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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인생이란 “좁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그림자,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는 서툰 배우, 소음과 분노로 가득찬 백치의 이야기”라고 읆조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주인공 맥베스의 이 독백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내일이라는 오지 않은 미래를 반복하며 시작한다. 이 차용된 무한 반복 음절의 제목과 함께 배와 인간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파도를 그린 호쿠사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생애지만 끊임없이 두들겨대는 거친 풍파라는 통과의례를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 생이라는 의미일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의 한 쪽 다리가 산산조각나 거듭되는 수술로 입원 중인 소년은 병원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곳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게임에 몰입하고, 언니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 무료하게 대기 중이어야 하는 어린 소녀는 소년의 입을 연다. 소년 샘과 소녀 세이디는 게임이라는 “단일 현상에 함께 반응하며 같은 세상 속에 있음을 확실하게” 느낀다.
그러나 이 우정은 세이디의 봉사활동을 증빙하는 시간기록지로 인해 단절된다. 샘은 세이디와 함께한 시간이 우정이 아니라 어린 환자를 돌봤다는 봉사에 불과했음에 분노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어디 그렇게 무 자르듯 잘라지던가. 샘은 수학경시대회 등 먼발치에서 세이디를 바라보곤 하듯, 그의 마음속을 떠돈다. 세월은 흐르고 하버드 수학과에 진학한 샘은 어느 날 인파로 들끓는 지하철에서 세이디를 발견한다. 샘은 용기를 내어 세이디를 부른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때 샘은 어린시절 둘 만의 문장을 더해 세이디를 소리쳐 부른다. 그녀는 뒤 돌아보고 미소 짓는다. 이 스치듯 짧은 만남에서 샘은 세이디가 수업과정에서 준비하던 게임 프로그램을 받는다. 네 생각을 들려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그로부터 멀어진다. 점점 작아지는 옛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는 샘의 시선이 느껴진다. 게임 명 <솔루션>, 게임을 실행하곤 천재의 작품임을 친구 마크스와 함께 가능성을 본다.
샘은 세이디에게 <솔루션>을 완성된 게임 프로그램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이치고>라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강력한 게임을 발표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후일 모교의 강단에 선 세이디는 한 수강생으로부터 <솔루션>에서 <이치고>로 실력이 훌쩍 도약하게 된 이유의 물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이기심과 원한과 불안으로 똘똘 뭉”쳐 독기를 지녔기에 가능했음을 되돌아보듯이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와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발현이었음을 떠올린다.
게임 제작의 장소를 내주었던 마크스와 게임개발의 주축인 세이디와 샘은 ‘언페어(unfair) 게임’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게임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어쩌면 이 회사명의 설정에 세 사람이 각자 자신들의 관념으로부터 나왔다고 여기듯, 인물들의 믿음이자 감성이며 이상의 한 자락의 표현처럼 보인다. 『템페스트』의 한 구절처럼 공정함으로부터이기도 하며, 어린시절 불만의 표현인 불공정에 대한 시정의 희망일수도 있고, 게임이야말로 인생보다 공평한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회사명이 그네들 각자 인생의 커다란 축을 상징한다면 지나치게 직관적이기만 한 것일까?
소설은 이렇게 게임과 인생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게임의 축은 게임 개발과 관련한 기획, 디자인, 엔진개발, 마케팅 등 게임제작 산업에서 펼쳐지는 섬세한 과정 속에서 전개되는 갈등과 협력의 생생한 실체를 보여준다. “인생이란 피할 수 없는 윤리적 타협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세이디 할머니의 조언처럼, 이들은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 중재와 불가피한 봉합 등으로 위기를 넘어서곤 한다. 그러다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이해불능과 타협불가능의 지점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게임의 세계, 지긋지긋한 갈등과 이별, 건널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른 오해, 그리고 상실 너머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된 곳으로, 바로 그것을 창조하는 지대, 생의 위로와 위안이 되는 곳으로 향한다.
패혈증에 이를 정도로 악화된 조각난 뼈를 간신히 이어붙인 다리로 개발 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해 대중 앞에 서야만 했던 샘, 프로그램 개발의 기술적 중심이라 생각하는 세이디는 샘이 자신의 명성을 가로챈다고, 자신을 이용하는 이기적 인물이라 곡해하고 증오에 휩싸인다. 샘은 이러한 세이디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와 함께 게임을 만들어내는 일이 삶의 유일한 기쁨일 뿐이다. 샘은 자신의 사랑을 말하지 못한다. 끝내 절단해야만 했던 다리, 환지통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많은 고통의 날들에도 불구하고, 혹여 이러한 상태가 자신이 사랑하는 세이디에게 부담과 거북함이 될까 결코 연인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정말 인생은 단지 서툰 배우의 소음과 분노에 찬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수히 겪어내야만 하는 상실과 남겨진 자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또 다시 내일을 말할 수 있기까지의 그 통증들이 내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게임의 세계는 이 서툰 배우들의 삶 너머의 신뢰와 사랑이 실현되는 고유의 공간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나는 이러한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넘나들며 내 운명을 토닥거리지 못한다.
왠지 서로 다른 사랑을 말하는 것만 같은 샘과 세이디를 보는 것, 그들이 공항에서 주고받는 사랑해라는 언어가 내게는 결코 상대에게 다른 울림이 될 것 같은 영원한 작별의 소리로 들려온다. 정말 지극히 고통스러운 사랑의 이야기이며, 가능성 넘실대는 게임 이야기이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간들의 아린 이야기이다. 무한한 부활,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없는 내겐 맺을 수 있는 결말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프로그래머의 시선에 가닿지 않는다. 다만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같은 현상에 반응 할 수 있는 게임 속 다르달로스와 에밀리가 되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익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거닌 느낌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 또한 내일을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