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7일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수전 손택’여사가 『타인의 고통』에서 지적하였듯이‘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잔악 행위가 철철 넘쳐흘러대는 뉴스와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무감각을 재촉’하고, 지나치게 자극 받은 현대인의 의식을 더 강렬하게 때리는 뭔가가 아니면 붕괴된 감수성을 깨울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TV등 방송매체는 보다 선정적이고 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혈안이 되어 급기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하여 실시간의 실제상황으로 시청자의 감각을 극도의 흥분으로 몰아넣는데 이르고 있다.

이 작품은 죽음이 오락가락하는 위기의 상황에 가둬놓고 생존을 향해 벌이는 인간들의 심리와 행동을 TV등 대중영상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그 상황에 비난과 열광의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 시청자들, 현대인의 도덕적 인식세계를 질타하는 작품 군(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작품으로‘아멜리 노통브’의『황산(Acide sulfurique)』이란 작품이 기억되는데, 사람들을 납치하여 인위적으로 폐쇄된 집단수용소라는 세트에 가두어 놓고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일상으로 대면케 하고 그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방송하여 시청자의 인기투표로 생사(生死)를 결정하는 사악한 미디어의 탐욕과 인간의 수치스런 심연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24시간 7일(24/7)』은 최후의 1인 이외에는 참여자 모두가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 극한의 생존게임에 처하게 된 12사람의 이타적 희생과 이기심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5제곱킬로미터의 폐쇄된 작은 섬에 628개의 카메라 감시망에 갇혀 사투의 생존게임을 벌이는 사람들의 24시간 리얼리티TV프로그램처럼 오직 이익추구 시스템으로서만 작동하는 방송계의 실상을 고발하고, 게임 참가자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 즉 공동 살인이라는 범죄행위에 참여하는 무수한 시청자들의 투표행위처럼 오늘의 관음증사회가 어느 정도의 도덕적 타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과학기술 지상의 망상에서부터, 폭로주의적 저널리즘의 천박함,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진실, 다수와 소수 선택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에 이르는 많은 물음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스릴러 문학이라 하여야겠지만,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문장의 지적밀도, 수려한 문장이 뿜어내는 문학성에서 완성도 높은 사회소설이라 하여야 할 정도이다. 더구나 방송국의 앵커, 기자, 쇼 진행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경력은 작품을 보다 사실적이고 역동적이게 느끼게 하며, 드라마적 요소가 폭 넓게 자리하고 있어 재미와 긴장감, 속도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구성을 하고 있다. 상금 200만 달러가 걸려있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을 표방하는 쇼프로그램에 각기의 사연을 가진 12명이 참가한다. 장소는 자메이카 인근의‘바사 섬’, 24시간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되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으로 진행자의 참가자 소개들이 진행되고 7주간의 게임이 시작되려는 찰나 진행자를 비롯한 방송 스탭 전원이 신체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가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공포의 혼란에 빠진 참가자들은‘컨트롤(Control: 통제)’이라는 컴퓨터의 명령을 받게 된다. 이들의 모든 행위는 작은 섬에 설치된 카메라들에 의해 빈틈없이 송출되고 외부의 어떤 전파도 섬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차단된다. 매일매일 시청자의 투표결과에 따라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살인게임으로 돌변한다. 방송진을 몰살시킨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12명의 참가자는 24시간만 유효한 백신을 얻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시청자가 지목한 최대득표자에게는 추방명령과 함께 백신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참가자 개별적으로 극한의 과제를 수행할 경우 획득할 수 있는 구슬상자 한 개당 시청자 득표수의 10퍼센트 감면율이 적용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생존 게임에서 첫 희생자가 나오고 죽음의 경계에선 이들은 사랑, 회개, 속죄 등을 이유로 지목된 이를 대신하여 백신을 건네주고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가하면 남의 것을 빼앗고 기만하며 극도의 이기심을 보이거나 죽음에 영혼을 포기하고 여성의 성적착취를 위해 야수로 돌변하는 야만의 본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마다 최후의 1인이 되어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그 살아야 하는 간절한 이유들에 도덕적 우선순위를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아니 개인의 생명을 담보로 삶의 순위를 책정할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하긴 한 건가?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휘젓게 한다.

한편 소설은 인정받지 못하는 사진기자‘터커’라는 인물과, 바사섬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질병과 인질이 되어버린 게임 참가자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기구와 참여자인 사회심리학자‘로릭’을 통해 국가비밀주의와 대중의 알 권리와의 대립, 사회적 지위라는 물질적, 계급적 편견이 야기한 사랑의 파괴에 대해 조명하게 한다. 로릭은 터커를 이용하여 정부의 행동을 은폐할 시간을 벌기위해 허위정보를 제공하지만, 조각들을 들여다보면서 전체를 꿰뚫는 데 익숙한 터커 기자는 바사섬에 벌어지는 살인게임의 진실에 접근한다.

‘근육퇴행위축증’을 앓고 있는 딸의 치료비를 위해 출전한‘다나 커스틴’과 전직 조종사인‘저스틴 루크’와의 죽음의 위기 속에 펼쳐지는 사랑의 숭고함은 인간 이타심으로 승화되어 보여 지고, 독창적이고 무시무시한 시험들로 가득 찬 고도로 정교한 함정들을 모면해가는 과정은 실로 땀으로 손을 흥건하게 적실정도이며, 인간 본성의 결함들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진실을 보도록 강요 될 때는 수치와 분노가 교차하는 착잡함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리얼리티 TV 쇼의 악몽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우리들“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높이 치켜들어준 셈”이라는 지적이나, 소설 속 사건이 의도하는 희생자는 누구인가? 라는 작중 내용에서, “국민 전체입니다.”라고 하듯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커다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후의 1인은 누구일까? 이 살인 시스템의‘콘트롤’, 통제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낯익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의 정교함과 스토리의 박진감, 다양한 삶과 죽음에 관한 도덕성의 질문들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기막힌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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