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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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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이고 낯선, 게다가 추상적이기까지 해서 좀체 접근이 쉽지 않은 시(詩)를 잘 알려진 현대 철학자들이 구축해 놓은 개념을 통해 명쾌한 이해의 언어로 전달해주는 일종의 철학적 시평(詩評)이자, 또 한편은 시를 배경으로 하여 세상을 폭넓게 사유할 수 있도록 어렵게만 여겨지던 현대철학 사상을 수월하게 풀이하여 인간 본성과 사회를 통찰하는 안목을 제고시켜주기 위한 저자의 대중을 향한 배려이자 의지라 할 수도 있겠다.

21명의 시인들의 시와 해당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세계를 동일 수의 철학자들이 저마다 포착한 사유의 문법을 이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해석하고 있다. 즉 42명의 시인과 철학자가 만들어내는 일상적 세계의 동요(動搖)와 이성의 무능지대를 드러내는 인문학적 성찰의 만찬장이라 할 수 있다.
박노해, 기형도, 김남주 시인에서부터 유하, 박찬일, 김준태 시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들 시인들의 작품과 결합하여 네그리, 비트겐슈타인, 아렌트에서 벤야민, 호네트, 박동환이라는 걸출한 철학자들이 포획해 낸 세상 읽기의 향연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친숙한 세계가 아닌 원초적으로 낯선 세계를 표현하는 시를 난해한 철학으로 설명한다니 아예 도리질을 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이란, 바로 그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조성해 낸 개념이기에 읽어내지 못했던 그 세계를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래서 저자는 바로 이 철학의 새로운 개념들 하나마다 어느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상의 비유를 통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식견을 기초로 하여 낯선 언어들로 구성된 추상의 세계를 해독하게 해준다. 마치 친절한 개인교습을 받는 듯하다고 할 정도로 세심함과 독자와 밀착된 설명은 가히 이 저술의 본질이자 탁월한 장점이 된다.

인간이 지향하는 궁극적 꿈이란 무엇인가? 자유! 기쁨! 이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바로 이 자유와 기쁨의 희생이 강요되거나 억압하는 힘과 경쟁케 한다. 그것이 사랑이 되었든, 인간소외가 되었든, 정치적 박해가 되었든, 삶과 죽음의 본질이 되었든 말이다. 수록된 시(詩) 역시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탐색부터 삶의 절망, 인간자유를 구속하는 지배력의 저항, 인간의 성적 욕망, 자본주의의 속성, 타자성, 전체주의적 폭력, 물질주의의 한계성 등 원초적 본질들에 대한 다양한 구성을 하고 있어, 취향대로 골라 읽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다.

금지와 금기, 즉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욕망을 통해 에로티즘, 존경, 결혼을 통찰한 ‘바타이유’의 철학은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빠스’를 읽으면서 ‘옥탑위의 빤스’를 떠올리는 박정대 시인의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으로 연결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낀다”는 ‘레비나스’의 유아론을 넘어서 타자를 향한 철학으로 ‘원재훈’의 <은행나부 아래서 우산을 쓰고>가 설명되며,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라고 사랑의 통념을 바꿔버린 ‘바디우’의 시선은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타자의 자유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질투의 본질을 탐색하기도 한다.

또한 근면이라는 덕목에만 충실한 개를 빗댄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던” 인간의‘철저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지닌 악(惡)보다 흉악한 파멸성을 이야기하고, ‘최명란’의 <아우슈비츠 이후>라는 시를 통해서는‘아도르노’의『부정 변증법』의 핵심인‘동일성 사유’의 전체주의적 내적 논리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욕망의 폐해들이 인간성의 파괴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지는 ‘유하’의 <오징어>에서 발견되는 욕망의 집어등이나, ‘박찬일’의 <팔당대교 이야기>가 던지는 물화의 세계로 퇴보한 인간 상실의 처량한 현실로 대변되고 이들의 해석본인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나 ‘호네트’의 『물화-인정 이론적 탐구』는 매혹적인 읽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시와 철학적 사유가 어울려 구성된 이 저술은 어렵게만 여겨지던 현대철학을 대중적 시선의 읽기로 친근하게 다가서게 하고, 나아가 사유의 깊이를 심화시키기 위한 관련 저술들의 소개로 인문학적 감수성을 더욱 일깨운다. 결국 어렵고 낯선 두 인문학적 가지를 기쁨과 행복, 자유라는 인간 이상으로의 접근하는 통로이자 존재로서 쉽게 이해케 해주는 장(場)이 된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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