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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ㅣ 트리플 28
김남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평점 :
수록된 세 편의 단편에서 ‘시시하다’라는 기분에 잠식된 인물들을 공히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의미는 아마 ‘너무 익숙하고 뻔해 하찮게 여겨지는 기분이어서 하고자 하는 것도 별 신통함도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여정에 무어 그리 신통방통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겠는가. 어쩌다, 아니면 예기치 않게 정말 대단하고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거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연속 아닌가? 그런데, 순간 스치는 생각이 내게 이러한 시시함의 느낌을 경계하라고 일깨운다. 그 익숙해서 보잘 것 없음의 이면에 속살거리는 무수한 함의, 삶의 진실들이 있음을.
표제작 「파주」에서 “일산 변방 논술학원에서 좆같은 맞춤법이나 알려주며 밥벌이하는” 화자 윤정이 “아이들의 평가하는 눈이 싫다”고 할 때, 현철이란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미워하는 거보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 너무 무서워 하다보면 그게 미워지는 거거든요.”라고, 어떤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시시껍절하게 되고 만다는 말일 것이다. 현철은 윤정과 함께 살고 있는 정호란 인물에 의해 군 생활 내내 “맨 날 뒈질 것 같은” 폭력과 괴롭힘을 당했던 인물이다. 현철은 정호에게 당한만큼 잔혹하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 반복된 고통의 기억이라는 익숙함과 3년이라는 시간 속에 하찮음, 시시함으로 묻어두려 했지만, 그 시시해지는 감정을 떨쳐내고 복수(?), 사죄로서의 보상을 요구한다.
이와 달리 가해자인 정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그게 언제 적이야.”라거나, “괴롭히는 축에도 못 끼었다.”고 말한다. 소설은 가해자의 기억과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진부한 또 하나의 주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호와 현철이란 인물들의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시선으로서 윤정이 느끼는 현철의 “시시해 보일만큼 긴 미움”에 대한 감응이다. 그래서 현철의 “비열하고 역겨워도 보상 받고 싶다는 말”을 윤정은 잘 헤아릴 수 있다. 정호는 자신이 현철에게 뭘 잘 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시시함 속에 하찮아진 것인데, 어쩌면 이 시시함이 함의하고 있는 오래시간의 축적, 익숙함이 가져온 둔감함에 묻혀버리는 생생한 미움의 감정을 망각한 까닭일 것이다. 화자 윤정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시시해서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변화없는 규칙적 단조로움이 가져온 익숙함에 매몰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항변의 목소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녀는 왜 정호를 떠나지 않을까? 시시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불감증 인간을. 내겐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두 번째 작품인 「그런 사람」의 주인공 ‘나’는 가벼워지기 위해 서울에서 3,870킬로 떨어진 후아힌의 락사수바 리조트에서 3개월 째 머물고 있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무언가 삶의 무게로 짐 지워지는 것을 떨어내려 한다는 것인데, 사실 그 떨어낼 대상이란 것에 대한 몇 가지 정황이 발설되어 추정될 수는 있지만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직장 상사인 유부남 K와의 관계가 가져온, 이를테면 “유부남을 꼬신 어디서 굴러 들어온지 모르는 애, 다 알면서도 만난 어리석은 애, 머리채를 잡고 가기에 딱 좋은.”과 같은 시선이 가져온 고통인지, 아니면 7년 전 문화센터 소설수업을 맡았을 당시 선배와의 어떤 부적절한 사건인지 불확실하다. 다만, 이들 모두가 화자인 ‘나’를 무겁게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7년 전, 소설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러나 이후 쓰기를 멈춘 채 일반 사무직원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K와의 관계가 가져온 상황으로부터 도피처럼 보이는 후아힌으로의 가벼움을 위한 떠남은 체류 3개월이 되던 어느 날 “기억 속 멀리에서 유영하다가 곧 사라져도 무방한” 수강생의 연락을 받는다. ‘나’는 가벼움에 방해가 되는 기억의 무거움으로 거부감을 갖지만 후아힌에 1개월째 체류하고 있다는 남자와의 마주침을 불가피하게 피하지 못한다. 그는 7년 전 소설수업을 하던 선생님, 더구나 배우고 싶었던, 아끼고자 했던 선생이 아님을, 변화된 인간을 보게 되고, 그녀를 도우려 한다. 그것이 순수한 보호의 심정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가벼움을 방해하는 남자의 불편함으로 ‘나’는 후아힌을 떠나 돌아온다. 그리고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병원의 도움을 받는다. 치료법인 모양인데 나비와 꽃을 색칠하는 것이 나를 고쳐주었다고 하며, “그런 시시한 생각을 자주했다. 아주 가볍게”라고, 삶을 무겁게 하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중요한 것을 놓쳤다. 제목인 ‘그런 사람’의 지칭된, 타인에게 인지된 변화된 범주로서의 인간, 그것의 인정이라는 것, 그대로의 수긍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소설 제목에 답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직시가 가벼움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화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 게다. “다 잊고 새로운 껍질로 갈음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를.”이라고. 변화된 자신, 바로 그 자체로서의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세 번째 작품 「보통의 경우」도 ‘보통’이라는 수식어처럼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극한 다수성, 바꿔 말하면 이 또한 ‘시시함’에 대한 연속된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케 한다. 방송사 외주 사무실에서 구성작가로 일하는 막내사원 ‘지수’는 선배인 희진 언니가 직장을 떠나 “환해서 눈이 멀 것 같은 곳, 토레스 델 파이네”로 떠날 때, 머리카락이 거의 모두 빠져 모자를 벗을 때 가발이 함께 벗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희진은 지수에게 말한다. 이건 “말하자면 비슷한 애들끼리의 결속 같은 거야”라고. 비밀은 비슷한 애들끼리만 가능한 거라고.
지수는 소위 짬밥이 쌓이지 않은 막내 작가이기에 협찬 코너 원고를 쓰거나 온갖 잡다한 일을 버텨내야 한다. 그녀는 스트레스와 수면부족, 음식섭취로 축약되는 탈모의 원인들로 인해 정수리와 두피 부분이 미치도록 가려워 진물이 날 정도로 긁어댄다. 그리곤 이 증상을 언니가 말한 “결속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또한 “긁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순간들이 (...) .매순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버텨내야 하는 고통을 말하기도 한다. 아직도 대학 등록금 대부금을 갚기에는 20개월 남짓 남았기에,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녀는 버텨내느라 그 보상으로 인한 것인지 초고도비만과 고도비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뚱뚱해진다. 보복, 음식고문으로써.
지수는 밉보이지 않기 위해 융통성이라는 것을 보이지만,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동료직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던 중 한 신입 남자 피디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생각한다. “나의 다음을 궁금해 할까, 아니, 누군가는 나를 조금 궁금해 할까. (...) 내 이유에 대해서”, 체념과 절망 사이,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그 익숙해지는 삶의 슬픔의 감정은 사실 꽤나 끈질긴 모양이다. 이윽고 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그녀는 자신도 하나의 독자적인 방송을 맡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제안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실제 참여자가 되어 체중 감량의 출연자가 되는 것이고, 이후 결과에 따라 메인 작가로 발탁되기를 기대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녀는 수락하고 직접 체중 감량의 실연자가 된다. 그녀의 유일한 대화 상대자가 되어주던 피디는 왜 그 작업을 수락했느냐고, 그냥 못한다고, 하기 싫다고 그러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한다.
촬영 구성안이라는 “허용된 말 속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숨겨 놓을 때만 작은 희열을 느꼈다.”며, 한 협찬코너의 원고에 “올 겨울은 어떨까요? 버티지 말고 나가 보세요.”라고 써 넣지만, 최종 방송분에는 ‘버티지 말고 나가 보세요’는 삭제되어버린다. 지수는 보통의 삶, 시시한 삶을 당분간 꾸려가기로 한 것일 게다. 시시함, 이 하찮고 보잘 것 없음의 단어에는 우리네 삶의 온갖 곡절이 숨어있는 듯하다. 익숙함이 가져오는 무감응이나 망각, 반면에 체념이나 그대로의 순응이 주는 안정감과 자기 보존의 의식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지혜가 버무려진 언어, 삶이 농축인 것만 같다. 왠지 시시하기 그지없는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은 평온을 느끼게 된다. 김남숙 작가의 앞선 소설집 『아이젠』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알고 싶은 또 한 사람의 작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