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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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敵産家屋)이 오늘 이 땅에 몇 채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식민지 조선에 지어진 일본인들의 집, 문자대로 원수인 적()의 재산인 집이라는 뜻을 담은 적대적 혐오의 표현이리라, 내 외조부가 맏딸인 어머니에게 사준 최초의 집이 바로 이 적산가옥이었는데, 소설 속 탐욕스런 일본 상인의 넓은 마당을 지닌 이층집과 달리 작은 단층집이었다. 내 어린 시절은 다다미방 세 개가 마루로 연결된 소박한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 백 년 넘어 흐른 내 기억 속 그 집이 지금도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 읽기는 이러한 낯익음에서 시작되었다.

 


작가 조예은은 천상 이야꾼이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피처럼 검붉은 단풍잎들관처럼 차분히 썩어가는 적산가옥의 방치된 정경은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마지막문장을 아쉬워하며 책장을 덮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소설은 식민지 조선을 살던 외증조모 박준영과 그녀의 외증손녀인 현운주의 이야기를 오가며 적산가옥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적 착취와 잔혹함, 그리고 타자의 상처와 생명에 대한 무심성의 실체를 드러낸다.

 

식민지 조선에 일본 전통양식의 주택을 건축하고, 약탈과 갈취로 채워진 재화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어울리지 않는 콘크리트 건물이 부조화를 이룬 붉은 담장 안의 집에 일본 무역상 가네모토는 아내 하나코와 외아들 유타카와 살고 있다. 적산가옥으로 상징되는 이 집은 조선인 토지의 약탈과 생산물과 노동력의 착취로 쌓아올린 제국주의적 탐욕의 과실일 것이다. 소설은 식민지 시대를 살던 여인 박준영의 소설과 일기, 그리고 그 적산가옥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들로 키워진 외증손녀인 운주의 현재를 오가며 부정하고 불의한 부의 축재를 위해 인간의 탐욕과 광증이 어디까지에 미치는가에 대한 망각된 기억을 환기케 한다.

 

병원장의 추천으로 입주하게 된 붉은 담장의 집, 준영은 입주 간호사가 되어 피비린내가 고여 있는 기괴한 집, 그녀가 간호를 담당하게 될 가네모토의 외아들 유타카의 방에는 해부되어 내부를 드러낸 채 방치된 물고기들과 자상(刺傷)으로 뒤덮인 적의 그득한 아이가 있다. 굳게 잠겨 음침한 기운이 서려있는 별채가 어둠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부조리하게 서 있다. 입주 간호사인 준영이 온 몸이 자상으로 가득한 유타카에 대한 초기의 경계심과 부정적 시선에서 점차 그 아이에 대한 연민과 이해의 감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사연이 흐른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반복되는 참혹한 자상을 치료하던 어느 날, 준영은 유타카로부터   아버지는 내가 죽일 거야.” 라는 확신에 찬 예언적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성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몰려들던 날, 유타카의 예언처럼 가네모토와 유타카는 화염에 싸여 배가 갈라진 채 별채에 죽어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간호장교가 된 준영은 헐값에 매물로 나온 이 적산가옥을 매입하여 그녀가 생명을 마감할 때 까지 어린 외종손녀 운주에 이르는 4대를 살아간다.

 

외증조모는 유언으로 이 집에서 1년을 살면 이후 처분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조건의 유산을 외증손녀 운주에게 남긴다. 말년에 하반신을 운신하지 못하는 그녀는 본채에서 떨어진 별채 바닥에서 마치 무언가를 들으려 귀를 밀착시킨 기이한 자세로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되었다. 일본 유학을 마친 운주는 할머니가 남긴 적산가옥을 개조해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함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기위해 입주한다. 운주는 꿈과 환상을 오가며 유령과 조우하고, 외증조모가 들려주던 유타카의 사연 속 준영이 되어 불길한 당시의 상황들과 흐릿하기만한 현재를 오간다, 운주는 매양 잠에 시달리고, 건강을 잃어간다.

 

아마 유령으로 출현하는 유타카의 영혼은 추악한 욕망에 착취되고 약탈된 타자의 몸인 식민지민의 몸이고, 약소국민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한 또 다른 형태의 야만적 갈취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은유일 것이다. 의붓아들에게 깊은 자상을 정기적으로 가하여 그의 예지력을 사업의 밑천으로 삼는 인물, 그래서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입주한 간호사였던 준영의 공범으로서의 죄의식에 대한 반성과 연민, 그 진심을 소통하던 유타카의 유령은 마치 책임을 완수하듯 운주에게 그 폭력의 광기를 마감토록 하는 듯하다.

 

붉게 솟구치며 활활 타오르는 적산가옥, 이 땅에 서려있는 그 광적 탐욕과 폭력의 흔적들이 이처럼 청산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불의와 부정과 약탈의 욕망들이 함께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깔끔할까. 약소국 여인들의 혼인 상대자를 알선하고 꾀어내 살해하고 보험금을 차지하는, 그 추악함은 여러 변형된 형태로 일제의 제국주의적 폭력을 닮아 있다. 타자에 대한 무공감과 재화의 추구를 위한 갖은 불의한 수단들이 21세기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준영은 아니 준영의 영혼인 운주는 별채의 바닥에서 들려오는 유타카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집은 약속이 끝나는 날, 불타 사라질 거야. (...) 네 증손녀도 나와같은 고통을 느낄 거고,  같은 걸 볼 거야.   이후는 그 아이의 선택에 달려있어.” -198

 

소설의 마지막에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운주에게 그녀가 마주한 현실 세계의 민낯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폭력의 세기에 대한 청산과 오늘의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토대를 생각게 한다. 여전히 일제 부역자들이 이 땅의 삶을 부패하게 하고 불의를 가짜 정의로 왜곡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 무리들의 죄과를 청산해야 할 터이다. 그 선택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있음을.  오랜 시간 피와 비명이 들려오는 적산 가옥의 음침한 이야기들이 과거와 현재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오가며 궁금증에 온통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 서사 속에 헤엄치다보면 어느새 둔중하게 직면한 현실을 각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이 작품의 묘미다. 그리고 그 재미 속에 역사와 현실의 실제성을 풍부하게 녹여내고 있다. 조예은표 호러는 더 이상 장르라는 범주에 묶여있는 그런 작품이 아니다. 직면한 현재를 이야기하는 가장 세련된 표현 작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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