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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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대한 부, 명예, 영광,... 이것들의 의미는 진정 무엇일까? 천박한 미디어에 비치는 연예인의 치장을 따라하는 초라한 중생들,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재화에 대한 멈출 줄 모르는 물욕, 이기심에 의식이 차단된 권력의 지향, 그리고, 또 그리고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근접하려는 명예의 과시가 가져다주는 것은 궁극의 무엇일까?

    과시와 허영이 찬란하게 피어나는‘칸 영화제’는 그래서 너무도 적절한 무대가 된다. 러시아 정보통신그룹 총수인‘이고르’의 “어쩌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건 이 시대의 미친 양상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한 게 아닐까. 그 궁극의 체현인 칸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말이지.”하는 독백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연금술사』, 『오자히르』, 『포르토벨로의 마녀』등 지금까지‘코엘료’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구조와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이틀 남짓의 시간이 촘촘히 나뉘어져 사건이 진행되는 급박한 전개로 스릴러의 형식미를 한껏 돋우고 있다. 불나방처럼 화려함을 좇아 프랑스 남부도시 칸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욕망의 영원한 노예로 길들여져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그 허황의 꿈을 실현하려는 인간 군상들의 정수, 칸은 바로 그 자체이다.

    문득 대중문화, 특히 영상, 패션, 방송, 인터넷 등 보여지는(視覺) 산업의 권력화가 대중의 영혼을 치명적인 질병으로 내모는 것이 더 이상 새로운 발견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슈퍼클래스가 시중에 나오지도 않는 패션상품들을 선보이면, 너도나도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의상에 고가의 브랜드 가방을 끼고 다니는 그 추레한 모습으로 허영을 과시한다. 마치 자신이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근접하였다는 듯이. 이들 우매한 중생들을 바라보는 슈퍼클래스는 쾌재를 부르고, 더 많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쌓아간다. 불쌍한 인간들...

    이러한 인간 사회의 자기사유 상실의 한 단면으로“허영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속의 수피‘나스루딘’과 술탄의 터번에 관한 에피소드는 적나라하게 인간을 해부한다.

    백주대낮에 영화제의 중심거리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살인, 이 살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사랑을 위해 세상을 사라지게 하는 것, 한 명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이 소멸하는 것.

    온갖 시련을 통해 거대기업을 일궈내 억만장자가 된 ‘이고르’의 그칠줄 모르는 욕망의 광기를 참아내지 못하고 떠난 아내 ‘에바’를 향한 사랑의 복원, 용서의 전언이다.

    제2, 제3의 메시지를 위해 무작위적 연쇄살인이 이어지고, 틈틈이 탐정소설의 서사를 이용하여 살인자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를 관찰자로 슬며시 밀어낸다. 그리곤 수사관까지 지향하는 가치가 오직 자신의 명예, 영광에 맞추어져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영화배급업자에게 줄을 대려는 영화감독, 영화에의 캐스팅을 위해,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위해 우연이라는 불확실성을 기대하고 잠자리도 서슴지 않는 배우 지망생들, 모델들,... 제능력 이상의 영광을 얻으려 안달하는 무수한 인간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작가는 이들에게 결코 성취를 제공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 매체에 현혹되고 속아 선택하고 있을 뿐, 또한 욕망의 노예가 되면서까지 자신을 팔아버리는 오늘의 인간들에게 고뇌의 바다를 벗어나는 축복을 안겨 줄 뿐이다.

    적과 흑의 대비가 강렬하게 표지를 장식하는 이 두 권으로 구성된 소설을 손에 들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버렸는지 모르게 된다. 아마도 “하지만 승자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제목과 상치되는 마지막 문장이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삶의 본질을 상실한 현대인들, 욕망에 눈이 멀어 영원한 노예로 남게 될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열정도 사라지고 이기적 성취에만 몰두하는 손상된 영혼들, 미쳐버린 인간사회에 대한 혹독한 자기반성의 촉구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지적 폭력에 대해서 무신경한 무지한 대중들, 이 뒤틀린 사회구조와 부조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인류는 영원히 노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비드, 에바, 가브리엘라, 저비츠 와일드, 모린,...욕망이란 이름하에 명멸한 사람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삶, 주인으로서의 삶, 진정한 승자의 삶은‘사랑’으로 회귀한다. 오로지 승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그 부질없는 행동의 실체를 시각문화의 대중 지배라는 관점을 통해 감각적이고 적나라하게 들춰낸 수작이다.

    「영이 최후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 신(神)은 다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너는 사랑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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