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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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함, 아마 인간의 지성으로 헤아려지지 않는 무엇에 붙여진 표현일 것이다. 혹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나 꺼림직 한 것, 무언가 은폐하고 싶은 것에 접근치 못하게 하려는 제약, 금지의 다른 표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마을이나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러한 기담은 사실 이러한 것들이 응집된 이야기이기에 당대의 시대상이나 은닉된 진실이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 으스스하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기담의 요소들이 진실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게 한다. 그래서 이 터부의 실체를 들여다보려면 그 부정하거나 속된 것으로 들어갈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미쓰다 신조’는 바로 이러한 괴이에 명철한 이성의 메스를 갖다 댐으로써 호러물의 공허한 공포를 현실이란 추리의 세계로 끌어낸다. 초월적 또는 환상적 세계를 현실, 속세의 감추어진 욕망의 세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금기란 바로 이처럼 음흉함을 이면에 감추는 가해자의 그럴듯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소설의 시작 부는 ‘고키 노부요시’라는 자의 괴이한 체험기이다. 고향마을 하도의 전통의식으로서 성년의 통과의례인 성인참배를 위해 신산(神山)인 삼산(三山)을 홀로 종주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 행로에서 고키는 산녀(山女), 산마(山魔)에 쫒기는 환영과 괴이한 울음소리 등 환청에 시달리다가 길을 잃어 흉산(凶山)인 부름산에 들어가게 되고 산속에 어울리지 않게 서있는 집과 사람들을 만난다. 산 넘어 가스미가(家)의 20여 년 전 집을 떠났다는 ‘다쓰이치’일가를 만난 것인데, 아침에 일어나자 홀연히 이들 가족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 기이함과 산마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고키가 ‘도조 겐조’라는 기담수집가이자 아마추어 탐정에게 체험의 기록을 보내 그 실상의 규명을 의뢰한 것인데, 여기서부터 향토색 짙었던 괴담은 과학적 이성의 추리, 경찰의 수사라는 현실의 세계와 융합하기 시작한다.
이 기담이 현실로 진입하는 사건의 발단은 다쓰이치 일가가 사라졌다는 부름산의 주인인 가지토리가(家)의 당주인‘리키하라’의 도움을 받아 산 속 밀폐된 집에서 얼굴이 불타는 시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안에서만 잠기는 대문의 집 안에서 살해자는 자취가 없고 막 살해된 듯한 사람의 얼굴을 숨기려 한듯 얼굴을 알 아 볼 수 없게 불을 지른 것이다. 소위 밀실트릭이란 열린 공간의 상식을 차단하려는 은폐 술책이다. 당연히 이 밀실책략에 무언의 진실이 숨겨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흉산인 부름산이 오래전 금광이 있었다는 전언이나, 다쓰이치나 그 형제인 다쓰조의 금광에 얽힌 끔찍한 소문이 실려 금기란 바로 금, 재물에 대한 탐욕의 은폐가 오랜 세월 축적된 현상임을 암시한다. 살해된 자의 신분이 다쓰이치, 다쓰지, 다쓰조 삼형제의 집안인 가스미가를 지키는 다쓰지임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본격화한다. 죽은 다쓰지는 구마도를 수호하는 신령인 여섯 지장의 첫 번째인 백색지장의 표식을 한 형상이다. 연쇄 살인을 예고하는 것인데, 곧 이어 두 번째인 흑색지장을 모신 기도당에서 다쓰지의 아들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제 살인 사건은 가미스가 가족 간의 금광에 대한 물밑 다툼으로 추정되지만 기담가 겐조를 돕던 가지토리가의 당주 리키하라가 살해됨으로써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어느 향토마을의 흉산에 얽힌 민담의 이면에 인간의 추악한 사욕이 잠자고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스미가 세 형제의 사라짐과 죽음의 추정, 여인네의 치정, 재물다툼, 그리고 기괴한 산마의 전설과 얽혀 교묘한 속임수이거나 함정으로 작동하며 정교하고 치밀한 추리의 지적 세계로 일궈내는 작가의 구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참신하다. 이윽고 가스미가의 성인 모두가 살해되는데 이르고 현지에 차려진 수사팀은 범인을 찾아내는데 한계에 몰린다. 외지인이라고는 기담가 겐조와 수도를 하는 순례자, 단 두 명뿐인 작은 마을의 연쇄살인범이 오리무중이라는 것은 혹시 모를 다쓰이치 일가나 오래전 죽었거나 실종되었다는 다쓰조로 인해 수사팀을 흉산의 수색으로 이끈다.

현지 수사팀을 지휘하는 경부의 신뢰 속에 범인의 실체로 다가가는 겐조의 논리와 추리력은 감탄을 연신 터뜨리게 한다. 범인으로서 완벽한 배경논리가 정립되었는가하면 여지없이 반론, 반대증거로 허물어진다. 반전, 대반전, 그리고 허를 찔리는 역전에 작품의 묘미는 한없이 고조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일생, 삶을 지탱케 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어 정체성이 손상된다면 엄청난 화를 불러 올지도 모른다. 산마가 어디 있겠는가! 타인을 단지 조롱하는 것만으로도 멸문(滅門)의 끔찍한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트릭의 정수를 보았다는 느낌이다. 깔끔하고 알찬, 진정 명쾌하고 세련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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