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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에 관한 책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대개 영화에 대해 너무 잘 아시는 전공자들이 쓴 글이라 부감이니 미장센이니 누벨 어쩌구 해서 기가 죽기 십상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한 책 중 기억나는 것이 김용택 시인이 쓴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한 권이나 있을까. 같은 촌놈이라 부담 없어서.
그런데, 이 책 제목은 훌륭한 저자가 영화를 보고 분석한 것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영화를 보라"였다. 그래 뭐 어떤 영화를 보라는 건지. 오, 최근에 개봉해서 소위 대박이 난 영화들이 아닌가. 거의 봤는 걸. 이것은 "출발 비디오 여행" 아닌가. 한 마디로 오징어 질겅질겅 씹어 마시며 뒹굴거리며 봐도 되는 영화 소개.
그런데, 다음 날이면 남는 것 없는, 거나한 술자리 같은 이런 흥행작에서도 뭔 얘기가 나오나 보다. 19세기 시조에서 푸코와 열하일기를 넘나드는 저자답구나. 지나치기 마련이고, 익숙해서 심드렁한 것에서 날카롭게 무언가를 찾아 무감한 머리에 번쩍이는 깨달음을 던져 준다. 아니 그 장면에서 이런 것을 볼 수가 있었어? 흠, 이런 괘씸한 의도가 숨어 있었군 ...
과연 그런가 "천년학" 포함 일곱 편의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사족. "서편제"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웠던 장면. 벌판에서 세 사람이 즐거이 부르던 그 민요는 밀양아리랑이 아니라 진도아리랑이다. "아라리가 났네 에흐에가 아니고" 유봉이 동호를 막 갈구던 그 노래. 아마 저자가 다음 편 이야기인 "밀양"을 염두에 두고 우리에게 미리 암시를 준 것일까. 아, 실수마저 교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