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일괄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어리석은 기획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관된 지점이나 혹은 통일된 영역으로 집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변화무쌍한 인간사의 반영이기 때문일 테지요. 1920~30년대 재즈(Jazz)시대를 상징하는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과 단편소설 등 대표작들과 몇몇 에세이, 그리고 출판인, 작가들과의 서신, 아내 젤더와 딸 스코티에게 보내는 편지로 엮인 이 우아한 판본 『디 에센셜 F.스콧 피츠제럴드』은 그러함에도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친밀하게 다가가게 함으로써 분명 새로운 읽기, 무수한 지층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서 다른 지층의 발견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1896.9.24~1940.12.21]
무엇보다 미국문학의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는 『위대한 개츠비』를 수록된 에세이 「명사록과 그 이유」, 「피츠제럴드씨와 인터뷰」를 비롯하여, 이 작품의 퇴고와 출판의 과정을 같이했던 스크리브너스의 수석 편집자인 ‘맥스웰 퍼킨스’와 주고받은 편지는 익히 알려진 독해와 다른 새로운 층위를 통한 읽기의 가능성을 시사(示唆)합니다. 퍼킨스는 스콧 제럴드에게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 좋은” 작품이라고 작가를 격려하며 시작되는 편지에서 소설에서 개츠비 이상의 비중을 지닌 화자인 ‘닉 캐러웨이’를 “방관자에 가까운”서술 화자로 설정함으로써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한 것을 칭찬합니다. 이 소설에서 “인간 조건의 이질성을 강렬하게 느낄 수”있게 된 것은 바로 이 설정 때문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사실 제 독서의 관점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요, 저는 오히려 개츠비는 화자인 닉의 정신사(精神史)적 성장의 기록으로 읽었다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개츠비와 데이지, 톰 뷰캐넌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세계에 대한 믿음의 변화, 인간사에 대한 깨달음을 위한 닉의 조연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데이지의 바람둥이 남편 톰의 부도덕한 불륜 관계를 위해 지나다닐 때, “인간사를 내려다보는 무표정한 모습”의 에클버그 안과의사의 커다란 광고판은 소설이 지향하는 주제와 어울려 기막힌 예술적 장치가 되어 인간들의 행위를 목격합니다.
소설 말미에 닉이 개츠비의 삶에 대해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하는 말은 현실감이 없으면서 물질적 흥청거림이 휩쓸던 세계를 멀찍하게 떨어져서 바라봄으로써 알아차리지 못했던 인간 삶의 진실에 대한 발설로 다가옵니다. 아마 이 판본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작품에 새로운 절단면을 통해 읽어본다면 아주 색다른 감상을 맛보는 기회가 되어 주리라 생각됩니다.
“유리그릇을 두 팔로 안은 채 절망의 소리를 부르짖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땅 아래로...”
- 단편 「컷글라스 그릇」中에서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 또한 피츠 제럴드의 인간사에 대한 관심이라는 주제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컷글라스 그릇」의 주인공인 ‘이블린 파이퍼’의 삶과 그녀의 결혼 선물로 주방 선반을 장식하는 당시 중산층의 과시적 물질로 유행하던 컷글라스의 운명이 은유적으로 결합함으로써 그 욕망의 퇴락과 끔찍한 파괴로 이어지는 결말은 시시껄렁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꽤나 강렬한 전율을, 깊은 인상이 각인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비롯한 「리츠 호텔만한 다아아몬드」 등 꽤 알려진 단편 작품들이 이 판본을 더욱 알차게 만들어줍니다. 독서 애호가들의 한동안의 즐거움을 담지(擔持)할 구성입니다.
수록된 각기 다섯 편의 에세이와 서신들 중에서 「재즈 시대의 메아리」는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제공함과 더불어 에세이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감각을 느끼게 해줍니다. 모든 것이 낭만적 장밋빛으로 보이던 지나가버린 젊은 시절을 되돌아 볼 때, 그 시절만큼 강렬했던 적이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음에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감정,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숙성함의 시큰거림이 느껴집니다. 출판사에서 되돌아 온 122개의 거절 쪽지들이 붙어있는 냉장고, 30달러를 받고 단편 소설 한 편을 팔던 소설가가 드디어 장편 『낙원의 이쪽』 출간 연락 소식을 받고 , 어느덧 이러한 일들이 모두 어떻게 일어났는지 의아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는 얄궂은 제목의 에세이 「명사록과 그 이유」에서 피츠 제럴드는 이렇게 맺습니다. “이게 전부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작가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간절히 쫓는 ‘문학적 도둑’이라고 공언하는 한 작가의 진솔한 세계를 거닐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기 성찰에 철저했던, 그럼에도 “저는 사춘기 에고티즘의 다양한 바다에서 수영해왔다.”며 겸허와 경험의 노력에 헌신했음을 자부하는 긍지의 작가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젊음과 사랑, 그리고 광활한 인간사에 대한 향수를 느낄 때 피츠제럴드를 꺼내 읽어질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이 다채로운 구성의 판본은 그 유용을 밝힐 것이라 생각됩니다. 뜨거웠던 계절이 전락하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입니다. 피츠제럴드를 읽는 계절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