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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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좌절하고 받아들이면서 알게 되지,

그런데도 사람이란 또 끝까지 제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고.” -240쪽에서


나는 성숙(成熟)’이라는 단어를 이 소설을 통해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단지 몸과 마음이 자라나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수용하며 어떤 성장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게 마음에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는 것으로서의 어디에도 메인 데 없는 선선함, 자유로움으로 이행, 즉 잘 익음, 여무는 것 말이다.

 

스물한 살 딸 호은과 마흔 다섯 살 엄마 윤선의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삶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감에 따라 나는 이들에게서 온갖 삶의 곡절들을 거치며 그것을 자기만의 과실로 잘 영글게 한 레몬이 바로 작가가 전하고자한 삶의 태도로서 성숙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시어빠진 맛 속에 살짝 느껴지는 달콤함을 지닌 잘 익은 레몬, 그 성숙의 결실, 우스개 말이지만 통풍으로 고생했기에 나는 치료제로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이제 레몬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 278쪽에서

 

작가는 생이 시어빠진 레몬을 주지만,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큼한 레몬이야말로 바로 우리네 삶의 정체 그것이라 여겨진다. 소설은 그 레몬에서 착즙을 해서 내린 세속적 삶의 모습들, 생계를 위해 고생하고, 사람들과 만나며, 사랑하고, 집안을 닦고 쓸고, 빨래하고, 때론 좌절과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실의에 빠져 생의 의욕을 상실하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분투들이 바로 삶의 경건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호은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아빠는 5.18 민주화운동 세대다. 80년대를 살았던 청년, 역사 밖으로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던 존재지만, 세상의 가치는 변해간다.

 

고집스레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살기로 한 남자다. 가난하지만 간결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믿었지만 현실이라는 실재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없는 이사와 취업과 실직의 반복, 호은의 아빠는 가족의 복지와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결코 그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경찰에 쫓기다 피해 숨어들어간 문 열린 미술학원에서 마주했던 미술대 학생과 청년은 그렇게 사랑하고 호은을 낳았다.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닌 까닭에 두 사람은 세상의 변화라는 시간 속에서 함께 보았던 동질성이 무화(無化)되고 타인이 되어버렸다. 상실의 아픔이란 바로 이 세상의 허약함과 근거없는 변덕스러움이란 말일 게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 초년생인 호은에게 아빠는 재혼한 여자의 아이, 열다섯 살 승지를 떠맡기고는 이유도 대지 않고 사라진다. 이 난데없는 당혹스러움은 곧 엄마의 집으로 발길을 향하게 한다. 엄마 윤선의 난감함, 이 납득키 어려운 의외적 사건은 아빠의 행적을 찾는 세 여자의 동행으로 이어지고, 그 수소문의 여정에서 승지와 투병 끝에 사망한 승지 엄마, 아빠의 친구들을 통해 세 여자를 둘러쌌던 과거의 시간들, 그네들의 삶의 모습들을 비춘다. 그것은 저마다 파괴되면서 지킬 만큼 소중한 것이 있는 삶의 형상들이다. 이혼한 남편의 동선이 추적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의 확인 후, 윤선은 승지를 떠안는다.

 

윤선이 호은에게 들려주는 꿈의 이야기, 100년 동안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변주된 이야기는 마치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인식 속에서 돌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깨달음에 이른 어느 선승의 대오(大悟)처럼 보인다. 윤선은 호은에게 말한다. 세속적 조건에서 살기 위한 온갖 노력의 경건함, 자신의 꿈이 선택한 삶 속에서의 깨어있는 세속성, 존재하는 그 자체의 따름에서 오는 모든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말한다. 잠의 넝쿨을 스스로 칼날이 되어 백년의 잠을 깨우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 변형된 깨우침은 그녀가 승지를 받아들이고, 세상의 엄마로서, 그리고 여자의 여린 껍질 속 단단하게 빛나는 광채를 지닌 성숙한 인간의 변신을 보여준다.

 

이렇게 쓰다 보니, 사실 스물한 살 호은의 삶을 위한 두 어른들인 엄마 윤선과 아빠가 살아 온 그 시큼한 오랜 환상과 실재의 상호교환의 수용과 의지에 대한 가슴 뭉클한 사랑의 목소리들이었다는 이해에 이르게 된다. 오직 단 둘이 발사체가 되어 달을 향해 우주로 날아가는 연인들의 사랑이 지구로 귀환하며 각자 낙하산을 타고 따로 도착하며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진짜 아픈 상실에 대한 엄마의 우화적 이야기, 파괴되어야만 했던 이상적 세계의 믿음을 돌고 돌아 욕망이 멈추는 공존과 공유의 선 위에서 좋은 삶의 가능성을 찾아야 함을 역설하는 아빠의 말처럼 생이란 파괴 속에서 지킬만큼 소중한 것을 지니는 것임을. 또한 바로 거기엔 삶을 걸고 지켰더라면 아름다웠을 진실이 있음을.

 

나는 이 소설에서 만나리라 예상치 못했던 삶의 역사에 대한 오랜 사유로 농축된 진실의 목소리들을 발견한다. 자기만의 집, 그것은 가난의 막다른 골목에서 나가는 것이었고, 밤낮없이 일하게 하는 목적, 즉 생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줄곧 이 집에 대한 마음에 갇혀 살았던 기분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속에서만 갇혀 살았던 곳으로부터의 벗어남, 비로소 문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는 역설로서의 집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삶에 대한 모든 부정들이 걷혀 놓쳐버렸던 진실들, 무지와 오해 속에서 살아가던 그 꿈속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모습을 비로소 보게 하는 그런 집일 것이다.

 

사랑과 시절의 역사와 생의 비애와 인간관계의 곡절, 세상이 지닌 그 허약하고 변덕스러운 가치들 속에서 비록 좌절하고 비애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이 삶이고, 삶의 경건한 노력이며, 소중한 자기 의지의 확인임을 인식할 줄 아는 선일 것이다. 시큼한 생의 형태들이 아름답고 충만한 이야기에 담겨 사유가 풍성한 삶의 길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열다섯 살 승지가 쓰는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일기, 지금 내가 어떤 꼴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마 명료한 반영은 어쩌면 바로 이 소설이 발하는 생의 진실보기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작품을 모두 읽고나면 응어리졌던 그 무엇이 해소된 듯한 정화된 느낌이다. 그래 이 작품을 '인생소설'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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