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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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이탈리어를 알지 못하는 나는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시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시적 은유와 마법적 시행(詩行)은 커녕 시적 질서가 신적 질서에 걸맞게 쓰였다는 운율과 각운, 리듬이 주는 다양성에 결코 감응하지 못하고, 그 뉘앙스를 포함한 언어의 내적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우주의 위대한 드라마(141)"라 칭송하는 인류의 걸작을 마치 산문을 읽듯이 아무 맛도 없는 그 번역된 문장의 문자 뜻을 헤아리는, 단지 하나의 지식 쌓기 경험에 머무르는 터무니없는 독서에 머무는 데 그치기 일쑤였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문학 비평사()에서 한 획을 그은 미메시스에 앞서 집필된 이 독창적 연구서를 읽게 된 까닭이다.

 

시인 '단테'의 연구서인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은 총 6장으로 책의 앞 2개장은 미메시스(모방)의 철학적, 문학사적 관점의 변화에서 부터 논리적 구조, 윤리적, 정치적 상황에 이르는 시인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었는지 단테 초기 시작(詩作)신생(La Vita Nuova)을 중심으로 신곡에 앞선 선행적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나머지 4 개장은 신곡의 주제, 구조, 등장인물들의 재현 방식과 리얼리티를 통한 시적 비전의 설명을 통해 작품의 문학적 숭고함을 논의한다.

 

신곡을 흥미를 잃지 않으며, 작가가 형상화하려한 의도의 작은 부분이라도 가능한 알아차리는 읽기가 되는데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인 만큼 현상과 이데아를 오가는 미메시스(모방) 이론의 격렬한 본질 규명의 장황함은 건너뛰고, 단테 시에 드러나게 된 리얼리티가 중세 교회의 진리와 현상의 통합이라는 전례 속에서 재현 예술의 당위성을 회복했다는 것 정도로 그쳐야 할 것 같다.(이하 하단 참조) 100곡의 칸토로 구성된 신곡이 어떤 문학적 연원 속에서 자라났는지, 당대 시의 논리적 구조나 주제들, 그 문학적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단테의 초기 시작(詩作)에 대한 세심한 논의가 훨씬 주목을 끈다.

 

단테는 '스틸 누오보(stil nuovo;새로운 스타일)' 그룹으로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과 함께 코르젠틸레(corgentile; 온유한 마음)라는 종교적 색채 짙은 일종의 귀족적 비밀결사 같은 분위기에서 그의 초기 시작 활동을 한 모양이다. 이렇다 할 문화적 기반이 없던 당대 이탈리아의 문학은 사회적 정신적 엘리트라는 선민의식을 지닌 시인들에 의해 고상한 삶의 신비로서 사랑을 얘기하던 '프로방살' 시의 전통을 받아들인 신비주의적, 종교적 특징의 독립적 예술 운동이랄 수 있다.

 

스틸 누오보의 본질적 주제는 사랑(amore)이다. 이 사랑은 소위 하느님의 지혜를 알게 해주는 매개 작용이며, 신앙, 지성, 내적 부활을 부여하는 힘이고, 제한적인 존재에게만 부여되는 영적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단테는 창시자인 '귀니첼리'나 주요 시인인 '구이도 카발칸티' 보다 시의 암시적 힘과 가락, 시에 내재된 풍성한 목소리에서 단연 발군의 존재였음을 시의 비교를 통하여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일한 돈호법의 사용에 있어서도 귀니첼리는 어조나 모방했지 시인의 영감이 발하는 주문(呪文)적 효과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았던 시인은 단테가 유일했다는 것이다.

 

 


심리 상태를 표현하려는 추상적 수사법이 아닌 독자에게 마법을 걸려는 강력한 시적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지옥1곡에 "그럼 당신이 바로 그 베르길리우스...", 라든가, 천국33124행의 ", 영원한 빛이여"처럼 긴급한 명령과 부드러운 애원, 고뇌에 찬 기도와 자신감에 찬 호소 등 시의 구체적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내는 당대 문학의 새로운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신곡은 자신이 환기하고자 하는 리얼한 상황의 극단적 구체성 속으로 독자들이 뛰어들게 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신곡을 읽으며 시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감응해야하는 가를 시사한다. 이들 이미지는 아주 확정적이고 독특한 상황의 중심에 서서 발언할 때이며, 밝게 빛나고 생생하며 힘을 소망하면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이는 단테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비전을 정확히 표현하겠다는 욕망(105)"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현장감과 열정적 느낌을 독자는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곡은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의 철학(스콜라 철학)을 단테 자신의 시에 일치시키려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토미스트(토마스 아퀴나스 주의)는 직관주의 배척과 합리성 중시의 냉엄한 철학이다. 여기에 스틸 누오보의 감각적 신비주의의 시를 결합시켜 예리한 합리성이 지닌 이성적 한계를 구체적 움직임을 가진 인간의 비합리적 영감과 결합시켜 통합과 질서의 세계를 성취해냈다는 것이다.

 

신곡의 독창성은 단테 자신이 알고 체험했던 세속적 역사적 세상을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저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들의 현세적 캐릭터를 잃지 않도록 하여 강렬함의 유지와 궁극적 운명의 일치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신곡을 읽다보면 '신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어떻게 고통이라는 감각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기독교 교리 위배의 의심을 갖게 된다. 아마 성 토마스의 철학도 이 점을 골칫거리로 여겼던 모양이다. 육체에서 벗어난 망자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 때까지 어떤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가?

 

단테는 형식의 존재는 물질의 존재와 동일하다는 토미스트 철학을 차용하여 영혼의 합성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논리 하에 핵심적이고 민감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그림자 신체'를 부여했다. 현세의 행위와 고통과 일치하는 저승의 영혼들이 지닌 감각의 구체성이 실현됨으로써 현세적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한편 신곡의 저승관은' 베르길리우스'아이네이아스6권이 핵심적 아이디어와 시적 진실을 낳게 하였음을 지적한다.

 

지옥과 연옥의 분류법, 징벌과 미덕의 분류가 얼마나 면밀하고 교리에 부합하도록 설정, 묘사되고 있는지와 더불어 단테가 고안한 징벌의 시적 판타지는 윤리의 원천과 그 개념을 파악토록 한다. 특히 관심을 끄는 지옥의 분류법에서 폭력보다 더 낮은 등급의 지옥인 제 8원과 9원의 죄목이다. 즉 속이는 자들을 최악의 죄악으로 분류하는 것인데, 8원에는 사기꾼, 위선자, 아첨꾼, 문서 위조자들의 장소이다. 오늘 우리네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이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는 주요 악질적 범죄와 연결됨을 깨닫게 된다. 더우기 가장 낮은 지옥의 등급인 제 9원이 배신, 신뢰의 유대관계를 꺠뜨린 자들에게 배치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게 다가온다. 바로 지금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현실이기에 이 기독교적 윤리의 틀은 정치적 인간에서 배신행위가 얼마나 심중한 해악인지를 생각케 한다.

 

신곡은 환상적 고딕세계의 연출을 통해 내세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인간 이성의 작품이다. 상상의 정밀성과 명료성, 지적 복잡성을 강력한 정서의 시공간 묘사해 내 현세의 사건들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인간 삶에 대한 장대한 비전의 웅변이다. 인간 생애의 우발적이고 특수한 세부 사항들로부터 운명의 총합을 알려주는 휴먼드라마라 할 것이다. 이 중세의 세계관이 21세기 인간에게 유의미한 증언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이러한 연유이지 않겠는가? 아우어바흐가 추적한 단테 문학에 대한 이 치열하고 꼼꼼한 연구서는 다시금 신곡의 세계로 독자의 시선을 유혹한다.

 

 


 

참조: 미메시스 인간관 (에리히 아우어바흐) 에 대한 요약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그의 주저 미메시스와 같이 호메로스의 모방으로부터 미메시스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미메시스란 현실의 관찰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사전(a priori;선험적)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외형이 아닌 인물의 본성과 본질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물에 대한 관념이 확정되면 굳이 일부러 애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묘사는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플라톤은 경험의 세계란 진실과 존재 자체인 이데아를 기만적으로 복사한 것에 불과하며, 예술 작품이란 그 복사된 현실 세계의 대상을 다시금 열등하게 복사한 등급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것이라며 미메시스 비판 이론을 국가10권에서 펼치기도 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상 속에 스스로 실현되며", 이를 "형상이 질료 속으로 들어간다"고 파악하기도 했다.

 

예술가의 영혼 속에 들어있는 형상이 예술 작품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초월적 세계에서 지상의 세계로 미메시스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본질에 대한 참여를 현실세계로 끌고 옴에 따라 무질서와 혼란, 우연의 사건으로 점철된 인간 세계의 리얼리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에서 부정되는 형국이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세계로 회복시킨 것이 중세 기독교 철학이 지닌 인간의 형상을 한 신에 대한 이해이다. 신곡은 이러한 신인 철학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를 토대로 한 인간의 실재적 외양, 즉 사전(事前)관념에 내재된 전인(全人)적 미메시스의 반영이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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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0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찜이요

필리아 2022-02-04 17:31   좋아요 1 | URL
신곡을 읽고 이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듯합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