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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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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 전반의 사고를 포획하고 있는 3대 전환적 사고로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다윈을 꼽는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실함이 이미 입증된 것이라 단정 짓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을 해독하는 사고인 진화론에 대해 명백한 오류를 지닌 과학이라 지적함으로써 물질주의적 기반의 과학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 저술의 전체를 유유히 흐르는 핵심적 사고는‘이중 실재’, 즉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형성력의 존재를 인정해야한다는 논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작용을 단지 두뇌의 전기적 화학적 작용의 단순한 결과로 말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물질중심 과학의 오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론적인 내용만 얘기할 경우 마치 그럴듯한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플라톤과 기독교 이원론의 부활, 그리고 데카르트의 영혼설까지를 포함하여 기독교라는 제도종교의 복권이라는 의도가 있으며, 보다 궁극적인 의지는 진화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류미래를 위한 진정한 패러다임으로서‘지적 설계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사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과학적 접근처럼 보이지만, ‘신비’와 ‘영혼’이라는 단어의 위력을 설득키 위한 의사과학(擬似科學;pseudo)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들은 과학을 비판할 때 항상 신비주의와 영혼을 얘기하며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일관된 패턴을 사용한다.
또한 이 책이 아주 흥미로운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술 중 진화론에 입각한 시정(詩情)넘치는 과학을 이야기하는 『무지개를 풀며』에 대한 모방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특히 영국 시인‘존 키츠’의 동일한(물론 반대의 의미로서)인용에서부터 유전자와 뇌과학이라는 정확히 일치하는 소재를 이용하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저자의 광신적 의지에 실소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오류로 점철된 비과학적 이론이라 비판하고 폄훼하며 조롱하는 논리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왜 진화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증거, 즉 수 백 만년, 수 천 만년 전의 화석뼈가 발견되지 않느냐는 것이며, 또한 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고생물 화석의 경우 전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물이 무진장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다윈의 점진적 진화이론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인용하는 진화생물학자인‘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양상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변화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에서 입증하고 있음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화석뼈의 발견은 화학적,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면 거의 억지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같은 진화론의 공박을 지원하기위한 기반으로 게놈프로젝트와 두뇌지도가 사실상 실패한 과학으로 지금까지의 결과 이상의 과학적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단언을 내리고 있다.
저자의 이 두 과학적 시도가 지니는 한계와 과학의 오만에 대한 경고가 타당성 있는 지적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DNA의 서열들과 암호가 말하는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그 암호가 어떻게 인간의 개별 장기들을 만들고 영향을 주는지, 더구나 ‘조절 유전자’의 경우 파리, 쥐, 인간에게 완전히 동일함에도 다른 생물, 형태를 만들어내는 지를 설명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뇌의 영역별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자만하였지만 뇌의 활성화 상태는 오히려 뇌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시스템화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당혹스럽게 봐야 하는 결과거나, 동일한 사고와 판단의 상황에서 청년과 노인의 뇌 활동영역이 전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오히려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저작에 있어서 원형질적인 두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자극이 어떻게 엄청난 범위의 정신생활과 독특한 생각, 기억, 신념이라는 비물질적 형상화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의문과 이를 위한 반증들은 과학으로서 보다는 철학적 숙고를 요하는 과제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더해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 만능적 사고가 조성해 낸 오늘의 물화된 세상에 대한 폐해의 지적은 현대 과학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가설에서 출발하여 이를 입증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진일보된 이론으로 정착하며, 진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닌가?
한계와 불가능이라는 단언적 선언이나 말하지 못함을 이유로 과학을 부정하는 논리는 올바른 도리는 분명 아닐 것이다. 과학이 반성하여야 할 부분은 이 저작의 지적을 넘어 근대산업사회가 시작된 이래 작금의 시장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상품화처럼 사고의 대전환과 진정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는 수없이 지적되고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화론을 전면부정하고 지적설계론을 부르짖을 일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비(非)물질계에 대한 성찰, 그리고 신유전자 프로젝트들의 겸허한 되돌아봄을 생각케 하는 저술임에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배려하는 척하면서 멸시하는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 방법론을 구사하며, 진정한 과학에 동기를 부여해야 할 경이로운 감정 대신 그 사생아인‘신비주의’와‘초월성’과 손잡은 음흉한 엉터리 과학을 표방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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