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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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장이 있어 보이는 열두세 살의 향복이 어느 날 예순의 상전에게 ‘강간‘을 당한다. 상전의 부인은 친정 괴산에 머물고 있을 때인데 여비들이 일체가 되어 이 ‘변괴’를 보고한다. 이후 부인은 거의 매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망신 주는데 식사하러 내려갔다가 이문건은 아내의 구박에 되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스스로 민망했는지 자기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단지 근심과 걱정을 잠시라도 잊고자 무릎 위에 앉히고 놀다가 희롱이 지나쳐 무람없는 지경까지 간 것이지 정말로 간奸하려고 그랬겠는가? 아내의 투기가 너무 심하다.” 여색이냐 투기냐, 사족 부부의 리그전에 피해자 향복의 자리는 없다. 마님에게 머리채 잡히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가?”

이문건의 삶은 자기가 남긴 일기에 이토록 고스란하다. 양반이라는 족속들.

여러 남자들과 간통했다고 매장당한 유감동 얘기의 결말.

“도덕이 없으면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굴던 권력자들의 실천 도덕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사건은 조선의 지배 이념인 도덕을 누가 가장 우습게 알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라져버린 감동과 달리,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요직으로 복귀하여 나라를 이끌었다는 그들의 발자취에서 익숙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감상인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고, 마주쳤으니 소리가 나는 것인데, 여자만 벌 받고 사라진다. 아무 일 없듯이 다른 성의 양반놈들은 멀쩡히 고개 들고 산다.
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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