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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ㅣ 서정시학 시인선 14
이건청 지음 / 서정시학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시인은 되고 싶은 게 많다.
무당벌레 26
은어 18
노고지리 15
소금 13
정암사 수마노탑 풍경 55
“당신들은 말로 뜻을 전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라고 한다. 사람이 된 원숭이인 나는 당신들의 말에 늘 치 명적인 독이 묻어 있는 걸 보고 놀란다. 당신들의 말에는 청산가리가 섞여 있다. 날이 서 있다. 불신과 허장성세로 부풀어 있다. 철조망을 자르고 호시탐탐, 몰려드는 구호와 함성 속에서 흔히 최루탄이 터진다. 인간 폭탄이 된 사람이 보턴을 누르고, 적들의 찢긴 시신이 널부러진다. 타격이 참혹할수록 당신들의 말은 열광한다. 승전의 희열에 넘친다.
그러나 짐승들의 말은 늘 그냥 풀밭이다. 이슬에 젖은 패랭이꽃 위로 뭉게구름이 뜨고 미풍이 스친다.” 52
자연을 사랑하니 인간이 싫은 건 당연. 인간사 비판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건청 시의 특질은 아래와 같이, 평이한 언어이다. 누군가는 편해서 좋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시답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냥 편지여도 좋을 시.
편지
도시를 떠나 산촌으로 집을 옮긴 지 만 6년이 되었습니다. 집을 지으며 옮겨 심은 나무들이 제법 튼실합니다. 삽이며 곡괭이에 다쳤던 아픈 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든 모양입니다.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다는 나무와 풀의 소임을 제대로 해내고 있습니다.
바람 부는 비탈에 심어진 나무들 중, 봄이 와도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둥치가 말라버린 ’배롱나무‘ 밑동, 겨우 살아남은 뿌리가 5월이나 6월도 지내고 나서, 죽은 둥치를 들치고 여린 싹을 밀어 올립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냥, 산비탈 어디나 무연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며, 풀이며, 거기 깃들인 딱정벌레까지 힘든 적응을 거치고 나서야 해와 달과 구름과 바람을 만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얼굴들 모두가 환난과 좌절을 딛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치장을 버리고 나니 맨살의 풍경들이 새로 보입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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