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는 대체 누구인가? 

우리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내겐 무척이나 흥미로운 현상으로 여겨진 것인데, ‘소설가 구보씨’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구보씨가 등장하는 소설, 시 등 문학작품은 물론 구보씨의 소설 속 동선을 정리해 놓은 책이 나올 정도이고, 나아가서는 “좌절한 의식”을 대표하거나 ‘박태원’의 소설 속 시대인 일제강점기의 무력한 대중의 감성이나 시대상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어 사용되기까지에 이르렀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의 기원이 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5년 발표)」이라는 박태원(1909~1986)의 단편소설은‘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매일이라는 것은 무수히 찍어낸 하루처럼 반복의 반복을 이루며, 무목적성의 하루를 사는 인물이다. 물론 소설의 주제는 다분히 시대의 불온성이나 불의의 사회가 지닌 한계성에 대한 탐험이라 할 수 있겠지만, 특히 시대를 달리하며 작가들이‘소설가 구보씨’를 반복하는 이유는 변혁되고 시정되어야 할 우리사회의 무언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문제나, 구보씨로 대변되는 인물상이 오늘에도 동일하다는 착상만으로 이러한 현상이 빚어졌다고 단언하기에는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박태원의 소설 표제를 반복한 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문학에 있어서‘소설가 구보씨’만큼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를 남긴 작품도 없으리라.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2년 발표)』처럼 제목이 완전히 동일한 오마주 작품에서부터, 주인석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나, 시인, 건축가, 사진작가에 이르는‘구보씨’는 그야말로 무수히 변형되어 재현되고 있을 정도이다. 구보씨와 문학작품과의 無言의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알 수 없는 힘으로 그네들의 작품으로 끌어댄다. 시대와 상황을 달리하는 이들 작품을 하나하나 접하는 시간은 흥미롭고 지적인 탐험이 될 것만 같다....  

아! 본론을 빠뜨렸다. 내가 이해한 구보씨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 말이다. 좀 현학적으로 말하면 ’동시대인’이라 해야 할까? 시대에 들러붙어 사는 인간이 아니라, 시대의 어둠, 부러진 등뼈의 틈새를 인식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어쩜 파편화된 오늘의 사회에 통증을 느끼는 우리들 모두의 표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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