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의 지붕
한수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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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도 아닌 죽은 영혼이나 사는 저승(冥界)의 지붕이라니 얄궂은 제목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형벌로 가득한 장소가 바로 어디겠는가? 그런 세상을 조망하는 장소로 지붕만큼 적절한 곳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플루토(Pluto; 명왕성)를 바로 차용하여 소설 배경이 되는 동네이름이‘명왕3동’임을 알고는 희죽 웃음이 나온다. 작가의 은유가 해학으로 왕창 버무려지겠구나 하는 재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순간이다.

필리핀에서 이주한 엄마를 둔 소년‘민수’가 話者이다. 생존을 위협받는 모자에게 날아온 취학통지서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의 위력으로 다가오고 이를 피해 찾아든 동네가 바로 명왕3동이니, 모자가 숨어살기에 적절한 허름한 동네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심심해서, 아니 무서워서 엄마가 일 나가면 지붕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자폐증의 어린 소년은 지붕위에서 9차원의 세계를 감지하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모아 듣게 해주는 청진기라는 30차원의 도구까지 두르게 해주어 전지적인 능력을 부여한다.

아이가 바라보고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세상의 권위를 흉내 낸 현대정육점, 삼성클리닉, 대우부동산, 두산이발소, 쌍용슈퍼, 그리고 이 속에 끼어있는 채플린비디오와 성신설비, 우포순댓국집과 태평양약국이 늘어선 코믹한 골목길의 표정에서 어설프고 소박한 사람들이 보인다. 느닷없이“환태평양 시대의 비전을 담은 공원을 건설할 계획”이라며 정부는 뜬금없는 이지역의 재개발계획을 가지고 밀고 들어온다. ‘이라크 해안봉쇄 작전을 벤치마킹한 작전’을 가지고서 말이다. 힘없는 서민들이 무슨 멸종시켜야할 악의적인 적대 세력인 냥.

소설은 바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생존의 터전을 떠나기까지, 이 권위의 두려운 위협을 잊기 위한 잠시 동안의 에피소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태평양 약국 김약사와 쌍둥이 오빠인 일명 삼촌이라 불리는 백수의 관계에서부터, 겨울잠을 자는 듯 첫눈이 내리면 설비점포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봄이 되어야 나타나는 녹두장군의‘별천지’, 이상(理想)의 마을을 찾아 헤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들, “술에 취하면 너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넘어 만물이 하나라는 경지에 다다른”술꾼인 남편 깔따구의 주먹질에 샌드백이 된 뚱보 순댓국집 아줌마의 사연,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좆만이’라 부르는 택시기가 용만이의 “인생은 엔조이”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청진기에 집음(集音)되어 애틋하고 간절한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갈수록 경쟁력을 상실하여 가족형 소기업이 되고 끝내는 사라져가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여성인 엄마‘데릴라’에 대한 약국‘삼촌’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은 서사의 한 축이 되어 사람들이 떠나 갈수록 을씨년스럽고 스산해지는 명왕3동의 유일한 행복의 화제가 된다. 한편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로 병행하여 “색색의 꽃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 아름다운 사람들, 함께 일하고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마을, 해달별 거르지 않고 뜨는...그런 마을”이라는 녹두장군이 들려주는 몇 백 년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마을의 이야기는 명왕3동 사람들의 삶과 겹쳐 기묘한 어울림을 낳는다. 지옥같은 현실계의 명왕3동과 “그러니께 그런 마을이 있는규?”하는 이상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만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우울하고 어두워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명랑하고 쾌활하기까지 할 정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전달되는 것은 다가올 알 수 없는 미지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러한 삶 속에서 조차 끊임없이 찾아드는 꿈과 이상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겁고 엄숙한 사실의 진술로서가 아니라 순박한 일상의 진실에 묻어나는 삶의 애환들이 청명한 목소리에 담겨 유쾌하게 들려지고, 훨훨 날아가는 지붕들과 삶의 때가 묻어있는 도구들이 멀리 멀리 아무런 고통도 없는‘그런 마을’에 도착할 것 만 같은 위로를 갖게 된다. 샴푸 향기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고, 푸른 멍의 상처를 녹이는 안티푸라민연고 같은 곳. 시종 피식 피식 묻어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재미 속에서도 작품의 진득한 연민의 의식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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