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 강렬했지만 스러진 존재의 희미하지만 영원한 온기
손홍규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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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 老子,도덕경,七十三章

 

 

나는 이 소설을 허구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었다. 설혹 그것이 꿈의 기억이고 중음신(中陰身)의 유령이 들려주는 이야기일지언정. 역사 속 인물이 꿈꾸었던 세상, 그것을 좌절시켜 온 파렴치한들의 세상이 여기 있다.

 

반민중(反民衆)집단의 뿌리 깊은 탐욕과 몰염치, 기만성은 오늘에도 여전히 이 땅을 지배하는 한 축으로 작동하며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방해되는 그 어떤 상황의 전개에도 발악적인 혼돈으로 맞서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중대한 4개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바로 기득권의 항구화에 저항하는 민중을 살해하는 권력에 의해 벌어진 참담함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죽음에서 세월호의 어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줌도 안 되는 지배권력이 농민, 노동자 등 민중의 분노를 향해 드러낸 특권과 무책임과 무례와 오만이 범벅된 잔혹함의 역사이다.

 

동학혁명으로 부패한 탐관오리들과 봉건제의 모든 악폐를 척결하고 무고한 농민에게 평등한 인간의 삶을 주려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을 기다리던 옥사의 어느 날이며, 양반과 지주, 친일 부역자들에의해 핍박받던 민중의 절망과 분노가 만들어 낸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권력에 의한 처형의 몇일이며, 특권과 우월의식에 잠겨있는 검찰 집단의 개혁에 앙심을 품은 정치 검사들과 수구 기득권 정치집단 및 조선, SBS등 언론기득권이 결탁해 망신주기와 조롱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내몬 몇일이며, 가난한 시민이 아이 하나 낳기 힘든 사회조건에서 정성과 사랑으로 양육한 아이가 무고하게 수장된 아련하고 아득하기만한 기록이다.

 




역사적 상황이 한 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2021년 오늘에도 친일 부역자의 떨거지들이 정치권력이 된 정치 검찰 집단을 옹호하며 정치공작 운운하고, 여전히 그악스럽게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며, 반민족, 반민주를 위해 민족지사들을 암살하고 오직 권력과 부의 축재에 혈안이 되었던 모리배의 후손이 패거리를 이루고 민중의 원()을 호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사람답게 살기위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몸을 일으킨 사람들을, 그걸 보아버렸는데 어찌 본 적없는 것처럼 굴 수 있단 말인가."  -267

 

이제 불온한 반민중 기득권 집단의 패악질을 분간할 줄 알게 된 민중은 쥐죽은 듯 있을 수만은 없다. 동학혁명에 참여 했다고, 의병에 동조했다고 노륙당하던 전봉준이 살던 시대가 아니며, 반민족 행위자를 두둔하던 이승만과 한민당의 친일 독재세력이 민중을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승만의 탐욕스런 권력욕이 외치던 빨갱이 타령은 바로 지금에도 수구정당의 무리들로부터 여전히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동학 농민군의 접주들을 효수하여 저자거리에 내걸던 그 악의를 전봉준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목도 전국방방곡곡에 내걸려 민중의 정신이 일깨워지기를 갈구했다. "작은 복을 지어 마침내 사형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나(150)"라며 옥중(獄中) 청년 '김해원'에게 권력의 회유를 거절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변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 짜내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던 일제하의 지주와 친일 부역자 등 반민족적 모리배의 작태가 잉태한 공산주의자의 출현은 이 땅의 아픔이다.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정치 검찰은 적의를 품은 채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여느 잡범 취급하며 수구 언론을 이용하여 심문 기록을 흘리며 모욕적 언론플레이를 하고, CCTV를 통한 중수부장의 치밀한 통제 하에 민중을 농락했다. 이 천박하고 사욕에 가득한 집단의 공작 정치 버릇은 2021년 지금까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 평검사와의 회의 후 "천박한 교양과 특권의식, 무례함과 오만으로 그득한 그들은 기득권 포기 생각이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니 작금의 현실에서 이 언급의 긴급성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중음신이 되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전직 대통령의 그 날의 정경을 말하는 해원의 시선을 좇다보면 그 쓸쓸함의 기록들이 분노가 되어 되살아나기도 한다. 간악함과 탐욕과 파렴치와 기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이런 세상에 부모의 사랑으로 키워진 소녀가 이유도 모른 채 검푸른 물결에 내동댕이쳐진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망각한다. 민중, 시민의 생명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개,돼지 정도로 아는 수구집단의 망령됨이 끝없이 지속되는 이유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순박하고 어리석기만한 우리네에게 부정의에 생을 달리하여야만 했던,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의 온기를 옹색하게나마 쬐는 시간이 된다. 이 좌절된 꿈들, 실패, 그리고 또 실패. 그러나 혁명이란 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촛불혁명의 민의는 지금도 아주 작지만 전진하고 있을 게다. 반동의 힘을 물리치는 오랜 시간의 중단 없는 투쟁을 계속하여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언어로 기술된 소설적 기억을 현실의 역사로 읽는 누를 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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