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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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Esse)에는 아홉 개의 챕터, 82편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은 나무와 숲이라는 수필이다. 아마 일군의 나무들에 에워싸인 채 나 홀로 우뚝 서있는 숲속 빈터의 나무를 말하기 위해, 어쩌면 자신의 삶을 이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숲을 견디지 못한다.” 고 쓴다. 개체주의적이고 고독하고 에고이스트였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두 개의 챕터, 몸과 재산 1, 몸과 재산 2계절과 성자들 1과 함께 이 에세이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챕터에 해당한다. 그 어느 챕터보다 입담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프랑스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가식을 싹 갈아엎어 버린 노인의 육화된 지식의 산물, 오랜 세월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축적한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난 글들로 짜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무릎에서 머리털, 격세유전으로 이어지는 몸과 재산 1챕터의 글들은 물 흐르듯 유연한 문장 속에서 실물로서의 몸의 부분을 신화와 예술과 종교와 철학적 담론으로 이끌며 소박한 단상을 풀어놓는 솜씨는 아주 그만이다.

 

무릎은 신체의 구동축으로서 노력과 탄력과 충동이 발원하는 핵심 관절 부위다.”

- P 63

 


그래서 무릎은 인간을 복속시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제니플렉시옹(genuflexion)’, 예배와 복종의 표시로서 무릎 꿇기에서부터, 가장 빈번히 장식적으로 상처받는 기관으로서의 피의 역사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글의 마지막은 경박스러움으로 맺는다. 해마다 제기되는 디자이너들의 핵심적 문제: 여자들의 옷을 무릎위로 끌어 올릴 것인가 무릎 아래로 끌어 내릴 것인가”, 능글맞은 노인네의 해학이라니...,

 

소금과 설탕은 무미건조한 물질의 속성이고 조미료는 우유성(偶有性)’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우유성들, 즉 희귀하고 값이 비싸지만 무용한 부()로 

이루어져 . 문명은 필요성이고 문화는 사치다.” - P 96

 


무용하지만 그 장식적이고 쾌락적 즐거움에 바쳐지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닐는지...

어쨌든 이 발칙하며 전복적인 '미셸 투르니에 ' 의 단상을 반쯤은 우스갯소리로 따라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이런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이 세계를 나는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가, 그저 익숙한 습관화된 보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말로 애를 써 본 적이 있는 것인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았던 것들이 포함하고 있는 다른 세계와 시선 또한 있음을.

 

이를테면 이런 질문부터 가능할 것 같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면 밤이 되는 것인가? 하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은 항상 시계 방향으로 돌아 내려 나가는 것인가?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해보면, 진지한 일이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쪽의 전유물인가? (아이슬란드의 1월과 6월에는 자정에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적도에 있는 가봉은 남북반구에 걸쳐있다. 북반구에 있는 개수대는 시계방향으로 남반구에 있는 화장실의 변기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흐른다/외려 종속 또는 소수자, 약자, 피지배자의 전유물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의 복식을 보라!)

 

또는 이런 종류의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마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L' Amant)15살 주인공 소녀가 뒤라스 자신의 자전적 분신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15년 일찍 나타난 것은 아닌가? 그리고 '빛을 지고 다니는 자'라는 천사 루시퍼(Lucifer)가 왜 '암흑의 왕자', 사탄이 되었는지, 동일한 햇볕아래 피부를 노출했는데 누구는 우아한 그을림이고 누구는 시커멓게 탔다고 하는 것인지? (소설 연인(L' Amant)에 대한 기존 주류의 해석이 무너져 내린다.)


 

"이 동화(백설공주의 반면 거울)가 예시해 주는 악성전이는 가장 거룩한 책들과 가장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은 다행스럽게 전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 내게는 그 어떤 찌푸린 얼굴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 P 310 에서


자신의 관념세계 중 하나인 '악성변이(惡性變異, inversion maligne)', 즉 선악의 극단적인 양면적 변화의 잠재태를 얘기하는 투르니에의 세상보기 시선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를 생각게 된다. 때론 동화와 신화 속 인물을 빌리고, 걸출한 문호들의 소설과 시를 차용하며 멋지게 오래된 우리네 관습적 관점을 전복시키며 그 밑바닥과 뒷면을 드러내게 한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 시선이 아니라 빛나는 찬미의 긍정으로. 이러하니 그의 문장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세계의 공고한 몽매함을 돌파하려는 자의 시선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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