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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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은 시인이구나. 한 점 티끌에서 바스락 소리내는 새싹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금잔화 심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흩날리는 먼지 한 톨, 그저 내리는 빗방울,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아니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닌 기운에서조차 따스함, 속내를 살필 수 있는 사랑을 품고 있다.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 작은 신이 되는 날에서

 

그런데 우주먼지인 ''들을 인정치 못하는 무수한 아무개들은 마치 특별한 존재나 되는양 거드름을 피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지 못한 존재는 끝없이 아무를 쫓는다. 영속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환영을 실재라 믿는 우매함이란..., 시인은 그래서 반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식탁과 보이는 식탁과 보여지고 싶은 식탁 사이

품위 있게 드러내기의 기술 등급에 관하여

관음과 노출 사이 수많은 가면을 가진 신체에 관하여

곁에 있는 것 같지만 곁을 내줄 수 없는 곁에 관하여

비교가 천형인 네트에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노력에 관하여

-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3 ; 아무렇지 않은 아무의 반성들에서

 

사랑을 아는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티끌인걸 알게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긴다고, 그리고 서로를 알아챈 티끌들은 그 알아챔의 근사한 사건을 축복한다. 이 티끌들에게 일어나는 우연한 만남은 "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천문의 즐거움에서)"을 만들어낸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을 생각나게 한다. 수직으로 낙하하던 원자의 무한히 작은 편의에 의한 마주침의 유발, 즉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란 구절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는 시야에서 증발되어비리고 말것이라는 지적이리라. 대체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겠는가!

 

그렇기에 시인은 '오늘은 없는 날'을 꿈꾸는지 모르겠다. "말많고 현란한 매체들, 돈이든 권력이든 세력 불리는 일에 중독된 사람들, (...) 조용히, 더 조용히 오늘은 없는 날(오늘은 없는 날에서)"이라고 부른다.


 



150년전 1871년은 프랑스 내전이 있었던 해이다. 60일간의 시민들의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졌던 짧은 파리코뮌의 시대가 있었다. "일체의 억압과 지배가 종결된 자유로운 공동체 (철학 VS 실천, 강신주 , 31, 오월의 봄 )"였다. 시인은 시(), 지구 평의회가 만들어진다면에서 "만약 그럴 수 있다면"이라며 포문을 열고,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라고 회의적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자본교에 장악당한지 불과 이백년 만에 멸망의 시간을 카운트 중"인 것을 알거나 모르거나. 사랑 깊은 사람,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이들의 실천에 기댈 수 밖에.

 

아주 신랄한 시도 있다. 민주주 의 꽃이 선거? 정말 그런가? 투표 후 인증 숏을 찍는 것이 교양이라면 시인은 사절한다. 이것이 민주시민의 교양이라면 거부한다. 차악과 최악의 사이를 되풀이하는 결국 최악의 놀이, 정당 만들어 국고 보조금 챙겨가는 꽃패놀이, 시인은 "들판의 정치가 시작될 때" 꽃에게 투표할 거라고. 그럼에도 시인은 서로 얼싸안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될 수 있다고.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에서

 

나의 로도스는 여기도 거기도 아니고 '저기'있다고 말한다. 삶이 우리를 춤추게 하는 곳, 그런 곳을 향한 실천, 사랑의 울림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인의 맹렬한 사랑이 세상을 뒤덮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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