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대로 가면 돼 일단 떠나라 - 나 홀로 내 맘대로 세계여행
김별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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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외여행이라면 으레 패키지여행을 뜻했다. 불과 30여년 전 일이다. 그때는 세계화 시대에 맞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너도나도 해외여행이 꿈이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서 정보도 부족하고 언어 문제로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마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패키지 여행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됐다. 독자도 90년대 중반에 첫 해외여행을 갔었다. 유럽이었다. 처음 간 일이고, 지금처럼 해외여행 경험자마저 없으니 마땅히 계획을 세우긱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들 선호하는 패키지 여행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을 정도다. 이때의 경험은 '빨리빨리'의 습관을 여전히 해외에서도 계속했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렵 여러 나라를 한 번 여행에 묶으려다보니 도시서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 외에는 해가 있을 시간에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다른 경험을 개인적으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관광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할 정도로 급박하게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적지 않은 여행비에 처음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될수록 많은 곳을 들러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이 우선 순위에 두었다. 여행사도 모객을 위해 그렇게 계획을 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여행 문화가 바뀌어도 엄청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고 한다. 영어라는 거대한 장벽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웬만한 여행 고수가 아니면 장기 자유여행 스케줄 짜기가 만만치 않고 인터넷 등에서의 정보 수집도 아무래도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뒤질 터이니 아예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는 원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젊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언어도 되고 정보 수집도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란 강력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두려움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책 『일단 떠나라』의 저자 김별은 촘촘하게 스케줄을 짜지도 않고, 철저한 준비도 없이 첫 번째 목적지만 정한 채 항공권부터 끊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장기 자유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환갑이 다 된 나이인 데다 여성이라니 조금 속된 표현으로 '무모한 여행' 아닌가 싶다. 장기 여행을 갈 경우 언어는 물론 체력, 경비, 두려움이 있을 텐데 '마음대로 청춘' 흉내를 내다니 책을 읽기 앞서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다. 유일하게 목적지를 정하고 간 곳이 처음 출발지인 다합이었는데 다합으로 간 이유도 남다르다. 물가 싸고 한국인 많은 그곳에서 적응기를 갖기 위함이었다. 20대 젊은이들조차 이런 방식의 여행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더 많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는 점을 저자의 무모한 여행은 보여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느긋하게 풍경과 사람을 보고, 지루하면 언제든지 떠나는 ‘내 맘대로 여행’이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아, 이런 여행도 가능하구나’ ‘예습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걱정일랑 접어두고 일단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힘들면 '놀멍쉬멍' 천천히 가면 된다. 그래도 두려움이 앞선다면 이 책의 부록 ‘어설프지만 따라해보면 여행이 엄청 쉬워지는 8가지 팁’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행을 떠날 용기가 불끈 솟아오를 것 같은 저자의 서비스 부록이다.

 


 

장기 여행자보험 하나 들고 촘촘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며 건강하게 잘 다녀왔다고 말한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버킷리스트 첫 번째 자리했던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었기에 떠났고, 무리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하듯 매일매일 1만 보 이상 걸으며 내 몸에 맞게 즐긴 덕분이다. “어떤 매력적인 목적지가 나를 끌어당긴 게 아니라 떠날 때 되었기에 떠나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를 움직였다”는 저자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얘기한다.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떠나보는 것도 새출발 인생의 멋진 한 장면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데인 셔우드를 인용한다. 셔우드는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이란 시 속에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를 가장 먼저 꼽았다. 혼자 가면 전부를 보고, 둘이 가면 절반을 보고, 셋이 가면 더 적게 보고 온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혼자 가면 외롭고 힘들 것 같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보다 시간의 밀도가 높다. 풍경을 봐도 더 몰입해서 보고, 음식을 먹을 때도 먹는 음식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고 응수한다. 무엇보다 혼자서 여행 계획을 짜고 실행하다 보면 여행 기술이 빠른 속도로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혼자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부족함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성공적이고 멋지며 폼 나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대신한다. '내 눈에 안경이요, 내 발에 맞는 신발'처럼 하면 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목적과 이유가 다를 수 있으니 어차피 여행의 정석이나 모범답안은 없을 터, 가장 좋은 여행은 자신에게 맞는 여행일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뭐든 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실수나 한계를 받아들이고 편하게 가다 보면 어느새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21일간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 투어를 한 덕분에 편안하게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기 첫 해외여행이라면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여행 기간 중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를 한 바퀴 돌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항에서 출발해 되돌아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왔다. 유럽 여행의 대부분 지중해 연안 도시를 돌았다는 이야기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더 절실하게 느끼는 가장 큰 수확은 '바다'가 도시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굳이 대항해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잘 아는 지중해는 그리스·로마를 탄생시킨 주 무대다. 이곳이 유럽 문명의 오늘을 만든, 가장 발전된 문화를 가진 서양의 자부심이다. 조금만 세부적으로 돌아가면 그리스는 도시국가라는 도시별로 작은 국가를 이루면서 시작됐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한 것으로 문화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가 한참 전성기일 때 이웃 이탈리아에도 식민지 도시 건설을 확대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리스 문화 영향권 안에 있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확대하기까지에도 가장 큰 힘은 지중해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배에서 내리듯 언젠가는 이 지구별에서 내릴 것이라는 단상을 남겼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을 남겨 잠깐 인용한다. "황금보다 비싼 지금으로 현재를 살며 '현존'하기, 그리고 시간은 개념일 뿐 어차피 없다라고 보며 '항상 여기'를 살다 가려 한다.(p.253) 저자는 여행 중간쯤 지치고 힘들 무렵 삼시세끼 먹여주고 재워주는 크루즈에 몸을 싣고 편안하게 기항지 투어를 해보라고 슬며시 제안한다. 힘도 비축하고 세계 각국의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는 장점도 제시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다. 크루즈 비용은 객실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니 잘 고르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지중해의 경우 크루즈가 아니면 다니기 힘든 섬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5개월 반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나홀로 세계여행'을 한 셈이다. 저자는 다닌 여행지를 중심으로 이 책에서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물론 세계 여행 특히 유럽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크루즈 여행을 포함한 이 책의 내용을 지중해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와 쌀국수로 대표되는 베트남, 타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친다. 그간의 기록을 6개 파트로 나눠 이 책에 담았다. 각 파트에는 지역별, 도시별, 문화별, 특징적인 내용을 주로 기록했다. 6개 파트는 한 파트에 10여개 장(章)으로 나눠 제목과 함께 차례에 담았다. 각 장의 제목만 읽어도 독자들은 해당 지역과 도시 특징 등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을 더욱 재밌게 읽는 방법은 아마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다. 만일 저자의 여행 경로와 겹치지 않는다면 TV나 책, 신문 등에서 얻은 지식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움을 더하는 방법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수많은 사진은 오히려 글맛을 축소시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좋은 사진만 골라 실은 것으로 보여 나쁘지는 않다. PART1 〈보다 멀리 북아프리카로〉, PART2 〈매력적인 남동유럽〉, PART3 〈추억의 프랑스, 이베리아반도〉, PART4 〈크루즈 타고 지중해 한 바퀴〉, PART5 〈신비하고 애틋한 모로코〉, PART6 〈쌀국수와 가족 상봉〉 등으로 니뉘어 있다.

독자는 유럽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란 나라에 관심이 갔다. 최근에 본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조지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러시아명인 〈그루지야〉로 불렸었다. 인구 약 4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기록에는 구약성경에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라다.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속담이다. '김치' 하면 우리나라이듯이, 와인 하면 조지아라고 한단다. 수메르 점토판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니 지금으로부터 능히 5,000년 이상된 기록이다. 성경에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라트 산 근처이고 아라라트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로 알려지니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주에 많은 이야기가 쓰여 있지만 모두 소개하기에 어려워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글로 소개한 장(章)의 제목 몇 개만 예로 든다. 「성경에도 기록된 조지아 와인」, 「그을린 촛불 자국 가득한 교회」 「돈, 잘 쓰자」, 「절변과 유황온천을 갖춘 천연 요새」, 「편안함으로 맞이해준 아르메니아」, 「세반 호수에서 매운탕을 맛보다」, 「프랑스도 인정한 아르메니아 코냑」 등이다. 조지아에서의 저자가 좋은 와인 고르는 법에 대해 대답해준 말도 재밌다. "가장 좋은 와인은 내게 맞는 와인이고 가장 이쁜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죠." 예수님도 물론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했을 정도로, 와인은 인류가 만든 문명의 걸작품이 아닐까 싶다. 조지아인은 대부분 조지아 정교를 믿는다. 예수의 12사도 중 5명이 직접 조지아 땅에서 기독교를 포교했으며, 캅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아르메니아(3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326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 국민들에게 단순한 신앙 그 이상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지이자 교차로이다 보니 강대국에 에워싸인 각축장이었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튀르크까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강국들에 차례로 지배당해왔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면서 신앙을 중심으로 뭉쳤다. 근세 역사로 100년 넘게 러시아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8년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불과 4년 만에 1922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됐다. 그후 70년간 끈질기게 분투해 결국 1991년에 독립했다. 듣고 보니 한반도 못지않게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리며 매년 800만 명이나 되는 여행객이 찾아드는 비결은 무엇일까를 저자는 생각해본다. 역사상 여러 강국에 지배당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을 고수해온 정신력과 그를 보듬어 온 문화유산일까 아닐까 싶다. 이웃 나라 아르메니아도 비슷한 역사적 수난을 함께했다.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만든 '마슈토즈'란 사람이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이 있는데 '마슈토츠 고문서관'이라고도 불리운다고 저자는 설명해준다.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지해를 여러 차례 겪으며 1920년 세르브 조약에 의해 독립이 인정되었지만 다시 1936년 12월 구 소련을 구성하는 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구 소련의 해체에 따라 1991년 독립한 나라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파트에 가면 "장기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편안한 내 집과 따뜻한 가족이 그리워지게 마련"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마지막 여정인 베트남에서 가족과 상봉해 2주간 베트남 곳곳을 함께 여행했다. 타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덕분에 나만의 여행이 아닌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꽉 채운 따뜻한 여행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어쩌면 저자의 여행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알차고 비교적 수월하게(?) 마친 해외여행에서 그의 무모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책의 뒷 부분에 남긴 「감사의 글」에서 그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인생은 그냥 봄(Seeing)이다.

그래서 나는 이 봄, 저 봄 다 좋아한다.

지구별로 여행 온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일상이든 낯선 공간이든

그 속에서 해마다 봄을 맞이하며,

날마다 봄으로써 성장해간다.(p.350)

 

저자 : 김별

 

어렸을 적부터 꿈이 세계일주였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이제는 허락된 내 시간이 되어 떠났다. 철저한 준비와 촘촘한 계획 없이 일단 떠나온 나 홀로 여행이었지만, 늘 예상 밖의 즐거움과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기대 없는 곳에 더 큰 놀라움이 있다는 것처럼 그러한 경험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5개월 반 동안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를 뚜벅이 걸음으로 채우며, 떠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내 인생 2막 모험 여행을 두루 다채롭게 했다. 느긋하게 무심한 듯 바라보는 이국의 풍경들과 낯선 길 위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또 다른 나를 만났다. 1963년에 태어났다. 1985년 경북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5년간 프랑스 툴루즈 대학에서 공부하며 석사학위(DEA)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2020년에 30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하며 세상 구경을 다니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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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경제사 365 - 읽기만 해도 내 것이 되는 경제 입문서
강준형 지음 / 다온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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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경제의 역사를 다뤘다. 다만 지난 300년 간 경제 이론과 경제학 분야에서 인물, 사건, 정책 등을 모았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부분이 우리나라 경제사이다. 우리는 경제사라고 따로 논의할 정도로 오랜 기간이 아닌 근현대사 부분에서도 1945 해방 이후부터의 현대 경제사를 담았다. 자본주의·공산주의·보호무역주의 등 이념적인 부분보다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와 그 역사를 사건, 인물, 장소, 일화 등 12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리나라 경제사를 시작으로 경제 호황기부터 ‘그때 그 사건들’, ‘경제 속 인물’ 등 누구나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제 상식을 담았다. 그리고 각 장에 경제인들의 명언을 넣어 해당 카테고리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경제사’라는 주제가 다소 무거워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과거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한국 현대사 속 우리 경제사에 어떤 이슈들이 지금 시대까지 발전시켰으며 무엇을 변화하게 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지 않고서 현재의 눈으로 과거 경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는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IT강국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경제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여행객으로 인해 다시 돈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준 금리 인상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지금을 겪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 반면에 ‘K-반도체 이차전지’가 우리 산업 경제의 새로운 빛을 내며 우리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렇듯 경제는 우리 삶 곳곳에 직면해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쟁국의 거센 충격에 당하지 않고 경쟁 우위를 확보해 지속할 수 있는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불과 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 하지만 그 세월을 절대 짧다고 할 수 없다.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매일 경제 상황이 바뀌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지나고 나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다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상황은 단연 지금 ‘현재’의 일일까? 우리나라는 1950~60년대에 산업화를 이끈 베이비붐 세대가 흘린 땀과 노고 덕분에 이후에 경제 호황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역사 최대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의 황금기와 불황기는 과거 곳곳에 존재했다. 흔히들 “지금이 제일 어렵다.”, “유례없는 경제 불황이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래서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그때 그 시절에는 어떤 환경에서 살았으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난 후의 경제는 어땠는지를 한 페이지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경제 상황을 흐름 순으로 지켜보며 그것이 오늘날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사건과 일화, 인물, 장소 등 서로 다른 영역의 경제 순간들이 하나의 장을 이뤘다. 1.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 성과, 한계를 정리 / 2. 60년대에 추진하고 70~80년대에 본격화한 우리 경제의 성과 / 3~4. 3장 ‘그때 그 사건들’, 4장 ‘경제 속 인물’도 비슷한 구성을 따른다. 1, 2장의 내용을 접해본 만큼 여기서부터는 큰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을 것 / 중반 이후부터는 세계 경제사 일부 포함. / 12. 주변국 및 세계 경제사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하루 한 장 읽음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몰랐던 이에게는 새로운 경제 상식을 전달할 것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12장(章)에 걸쳐 우리 현대사 속 경제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후 7장부터는 「경제학자와 경제사상」부터는 세계 경제사 쪽도 함께 담았다. 1장 「해방 후 경제 70년」, 2장 「고도 경제성장의 명과 암」, 3장 「그때 그 사건들」, 4장 「경제 속 인물」, 5장 「기업과 산업 이야기」, 6장 「기억 속 경제」, 7장 「공간과 장소」, 8장 「새로운 등장」, 9장 「경제학자와 경제사상」, 10장 「그 밖의 경제 교양」, 11장 「세계경제의 주요 사건」, 12장 「주변국 및 세계경제사」 등이다. 대체로 "경제사라고 하면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화폐경제의 출현, 봉건제와 중상주의, 그밖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내용을 떠올리기 쉽다. 동시에 그 변화를 이끈 정책이나 인물을 주로 다루곤 한다. 이러한 경제사는 인류 역사 전반에 역향을 미칠 정도의 큰 사건인 만큼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고 저자 강준형은 「프롤로그」를 통해 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 경제, 대한민국 경제사를 출발점으로 본다. 이마저도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수립된 1948년 기준이라 시간상으로는 기껏해야 7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경제사의 주제가 되기엔 턱없이 짧은 게 사실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간 우리 경제 속 수많은 이야기를 재조명하고자 출간된 것이다.

저자가 "사실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말처럼, 뭔가 준비해서 제대로 한 일이 그리 없는 나라다. 준비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해 사실 그간 우리 국민의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나 저자의 뜻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지었으며 조선소를 설립해 세계 1위의 조선산업으로 우뚝 섰다는 점 등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라는 사실에 약간 흥분됐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한국 현대 경제사의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고도 성장을 이뤄낸 국민들에게 위로와 자긍심을 키워주는 발언을 위한 전제로 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다시 주목하게 됐다.

 

 

이 책은 한 페이지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소 짧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충분한 분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건과 일화, 인물, 장소 등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로 제기능을 하도록 저자가 짧게 풀어냈다. 특히 자칫 '경제' 하면 골치 아프고 답도 없는 분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독자들의 심리도 읽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되도록 쉽고 짧게 풀어내는 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저자의 노력은 우리의 경제 지식을 더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1장에서는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시작해 최근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 성과, 한계를 정리했다. 거대 두 정당 간의 정책 노선 차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특정 정부의 정책을 평가한다는 말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는 저자의 말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평가에 이견이 따른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이 부분을 독자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2장에는 60년대 추진하고 70~80년대에 본격화한 우리 경제의 성과를 담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 경제사는 결코 성장만 이어져 온 것은 아니기에 정경유착과 노동탄압 등 부조리한 측면도 매우 잦았다는 점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 와중에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이 제도를 도입하고 또 개편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3장과 4장도 비슷한 구조를 따르고 있다. 1, 2장의 내용을 접해본 독자들도 압축된 글의 이해에 큰 부담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

세계 경제사 일부는 중반 이후 포함했고, 특히 12장에서는 「주변국 및 세계경제사」를 배치해 경제사의 마지막 이야기로 최근 신냉전 동향과 그 시사점을 짚어가면서 독자들을 핵심으로 안내한다. 중언부언이 될 것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과거란 곧 이전 세대, 특히 1950~60년대에 태어나 산업화를 이끈 베이비 붐 세대의 현재이기도 하다. 이들은 유년 시절 보릿고개를 경험할 정도로 빈곤했음에도 경제·사회적 변화를 주도했으며 일에 대한 강한 의욕으로 지금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독자는 박정희 대통령 및 이후의 대통령 정부의 경제 정책과 결과 등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조금의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독재와 정적 제거, 그리고 한국전쟁의 이야기만 들어서인지 그의 경제 정책은 전쟁 후 복구사업에 가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였으나 이 책에서 농지개혁에 대한 정책 실시를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좌익 세력의 조봉암을 파격 임명해 전쟁 속에서도 농지 개혁은 이뤄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밝힌다. 이승만을 믿었던 지주 계층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고 이는 북한의 토지 개혁에 따른 정치적 불안과 미국의 압력 등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고 전한다. 분단이 고착화되고 4·19를 거쳐 장면 내각이 출범하면서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있다. 지금까지 장면 내각은 짧은 기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박정희 정부에도 이어져 우리 산업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다만 이 계획이 박정희 시대 자제척 정책 추진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강력한 통치력을 발단으로 민주주의는 오점을 남겼지만 경제 정책 추진에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지금까지 이 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주의와 경제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면 지금의 우리 경제 규모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은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격언에 아무 의미가 없을 듯하다. 공과 과는 모든 대통령에게 있을 터 박정희 대통령도 공과 과에 대한 구분은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을 덧대본다.

전두환 정권은 의외로 고도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능력이기보다 경제 내각과 '3저 호황'이라는 호기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은 확인된 평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3저'란 저물가(저유가)와 저금리, 저환율(저달러)를 말하는 것으로 경제가 안정세에 들어설 때 나타나는 반가운 일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개인의 특별한 경제 비전이나 경제관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는 확실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후 대통령들도 모두 공과 과가 있으며, 각각의 국정 운영에 따라 평가를 받고 있거나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은 없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제 12장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현황과 미래 경제 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칠 이야기들이 많아 관심이 간다. 주변국이란 중국과 일본 등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들의 지난 반 세기의 경제 정책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당연할 것이다. 또 현재 '미·중 무역전쟁'이란 엄중한 상태에서 우리의 경제가 미국의 외교, 군사안보동맹 관계와 중국의 세계 패권국 도전의 사이에서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어느 때보다 미래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 이에 대처해 준비해 나가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책을 통해 배운다. 특히 중국의 경제적 약진과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 등이 충돌하는 것을 어느 쪽이 유리한가, 어디가 더 센가에 대한 논의보다 만일 전쟁이 나면 인류 종말이라는 비장한 상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독자는 본다. 미중이 패권다툼을 해도 여기까지야 가지는 않을 것이란 학자와 전문가들의 판단이 옳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문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처해 나갈 우리 대한민국이지만 미·중 간 전쟁은 끔찍한 핵 전쟁을 유발할 위험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국도 패권국이 되고 난 후 채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냉전이 끝났음에도 오히려 더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고, 중국은 그 틈을 노리지만 아직 군사적 대결에서 핵으로까지 치달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전쟁은 상처뿐인 영광이었고, 아프가니스탄 대테러 전쟁에는 결국 패전으로 물러선 것 같은 느낌이어서 더 힘을 잃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적 역량이 미국을 압도하지 않는 한 핵 전쟁까지 감수할 위험을 안고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적절할 것 같다. 이렇게 이 책은 독자에게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주고, 모르던 우리 경제의 정책이나 사건 인물 등에 대한 상식을 크게 늘려 주었다.

 

저자 : 강준형

 

현재 ‘카난kaironan’이라는 닉네임으로 경제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 중인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후 다양한 경제 이슈와 정책 등을 쉽고 재미있게 재해석해 많은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경제 원론 및 경제사, 경제상식에 관한 대학 특강 등 다양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경제기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경제지식을 갖추는 것보다 경제기사에 대한 관점을 길러주고자 《경제시장 흐름을 읽는 눈, 경제기사 똑똑하게 읽기》를 썼다. 저자가 쓴 다른 책으로는 《딱 이만큼의 경제학》이 있으며,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적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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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그림 읽기 - 고요히 치열했던
이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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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적인 그림 읽기』는 독자에게 두 가지의 지식을 더하게 해주었다. 하나는 새로운 그림 감상법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그림에 대해 배운 적도, 직접 그린 적도 없는 독자는 미술 관련 책이나 유명 도슨트의 그림 감상법을 읽고 감상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그림 감상에 입문한 뒤로 될수록 많은 전시회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점을 하나씩 쌓아가는 식이다. 그림의 제목이나 화풍을 보고 누구의 그림인지를 아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말하기는커녕 그림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주기에는 어려웠다. 그렇게 쌓은 지식은 그림이나 화가의 일부분만 알기 때문이다. 저자 이가은은 여기에 그림 감상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을 독자에게 알려준 것이다. 먼저 공감하는 그림을 발견하고,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과 화가의 당시 활동에 대한 지식을 얹으면 풍요롭고 수준 높은 그림 감상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림 문외한의 독자를 꽤 지식이 있는 것처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왜 문학과 달리 그림을 그리는 여성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 책이 그 점을 일깨워 주었다. 독자는 없는 게 아니고,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그림에 대해 몰랐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저자는 미술 공부를 하다 역사학으로 전환해 공부한 역사와 자신의 일상을 통해 그림을 치밀하게 들여다보고 이 책을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책이라고 이 책의 출간 취지를 밝혔다. 저자는 언론학과 서양사를 공부한 새내기 연구자이자 세상의 여러 기준에 맞춰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30대의 한 개인으로서, 하나의 그림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독특한 미술 에세이를 썼다. 바로 이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는 그림이 나의 글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사학에 뛰어들면서부터 미술 감상을 즐겼다. 처음에 그림은 내게 유용한 사료였다.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연구하듯 그림을 읽었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그 안에 나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 ‘내 것’으로 사랑하게 되었다.”(p.8)

 

이젠 저자에게 그림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역사 연구의 재료다. 파리 기념엽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 베로의 그림에서 가정에 귀속되었던 19세기 여성들의 활동 반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공적 공간으로 확대되었는지 돌아보고, 안토넬로 다메시나의 「서재의 성 제롬」을 보며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진 ‘읽기’의 역사를 살폈다. 또 얀 마테이코가 그린 코페르니쿠스 그림에서 신성과 과학이 어색하게 공존하던 시기, 태양중심설이 촉발한 ‘세대 갈등’을 흥미롭게 짚어낸다. 그러나 각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고민에 대한 작은 해답을 이끌어내는 과정과 매끄럽게 얽힌다.

먼 나라와 여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술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마차 운전석에 앉아 파리의 신작로를 내달리는 여성, 책에 몰입하는 성 제롬,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으로 이어진 세계관을 바꾼 과학자들 등, 저자는 그림 속 인물과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고요히 치열했던’ 시간의 의미를 길어올린다. 이 책에는 우정, 경쟁, 다이어트, 관종, 세대 차이 등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로 쓴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열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일상의 균형추가 되어준 그림과 과거의 이야기가 적재적소에서 글에 힘을 실어준다.

 


 

1부 「외롭지 않은 고독」에서는 외로움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오롯이 세우는 태도를 보여주고,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에서는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숭고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미술작품을 통해 전한다. 3부 「고요하게 바라보는 시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는 시간에 대해 풀어냈다. 1부 1장(章)에서 저자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우산〉을 통해 스스로 예민해지고 자신이 전공을 바꾼 데 대한 회의감도 들었던 것 같다. '왜 사서 고생일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등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의지를 〈우산〉을 통해 스스로 일깨운 듯하다. 저자는 여성들이 사용하는 '우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더한다. 르누아르가 〈우산〉을 그린 시절은 우산의 대중화가 실현되어 귀족과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 다수가 값싸고 가벼운 우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대라는 점을 알아낸다. 이에 따라 르누아르가 〈우산〉을 그릴 무렵 파리 시민들은 내심 비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구입한 우산을 챙겨 다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안고 우산을 펼쳐들었을 것이라고 연상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그때 저자의 삶을 관찰하고 그린다면 아예 다른 작품이 되리라고 확신하다고 말한다. 르누아르는 분명 비 오는 날에도 의외의 설렘과 즐거움을 찾아내 그것을 더 신경써서 그릴 테고,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며 "봐, 네 시간이 그렇게 울적하지만은 않았다니까?라고 말할 것으로 저자는 단언한다. 그러면 그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자가 놓쳤던 순간, 배우고 얻은 것, 소소한 기쁨 들을 기억해내고 그 나날을 좀더 소중히 여기게 되리라고 설명한다. 저자와 화가, 작품에 대한 연결성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가 르누아르 〈우산〉을 보면서 '우산'의 역사, 당시 화가의 화풍, 시민들의 유행하던 것, 시민들의 일상을 세세한 것까지 모아 분석한 후 자신을 대입시켜 비 오는 날의 고독을 씻어내고 좀더 활동적이고 즐거운 일상을 살 수 있다는 저자 자신의 마음 치유를 드러낸 감상을 독자들에게 슬며시 내놓는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거리가 텅 빈 늦은 밤, 잠들지 않는 뉴욕을 그린 작품이다. 한낮 도시의 불빛과 소음은 소거되고, 정적이 드리운 배경에 한 심야식당의 조명만 밝히고 있다. 바의 손님들은 과묵하고 무심한 얼굴로, 어떤 교류나 대화 없이 그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이 멍때리는 것 같기도 피곤한 듯하기도 한데, 분명 일말의 열심이나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퍼의 다른 작품에서도 작중 인물들은 대개 이와 흡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로 인해 그들의 내면은 항상 쓸쓸함, 외로움, 우울 등의 멜랑콜리한 정서들로 해석되어 왔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20세기 도시인들의 불안과 공허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호퍼를 향한 가장 흔한 찬사였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이 그림을 생각한다. 다른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치 그림 속 거리의 행인이 된 듯 유리창 너머를 오래 주시했다. 작품은 그만큼 흡입력이 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흔히 말하듯 단지 외로움과 쓸쓸함만은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덕분인지 지극해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작품에 흘러넘치는 단절과 적막에서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호퍼의 피사체들은 늦은 밤 드디어 찾아온 고요한 시간을 가장 익숙하고 편한 장소에서 휴식하며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관계에 지쳐 있던 때, 내가 갈구하던 시간을 그들이 누리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p.54~55)

특히 홀로 앉은 남자의 뒷모습에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말한다. 퇴근 후 아늑한 카페에서 휴식하기, 멍하니 산책로를 거닐기, 늦은 밤 영화관에서 감성에 젖어 훌쩍이기, 집에서의 휴식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낯선 이들 사이에서 익명성의 투명 망토를 입고 다채로운 고독을 즐긴다. 그림 속 남자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투영된 저자의 마음은 할걸음 더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적막을 깨뜨리는 행위는 그의 고독을 존중하지 않는 실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 첫 장에서는 주세페 카데스의 〈아이아스의 자살〉을 다룬다. 여성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인기가 절정일 때인 2021년 겨울, "그게 그렇게 재밌냐?"는 친구의 물음에 "스우파에서 인생을 배워"라고 답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댄서들. 그들이 선보이는 춤과 무대도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화려한 공연이 전부였다면 그렇게까지 과몰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스우파〉에서 댄서들의 내공과 사연이 빚어내는 강력한 드라마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들이 펼치는 도전, 갈등, 좌절, 우정, 꿈, 자존감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오는 보편적 이야기이다. 춤과는 서먹한 저자는 그 안에서 현실을 발견했고, 저자가 실제로 맞닥뜨린 삶의 과제들을 너무나 멋있게 풀어가는 댄서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는 것.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경쟁에서 우리는 후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꺼이 경주마가 되어 달린다. 승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모든 수고는 허사가 된다. 그저 도태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패자의 존엄은 고사하고 승자의 존엄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경쟁'이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이고 위선적인 자기 위로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스우파〉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이기지 못한 경쟁에도 의미가 있고, 도전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승자와 패자 모두가 빛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경쟁의 가능성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그들에게 결과는 중요했다. 심사위원과 대중의 선택이 공개될 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하고 싶은 무대를 했는지, 진심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만족한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이에 따라 저마다 멋진 무대를 만들어냈고, 패배가 예견된 경쟁이라도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더라고 말한다. 여기에 저자는 주세패 카데스의 그림 〈아이아스의 자살〉을 비유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 『아이아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중앙에 자살을 감행하는 남자가 극의 주인공 아이아스다. 한눈에 봐도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비극적 정서가 느껴진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였으나 어떤 한 경쟁에서 패배한 후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비극이다. 저자는 공연과 연극, 그림이 표현하는 그 무엇이 공정한 경쟁과 패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현실 세계를 펼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자성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현재와 고대의 시점에서 '경쟁'에 대한 우리들의 깨우침을 주려는 듯하다.

 


 

2부 세 번째 장 〈관종 시대의 자기표현법〉에서 독자의 여성 화가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크의 〈자화상〉을 들고 있다. 저자는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볼 때면 작가의자기표현과 관련해 많은 귀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물론 이미 '관종'에 대해 저자는 "관심을 원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원치 않는다"라고 적절한 거리를 둔다고 말한 바 있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초중반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흔치 않은 이탈리아 여성 화가란 설명을 앞세운다. 예술가 길드인 아카데미아 디 아르테 텔 디세뇨의 높은 성별의 벽을 넘은 첫 여성 회원이라고 젠틸레스키를 꼽는다. 여성은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미술가로 인정받을 만큼 그녀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젠틸레스키는 본인 작품에 자기 얼굴을 자주 등장시키는 화가였다. 성경·역사·신화의 장면이 그녀 작품의 주 소재였는데, 그녀는 종종 그림 속 여주인공의 외모에 거침없이 자기 모습을 그려넣은 화가다. 당시 대부분의 작가가 남성이었기에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덧입히는 인물도 남성에 한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한 여성 작가가 상징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자신의 얼굴로, 그것도 빼어난 실력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젠틸레스키는 단지 자신의 외양을 알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젤틸레스키는 주로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우리에게 알려진 57점의 작품ㅈ 중 49점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남성과 동등하게 묘사하고 있다. 젠틸레스키가 반복해 그린 여성 중에는 구약성서 외경 『유디트서』의 주인공 유디트가 있다. 유디트는 조국을 정복한 아시리아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미인계로 유혹하고, 그의 목을 칼로 베어버린 신화적 여성이며, 카라바조를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오랜 사람을 받아온 주제이다. 그 중에서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연출로 유명하다. 당대인들은 이 작품을 보며 세 가지에 놀랐다. 첫째로 여성의 실력이 이렇게 훌륭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둘째로는 그림의 과격성과 강인함에, 마지막으로 유디트의 모습이 화가를 너무 닮아서였다.

 


 

젠틸레스키의 인생에서 관심은 꼭 필요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관심은 양날의 검이 되어 그녀에게 명예도 주고 상처도 입혔다. 그 가운데 그녀는 항상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목소리를 냈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물론 작품으로 그녀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자기를 해석하고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래서 애써 기록으로 남긴 그 말들을 지금 우리가 400년의 시차를 극복하고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p.171)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에 대비하며 살다보면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온다. 이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는 중세 예술의 알레고리가 ‘죽음의 무도’다. 이때 죽음은 ‘죽음의 승리’에서와 같은 냉혈하고 비인격적인 살육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익살스러운 악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음은 잔뜩 신명 난 표정과 몸짓으로 풍악을 울리며 이제 막 삶을 마친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들의 역할은 아직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인간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p.295)

 

저자 : 이가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소통의 도구인 언어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다. 점차 ‘무엇’이 의미 있는 메시지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그때부터 지나간 인생들이 남긴 흔적을 즐겨 좇았다. 역사와 미술을 향한 애정은 그 여정 가운데 탄생했고, 깊어졌다. 축적된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삶을 탐색하고, 감정과 철학을 읽어내는 작업이 좋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일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긴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인문학지도사로서 온·오프라인 역사 강의를 진행해왔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leeegenn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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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좀비 1
닉 일리오폴로스 지음, 김아영 옮김 / 제제의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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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내 동생이 좀비라니!” 좀비가 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바비는 떠난다. 마인크래프트 세계에서 펼쳐지는 소름 끼치도록 흥미진진한 어린이 모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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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좀비 1
닉 일리오폴로스 지음, 김아영 옮김 / 제제의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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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는 이제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화 콘텐츠로 거듭났다. 특히 마인크래프트 게임 제작사인 모장(MOJANG)에서 세계적인 판타지 작가들과 손잡고 출간한 『마인크래프트』 어린이 소설 시리즈는 탄탄한 게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스토리로, 마인크래프트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으며 1억7,500만 부 이상 판매된 일명 ‘믿고 보는’ 시리즈가 되었다. 이번에 모장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마인크래프트』 3부작 시리즈는 마인크래프트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위협적인 몹인 ‘좀비’를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존의 마인크래프트 소설 시리즈를 좋아하던 독자라면 후회 없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며, 마인크래프트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라도 완전히 푹 빠져들 만큼 흥미진진하다. 좀비로 뒤덮인 마인크래프트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독자는 게임을 즐겨 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 산업이나 게임 개발에 관련 지식이 거의 없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마인크래프트〉 게임에 대한 개발 내용과, 개발 과정, 회사 설립과 지금까지의 발전 과정에 대해 『게임대백과』를 통해 전반적인 관련 내용을 여기에 먼저 적시한다. 이 서평을 읽는 독자분들은 이 부분을 건너 뛰고 읽어도 무방할 것이란 점을 미리 밝힌다. 〈마인크래프트〉가 외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면, 한국에서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알려졌다고 한다. BJ들은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마인크래프트〉로 스타덤에 오른 BJ도 있다. 인기 BJ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마인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픽셀 아트, 도트 그래픽 콘셉트의 게임을 볼 때 “마인크래프트 같다.”고 말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인기 게임이 된 것이다. 교육용으로도 쓰인다. 이미 외국에서는 교육용으로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도 〈마인크래프트〉를 교육용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4년 9월, 게임계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 발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5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라는 거금을 들여 스웨덴의 게임회사 ‘모장(Mojang)’을 인수한 것이다. 모장의 대표작이 〈마인크래프트〉의 하나였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디 게임 ‘하나’를 자신의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들였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모장의 창업자이자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개발자인 마르쿠스 노치 페르손의 퇴사 선언이었다. “기업가나 경영자가 아니라 개발자로 남고 싶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초심으로 돌아가 신작 개발에 매진하는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마인크래프트〉로 인디 게임계의 살아있는 성공신화가 된 그가 영광을 뒤로 한 채 다시 인디 개발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의 팬들은 그의 이런 결정에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걸출한 게임을 만들어 낸 그가 만들어낼 후속작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마인크래프트〉는 어떤 게임이길래 마이크로소프트는 2조5,000억이라는 돈을 들여 인수 했을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마인크래프트〉에 열렬하게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인크래프트〉를 논하려면 개발자인 마르쿠스 페르손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레고를 좋아했던 마르쿠스 페르손은 7살 때 그의 아버지 비르예르가 가져온 '코모도어128'을 접하며 게임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정불화를 겪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더욱 프로그래밍에 몰두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학창시절을 마친다. 마르쿠스 페르손은 스웨덴의 작은 개발사인 ‘미다스 플레이어’에서 게임 개발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미다스 플레이어에서 이후 공동 창업자가 되는 야콥 포서, 배우자가 되는 엘린을 만났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게임에 대한 열정을 나누기도 했지만, 수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다스 플레이어의 경영방식은 불만이었다고 한다. 결국 마르쿠스는 미다스 플레이어를 그만뒀고, 이후 들어간 아발란체에서도 2주를 버티지 못했다. 그 후 모장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카를 마네가 CEO로 있던 ‘제이앨범’에 들어가게 된다.

 


 

개임대백과에 따르면 마르쿠스 페르손이 제이앨범에 입사하면서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자유시간에 자신이 게임을 만들어도 터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르쿠스가 유능한 프로그래머였기에 카를 마네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마르쿠스는 자유시간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며 지냈다. 인디게임 포럼에서 ‘노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여러 사람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당시 마르쿠스는 〈드워프 포트리스〉, 〈롤러코스터 타이쿤〉, 〈던전키퍼〉, 〈인피니마이너〉 등을 즐기며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자신이 만들 게임에 담고 싶었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드워프가 되어 생존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적 외에는 유저에게 강요되는 것은 없으며, 유저는 자유롭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마르쿠스는 〈드워프 포트리스〉에서의 생존을 이어가는 짜릿한 느낌을 자신의 게임에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는 쉽고 빠르게 독창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것에, 〈던전키퍼〉에서는 횃불이 늘어서 있는 중세시대 지하감옥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게임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은 〈인피니마이너〉였다. 〈인피니마이너〉는 여러 명의 유저가 광물을 캐는 것을 겨루는 게임이다. 광물을 이용해 다른 유저의 광물 채집을 방해하는 용도로 건축물을 짓는 것도 가능했지만, 나중에는 건축물을 짓는 것에만 몰두하는 유저들이 더 많아졌다. 인피니마이너. 게임 화면이나 플레이 방식을 보면 현재의 〈마인크래프트〉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피니마이너〉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출시 한 달 뒤 게임 소스가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저들에 의해 다양한 변종이 만들어졌다. 변종 간에 호환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유저들 간의 정상적인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제작자 자카리 바스는 멀티플레이어 커뮤니티를 만들려던 의도가 완전히 엇나가자 결단을 내렸다. 팬들을 위해 〈인피니마이너〉를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오픈 소스로 재출시한 것이다. 〈인피니마이너〉가 오픈 소스로 풀리자 많은 프로그래머가 기뻐했다. 마르쿠스도 그 중 하나였다.

 

 

마르쿠스는 3인칭 시점이었던 〈인피니마이너〉를 1인칭 시점으로 바꾸고 그래픽 작업도 다시 했다. 2009년 5월 초, 유튜브에 마인크래프트의 전신인 〈인피니마이너 클론〉의 동영상을 공개하고, 인디 게임 포럼의 친구들과 논의해 게임 제목을 현재의 [마인크래프트]로 지었다. 그는 자신의 〈마인크래프트〉에 확신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 엘린도 그를 응원해줬다. 특히, 엘린은 〈마인크래프트〉에 푹 빠져 테스터를 자청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17일, 마르쿠스는 실행 가능한 최초의 〈마인크래프트〉를 인디 게임 포럼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반응은 뜨거웠다. 포럼 내의 여러 멤버들은 앞다퉈 〈마인크래프트〉의 세계를 탐험했고, “이런 젠장, 이거 정말 멋져.”라는 반응을 시작으로 칭찬이 이어졌다. 그런 반응을 꼼꼼히 살피던 마르쿠스는 자신이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다고 느꼈다. 그리고 6월 12일, 〈마인크래프트〉의 판매가 시작됐다.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바탕으로 이 책 『마인크래프트 좀비1』가 쓰여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미리 소개한다. 우선 바비는 플레인타운에 사는 여자아이다. 원래 마을 주민은 아니고 어린아이일 때 입양됐다. 그래서인지 모험가들처럼 말을 할 수도 있고 주민들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능력을 갖고 있다. 갑자기 마을을 덮친 좀비 떼의 습격에서 좀비가 되어버린 동생 조니를 치료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다. 조니는 바비의 남동생이다. 좀비들이 마을을 덮친 그날, 조니도 아기 좀비가 되었다. 겉모습은 좀비이지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인지 몹으로부터 바비를 지킨다. 낮에 움직일 때는 태양을 피해 호박을 뒤집어쓰고 다닌다. 벤은 잠든 사이에 함께 모험을 하던 동료 로건이 모든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 빈털터리가 된 모험가이다. 우연히 찾은 마을에서 바비를 만나 에메랄드를 약속받고 조니의 치료법을 찾아 바비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로건은 단지 재미를 위해서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태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도 서슴없이 버린다. 마을 주민들을 좀비화시켜서 좀비 군단을 만들고 이 좀비 군단을 보내 마을을 파괴하고 전리품을 약탈한다.

 


 

바비가 사는 플레인타운은 늘 고요하다. 주민들은 각자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항상 말썽을 일으키지만 사랑스러운 남동생 조니, 마을을 지킴이 철 골렘과 함께 바비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바비는 마을에 독에 당해 쓰러져 있는 낯선 소년을 발견하고 그를 구해 준다.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소년은 마을의 상징인 나무를 불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 뒤, 굶주린 좀비 떼가 바비가 사는 플레인타운을 습격한다. 마을은 순식간에 황폐해지고, 바비의 부모님과 친구, 이웃, 심지어 남동생 조니까지 좀비의 희생양이 된다. 악몽 같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좀비가 된 마을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비와 좀비가 되어 버린 동생만 남는다. 바비는 마을을 찾은 모험가 벤을 만나 동생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치료법을 찾아 함께 모험을 떠난다. 과연 바비는 좀비가 된 동생을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좀비'가 한때 영상 산업 부문과 출판계를 휩쓰는 시절이 불과 몇 해 전이고 지금까지 그 인기는 여전하다. 기존에 출간된 마인크래프트 소설 시리즈에서도 제목에 좀비가 등장하는 『마인크래프트: 좀비 섬의 비밀』이나 『마인크래프트: 좀비 섬의 생존자』 역시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번에 출간된 『마인크래프트 좀비』 3부작 시리즈는 좀비를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권은 평화롭던 마을을 덮친 좀비 떼의 습격으로 부모님과 이웃, 친구들을 모두 잃은 ‘바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좀비가 되어 버린 남동생 ‘조니’와 단 둘이 남겨진 바비는 마을을 찾은 빈털터리 모험가 벤을 만난다. 바비는 조니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치료법을 찾기 위해 벤을 고용하고, 셋은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마을 주민이지만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주인공 바비, 바비에 의해 길들여진 아기 좀비 조니, 거미를 두려워하는 허술한 모험가 벤, 동료도 버리는 냉혹한 악당 로건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책장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한층 업그레이드된 재미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 닉 일리오폴로스는 이 책에서 마을이 모두 좀비 떼에게 파괴되고, 하나뿐인 동생마저 좀비가 되어 버린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무겁지 않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좀비가 되었지만 살뜰하게 동생을 보살피는 바비의 모습에 가족애를 담아내고, 이야기 후반부에 좀비 군단을 조직한 로건을 만나면서 전개되는 놀라운 반전 스토리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게다가 바비가 조니와 벤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커지게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폭풍우 속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왔지만, 그는 바비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요?”

바비는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더 높였다.

“거기 누군가요?”

그 순간, 그가 고개를 까딱하고 들어 올렸다. 마침내 바비의 목소리가 그의 주의를 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바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좀비다.”(p.37)

 


 

바비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타난 순간, 엄청난 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좀비 떼의 모습이 횃불의 불빛에 비쳤다. 그것들은 그야말로 우르르 몰려왔다. 터널의 끝은 좀비들로 막혀 있었다.

이윽고 좀비들은 벤과 바비 일행을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두 팔을 벌린 채 다리를 더 빨리 휘저으며 다가왔다. 하품하듯 입을 쩍 벌린 그들은 매우 굶주려 보였다.

바비는 즉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곳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이번에는 좀비 무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p.239~240)

 

저자 : 닉 일리오폴로스(Nick Eliopulos)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태어났다. 전문 작가이자 에디터, 게임 디자이너,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마인크래프트의 공식 챕터북 시리즈인 《우드소드 연대기》와 《스톤소드의 전설》을 집필했으며, 《모험가 길드》 3부작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현재 뉴욕에서 지내면서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네더에서 보낸다.

홈페이지 : nickeliopulos.com

트위터 : @NickElioplos

 

역자 : 김아영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스웨덴 예텐보리대학교에서 디자인 석사를 마쳤다. 해외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며, 이미지와 텍스트를 넘나들며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글 쓰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 현재 건축 잡지사에서 해외 건축을 소개하는 글을 번역하고 있으며, 출판 번역 에이전시 유엔제이에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한국 스페인 베스트 50 건축(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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