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역사 -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베터니 휴즈 지음, 성소희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독자가 청소년 시절엔 아름다운 여성들을 표현할 때 '여신(女神)'이란 말을 잘 쓰지 않았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여신이란 표현은 '성적(性的)'인 뉘앙스가 포함된 미화시킨 단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이 때문에 여신이란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는 서구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신이 아름다움과 성적인 면만 강조되어 전해졌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1980~1990년대까지도 영화 배우나 탤런트 등의 아름답고 예쁜 영화배우에게도 여신이란 말 대신 '조각처럼 아름답다'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여신이란 표현이 성적 욕구가 들어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는 뜻이다. 아마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처벌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표현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깨뜨리고 과감하게 여신이란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게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각 개인들은 SNS에 '아름다운 여성'의 대명사로 '여신'이란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연인이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없이 '여신'을 사용한다.



여신이란 표현은 원래 그리스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비너스, 아프로디테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 중 하나가 바로 '밀로의 비너스'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신화에 나오는 존재이지 실존 인물의 이름이 아니다. 여신이란 말이 어떻게 2,500년이 넘도록 인간의 삶 속에서 이어져 왔는지를 알아보는 게 이 책 『여신의 역사』이다.

책에 따르면 신화에서 다루는 비너스, 아프로디테의 탄생은 대지 여신 가이아의 계획에 따른 우라니아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지고 이내 그 여파의 거품이 사이프러스로 흘러들어 비너스로 탄생했다. 이후 비너스는 지중해로 퍼지면서 각 지역에 맞는 이름으로 대체되는 바, 이를테면 바빌로니아에서는 전쟁의 여신이자 절대적인 힘을 지닌 '이난다', 아카드 지역의 '이슈타르(Ishtar)',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로 불리며 오늘날 금성으로 불리는 별자리와 연관되는 관계를 지닌다. 비너스란 존재의 변화는 시대와 역사를 통해 그 역할과 상징성의 변화를 겪는다.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이 자신들의 치장을 위해 비너스를 모방했던 점은 신으로서 대하는 부분 외에 이를 닮고자 했던 인간들의 욕망을 드러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저자 베터니 휴즈는 전쟁의 신이자 욕망의 본성을 지닌 여신이란 경외의 존재감은 성과 폭력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시기를 이어 절대적 믿음과 신성함뿐만이 아닌 성에 대한 메타포로써 매춘의 여신이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리스의 항구 도시와 폼페이에서 신성한 의식처럼 행해진 매춘과 실제 매춘부들의 일들, 비너스의 프레스코화가 출토되는 것을 통해 매춘과 성교의 수호자로 상징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 인간의 욕망이 녹아있는 여신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흔히 비너스 하면 벌거벗은 여인 이미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비너스는 최초로 문명이 탄생한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인간은 왜 여신을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왜 지금도 우리는 여신과 같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을까? 저자는 역사적 증거로 그 답을 풀어간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동양 문화에서나 서양 문화에서나 관념이자 이미지로서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 이 여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쉽게 변하는 문화적 요소다. 우리는 최음제나 에로티시즘, 강렬한 소유욕, 화장품, 음란함을 이야기할 때 아프로디테를 기억한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성병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아프로디테는 다시 한번 선사시대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가진 힘과 잠재력을 고취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불멸의 존재인 듯하다.(p.209)



중동의 한 지방에서는 도끼에 갈비뼈와 다리가 베이고, 화살에 두개골이 뚫린 청동기시대 유골 수백 구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당시 중동에서는 인간의 파괴적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죽음과 전쟁의 여신들을 만들어냈다. 한편, 서구 세계에서도 여신이 탄생했다. 그리스인들은 미와 사랑을 향한 불같은 욕망을 신화로 설명했다.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중동의 여신들, 그리스 여신, 지역 토착 여신이 하나로 혼합되어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도 그리스 전역에 퍼졌던 아프로디테 숭배 문화는 이름만 비너스로 바뀐 채 계속되었다. 비너스는 로마 시대에는 세계 정복의 야심을 후원하는 존재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자들의 뮤즈로 빛을 발했다. 형태를 바꾸어 재탄생한 여신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최고의 역사적 증거인 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벌거벗은 비너스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자 비너스는 욕정을 자극하는 인간 모델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과거 여신들이 가졌던 위엄과 능력은 가질 수 없었으나, 여신의 아름다운 육체는 본받아야 했다. 비너스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억압과 차별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비너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아프로디테의 꽃 ‘장미’를 선물하며, 피부를 가꾸기 위해 비너스의 새 ‘비둘기’가 그려진 비누를 쓰고, 비너스의 과일 ‘석류’와 아름다운 여자를 연관 짓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신과 같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욕망하고,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와 사랑, 섹스, 폭력, 정복 등 고대부터 인류가 여신을 통해 욕망했던 것들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유효하다. 욕망은 우리가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여신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협력하도록, 서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에게 비너스는 매춘과 육체적 만남을 수호하는 신이자 동시에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비너스가 수호하는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아름다움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철학가와 예술가, 심리학자들에게 비너스는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니 서구 문명과 그 영향 아래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베터니 휴즈는 지난 40년간 여신의 자취를 직접 발로 뛰며 조사했다. 웅장한 그리스 신전과 사이프러스 바닷가, 중동의 고고학 발굴터와 폼페이의 가정집을 방문해 얻은 생생한 연구 기록들을 책에 담았다. 증거를 추적해가는 전개 방식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 덕분에 독자들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포탄이 떨어지는 중동의 발굴터로, 지중해의 햇살이 쏟아지는 그리스로, 비밀스러운 수도원으로 역사 기행을 떠날 수 있다. 여정을 떠날 때마다 새롭게 밝혀지는 비너스의 비밀에 설렘과 전율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고고학 연구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고대 문헌과 예술품들을 분석해 다채로운 여신의 모습을 그려낸다. 신화학, 고고학, 철학, 미학을 넘나들며 촘촘히 엮어놓은 흥미로운 여신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오늘날 우리가 여성을 미적 찬양의 표현으로 쉽게 사용하지만 자세한 뜻과 이어져온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함부로 붙일 단어가 아닌 듯하다.



저자 : 베터니 휴즈(Bettany Hughes)

역사학자이자 저술가, 방송인으로 지난 25년간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는 데 힘썼다. 고대 및 중세사와 문화를 전문 분야로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코넬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현재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의 저서는 평단의 찬사와 세계적인 성공을 거머쥐었다. 헬레네에 관한 역사서 《트로이의 헬레네(Helen of Troy)》는 10개국에서 출간되었으며, 소크라테스 전기 《아테네의 변명(The Hemlock Cup)》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다. 이스탄불 역사서 《이스탄불: 세 도시 이야기(Istanbul: A Tale of Three Cities)》는 12개 언어로 번역되고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으며, 런치먼 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아울러 BBC와 Channel 4, PBS,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히스토리 채널 등 전 세계의 방송국에서 50개 이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국 역사협회의 노턴 메들리콧 메달과 헬레나 바스다 실바 유러피언 상을 포함해 다양한 상을 받았고, 역사학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4등 훈장을 받았다

역자 : 성소희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서어서문학을 공부했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래를 위한 지구 한 바퀴》,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코코 샤넬: 세기의 아이콘》 등이 있으며, 철학 잡지 《뉴 필로소퍼》 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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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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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밤의 유서』는 『소피의 세계』라는 소설같은 철학서적으로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 소설이다. '알버트'라는 남자 주인공이 호수가 보이는 오두막에서 이틀에 걸쳐 쓴 유서를 소설 형식으로 실어 놓았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반쪽인 에이린을 만났던 시절부터 회상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일들, 숨겨왔던 비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버트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옛 애인인 마리안네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안네와 옛 관계를 이어간다면 아들 크리스티안과 아내 에이린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알버트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을 한 그는 유서를 남기기로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 앞에서 알버트는 분노를 느낀다. 고작 왼손가락 몇 개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려는 것일까?



죽음 앞에 어쩔 수 없는 좌절과 분노 그리고 남겨질 가족들과 그들과의 추억이 이 책 속에 담담하게 담겨 있다. 사실 죽음은 담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알버트처럼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그 충격은 더 클 것이다. 알버트가 간 오두막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곳이다. 알버트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자 했다. 가족에게 남기는 유서를 통해 그는 삶과 사랑을 생각할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죽음은 참 무섭고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여전히 어둡고 무섭다. 그럼에도 공포로만 남겨둘 수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이다. 책을 통해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내 신체 기능이 하나둘 사라져 결국은 식물인간의 상태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슬프고 괴로울 뿐이다. 매 시간마다 아니 매분 매초마다 내 삶을 타인의 정성과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참하기 짝이 없다.”(p.124)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알버트는 동화 속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마음을 먹은 알버트는 오두막에 있는 방명록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아내 에이린을 처음 만났던 19살 때다. 당신 1살 연상의 애인 마리안네가 있었던 알버트는 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에이린과 마주친다. 사실 둘은 아무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어도 교정에서 서로를 찾느라 분주했다. 물론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날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린은 알버트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한다. 아주 긴 시간 동안의 드라이브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화 속의 오두막을 마주한다. 주인 몰래 들어간 오두막에서 그들은 또 다른 추억을 쌓게 된다.



시간이 지나 둘은 결혼을 했고 둘 사이에서는 크리스티안이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사랑도 권태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듯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뻐걱대기 시작한다. 바쁜 개인의 일정과 조금씩 식어가는 감정은 그들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그 오두막 매매에 관한 광고를 보게 된다. 알버트와 에이린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오두막으로 향한다. 아들에게는 그동안 비밀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그곳에서 그들은 옛 추억에 잠긴다. 나룻배를 타고, 빨간 스웨터을 입고 있던 에이린의 모습, 몰래 들어간 오두막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침대에 누워 피로를 풀었던 기억까지... 오두막 구입을 통해 그들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간다.

몸을 잃은 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으리라는 상상이 종종 우리를 두렵게 한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 짐작해 봤을 감정이다. 육체 안에 갇힌 채 정신으로만 세상을 유영할 때, 그것은 지옥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고 저자는 알버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토록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이십사 시간 내에 고뇌를 끝내야만 하는 그는 끝내 ‘살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죽지 않기’를 선택할 뿐이다. 그의 용기는 가족들로부터, 우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고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그의 선택이 느리게 납득된다. 삶과 질병에 대해, 더 나아가 사랑, 우주의 문제로까지 번지는 노 철학가의 사유를 좇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에 대해서도 통렬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빌었지만 사건보다는 사색, 심리보다는 사유의 나열에 가깝다. 앞뒤의 인과 관계가 분명하지만 사건 위주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책의 뒷부분 철학자 강신주의 「작품 해설」을 통해 『밤의 유서』는 '두 번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소설이지만 약 17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다. 두 번 읽어야 할 소설이므로 340페이지 정도의 장편소설인 셈이라는 재미있는 해설을 붙여놓았다.

"한 번은 알버트가 되어 죽음의 문제에 몰입하고, 한 번은 알버트가 아닌 자신으로 돌아가 알버트의 극적인 변화를 이해하려고 할 테니 말이다. 요슈타인 가아더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보다 독자들이 죽음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기를 원했던 듯하다. 가히 철학자답다."(p.181~182)



사실 20세기까지만 해도 철학이 실체 없고, 무용한 것이며 심지어 난해하기까지 하다는 이유로 대중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십여 년 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이룬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요슈타인 가아더다. 그는 전작 『소피의 세계』에서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쉽게 표현하면 철학적 내용을 소설로 쓰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대신 짧은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철학적 사색을 나열하지 않고, 독자들이 스스로 체화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바로 『소피의~』의 핵심이다.방대한 서양 철학을 독특한 소설 구조 속에 녹여내어 철학 이해의 장벽을 낮추고 철학을 우리의 삶에 보다 가까이 끌어와 철학 대중화의 성공적인 예로 평가받아온 작품이 『소피의 세계』다. 부제 「소설로 읽는 철학」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철학에 관한 소설이지만 단순히 철학 소개를 위한 흥미 위주의 소설은 아니다.



저자 : 요슈타인 가아더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오슬로 대학에서 사상사와 신학, 북유럽 문학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철학, 신학, 문학을 가르쳤다. 1986년 첫 번째 단편소설집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어 여러 편의 소설과 단편을 비롯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들을 썼다. 1990년 가아더는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Kabalmysteriet』에서 열두 살 소년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존재에 대한 성찰에 가 닿는 이야기를

선보이며 그해 노르웨이 문학비평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아동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때 가아더는 젊은 독자들에게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이듬해 『소피의 세계 : 소설로 읽는 철학』을 펴냈다. 철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꼽히는 이 책은 전 세계 64개 언어로 번역되어 45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후 그는 전업 작가로 전향하여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대표작 『소피의 세계』를 통해 청소년 소설 작가로 주로 알려지긴 하였지만, 그의 소설 다수는 어린이부터 성인 독자층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았고, 능수능란한 메타픽션 요소 활용으로 문학성과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다. 1993년 『거울 속, 수수께끼 속에서I et speil, i en gåte』로 노르웨이서점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 그 밖에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1994), 이탈리아 반카렐라상(1995) 등을 받은 그는, 2005년 그간의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노르웨이 성 올라브 훈장 기사 및 더블린 트리니티대학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편, 가아더는 1997년에 아내와 함께 국제 환경상인 ‘소피상’을 제정하여 2013년까지 운영한 바 있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인권 향상과 지속 가능한 개발 지원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내와 성인이 된 두 아들과 함께 오슬로에서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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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 적게 벌어도 잘사는 노후 준비의 모든 것
요코테 쇼타 지음, 윤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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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얼마 전 아버지를 잃었다. 평소 지병이 있던 터라 장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기에 가족들의 간병이나 병원에서의 길지 않은 시간은 크게 불편해 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족 특히 어머니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드신 것을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간병에 직접 나선 것은 간병인의 손에 아버지의 24시간을 오롯이 맡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때의 처치는 어머니로서는 간병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셔서 간병을 자처하신 것. 거기에는 간병인의 간병비도 한몫 했다. 한 달 250만~300만 원으로 생각보다 비쌌고 막상 닥치니 생활비보다 많이 들어간 데 어머니로서는 마음이 불편하신 것 같았다.

자식된 도리로 마땅히 독자가 부담해야 하나 독자의 수입으로는 모두 부담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가 전담하시게 됐다. 그러나 어머니도 연로한 몸에 처음 해보시는 간병이 쉬울 리 없다. 거기에 한정된 공간에서 간병과 어머니의 식사, 수면이 모두 처리돼야 하기 때문에 힘겨운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만류하는 독자에게 "해볼 만하다"로 일축하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홀로 그 일을 해내셨다. 간병비 아낀 것만 해도 수천만 원에 아버지로서는 더 없이 편안해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간병은 돈을 떠나서라도 정말 아버지에게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나이 들고 노인이 되고, 노후에 닥칠 문제를 언젠가는 겪어야 한다. 영양 상대 양호, 의료 수준의 눈부신 발달로 '100세 시대'란 말이 나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됐을 정도다. 100세 시대에 알맞은 노래로 발표한 후 공전의 히트를 치며 절정의 인기를 누린 '내 나이가 어때서'도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노래는 지나간 유행가가 됐다. 그만큼 100세 시대는 우리 곁으로 다가온 지 오래됐다. 50세를 중년의 시작으로 본다면 100세 기준의 절반이 '노후 50년'이다. 무려 50년이나 남은 인생 후반전을 잘 살아내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지금 사회 보장 제도나 의료 수준 등은 눈에 띄게 발전했지만 아직 100세 시대에 맞는 사회보장은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다. 고령화, 젊은 인구 감소, 경제적 난관,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100세 시대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돼 가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을 축복하고 감사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가정에서, 사회에서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100세 시대는 '사회악'이 될지도 모른다.

50세를 맞이하며 인생 후반에 들어가면서 생각해야 할 대상은 나도, 자식도 아닌, 우선 ‘부모’다. 부모의 노후생활, 특히 간병 문제가 중요해진다. 독자가 앞서 언급한 대로 한 가정의 모든 힘이 간병에 쏠리게 된다. 자식된 도리로 남편이나 아내 둘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머지 한 명은 일을 그만두고 간병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정년이 아직 남았는데도 조기퇴직 후 부모를 간호하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직장을 관두지 않고도 아픈 부모를 돌보는 방법은 없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독자는 외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형제간의 다툼 즉, ‘상속 분쟁’이다. 형제자매와 별 문제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부모가 사망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부모가 살아계실 때 했던 기여도와 수입이 각자 다르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에 처한 상황과 사는 환경도 달라지는 등 이미 벌어진 격차에 따라 서로의 입장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우리 가족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추후 부모의 재산은 어떻게 분배하고 관리해야 할지 반드시 미리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의 저자 요코테 쇼타의 주장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세부터 100세까지, 각 연령마다 발생할 노후 문제와 해결책을 연표식 구성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일본 중장년층으로부터 ‘초초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노후 매뉴얼’이라는 극찬을, 노년층에게는 ‘자녀에게만큼은 꼭 알려주고 싶은 책’이라는 평을 받으며 일본 아마존 ‘화제의 신간’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일본도 그렇다지만 우리 나라 역시 60세를 넘어서면 연수입은 절반으로 삭감되고,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등 정년퇴직의 압박과 충격으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책에 따르면 가정에서는 첫 손주 탄생의 기쁨도 잠시 자식 부부와 갈등이 시작되고, 이에 따라 노인성 우울증에 걸리거나 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진다. 수입이 줄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커지는 시기인 만큼 자산 관리와 건강관리가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에 연금 수령은 몇 살 때 받는 것이 가장 이득인지 역산해보고, 그동안 꼬박꼬박 부어온 보험과 재테크, 예·적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미리 계획을 세워본다. 뿐만 아니라 노인성 우울증을 자가 진단해보고, 세로토닌 분비 활동과 식단 등 정신적·신체적 관리법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또 70대와 80대는 의료비에 간병비까지 겹쳐 인생 최대의 경제 손실이 닥치는 시기다. 또한 힘들게 마련한 집을 급매로 처리하거나 보이스피싱, 부동산 사기에 당하는 등 잘못된 판단으로 재산을 잃기 십상이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치매다. 60대의 우울증이나 암과는 달리 치매는 일단 증상이 보이면 완치되지 않는 질환이다. 게다가 평생 모은 예금이나 부동산, 증여 및 상속조차 할 수 없어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대비해 가족과 언제, 무엇을 꼭 빼놓지 않고 상의해야 하는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미리 챙길 수 있다. 정년 때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쌓아올린 인생이 노후를 맞으면서 '행복'이 아니라 '지옥'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미리 짚어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썼다. 몇 살쯤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알고 사전에 대책을 세운다면, 남은 인생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살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도 있다.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지만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 요즘 같은 때, 여유롭고 풍요로운 노년의 삶을 꿈꾼다면 이 책 한 권으로도 나만의 노후 시나리오를 작성해보면서 '행복'한 노후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책은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 결과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높다고 한다. OECD 평균인 14.8%의 약 3배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해마다 29만 명씩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2041년에는 인구 셋 중 한 명은 노인이 되며, 2048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7.4%를 차지해 OECD 국가 중 가장 나이 든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고령 인구의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는 데 반해,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더 극심해진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국가는 개인의 노후 사정을 하나하나 돌봐주지 않는다. 이 문제를 초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먼저 겪었다. 이 책의 저자 요코테 쇼타의 말에 따르면 일본 역시 돌봄(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급증하면서 개인이 부담하는 간병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부모의 간병으로 인한 조기퇴직자 수가 늘고,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점점 높아지면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노후 파산을 겪고 있는 게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노후를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일본 고령자들의 말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비나 결혼 비용, 집 값 등 뒷바라지에 노후자금을 대느라 여유자금이 부족한 경우가 더 많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노후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연금을 60세부터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가능한 한 빨리 받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국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60세부터 받는다면 연금 수급액이 30퍼센트나 깎인다. 20만 엔을 65세부터 받을 예정인 사람이라면 14만 엔이 되니 자그마치 6만 엔이나 줄어드는 것이다. 일찍 받을 수 있다 해서 일찍 받았는데 이런다니, 그야말로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다. 60세인데 재취업도 결정되지 않았고 아직 다 갚지 못한 대출금이 많이 남았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줄어든 수급이라도 받고 싶어질 것이다. 실제로 60세부터 받는 사람이 30퍼센트나 된다. 만약 76세까지 산다면 65세부터 받는 편이 당연히 이득이다.

- 「65세, 아무 생각 없이 받은 연금, 결국 손해를 보다」 중에서



저자 : 요코테 쇼타

1972년생으로 일본 최고의 노후설계사로 손꼽힌다. 부동산 회사인 일본재탁(日本財託)에 근무하며 연금, 상속과 같은 자산 문제를 주로 담당했고 수만 건 이상의 상담을 진행했다. 부동산, 유산, 이혼 등 법률적인 조언과 자녀 및 인간관계, 치매와 암을 비롯한 건강관리 등 복잡한 노후 문제들까지 탁월하게 해결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가족신탁’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지금껏 250세대가 넘는 가정을 전담 자문해왔으며, 총 790억 원에 이르는 고객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초초고령 국가인 일본에는 무수한 노후 전문가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1급 노후설계사답게 300억대 자산가부터 의사, 국회의원, 대학교수, 농부, 자영업자, 사업가, 기술자 등에 이르기까지 고객층이 매우 폭넓다. 고객의 자산규모나 직업, 연령, 가족의 형태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맞춤형 노후 전략과 인생설계를 제시해온 그는 NHK 방송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와 〈월간문춘〉, 아사히TV 〈와이드! 스크럼블〉 등을 비롯해 일본 주요 언론 매체에 다수 출연하며 ‘국민 노후해결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역자 : 윤경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손정의처럼 일하라》, 《일 잘하는 사람은 왜 사우나를 좋아할까》, 《뇌에 맡기는 공부법》, 《빡치는 순간 나를 지키는 법》 외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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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끝내는 대화의 기술 - 일, 사랑, 관계를 기적처럼 바꾸는 말하기 비법
리상룽 지음, 정영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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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시간에 끝내는 대화의 기술』은 말 그대로 말 잘하는 비법(?)을 담았다. 저자 리상룽은 '말하기'로 중국에서 이미 인정을 받았다. 그는 말 잘하기로 시작해, 성공적인 사업까지 이끌어낸 '열혈 청년'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관계, 직장 내 소통, 정확한 의사전달, 스토리텔링과 갈등 해소라는 4가지 틀로 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제목만 훑어봐도 실전과 이론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잘 정리돼 있다. 이미 비지니스 말하기의 전형으로 습관화 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론과 실용성을 겸비했다고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제목만 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사례로 흥미와 이해를 돕고, 문제를 제기한 후 그 배후 근원을 살펴 지극히 실용적이고 타당한 방안을 제시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원하는 바를 얻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사랑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가정, 직장, 사회에서 어려움을 느낀 독자라면 '아, 맞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내용이 책 곳곳에 들어 있어 설득력과 신뢰감을 더해 주는 것이 돋보인다.말을 잘 한다는 것은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을 완전히 숙지해 머릿속에 잘 정리돼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상대방의 태도 등 여러 가지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말의 속도, 고저장단, 전문용어와 유머의 가감 등을 조절한다면 성공적인 대화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생활에서 말하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날 말하기 기술은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평가 잣대다. 또한 말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직장이나 가정,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중에는 말하기와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자신의 인생을 통해 말하기의 효과를 증명한 예는 드물다. 특히 저자는 두루뭉술하게 말하기 원칙론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말하기 비결을 알려준다. 저자는 풍부한 사례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살려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예부터 말 잘하는 것은 출세의 기본이라는 것이 세상의 기본 조건이었다. 사회에서의 성공 요건으로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꼽았다. 인물 선택의 가장 기본적인 4가지다. 이는 사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말씨(言辯)·글씨(筆跡)·판단(文理)의 네 가지를 꼽았던 덕목인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인물 선발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때와 달라진 것이라고는 글씨를 컴퓨터로 쓰는 바람에 글씨가 빠질 뿐이다. 여기서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이 네 가지 조건을 신언서판이라 하여, 당나라에서는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덕행·재능·노효(勞效)의 실적을 감안한 연후에 등용하였다고 한다. 우리도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들여오며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은 긴장되고 힘든 일이다. 특히 내성적인 사람은 더하다. 저자는 자신도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이 책에서 고백한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으며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도 같은 처지라고 느낀다면 적극적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를 어떻게 이겨내고 인생의 성공을 이뤄냈는지, 그 비결인 4P 법칙을 공개한다. 이 책을 출간한 이유다.

살면서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기술은 더없이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 저자는 내성적인 사람을 위한 4P 법칙 외에도 일, 사랑, 관계가 술술 풀리는 소통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갖가지 사례를 뒷받침하여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게 한다. 방법만 안다면 누구나 소통의 고수가 될 수 있다. 이제 더는 두려워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 책에 적힌 대로만 실천하면 일도 사랑도 원하는 대로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4개의 파트로 구성돼 있다. PART 1 관계의 벽을 허물고 이어주는 말, PART 2 말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PART 3 사고를 리드하는 연설에 주목하라, PART 4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등 4개 파트를 근간으로 각 파트에 소제목을 두고 사례와 대화 과정, 주의할 점과 강조하는 점 등 상세하고 경험을 위주로 게재했다. 독자들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자신이 약한 부분을 집중해 읽어도 좋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구분 정리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① 부부싸움 근절과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방법

② 이성 간 소통 방법

③ 친구 사이의 소통 방법

④ 자녀와의 소통 방법

⑤ 직장 내 소통능력 높이기

⑥ 상사와의 소통 방법

⑦ 부하직원과의 소통 방법

⑧ 승진과 임금 협상, 퇴사하는 방법

⑨ 협상의 고수가 되는 방법

⑩ 소개팅에서 말하기

이 외에도 효과적인 연설 방법, 갈등 해소 방법도 나와 있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관찰과 평가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관찰과 평가를 분리해서 말해야 관계가 화목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들은 양치를 잘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평가다. “내 아들은 이번 주에 두 번, 양치를 안 하고 잠을 잤다.” 이렇게 사실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에는 구체적인 소통의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어려움을 다루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가벼워지는 인간관계에서 내향적 성격이 불리한 건 확실하다. 그러므로 내향적 성격을 바꾸어보자. 이것이 어렵다면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 가꾸면 된다.(p.103)

유머는 사상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적절한 지식을 동반한 유머라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더 쉽다. 유머에 통찰을 담아보자. 통찰로 얻은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통찰한다면 유머 그 이상의 풍자와 해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 실없는 유머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p.196)

갈등을 마주했을 때 두려워하지 말자. 갈등은 엉킨 실타래와 같다. 풀고 싶다면 먼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갈등의 시작점을 찾는 데 집중하자. 그러기 위해서 상대의 말을 전심으로 듣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p.262)



저자 : 리상룽

2008년 우리나라의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중국 국방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주최하는 영어 경연 프로그램인 [희망영어(希望英語)]에 참가하여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날리기 시작했다. 2010년 11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대학생 영어 말하기 대회에 교내 대표로 참가, 사관학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같은 해에 전군(全軍) 2등 공훈의 영예도 차지했다.

2011년, 가족들과 대학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대학을 자퇴하고, 중국의 영어교육 그룹인 ‘신동방(新東方)’에 입사, 최연소 인기 강사 대열에 올랐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저자의 끊임없는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고, 2013년에는 청춘을 소재로 한 영화 [길 위에서(在路上)]를 직접 연출, 160만 뷰를 돌파했다. 이후 [변질된 선택(變質的選擇)]과 코믹 단막극 [붕괴청춘(崩潰靑春)], 인터넷 영화 [꿈을 자른 사람(斷夢人)]을 연출, 평단의 찬사를 받는 신예 감독이 되기도 했다.

저자가 밀리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2015년이다. [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과 [친구들 무리와 어울린다고 여기지만 실은 젊음의 낭비일 뿐]이라는 글이 중국을 대표하는 일간실문 인민일보(人民日報)에 게재되면서, 무려 천만 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저자의 다른 글들도 웨이보, 위챗, 모멘트, 즈후 등 중국의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저자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중국 내 수백여 출판사가 리샹룽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하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러 본서가 출간되었다. 그 결과 리샹룽의 책은 한중 양국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본인 스스로 중국 최고의 열혈청춘이자, 중국의 피 끓는 수억 청춘의 멘토로 자리 잡은 이가 바로 리샹룽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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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별 - 슈니츨러 명작 단편선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이관우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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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 많다. 때문에 지독한 가난과 싸우다 병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천재적' 예술가들에 속하며, 시대에 저항적이거나 혹은 반정부적, 사회 부조리에 비판적인 인물들이 많다. 주류로부터 배척 당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다가 예술혼을 불태우며 생애를 끝마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후에 빛을 본 예술가들 중에 사회 부조리만큼 자신도 타락한 삶을 살다가 비극적 생을 마감한 인물도 있다. 천재적이라기보다 '동일화'했다고 말해야 할까?

이 소설집의 저자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인 의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1886년부터 병원에서 일했고 1893년에는 자신의 병원을 개업했으나, 생의 대부분을 작가로 활동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주로 희곡을 집필했으며, 후고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과 친구였고, 스스로 자신의 ‘정신적 도플갱어’라고 칭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는 오랫동안 도나우 왕정의 퇴폐를 묘사하는 작가로 낙인 찍혔으며, 모든 작품에서 당시 빈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서 풍속 묘사가로, 그의 문학은 '오락 문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작가에 대한 지식 없이 작품의 성격만 듣고 읽기를 희망했던 슈니츨러가 손에 들어온 독자의 기분은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당시 슈니츨러의 문학에 대한 이러한 평가절하는 무대를 사회비판의 장으로 바꾸어놓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1960년이 지나서야 슈니츨러는 사회전통의 압박, 소외, 고독, 자유와 헌신, 거짓과 실제에 대한 갈등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작가로 평가되었으며 체호프처럼 위대한 인간묘사가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1914년까지 슈니츨러의 희곡은 오토 브람(Otto Brahm)의 연출로 빈 부르크테아터뿐만 아니라 베를린극장에서도 가장 많이 상연된 작품에 속한다. 슈니츨러는 1931년 사망할 때까지 멸망한 사회의 연대기 작가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그가 뒤늦게 단편소설 쪽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1960년경에야 비로소 연극 감독인 아들 하인리히 슈니츨러의 활약으로 슈니츨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해외저자사전)

작가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도박과 낭비로 수차례 어려움을 자초했고, 젊은 시절의 여성 편력은 카사노바의 환락과 모험을 옮겨놓은 듯했다. 실존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또는 병적인 그의 삶은 14세 때부터 죽는 날까지, 처음 3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에 담겨 있다.



1895년 단편 「죽음 Sterben」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같은 해 빈 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된 「사랑의 유희 Liebelei」를 통해 드라마 작가로서도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수련의 시절부터 히스테리와 최면 등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를 다루는 정신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관심은 그의 문학에서도 드러난다. 작가 슈니츨러는 ‘내적 독백’과 같은 혁신적인 서사기법을 통해 인간의 은밀한 내면과 무의식을 여과 없이 표면으로 끌어낸다. 장교, 예술가, 의사 등 당시 빈의 부유한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의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비판에 부딪치기도 했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장교의 1인칭 독백을 담은 소설 『구스틀 대위 Lieutnant Gustl』(1901)로 명예재판에 회부되어 제국의 장교신분을 박탈당한다. 성적 타부를 건드리는 연작 드라마 「윤무 Der Reigen」는 외설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카사노바의 귀향 Casanovas Heimfahrt』(1918), 『엘제 양 Fraulein Else』(1926), 『꿈의 노벨레 Traumnovelle』(1926)를 통해 세기말 빈 시민사회의 위선과 이중적인 윤리의식을, 『트인 데로 가는 길 Der Weg ins Freie』(1908)에서 반유대주의, 세기 전환기의 몰락해가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 사회, 민족주의와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무기력한 빈 부르주아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 『아나톨(Anatol)』, 『사랑의 유희(Liebelei)』, 『윤무(Reigen)』, 『광활한 땅(Das weite Land)』, 『베른하르디 교수(Professor Bernhardi)』 등을 들 수 있다. 만년에는 희곡보다 소설을 썼으며,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구스틀 소위(Leutnant Gustl)』, 『엘제 양(Fraulein Else)』, 『야외로 가는 길(Der Weg ins Freie)』 등이 있다.



이 소설집 『어떤 이별 : 슈니츨러 명작 단편선』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오스트리아를 대표한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편들을 모은 고전 명작 단편선이다.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구스틀 소위」, 「눈먼 제로니모와 형」을 비롯하여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은 「홀아비」, 「친숙한 여인」, 「안드레아스 타마이어의 마지막 편지」, 「새로운 노래」, 「총각의 죽음」 등 모두 15편의 단편이 발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발간 의미가 크다.

이관우 역자에 따르면 슈니츨러는 죽음과 성(性)의 문제를 문학에 녹여 내며, 특히 같은 시대를 산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정신분석의 기법을 통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예리하게 묘사한다. 이 책 속의 대다수 작품 또한 남녀 사이의 사랑과 증오를 그리면서 나아가 그것과 연관된 죽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다양한 양태로 등장하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타산적인 성향과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심리를 세밀하게 다룬다. 이처럼 죽음과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인간의 속성 묘사는 문학을 넘어 심리분석학적 경지에 이를 정도로 치밀하다. 슈니츨러가 문학에서의 프로이트라고 불리는 이유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바탕을 둔 듯 인물의 내면세계로 깊이 파고들어 인간의 위선과 약점을 예리하게 들춰내는 심리묘사에 있다.




무엇보다도 슈니츨러는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눈앞에 드러나는 표면적인 것에 머물 뿐, 그 배후나 밑바닥에 감춰져 존재하는 또 다른 힘을 보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경우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죽음이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단편 중 「상속」, 「3종의 영약」, 「친숙한 여인」, 「라이젠보크 남작의 운명」, 「새로운 노래」, 「삼중의 경고」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죽음이 그러하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여러 죽음과 다양한 사랑,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심리 변전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깊은 내면을 어느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상속」의 경우 일반적으로 상속이라고 하면 뜻하지 않은 거액의 상속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때로는 영 달갑잖은, 상식을 벗어나는 불쾌한 체험이 '상속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사람이 죽는 것도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이 소설에서는 놀랍게도 오랜 동안 달콤한 불륜의 순간을 공유하던 정부(情婦)가 죽고 그 법적 남편이 찾아와 시비를 가리자며 결투를 청한다. 결투는 당시 슈니츨러의 시대로부터 200년 전에 없어진 서양의 풍습이다. 한창 나이의 젊은 여성이 갑자기 죽듯, 총알 한 방이나 샤브르의 한 획에도 깊은 상처를 입어 생명을 잃기도 하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육신과 욕망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 책의 표제작인 「어떤 이별」도 불륜 이야기이다. 「상속」과 비슷하게 여기서 알베르트와 안나는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하는데 그 원인은 안나의 뇌(腦)티푸스로 인한 죽음이다. 다른 점은 알베르트는 끝내 자신이 고인에게 누구였는지 밝힐 수가 없고 그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도 다 사정을 모른 채 일단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만 몰입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버젓이 남편이 있었음을, 아니 알베르트를 '오빠'로 착각한다. 알베르트는 지금 애인이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 미치기 직전인데 그걸 누구한테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과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Die Toten schweigen」) 익숙한 표현이 소설의 제목이다. 슈니츨러의 단편 소설 제목인 줄 몰랐던 한국 독자들도 마치 한국어 격언이라도 되듯 문구 자체가 낯설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는 분량이 28페이지나 되니 꽤 긴 편이다.

"이봐, 오늘 프라터에서 마차를 타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 없어.)"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어. 하지만 누군가가 우연히 우리를 들여다볼 수도 있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지."

"부탁인데 우리 다른 곳으로 가."

"자기 좋을 대로 하자."(p.80~81)

마차를 타고 공원의 돌며 밀회를 즐기는 불륜 관계의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 19세기 비엔나의 유한 귀족들의 타락을 엿볼 수 있는 대화가 오간다. 주위엔 별로 관심 갖지 않고 버젓이 자신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요즘도 밀회라면 남들 눈을 피해야 할 텐데 19세기 유럽 귀족들은 시내 공원을 밀회 장소로 택할 정도였다는 점을 드러내는 작가의 의도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륜, 사회 부조리, 귀족의 성적 타락 등만 슈니츨러의 관심을 끈 것은 아니다. 「눈먼 제로니모와 형」은 형제애를 다룬다. 이 작품에서 카를로가 어렸을 때 장난을 치다 동생 제로니모의 시력을 잃게 만든다. 그 후로 성인이 된 카를로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구걸을 해 동생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나 어느 날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제로니모에게 다가와 "형한테 내가 금화 한닢을 주었는데 혹시 형이 다 차지하지 않게 조심할 것"을 귀띔한다. 물론 특별한 이유없는 거짓말이다. 지금껏 동생을 성심껏 돌봐온 그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고 그런 큰돈을 적선 받은 적도 없다. 그러나 동생은 이제 형을 계속 의심하게 된다. 형은 의심을 그칠 줄 모르는 동생 제로니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생각으로 진짜 금화 한 닢을 훔친다. 그러나 동생은 의심을 거두기는커녕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형이 자신을 속였을지를 생각하며 본노한다. 이때

경찰이 찾아와 절도 혐의로 두 형제를 체포하려 든다. 동생 제레니모는 형이 큰돈을 적선 받은 적이 없었으며 어떻게 해서 금화를 손에 지녔는지 모든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 제레니모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형은 다시 안식을 찾은 동생을 보고 "더 바랄 게 없다'며 마음을 놓는다. 미국 역사의 위대한 인디안 추장 제로니모와의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나게 해 슬며시 혼자 미소지어본다.

장편 전성시대에 오랜 만에 읽어보는 단편소설의 간결하고 사회 풍자가 강렬한 작품을 읽으니 맑은 하늘처럼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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