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조선 핏빛 4대 사화 3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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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조선이 개국한 초기에 조정에는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고 학문을 연구하는 일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그러한 가운데 선비들 사이에 여러 가지 사상과 고향 등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파벌이 생기고, 그러한 파벌들은 때로는 서로 통하여 협력하는 것도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이를 네파로 구분하면 훈구파, 절의파, 사림파, 청담파 등이다. 특히 연산군 때부터 명종 때까지 네 차례의 사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신진 사류들이 훈신과 척신들로부터 받은 정치적 탄압을 말하고 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말미암은 갑자사화가 일어난 지 2년 뒤 중종반정으로 끝이 나고, 중종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고 두 차례의 사화로 희생된 사람들을 신원하고, 명망있는 신진 사림파를 등용하였다. 중종의 후원을 받은 신진 사류는 성리학에 의거한 이상 정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중종으로 하여금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배를 멀리할 것을 역설한다. 그러나 오직 도학사상만을 강조하여, 훈구파를 소인으로 지목하고 철저히 배척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급진정책을 시행하는 등 지나친 이상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에 신진 사류들과의 알력과 반목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정면 도전을 받은 훈구파는 홍경주의 딸이 중종의 후궁인 것을 이용하여, 조광조 등을 조정에서 몰아낼 궁리를 한 끝에, 조광조가 반역할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상계를 중종에게 올림으로, 그렇지 않아도 조광조 등 신진 사류들의 도학적 언동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중종은 조광조 일파를 척결하는데,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가서 사사되고, 김정, 기준, 한충, 김식 등은 귀양가다가 사형 또는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을 기묘사화라고 하며, 이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묘명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왜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것을 모두가 틀렸다고 여기며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을까?

오늘날의 정치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자신의 정당에서 결정한 것에는 무조건 따라야 하고, 자신이 속한 정당의 견해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타협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정치가 싸움으로 끝나고, 파행을 거듭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성리학, 지나친 이상주의가 결국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중신들을 배척하고 그들과의 반목이 결국은 조선의 4대 사화와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오늘날의 국회에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조선시대의 백성이나. 오늘날의 국민 모두가 한결 같이 바라는 것은 국정이 안정되고 국민들은 지도자를 신뢰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정당만을 위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묘사화를 비롯한 4대 사화를 읽으면서 과거 조선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어떻게 정치해야 하며,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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