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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위대한 악법 - 소크라테스, 사랑을 말하다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소크라테스는 사랑을 “인간 정신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신성한 비상(飛上)”이라 했던가? 세상에 널브러진 증오, 시기, 갈등, 편견, 차별, 외면, 기아, 죽음, 상실, 전쟁, 그리고 몰락이란 이 부정적 감성의 찌꺼기들이 나 개인, 가족, 지역사회, 인류의 평등과 공감, 공존의 삶을 여전히 해치고 있다.
“모든 영혼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법을 아는 사람”, 소크라테스의 ‘사랑’에 대한 신념과 의지, 실천적 행동을 기저로 한 철학카페, ‘소크라테스 카페’는 지구촌 모든 인류의 진정한 ‘아고라’가 되고, 견해와 경험, 관심이 다른 이들이 모여 타자들의 삶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터전이다. 이 저술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실천도량으로서 오늘의 세계에 요구되는 가치를 실천철학의 확장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에로스, 스토르게, 크세니아, 필리아,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에 이르는 사랑의 해석은 철학적 사유(思惟)가 우리들의 현실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스며들어 삶의 양식이 되며, 실현되는 것인가를 철학적 사유를 통한 그 근원의 고찰, 즉흥적이고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보통사람들의 스스럼없는 진지한 대화, 그리고 오늘의 세계로부터 조명하는 사랑의 의미를 성찰한다.
성적 에로티시즘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에로스(Eros)'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 이해를 창조성, 실험, 발견을 자극하고 고무하는 관능적 욕망 그 자체의 고귀함과 고결성을, “우리의 시야를 열어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 혹은 차원을 보여주는 그 무엇을 생성하는”아름 다운 지혜로 이끈다. 성적 욕망은 저열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자유롭게 저마다의 사유를 이야기하는 이웃들의 견해에서 “성적 열정을 창조적으로 표현하고 발산 할 수 있는 사회건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잇는 가장 아름다움 것은 지혜”라는 관념으로의 발전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성공의 닮음(semblance)만을 기약하는”현대인의 위험스런 삶의 추구에 대한 경종의 개념으로까지 확산시킨다.
성적열정이 적절하게 흐르지 못하고 삶의 중심에 머문다면 “문화 및 문명의 건설에 투신할 여력과 의욕을 잃게 되고 사회는 병들게 된다.”는 고대 아테네사회의 몰락을 통해 오늘 우리세계에 펼쳐지는 욕망의 왜곡을 경계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저술은 《향연》에서 찬란하게 빚어졌던 ‘에로스’의 관념을 오늘의 확장된 세상의 가치에 접목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듯이 가족에 대한 사랑(Storge), 이방인에 대한 사랑(Xenia), 친구에 대한 사랑(Philia), 헌신적인 사랑(Agape)이 관념론적 사랑론에 머물지 않고 도덕성, 인류애, 공동체의 사랑, 삶의 내면을 향해 외치는 본연의 목소리로서의 인류의 절대적 실천가치로서 연결하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 사라지면서 자기자신, 지역사회, 타인에 대한 사랑도 사라졌다.”는 가족사랑의 실천적 의미는 “혁명의 최대 동력은 사랑”이라는 ‘체 게바라’의 언어에서 힘을 받아 세상의 자비로움은 집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일깨운다. 또한 낯선 이들에 대한 사랑인 ‘크세니아’로부터는 아메리카 인디언인 ‘수’족의 “모든 인류는 인종을 불문하고 영혼의 정수(wakan tanka)를 이루는 일부”라는 믿음에서 이방인이란 진정 존재하는 개념인가고 묻는다.
종교의 갈등, 민족주의의 편협함, 이기적 자원전쟁, 계급간의 갈등이 어느때보다 첨예해진 오늘에서 ‘이타적 이기심’, 동정심 이전에 겸손함을 배우는 자세에서 크세니아의 정신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선진국에게 빈곤에 신음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돕기 위해 국민총생산의 0.7%를 할애하도록 요구하는 UN결의를 지키는 국가는 텐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4개국에 불과하고 세계경제대국인 미국은 고작 0.08%에 불과한 현실은 “배려는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상태”라는 독일철학자‘마르틴 하이데거’의 언어를 무색케 한다. 상처와 좌절에 신음하는 이웃에 내미는 연민과 동정심에 고통이 수반될 수는 있으나, 이는 개인의 자아와 사회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즉 이타적 이기심의 발휘를 필요로 하는 바로 사랑의 본원적 실행으로서의 의미를 확장한다.
인간은 왜 집단을 구성하고 살게 되었는가? “개인이 자신답게 살게 하는 것,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사회조직의 일차적 목표. 그것을 위해 공동체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곧 공감어린 애정 ‘팔리아’의 벗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지식과 기술과 가치의 전달을 나누고, “타자들의 삶을 배우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인간 체험을 들려주는” 더욱 밝고 희망찬 토대를 만들게 하는 유대가 될 것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영리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뒤처지는 저소득 계층 학생들은 막대한 국가 재원의 손실을 의미한다.”는 차갑고 어두운 곳, 세상의 시선에서 외면된 이웃과 주변에 눈을 돌리면 우리가 보태야 할 사랑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무진장임을 알게 된다. “의문을 통해 고찰하는 삶”,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온정을 갖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사랑 아니겠는가! 그리고 지속적으로 타자의 “가장 내밀한 소망과 욕구와 욕망을 알아내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쏟고서야” 비로소 우린 온전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세상에 흩뿌릴 수 있지 않을까? 아가페를 위하여... “의미 없는 고통이 있는 세상”일지라도 사랑은 인간정신의 가장 위대한 가치가 아닌가!
전 생애를 바쳐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지혜에 대한 사랑을 심화시키려 했던 사람, 운명을 향한 사랑을 알기에 운명을 창조했고 운명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했으며, 운명을 사랑했던 낭만주의자, 아르테(Arete;탁월성)와 명예와 연민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그래서 그 가치들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게 하였던 사람. 소크라테스의 사랑이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전범(典範)이 되는 것은 초록빛 초원과 맑은 물이 흐르는 평화의 대지 위를 뛰놀 우리들의 후손, 인류의 미래를 위한 정말의 가치이기 때문이리라. 읽고, 읽고 또 읽을 만 한 살아 숨 쉬는 진정한 윤리교과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