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의 인류사적 배경 못지않게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10살의 어린 소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왠지 울컥하는 마음을 야기하며, 거대한 정치적이고 역사적 담론 속에 묻혀 정작 인류가 경시하고 소외시켰던 것, 한 어린 인간에 대해 쏟아내는 군중의 맹목적 분노와 야만성, 그러나 박애와 인간의 도덕적 정의도 소수에 의해서라도 존재했다는 배제된 자들의 역사를 매혹적 이야기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작품의 사건을 이루는 시대적 배경의 시점인 1789년은 프랑스뿐 아니라 이후 인류의 근대적 이성주의와 민주주의 확산에 대 전환이 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시민혁명)’이란 인류사적 사건은 너무도 흔하게 인구에 회자되었기 때문에 ‘루이16세’와 그의 처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나 처형에 얽힌 비화는 더 이상 어떤 감동을 주기에는 어려운 소재일 정도이지만, 그들의 자녀와 가족이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다른 소재가 된다.

10살도 채 되지 않았던 왕세자‘루이 샤를(루이 17세)’과 공주인‘마리 테레즈’의 삶이 그들 부모의 처형이후에도 존속될 수 있었을까하는 물음은 우리들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1793년1월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그리고 같은 해 10월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으니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무모한 정치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았겠지 하는 윤리적 기대는 사실 낭만적 기대에 불과하기까지 하다. 역사는‘루이 샤를’이 10살 되던 해 동물우리보다 못한 폐쇄된 더러운 공간, 온갖 고문과 매질, 굶주림과 질병으로 ‘탕플 탑’의 감옥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어린 소년의 죽음에 뒤늦은 인간의 양심이 발동하였는지, 아니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생존 가능성과 관련한 무수한 뒷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으로 상실된 군중의 인간성이 회복되기나 할 것인 냥 기대하는 면죄의식의 작동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기분도 느끼게 된다.

작품의 현재 시점은 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820년대, 나폴레옹의 공화정마저 무너지고 다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의문의 남자가 살해되고, 그의 행적과 신분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루이 샤를’의 실존 가능성과 어울려 탕플 탑에 갇힌 어린 샤를을 치료하고 보호하던 의사 ‘가르팡티에 박사’의 20여 년 전의 기록이 교차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어린 인물을 복원해 나간다. 여기에 더해 긴장감과 흥미를 배가하는 요소로 19세기 프랑스문학에 빈번하게 등장하던 프랑스 시민사회의 절대적 우상이었던 인류 최초의 탐정격인 명수사관‘비도크’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게 하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거대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조류에 대해서 어떠한 이해도 가질 수 없는 어린 소년이 민중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방치된 채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좀처럼 합리적, 도덕적 타당성을 찾아  내기란 수월치 않다. 그러나 그 잔인한 행위의 주체가 시민들이 되었든, 탐욕스러운 권력자가 되었든 자신들의 이해를 획득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조차 죽음으로 내 모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이러한 군중적 야만성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사건의 배후인물을 향한 여정이 긴박감을 지닌 채 전개된다. 특히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요인으로 작동하는 이 소설만의 구성이 있는데, 역사적 사건이랄 수 있는 어린 샤를의 보호치료자인 가르팡티에 박사의 일기가 현재의 상황에 지속적으로 암시를 내뿜어 호기심이 마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같은 것을 작품 속 인물들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요구하는 듯한 그런 느낌 때문에 거듭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내용적 전개는 기발한 수사의 여정과 19세기 식 액션이 비도크란 영웅적 인물에 입혀져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게다가 소소한 복선과 반전들의 짭짤한 재미도 곁들여서 이야기적 즐거움까지 압도적임에도 역사비밀주의에 대한 탐색이란 제재는 분명 이 소설의 결정적 흥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이 되었을 수도 있는 루이 샤를의 생존가능성이라는 발상. 이와 더불어 인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적 지향점을 위해서는 기꺼이 소수자, 반대자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류적 가치에 대한 정당한 반대와 저항의 진실된 가치를 생각게 되며, 버려지고 학대당하는 어린아이에 자기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보살핌과 사랑을 중첩시켜 타자에 대한 사랑, 인류애, 인간의 보편적, 도덕적 진리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들이 정작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감성들, 베일에 싸인 역사의 이면에 갇힌 진실, 추리적 요소와 탐정의 액션, 이런 것들이 짜임새 있게 구축되어 그야말로 소설적 상상력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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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4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 사후 시점과 맞물려, 이 소년에게 `뇌청소'라는 것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