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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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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에 대해 거북함, 불쾌감, 부정적 의식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본질적 요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 그리 명쾌하지 않다. 분명 거부감이 있는 것만큼은 사실임에도 말이다. 그간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야기하는 근원에는 정의의 균열, 즉 공정성의 파괴라는 도덕규범을 근거로 내세우곤 했다.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는, 혹은 반대론의 강력함이나 체제의 순응성으로 인해 미흡함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공정성이외에 어떤 도덕적 진실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특정 대상물의 관행과 가치평가를 변질시키는‘부패’라는 도덕의식이라고 마이클 샌델은 말하고 있다.

 

난자를, 줄기세포를, 여성을 임신 대리 장치로 거래하는가하면, 사망을 담보로 하는 말기환금 생명보험을 팔고, 줄서기라는 질서를 판다. 이젠 생명은 물론 죽음까지도 포함한 거의 모든 것들을 거래 대상화 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우주 천지에 더 이상은 없다는 시장지상의 논리가 잠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 생명을, 나의 죽음을 담보화하여 돈으로 거래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나처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장자유주의자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행 민법은 제 103조에서‘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면 무효’라고 하여, 개인의 생명 등 인륜이나 정의 관념에 반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극히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문화된 강행규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법으로 생명과 죽음을 거래대상으로 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점차 이‘선량한 풍속’과 ‘사회 질서’를 해석하는 내용의 범위가 축소됨과 아울러 생명의 의미도 지극히 협소해지고 있거나 아예 생명 자체를 물질에 불과한 것으로 까지 밀고 나가고 있어, 아마 오래지 않아 이 법률 조항은 사문화(死文化)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시장만능의 경제적 논리가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을 지배함에 따라 지금까지 도덕과 이의 사회 규범적 실천으로서의 법으로 존중받고 보호되던 영역들이 비도덕과 비법률적 영역으로, 즉 시장의 거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이 잠식하거나 밀어낼지 모르는 태도와 규범에 담긴 도덕적 중요성의 인식을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경고를 의미한다. 시장이 인간 삶의 고유한 비시장적 규범의 영역을 침해하는 이것이 우리 인간과 인간사회를 어떻게 손상시키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감정을 불쾌하고 거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규명이 이 책의 논지이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란 무엇인가? 하고.

 

가장 먼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줄서기에 대한 새치기의 시장 의식의 검토를 통해 시장과 부패의 문제를 제기한다. 줄서기는 공평함과 자기노력의 가치를 존중한다. 반면에 새치기는 이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시킨다. 그러나 공정성은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반박된다. 새치기도 쾌락의 증가가 불쾌의 감소를 능가하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줄서기는 이러한 경제적 효율성만이 전부인 재화이고 가치일까? 그렇지 않다. 줄서기는 새치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배분양식으로 민주적 질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 가장 민주적인 배분양식이란 의미이다. 사실 새치기는 오늘 우리의 사회적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다. 항공기의 1등석, 비즈니스석, 스포츠 경기장의 박스석, 은행의 구별된 창구, 대리 줄서기, 진료 예약권 및 전담의사제 등 새치기를 돈으로 사고파는 양식은 깊숙이 잠식하고 있다.

 

이 논의에서 센델은 시장의 논리를 명쾌하게 반박한다. 소위 경제학자들의 자유주의와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거래 대상물의 가치평가와 시장가격의 일치에 대한 불완전성, 그 불일치를 보여준다. 또한 재화의 분배방식은 재화가 지닌 본질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그 첫째는 부자가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불공정의 문제이며, 둘째는 부패의 문제이다. 부패는 뇌물의 문제를 넘어 어떤 대상이나 사회적 관행의 평판을 깎아내리며,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타락이자 품위의 실추인 것이다. 비시장적 영역이 시장 논리로 대체되는 이러한 경향에 내재된 중대한 상실이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중차대하다.

 

책은 이와 같이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장이 교환되는 재화를 건드리거나 훼손시키는 현상들을 광범위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불공정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이 특정 가치를 구현해서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비시장적 규범을 밀어내는 양상들의 도덕적 문제점, 그것에 내재하는 부패의 도덕적 잠식을 규명하고 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생명보험 증권을 할인해서 사들이고 그것을 펀드화해서 사망채권으로 판매하는 말기환금산업처럼 타인의 죽음이란 불운을 놓고 돈 벌이를 하는 지경에 이른 시장의 거침없음은 아마 이들의 좋은 사례일 것이다.

 

노벨상을 돈 주고 살 수 있게 된다면 노벨상은 더 이상 과거의 노벨상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시장 규범이 비시장 규범의 영역을 잠식할 때 발생하는 가치의 변질, 도덕적 타락, 부패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도덕적 영역으로의 침식이 야기하는 논쟁적 토의가 풍부하게 제시되고 있는 이 책은 공정성, 평등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현대적 삶의 영역 곳곳에 침투해 있는 시장화, 경제화가 갖는 파괴되어가는 도덕적 미덕, 복원하고 지켜내야 할 도덕적 양식을 일깨우고 있다. 나아가 비도덕적 영역화되어가는 우리 삶의 현장이 발설하고 있는 계층의 구별짓기와 소통의 단절, 이원화된 양식의 고착화, 이해 고리의 단절로 인한 적대화 등 인류사회의 건강성 훼손을 통찰해 내고 이 논의가 단순히 시장의 비도덕성과 도덕적 규범의 대결장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성찰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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