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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나탈리 레제 지음, 김예령 옮김 / 봄날의책 / 2024년 5월
평점 :
감상글을 쓰기에 앞서 이 책의 미덕을 먼저 말하여야 할 것 같다. 150여 쪽 남짓 간결하고 농축되어 써진 작품으로서 그 내용의 풍성함과 강렬함은 수천 쪽에 이르는 여느 대하소설을 단 번에 넘어서는 엄청난 사유가 집적된 글이라고 말이다. 작가는 정말이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 여인이 나타내려한 방식 그대로를 관찰하며, 하나의 주제로 돌진한다. 그럼으로써 그 어떤 본원적 비가시성을 우리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현재화 시킨다. 가히 압도적인 소설이다.
전시기획자, 출판물기록 연구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나탈리 레제’의 이 독특한 작품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밀한 프랑스 제 2 제정시대(1850년 전후)의 물질문명의 발흥과 새롭게 대두된 소비 시대를 관류하던 한 여인의 초상에 대한 에세이로 읽을 수 있는, 그런가하면 작품의 제목인 ‘전시((L'Exposition; 展示)’의 중의성((重義性, ambiguity)으로 이 어휘는 물론 작품 구조와 그 내부에서의 작용에까지 두루 둘 이상으로 해석되기를 요청하는 듯하다. 때문에 모호하고 불확정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도를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의 책장을 열면 “스스로를 방기하기, 아무것도 미리 계획하지 않기.(...) 흐릿하게 만들기.(...) 이동시키기,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모습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1)마티에르를 관찰하기,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대로,(...) 심지어 그 질서 속에서”라는 문단을 만나게 된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당혹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하고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되지만, 이내 이 문장이 곧 이 작품의 전개 양식을 안내하며, “작가를 덮쳐 혼란을 느끼게 하고 급기야 길을 잃고도 끈질기게 고집부리는 유령들을 천천히 게워내게 하는 주제“로 밀어 넣는 글쓰기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야기는 그래서 이리저리 주제가 이끄는 대로 마치 불가항력적 어떤 힘에 끌려가듯 기억과 기록(아카이브)들, 문학과 사진, 회화, 영화를 망라한 예술 작품들을 종횡하며 당초 박물관 소장품의 한 점을 모티프로 하여 선택된 소장품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테마 ‘폐허’와 관련해 의뢰된 기획전에서 시작되었던 화자의 감수성과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의 근저에 있던 것들을 깨워낸다.
작품 속 화자는 박물관에서 제안한 전시기획담당 학예원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만의 전시(Exposition)의 의미를 『프랑스어 보전 Tresor de la langue francaise』의 설명을 압축요약하여 정의하고 있는데, ”사물명을 주어로 하여 모종의 비밀스러운 유기를 배치하는 일“이라고 상기시키려 한다. 자, 이 전시기획의 한 소품 글을 닮은 듯한 이 소설은 바로 이것, 책의 첫 문단을 실천하는 글쓰기임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마티에르’, 그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이 이내 확인되는 데, 화자는 우연히 어느 지방도시의 작은 서점 나무 계단 꼭대기에 붙어있는 『스스로의 연출에 의한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의 카탈로그 표지 위 ”시선의 심술궂음에 소름끼치며, 이미지로 떠오른 그 여인의 난폭함에 깜짝 놀란“다.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혼란한 정신 상태에서 올라탄 노선버스에서 들려오는 소위 ”굴곡진 여성성의 여정에서 발이 걸려 비틀거리는 돌부리인 ‘딴 여자’“라는 한 인간의 특질을 무효화하는 이름의 불쾌감이 들려온다.
아버지로 하여금 엄마 곁을 떠나도록 하였던 여인, 딴 여자로 불렀던 합법적이지 않으며, 기능에만 결부된 여자, 증오의 대상이며 동시에 욕망케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병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 이야기가 분리되어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이라는 여인의 사나움과 깊이 없는 애수와 실패가 주는 불쾌감의 이미지가 ‘폐허’와 관련한 기획의 훌륭한 주제로 불쑥 덮쳐 옴을 느낀다. 형태의 소멸, 비극적 시간의 비수같은 의식에 대해서.
【<스케르초 디 폴리아Scherzo di Follia>로 명명된 사진, 1899년, 생을 마감한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인 피사체의 사진은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금세기 최고의 미녀 La Plus Belle Femme du siecle>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이 사진은 그녀를 상징하는 심볼이 되었다. 책 표지 사진은 이 사진의 일부이다.】
이제 소설은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 그녀가 살던 동시대인들 가운데 이 여인보다 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인물의 아카이브와 사진과 남겨진 소품들, 그리고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백작(1855~1921)의 주의깊고 면밀하게 수집 정리된 유언, 약력 기사들, 하다못해 재산 경매의 코멘트에 이르는 관계 자료들과 카스틸리오네의 사진을 찍었던 피에르 루이 피에르송과의 작업 방식과 환경, 그리고 장면들, 발자크, 에밀 졸라, 보들레르와 프루스트, 위스망스, 쥘 베른에서 트루먼 커포티, 이자벨 위폐르, 메릴린 먼로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영화와 사진 예술에 대한 비유적 인용이 더해져 그야말로 거대한 예술비평이 한 여인의 현전과 비가시성, 몸짓들과 부재의 수수께끼 같은 조합의 광야를 거닐게 한다.
‘비르지니아 올도이니 디 카스틸리오네’, 스스로의 미모에 대한 확신이 불어넣은 상상력 이외의 상상력은 갖고 있지 않은 나폴레옹 3세의 정부였던 귀족 여인, “그녀는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와 얼추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라는 지고의 미로 칭송되던 그녀는 500장이 넘는 당대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상을 비롯한 여러 포즈의 사진을 남겼다. 전시하고자하는 주제를 위해 화자는 모티프를 설정하는데, “처진 눈매, 그토록 지치고 불만에 차 보이는 얇은 입, 상(喪)을 치르는 듯한 모습, 이 여자의 슬픔은 소름이 끼친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슬픔이라니, 그야말로 진정한 자기의 괴멸이고, 내면의 와해이며, 침통이다.”라는 1857년에 찍은 <베일을 걷어 올린 초상>의 감상을 남긴다.
화자는 아마 이 초상사진에서 폐허를 읽었을 것이다. 이 폐허는 1995년 몇 겹의 종이막을 찢고 나오는 전위 예술가 무라카미 사부로의 몇 초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부연 설명되는데, 제 빈 구멍위로 천천히 늘어지는 찢긴 종이 자락이 바로 한 인간을 먹었다가 다시 뱉은 그 주제라는 것, 즉, 박물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같은 폐허, 마모되며 길을 트는 통과로서, 그 터진 구멍이라는 것이다. 이제 소설은 이 수많은 의미를 담은 터진 구멍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이 된다. ‘마모되며 길을 트는’ 이야기들.
‘비르지니아 올도이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력가문에서 1837년 3월 22일 출생한다. 그리고 1854년 1월 9일 16세에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이 된다. 13세 때 이미 자신만의 의상실과 농장 마차를 소유할 정도의 대귀족의 여식이었다. 이 여인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꾸밈노동에 시달리고 그 사태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자신 앞에선 모든 것이 굴복했으며, 완고하고 변덕스러움과 비탄으로 가득 찬 밉살스러운 인형” 그것이었을 테다. 하늘이 주는 지배와 고통, 그 경악과 미친 듯한 고독을 손에 쥔 여인,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은 나폴레옹과 동침으로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사진들은 이러한 여자가 처했던 상황 속에 숨겨진 내면의 연극을 드러낸다. 설혹 온통 거짓일지언정 역할의 정수가 내부로 충분히 침투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공연의 현실성을 스스로 믿을 수 있었던 여인의 실체를.
파리 상류층의 사교계는 이렇게 말한다.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은 완료형의 미인에 속했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간대에 속한 것 같지 않았다.”, “비할 데 없이 영롱한 눈, 진주같은 이를 내보이는 입, 용모의 우아함과 세련됨, 얼굴의 광채, 어쩌다 길을 잃어 우리의 세속적인 시대에 있게 된 고대의 대리석상.”, 《랭데팡당 벨주 L'Independant belge》紙는 “그녀는 우리 지역 사회의 미인들 사이에 불안을 심었다.(...) 부인들은 심히 당황했다.”고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절망적 곤혹을 전한다. 대중들은 이 고귀한 여인을 보기위해 좌석위에 올라서 완벽 그 자체인 여자를 향유했다,
더 멋진 발언도 있다. 모니 백작이라는 인물은 “그녀는 마치 구름에서 내려오는 여신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여자들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 자신의 우월성에 대단히 심취해 남을 업신여기고 거만한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우상숭배에 가까운 숭앙을 하고 있었다.” 그래, 미모와 상상 이상의 우아함을 향한 깊고 아낌없는 경탄 뒤에는 그 무심성에서 발산되는 거만함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자신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여자 나르키소스, 유연함도, 부드러움도 없는 성격, 아무런 자비심 없이 야심차고, 터무니없이 거만하다.“는 표현은 그녀가 마치 황후처럼 행동하는 데 심사가 뒤틀린 상류사회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바로 ‘딴 여자’라는 이름의 19세기식 반응이었을 것이다.
사실 화자의 시선 또한 이러한 여성성이란 것의 화신인 이미지에 거의 적대적 불쾌감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만으로 일관된 편협성을 유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진을 찍기위해 일과처럼 찾아가는 촬영소에서의 포즈와 그 연출에서 여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음각으로 새겨진 격동, 다시말해 흐느낌의 각인”을 읽어내기도 하고, “진실을 말하기 위한 최후의 트릭”, 그 사나우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발견한다. 아마도 전시기획자인 화자에게 이 사진이라는 가면 속 여인은 지속적으로 딴 여자로 불리는 그 기능적인 불쾌함의 투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의 「종교, 복식, 입관」이라는 온통 각종의 욕망이 담긴 유언의 글에서 냉소적으로 “물론 그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는 “욕망이야 관 속에 기꺼이 넣어줄 수 있다. 처치 곤란인데 잘 됐네.”라고 싸늘하게 한 대 갈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욕망 가득한 유언의 글과 달리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이 남긴 사후 요망 사항 목록 20가지는 더 이상 욕망되지 않는 굴욕에 휩싸여 세상과 등진 여인의 미련없는 세상에 대한 무심한 고통이 보인다. “십자가 없이, 사제 없이, 종교의식 없이, 꽃 없이, 전시 없이, 밤 샘 없이, 의사 없이....대사 없이, 사례금 없이, 상속인 없이, 동반인 없이, 장례식 없이, 부고 없이, 안내 자료 없이, 신문기사 없이”
높은 지능을 지녔던 이 여인은 자신의 전도를 정치에서 찾기를 욕망했지만 그녀에게 전달된 것은 자기 믿음으로부터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화자가 소개하는 1857년 5월, 《아르티스트 Aritiste》에 발표된 보들레르의 시, “나는 음산한 거울/ 그 속에서 메가이라는 제 모습을 노내!”라는 「저 자신의 사형 집행인」의 시구들은 묘하게 그녀가 처했던 상황 묘사처럼 보인다. 여인은 하스페치아의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도 화자는 그녀를 아름다움과 권력에 도취된 채 타인에게 바라보인다는 그 마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 향락, 즉 자기 반영의 주위를 돌고 도는 인물로 묘사한다. 프루스트의 게르망트 부인의 모델인 몽테스키우 백작의 사촌인 엘리자트 그레푈 백작 부인의 입을 빌어 “향락 가운데 자신이 모든 시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여인이 누리는 향락에 견줄 만한 것은 없으리라.”며, 자기에 주어지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는 개의치 않게 되는 절대적인 힘, 이 거대한 익명의 애무를 경험하고 맛보다 더는 촉발할 수 없게 된 존재의 삶을 상상해 본다.
여기서 엄마가 느껴야 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두려움과 외할머니의 딸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그녀의 교태와 절대적 지배력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어 흐른다. 엄마는 화자에게 비통이나 모욕, 협박, 배신에 얽힌 추억들을 얘기했다고 회상한다. 그럼에도 그런 일로 고통받을 필요가 없는 남자들은 외할머니에 대해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 다였음을 말한다. 화자는 색 바랜 엄마의 사진 한 장을 바라본다. 자기 엄마 곁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있는 어린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를 지지하며 사랑하고, 그토록 다정하고 자애로웠던 엄마이지만 그건 정말 수치스럽다고. “수치심은 마치 묘비”같은 말이라고 머리를 흔드는 것 같다.
화자는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 이 여인을 “자신을 찾으러 자신을 붙들고 가두기 위해서 생애 전체를 기꺼이 사진가 작업실에서 촬영으로 축소”된 인간으로 묘사한다. 경박함의 외피 아래로 멜랑콜리의 내부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고 그것에 붙들린 여인으로서. 인간의 초상을 찍은 인류 최초의 사진은 하나의 얼굴을 고정시킨 <익사자의 모습>이다. 이것은 당대 한 컷의 사진촬영을 위해 오랜 시간 고정된 포즈를 취해야 했던 그 고정성, 그 굳음의 예시이다.
화자는 한 장의 사진에서 폐위의 채비가 된 여인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굳어버린, 요컨대 죽음의 침상을 위한 대상임을 알아본다. 이제 더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화자는 폐허를 주제로 한 전시 재료를 찾기 위해 한 여인의 사진과 기록과 관련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녀는 그것들 속에서 비가시적인 것의 소실성 자체를 한데 모아 역으로 그 존재를 확고히 하는 탐색을 진행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는 왜 박물관의 소장품을 오브제로 삼지 않느냐는 제안측의 말처럼 폐허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거부된다. 이미 스러진 한 인물의 초상은 현전과 부재라는 폐허의 이미지에 진정 부합하는 것이라는 화자의 생각은 폐허 위에 솟은 문화유산 한 점을 통한 영광의 재현이라는 실리와 상충하는 것이다. 이제 화자는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며 교묘하게 빠져나가 주제를 따라가는 자기만의 질서를 이어나간다.
그것은 사적인 화자만의 전시다. 입센의 연극 『브란 Brand』에는 죽은 아이의 작은 옷가지를 펼쳐놓고 기억을 추억하는 여인이 있다. 그러나 집에 돌아 온 남편은 그 조그만 물건들을 처분할 것을 강요하고, 마침내 그 강요에 동의하지만 그녀는 죽은 이처럼 되고, 곧 그로 인해 죽는다. 화자가 인용한 이 연극은 결국 “그 어떤 것은 생의 한 기억이 아니라 생 그 자체, 생의 감지할 수 없는 박동임”을 제시하려는 듯하다.
이어서 1843년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메리 러셀 밋포드에게 쓴 글을 인용한다. “초상 사진들은, 비단 그것들이 지닌 유사성 뿐 아니라 이 오브제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연상과 근접감 때문에도 신성화된 듯 보인다.”며, “그도 그럴 것이 인물의 그림자 자체가 거기에 영원히 고정되고 마니까”라는 내용이다. 화자는 어린 엄마를 포함하여 넓적다리까지 물에 잠긴 등 돌린 세 소녀의 사진을 바라본다. 잠수하는 아이, 탐색하는 아이, 몽상하는 아이, 등 돌려 볼 수 없는 소녀의 시선, 미지의 불확정성이 기다리는 머나먼 저곳이 있음을 그 비가시적 의미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소설은 덮치고 사로잡아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거의 살 수 없게 몰아붙이는 주제들을 향해 이끌려갈 절박한 필요성을 소환한다. 이것은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이 생의 전부를 투사했던 초상 사진, 즉 정확히 제가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바를 공연하는 바로 그 사진, 저 자신을 전시하고 제 포즈 속에 지속하며 그럼으로써 제 반영으로 응고되려는 육체의 영속 안에서 포착되는 보이지 않는 시계판에 새겨진 엄숙한 시간을 찾는다. 화자가 마침내 발견한 단 하나의 마티에르는 시간이 해부되어 돌출된 교태스럽고 사치스러운 페티코트 위의 음산한 죽음의 생각이고, 이는 화자의 죽은 엄마에 대한 애틋함, 여성성이란 것의 교묘한 역전에 의해 고통받았던 삶에 대한 애도로 향하는 것 같다.
“구멍 앞에서 그녀는 다만 부재의 덩어리다. 사진들에서는 그 점이 보인다. 그 점만 보인다.” 부재의 덩어리인 구멍, 그 어둠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들은 본다. 거기에 영원히 고정된 존재의 그림자를, 사진 예술에 관한 소논문이며, 전시에 관한 에세이이고, 한 귀족 여인의 전기이며, 가족사인 엄마에 대한 애도로서의 사(私)소설이기도 하다. 오, 이 작품은 고전적 지위를 분명 확보할 걸작으로 살아남을 것 같다. 문학을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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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티에르: 표현된 대상 고유의 재질 그 자체 또는 재질감, 작품 자체 표면의 평활(平滑)함과 울퉁불퉁한 질감, 용법에 따라 창출한 표면 효과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