에서 내려 다가온 중국인 남자의 수줍은 접근을 헤아리고 그의 차에 서슴없이 오르는 것은 쉬잔의 의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백인소녀 나는 그에게 육체를 무기로 다가서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의 욕망에 이끌려 가진 최초의 관계에서 육체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열락의 감각을 깨닫게 되며, 남자에 대한 갈망으로 사랑의 존재를 자문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쉬잔이 얻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연상시키듯 백인소녀의 손가락에도 슬쩍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여줌으로써 댓가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연인』은 『태평양의 방파제』의 쉬잔의 삶을 더욱 구체화시켜 보여주지만, 그녀와 오빠와의 관계도 보충해 드러낸다. 『태평양의 방파제』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큰 오빠의 존재는 엄마와 함께 광기와 에고이스트, 폭력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에게 어떠한 동정이나 연민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혐오와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반면에 둘째 오빠는 쉬잔이 못내 걱정하고 아끼던 사랑하는 오빠 조제프의 모습과 일치한다. 다만 『연인』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할 뿐이다. 쉬잔이자 백인소녀인 뒤라스의 오랜 상처가 무엇이고 그녀의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우린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엄마에게 배척된 작은 오빠, 조제프와 백인소녀 쉬잔, 두 남매의 상처와 고독의 배경, 그네들의 아린 성장기의 고통이 도처에서 배어나와 뒤라스 문장의 근원, 실체를 목격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는다.
3. 뒤라스의 사랑
위의 두 작품, 즉 뒤라스의 소설 속 분신인 쉬잔과 백인소녀 나는 그녀가 자신의 여성성, 여체에 대한 자각의 성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오빠 조제프를 통해 바라보는 성적 편력은 그녀에게 육체, 성(性)의 궁극성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가져다주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기만적 목적으로 대했던 무슈 조의 갈망하는 시선에서 자신의 육체적 가치를 인식하였다면 오빠의 친구인 동네청년 아고스티를 따라가 자신의 처녀성을 단지 그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내어주는 것처럼 자신의 여성성으로서의 육체를 다분히 이타적인 대상으로, 혹은 수단으로서 이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연인』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육체가 단지 수단으로서의 매력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 비로소 그녀는 몸으로부터 전달되는 소중한 감각들을 느끼고, 그것이 갈망이 되고 또한 사랑과 다르지 않음으로 확신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열락이 죽음과 같음을 이해하는 건 ‘조르주 바타이유와 친교를 가졌던 뒤라스로선 견고한 믿음이 되었을 것이다. 임종하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십 년 연하의 연인‘얀 앙드레아’와의 대화로 꾸며진 『이게 다예요』에서 “행복하다는 감정, 얼마쯤 죽어있는 느낌”, 또는 “예전에도 지금도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건 사랑이지, 죽음(la mort)과 사랑(l'amort)”이란 문장에서 그녀가 사랑이라고 믿은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면 억측일까?
뒤라스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죽음의 망령은 육체의 지고한 쾌락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녀가 가장 사랑한 소설이라고 유언처럼 남긴 소설이 바로 이 『태평양의 방파제』이고 보면, 빠져나가고만 싶어했던 어린 시절, 그러나 가족의 사랑과 숨결이 온통 배어있는 그 시절의 기억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던 것일 게다. 고요한 저녁나절 낮게 소리 내어 읽으면 감동이 배가 될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