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노트북
제임스 A. 레바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자기 권익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착취의 만행이 그 잘난 이성으로 무장된 인간사회에서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무참함과 분노가 짐승처럼 마음을 어지럽힌다. 돈이라는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면서 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은 존재치 않는 세상이다. 인간에게서‘존엄성’이라는 단어는 수식적인 그럴듯한 의미만으로 사용되고, 정신의 숭고함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인 효율지상의 물신주의의 단면을 어린 소녀의 고귀한 영혼의 외침 속에서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아홉 살 어린 소녀가 애비의 손에 붙들려 천진난만한 불안과 호기심속에 대도시 뭄바이로 이끌려가는 여정부터 그 심산(心酸)함이 가슴을 억누른다. 자신을 포주에게 넘기고 돈뭉치를 건네받으며“기뻐하면서도 자신을 혐오하는 듯한 표정”의 아비를 바라보는 아이‘바툭’의 망연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포주의 손에 끌려가면서,“아빠, 날 데려가줘요, 제발.”하는 그 간절한 절규가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듯하다.

더러움이 켜켜이 쌓여만 가는 쇠창살이 쳐진 화장실만한 작은 방을“황금으로 만들어진 자궁”이라고, 그 속성을 버리지 않은 채 화려한 공간으로 상상하는 소녀의 삶을 견뎌내려는 안간힘에서 참았던 내 인내도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아동의 노동과 성을 착취하는 공공연한 장소가 되어버린 고아원의 수심(獸心)만 무성한 인간사회의 더러운 거래가 적나라하다. 창녀가 된 어린 아이들이 출산한 유아는 또 다른 생산물이 되어 거래되고 착취의 도구로 이용된다. 어디에도 이성으로서의 인간의 사유는 작동하지 않는다.

소설은 사창가에 팔려간 아홉 살,‘바툭’이 열다섯 소녀가 되기까지 6년간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의지이자 결연한 자존의 출구로서 쓰인 비밀 글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바툭은“뭄바이 커먼가(街)에서 몸을 파는 매춘부다.”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 소위‘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성적 향응)’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자신의 휴식시간을 조금 더 얻어 내는 지혜임을 깨달을 정도로 적응하고, 그래서“넌 그중 제일 맞잇는 케이크야”라고 포주에게 환대를 받는 창녀로 성장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삶의 가닥이 완전히 끊어진 듯한 상실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손님을 받고 난후 잠간의 휴식시간이면 숨겨둔 파란공책(Blue Notebook)에 이야기를 쓰며, 자신을 투영하는 유일한 즐거움이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쓰는 중간 중간에 손님을 받는 것이라고 내면의 질서를 승화시켜 나간다. 또한 고향 마을 강가에 나가 강물의 소리와 물위의 아른거리는 햇빛에 매혹 되곤 했던 시절의 기억은 세상에 홀로 있지 않다는 위로가 되 주었듯이, 험한 커먼가 역시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강물이라 위안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 소녀를 포위하고 있는 온통 사악하고 잔인한 환경을 버텨내기 위해선 반복되는 엄청난 감정들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대부호의 자식을 위한 노리개로 팔려가‘히타’라는 하녀에게 안겨 봇물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강물 내음이”, “내 고향 내음이” 났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열다섯 소녀에게서 그 북받치는 감정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통을 발견하게 된다. 부도덕과 정의를 논의할 공간이 없는 가진 자들의 파탄된 정신세계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은 물론 고통에 대한 공감이란 인식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착취, 학대, 폭력, 그리고 살해에 이르기까지 보호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삶이 다시금 인간사회의 추악한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깃덩어리를 달라고 애원하는 늙은 개 같은 표정”을 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이 소설을 외면치 않고 마지막 까지 읽어내는 것은 정말 힘겨운 작업이 된다. 비록 사랑에 대한 이해로 맺는 어린 소녀 바툭의“은빛 눈동자를 지닌 표범”이야기는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마지막의 간절함이 되어 울리지만, 세계의 어디에선가 신음하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환영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까지 잠재우지는 못한다. 우리 인간사회의 주변부에서 자행되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폭력의 주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세상에 경쟁적으로 몰입하는 바로 우리들 말이다. 아이들만이라도 제발 이러한 세계에서 구원해 낼 수 있는 세계, 그 아이들이 바로‘나’자신으로서 이해 될 수 있는 가치와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세계 말이다.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써내려간 어린 창녀의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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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3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이러한 종류의 수기, 소설, 보고서 등 모든 글을 끝까지 읽질 못하게 되었어요. 그 시기는 제가 아동후원을 시작하던 때와 맞아떨어지고, 아동성범죄 예방에 대해 공부를 하던 때와도 일치합니다.
너무 아픕니다. 이런 사실들.

필리아 2010-08-30 13:08   좋아요 0 | URL
네, 읽다가 덮기를 몇번씩 반복해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