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 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의 내밀한 고백
이재훈 지음 / 팬덤북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오늘의 시(詩)는 비교적 대중과 친한 문학 장르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응축되고 은유된 그리고 중층화된 언어에 깃든 의미나 이미지를 읽어내기 위해 요구되는 시간이 현대의 속도와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빠르게 흡수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이성인 효율성과 맞지 않는 까닭이다. 여기에 더해 격렬한 자기대면과 같은 내면화되고 심화된 의식세계에 맞닥뜨리면 이를 성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시는 오히려 후자에 더 가깝다. 문학의 전문가도 아니어서 시론(詩論)까지 읽어보아야 그나마 어렴풋이 이해되는 시를 읽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고 더구나 그럴 필요성을 지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시와 시집을 멀리하지 못하고 가까이 두고 읽게 되는 데에는 무언가 나와 공명하고, 그래서 나와 같은 느낌과 물음을 하는 누군가의 미적(美的) 사유에 위안과 호감을 갖게 되는 이유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시인 이재훈이 우리의 시문학을 대표하는 35인의 시인을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시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위해 그야말로 꼭 필요한 물음을 통해 진솔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 저술이다.

시인 김춘수, 오규원, 박찬 등 그네들이 애석하게 작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려준 자평(自評)의 육성을 들을 수 있음은 물론 이승훈, 정호승, 최동호, 이재무, 김명리, 배한봉, 여정 등 이해하고 싶은 작가들의 의식세계와 작품의 지향점을 한 권의 책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귀중한 가치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특히, 내게 있어 이 책은 여느 시인들의 간략한 해설을 곁들인 대중적 시선집이나 시평집과 달리 막연하게 느끼던 시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이고 선명한 감각으로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진다. 시인들, 그들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납득의 시간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또한 시작(詩作)에 대한 근본적 관점이나 방법론,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로 그 작품의 외형은 다를지라도 궁극에는 그 보편적이고 공통된 것, 바로 존재에 대한 물음, 원초적인 시원에 대한 앎의 욕구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이라 하겠다.

시인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대담에서 느껴지는 시인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진리에 대한 애틋한 집착, 문단의 동향과 문학사적 평가, 언어와 형식에 대한 근원적 고통, 자기의 허위의식과 치열하게 싸워내는 모습들을 대하는 과정으로부터 자연스레 그들의 시 작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 우리 시문단의 추이나 그 정신적 공통성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현대 시들이 고민하고 표현하려는 세계에 가깝게 다가 갈 수 있는 시간이 절로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 그 어느 때보다 존재론적 성찰의 시들이 많은 요즘의 현상을 말하는 한 시인의 설명은 비로소 그 당위성, 그 까닭을 이해하게 하는데, 외부에 선명한 적이 있어 싸우기 용이했던 70,80년대를 지나자 우리들 안으로 들어온 적(물질주의, 소비주의 망령 등등)이나, 눈에 띄지 않으며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교묘하고 전술화된 적과의 싸움은 결국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관계를 성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처럼, 궁극에 실존의 문제와 대면하고 그 문제에 부딪치며 깨달아가는 과정이 삶이고 요구라는 이해에 절대 공감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가 말하는 것은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며, 또한 인간의 이성으로 도달 할 수 없는 그 어떤 표현 불가능한 것을 알고자 하는 격렬한 반응이라는 점으로부터 시를 보는 눈이 한층 성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인들로부터 직접 그들의 세계관과 시작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듣다보면 이와 같이 수긍과 이해, 친밀감, 호감, 사유에 대한 동질감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미처 자기 허위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 자기가 깨달은 것 이상을 말하는 사람, 자기가 알게 된 길이 오직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오만과 무지, 어리석음을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이 대담집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내면을 활짝 드러내고 있어, 해체주의니, 정신주의니, 생태주의니, 서정적인 우리 고유의 전통적 감성이니 하는 시와 시 형식세계의 면모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식 세계와 조응하는 시인들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시간도 된다. 읽어 나갈수록 삶을 바라보는 보배같은 시인들의 의식세계에 매혹된다. 존재의 비의(秘義)를 아주 조금만이라도 들려달라고 재촉하는 그들, 시인들에게 말이다. 우리의 시를 접하는 데 하나의 장벽을 허물어 버린 듯 가까이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시를 내 세계에 친근하게 가져다 준 고마운 저작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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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5-14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책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35명의 시인들 각각이 말하는 시에 대한 의견이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필리아 2011-05-17 20:27   좋아요 0 | URL
시인들의 의식 심층의 근원, 말하고자하는 세상의 본성 등등 한국의 현대 시(詩)의 세계를 알 수 있었답니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