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프 - 불확실성 속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힘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김태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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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내재적 불확실성을 이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이 책 『블러프』의 저자 마리아 코니코바의 말이다. 도박판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용어가 자주 쓰인다. 이길(돈을 딸) 확률 얘기다. 어떤 일이든 선택의 결과가 결국 운에 달려 있다면 인생은 결국 '주사위 던지기'와 다름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혹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3에서 4나 5로 늘릴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겪게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신인 선수를 선발할 때, 투자할 주식을 고를 때, 선거 결과를 예측할 때, 진로를 결정할 때 그리고 포커 경기에서 베팅을 더 해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까지. 상황을 둘러싼 정보와 변수를 모두 고려하지 못했음에도 섣부른 결정을 내리고 손해를 반복한다. 인간의 한계이고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인가. 이같은 의문이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를 포커판으로 끌어들인 이유다.



저자는 포커를 통해서 제한된 정보 속에서도 올바르게 판단하는 방법, 운이 따를 때도, 따르지 않을 때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비롯해 삶 전체에서 보다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블러프』에서 포커 판에서 얻은 통찰과 심리학ㆍ행동경제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로 운과 실력의 경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 확률적 사고에서 인간이 가진 한계, 감정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몰입하는 기술 등을 짚어가며 우리가 사고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대한 비밀을 풀어간다.

왜 하필 포커였을까? 포커 경기는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영역(내가 가진 카드와 테이블에 놓인 카드)과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상대방이 가진 카드)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이 개입할 틈이 없는 체스와 순수하게 운에 좌우되는 룰렛과 달리 불확실한 정보와 확실한 정보가 공존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운과 실력 사이의 설명하기 힘든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삶을 반영’하는 게임이다. 저자가 포커판으로 달려간 이유다.



앞서 말했듯이 마리아 코니코바에게 포커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포커를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삶을 플레이하는 법’을 배우는 게 목표였다. 생전 포커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던 그는 이 책의 출간으로 1차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1년 만에 포커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는 그가 하버드대학교를 나오고 5개 언어를 구사할 만큼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포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에릭 사이델의 가르침을 받은 것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하버드 출신 심리학자와 세계 최고 포커 선수가 함께 펼치는 모험담은 마리아 코니코바가 에릭 사이델에게 포커를 가르쳐달라며 무턱대고 찾아간 일로 시작된다. 돈이 아니라 인생과 세상의 법칙을 배우고 싶다는 얘기에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라스베이거스부터 시작해 마카오, 몬테카를로, 바하마 등 전 세계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는 포커를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을 배우는 데 성공했을까? 인생과 세상을 법칙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인간의 뇌에서 나오는 최고의 속임수다. 이는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 마이클 루이스의 말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 이를 최고의 ‘블러핑(속임수 혹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미는 조금 다르다. 바로 이 착각 또는 속임수가 우리를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기술, 능력,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 말이다. 믿음 또는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가장 불운할 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의 정도,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 운과 실력의 비중을 알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성공 가능성이 70퍼센트인 문제를 앞두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확률은 장기적 차원에서는 일관성을 보이지만, 단기적 차원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30퍼센트에 포함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성공 확률이 99퍼센트라면? 주사위를 여섯 번 던졌는데, 모두 1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물론 1만 번 정도 던지면 여섯 개의 숫자가 비슷한 비율로 나오겠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기술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더 노력한다면 다음에 성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책은 소제목을 보면 저자의 포커 수업(?)과 하나씩 정복(?)해가는 과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소제목만 열거해도 어떤 점이 중요한 지 독자들은 판단할 수 있다. 저자의 저술 능력과 함께 편집자의 능력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1.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

2. 심리학자, 포커 판에 뛰어들다

3. 삶의 불확실성에 베팅하기

4. 실패로부터 배우는 법

5. 최고의 사냥꾼은 최고의 관찰자다

6. 초심자의 행운이란 없다

7. 당신은 운의 희생자인가, 승리자인가

8. 몰입의 기술

9. 스토리텔러의 게임

10. 우리의 선택은 룰렛보다 복잡하다

11. 마음을 읽는 법

12.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건 나 자신

13. 두려움과 절망의 판에서 벗어나는 법

14. 운은 이긴 자의 손을 들어준다

15. 잘못된 믿음이 부르는 비극

16. 불확실성의 게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저자가 포커 얘기를 꺼내면서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독자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한다. "내가 할 이야기는 사실 포커와 거리가 먼 결정들에 대한 통찰이다. 카지노에서 배운 교훈을 해석해서 일상적으로 내리는 결정들과 드물게 내리지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결정들에 적용한 것이다. 비단 감정을 다스리는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손실을 줄이는 한편 이익을 극대화하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블러핑을 잡아내고 자신마저 성공적으로 블러핑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포커의 활용도는 무한하다. 포커 테이블에서 이뤄지는 운과 기술의 혼합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혼합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우월하게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운이 아니라 과정에 주목하라.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사고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정보를 모으고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해도 상관없다.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고 결국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둘째, 실패로부터 배워라. 이때 비판적 사고와 자기 평가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이 부분은 메타인지를 향상시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문제점을 찾아내고 분석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셋째, 스토리텔러가 되어라. 인과 관계로 엮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일관되게 만드는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항상 '왜?'라고 물어야 한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지? 나는 왜 이렇게 했을까? 항상 물어야 한다. 이렇게 제대로 생각하면 제대로 행동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결론은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게 만든다.




저자 : 마리아 코니코바

사회 심리학 분야의 광범위한 연구를 다루는 통찰력 있는 분석가이자 떠오르는 차세대 저술가로, 세심한 연구와 뛰어난 서사방식을 통해 주제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현재 컬럼비아 대학 동기과학센터(Motivation Science Center)의 샤흐터 라이팅 펠로(Schachter Writing Fellow)로 근무하고 있으며 <뉴요커>에 심리학과 문화를 주제로 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빅씽크>, <애틀랜틱>, <뉴욕타임스>, <슬레이트>, <파리 리뷰>, <월스트리트 저널>, <보스턴 글로브>, <옵저버> 등 다양한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창작, 행정을 전공하고 차석으로 졸업했으며, 재학 당시 세계적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박사의 지도 아래 완성한 학위 논문으로 하버드대학교 최고 논문상(Hoopes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학 문학 석사,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전에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PBS의 Charlie Rose Show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팟캐스트 The Gist와 The Grift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첫 번째 책 《Mastermind: How to Think Like Sherlock Holmes》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17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책인 이 책 《뒤통수의 심리학》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캐나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16년 과학적 회의주의 탐구위원회(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에서 수여하는 Robert P. Balles 상을 수상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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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몽냥처럼 - 웹툰보다 더 내밀하고 사랑스러운 몽냥 에세이
몽냥 이수경 지음 / 꿈의지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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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랑한다면 몽냥처럼』은 이른바 '닭살 돋는' 표현이 많다. 그러나 신조어라 할지라도 정확하게 쓰였거나 진정성이 충분히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들은 미소 지으며 읽기를 멈출 수 없다. 표제어에 쓰인 '몽냥'은 저자가 만든 신조어이다. 아마 강아지(보통 멍멍이에서 따온 듯)와 고양이(최근 '냥이'로 통칭함)를 합친 단어인 것 같다. 남편을 멍멍이의 '멍', 아내인 저자 자신을 '냥'으로 지칭한다. '몽냥부부'란다. 결혼 10년이 넘었는데도 꽁냥꽁냥 산다(꽁냥꽁냥은 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예스럽게(?) 표현하면 '알콩달콩' 산다는 의미다. 알콩달콩은 '연인끼리 가볍게 스킨십을 하거나 장난을 치며 정답게 구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어로 우리 고유어이다. 저자는 인스타그램에서 10만 팔로워가 사랑하는 '몽냥툰'의 이수경 작가다. 에세이도 카툰 못지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읽기 편안하고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되는 독자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적가다. 첫 에세이라는데 글쓰기에 겁이 없는 듯하다. 글의 흐름이 극히 자연스럽고 과감한 포인트에 힘을 준다. 독자들에게 리듬을 타며 읽히기에 좋다. 그래서 글쓰기에도 고수의 냄새가 풍긴다. 힐링 도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듯하다. '인스타툰'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더 내밀하고 더 사랑스럽고 더 보들보들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한다. 외롭고 서툴고 우울했던 시간을 지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몽이와 냥이다.

 


 

그들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눈에 보일 듯 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무뚝뚝한 듯 냥이는 몽이 온도니(엉덩이를 혀 약간 짧은 발음으로 말하면 '온도니'라고 발음된단다)를 톡톡 치는 것이 예사다. 남편 몽이 앞에만 서면 '변태냥이', '애교냥이'로 변한다고. 서로를 탐하고 만지고 알아가며 비로소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꽁냥꽁냥 몽냥의 웃음과 눈물과 폭풍 공감의 사랑일기다.

저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애교 많은 여자로 바뀔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과거를 숨김 없이 고백한다. "8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 내 방으로 돌아오면 나는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았다. 깜깜한 그곳에서 자주 혼자였다. 얇은 유리창 하나 겨우 나 있는 상자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미동도 없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시간이 멈춘 듯 오래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무서움, 쓸쓸함, 심심함, 무료함. 온갖 단어들을 반죽해서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 같은 기분. 하루의 끝에는 언제나 조금 취한 채였고, 혼자 아무렇게나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것 말고는 지루한 시간을 보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대기업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많은 상처가 있었다. 남편 몽이도 그렇지만 저자도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마음의 그늘이 있을 것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애써 명랑한 듯(진짜 명랑한 성격은 아닌 듯하다) "까칠한 냥이와 순딩순딩한 몽이는 둘 다 이혼가정에서 자랐다.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다 그렇진 않겠지만) 행복한 부부, 닮고 싶은 어른을 보지 못하고 자란 둘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특히 예민했던 냥이는 오랫동안 비혼주의였다. 늘 조금 우울했고 막연히 27살 전에 죽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마음의 그늘 치고는 매우 깊은 그늘이다.

그랬던 냥이가 몽이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몽이는 처음 만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대학 동기란다. 그때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듯하다. 굳이 독자는 알 필요 없지만. 아무튼 다시 만난 둘은 서로의 상처를 껴안듯 감싸주며 사랑을 키웠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몽이와 냥이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이미 스무 살 때 만났었지만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 채 살다가 우연히 재회했다. 이번에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어린 시절의 상처까지 보듬고 돌보는 사이가 됐다. 자존감이 낮았던 냥이었지만 "냥이는 이 세상에서 최고얌!" 늘 칭찬해주는 몽이 덕분에 한 단계 한 단계 더 성장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꽁냥꽁냥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인스타 웹툰은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감동시키는 중이라고 한다. 독자는 처음 접하지만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고 하니 저자는 인기를 실감할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도 몽냥툰 대문에는 '결혼과 삶의 밝은 면을 그립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있다고 말한다. "어두운 시간을 지나온 냥이의 소망과 지향이 담겨 있는 말이란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게 되고,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걱정할 게 없다. 주차장에서 몽이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 후 띠띠띠띠 현관 도어록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오늘도 무사히 몽이가 나에게로 왔다."

냥이는 어른다워졌다. 생활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잡은 듯하다.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성숙하려면 사랑도 해봐야 하고, 이별도 해봐야 하고, 그 과정에서 관계에 대한 노력도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성숙해진 것이다. "어른들의 사랑은 사탕 바구니 주면서 생색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약속이고, 생활비와 미래까지도 나눠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다."는 말에는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몽이와 냥이 두 사람은 ‘만약에 우리가 만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언급한다. 몽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냥이는 다니기 싫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면서 미래를 꿈꾸지 않는 비혼주의자로 살았을지 모른다고 밝힌다. 냥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몽이는 사당역에서 술이나 마시며 흥청망청 인생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냥이는 몽이를 만난 덕분에 오랫동안 꿈꾸던 작가가 되었고 ‘몽냥툰’을 그렸다. 몽이는 냥이를 만난 덕분에 투자를 공부하고 재태크를 고민하는 알뜰한 사람이 되었다. 서로는 만남을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잘살면 되지 굳이 두 사람의 만남을 우연인가 필연인가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인연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두 사람은 이제 어엿한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을 돕고, 힘든 사람을 위로할 정도로 어른이 됐다. 어른이 별 건가? 자신의 한 일에 책임을 지고, 할 일을 스스로 해나가면 어른이지. 자존감이 낮았던 냥이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몽이 덕분에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몽이가 아버지를 잃고 몸도 마음도 아팠을 때, 냥이는 몽이 곁에서 성심성의껏 몽이와 가족들을 돌봤다.

덕분에 몽이는 슬픔의 터널을 잘 지날 수 있었다고 한다. 냥이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은 열심히 청소하는 남자가 되었고, ‘내 돈 주고 기꺼이 꽃을 사는 남자’가 되었다고 자랑하는 냥이를 보니 영락 없이 인연이다. 이젠 몽이는 아침마다 과일주스를 만들고 차곡차곡 빨래도 개키는 남자가 되었다. 현실 부부의 사랑은 특별하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파스텔화처럼 뿌옇지만 안락하게 섞여 스며 있다.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늘어난 서로의 뱃살을 놀리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지만 한 집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편안하다. 부부란 그런 것.

 


 

이 부부라고 '부부싸움'이 없을까? 냥이의 고백이 계속된다. "물론 살다 보면 싸울 일도 많고, 화낼 일도 많지만 몽냥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잘 지킨다"고 추켜세운다. 부부란 치약 짜는 일, 양말 뒤집어서 내놓는 일 같은 사소한 일로 사소하게 싸운다. 크게 번지지 않도록 조심만 하며 말 그대로 '칼로 물베기'다. 또 무턱대고 화내지 않도록 노력한다.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서 서로의 차이를 발견할 때는 너무 깊이 들어가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애쓰며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준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신경 쓰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옆에 있을 때처럼 마음을 표현한다. 몽냥의 사랑을 통해 사랑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 애교와 배려를 배운다.

불같은 사랑은 쉽게 사그라들지만, 관계는 노력을 통해 유지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탓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먼저 마음을 보여준다. 완전한 부부가 되어가는 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약점을 내보일 순서만 남았다. 서로의 약점마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감싸주려 한다면 이젠 '완전 부부'로 충분하다. 저자는 좋은 일에는 ‘좋다 좋다’ 돌고래 소리를 내며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박수 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무뚝뚝한 고양이 냥이와 사랑스런 강아지 몽이는 오늘도 꽁냥꽁냥 몽글몽냥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진화 중이다.

 


 

자기는 이상형을 만났고 자기의 이상형은 똑똑한 여자이므로 내가 똑똑한 여자임에 틀림없다는 몽이의 삼단논법이 논리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을 흔든 건 분명하다. 나조차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던 나를, 그래서 늘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몽이는 일으켜세우고 안아주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몽이의 그 한마디로 인해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그걸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아끼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몽이 덕분에 나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배웠고, 다른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p.208)

 

저자 : 몽냥 이수경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다 결혼 후 인스타그램 웹툰 #몽냥툰을 그리며 전업 작가가 되었다. 남편 몽이로 모든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남편덕후.‘결혼과 삶의 밝은 면을 그립니다.’ 강아지 몽이와 고양이 냥이의 몽글몽냥 신혼 일상 웹툰은 인스타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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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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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그림 감상을 한다는 것을 의아해 하거나 '이상한 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독자는 이해할 수 없다. 의사는 과학자니까 예술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독자는 의사가 예술 특히 그림에 관심을 갖거나 취미 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인간의 몸(골격과 근육) 등을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몸을 느낌이나 감정으로 표현하려 한 게 아니라 세밀한 관찰에서 오는 느낌이나 감정을 그림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예술과 과학은 동떨어진 개념의 학문이 아니라 과학은 예술을, 예술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몰론 모든 학문이 서로간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특히 예술과 과학은 더욱 가까운 분야라고 독자는 믿고 있다.

그렇다고 독자는 의사도, 예술가도 아니다. 두 분야에 모두 일반 사람들이 갖는 정도의 관심일 뿐이다. 예술은 우리의 감성과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좋고, 우리의 몸과 정신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 과학(의학)이 좋다.

 


 

이 책 『60일간의 교양 미술』의 저자는 현직 의사이다. 그가 의학이나 과학적 지식을 담아낸 책을 낸 것이 아니라 예술, 그림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해서 특별히 화제가 되진 않을 터 다만 시간이 많지 않은 직업인으로서 책을 낼 정도로 그림 감상을 많이 했고 전문가 못지 않은 그림 감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다. 그림의 매력에 눈뜬 저자는 의학에 종사하면서도 꾸준히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가고 그림 해설한 수많은 책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20여 년 미술 교양 강연을 펼치기도 하고, 그림을 공부하는 모임들에도 지속적으로 몸담게 되었다고. 저자의 그림에 대한 애정 어린 노력의 일환으로 그가 연재해온 수백 편의 글들에서 선별해 60일간의 여정으로 새롭게 구성한 책을 썼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 60인을 매일 한 명씩 만나는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선물받는 느낌이다. 독자는 60이라는 숫자 맞춤이 오히려 불만이다. 그러나 써온 글 중 골라서 책을 구성했다고 하니 이해가 쉽다.

 


 

이 책은 요즘 나오는 다른 미술 관련 서적과 조금 결이 다르다. 코로나 이후 쏟아져 나온 힐링 도서로 미술이나 그림 관련 서적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책이 출간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실제 대형 서점에 한 번씩 가봐도 신간 코너에 미술 관련 책이 빠질 때가 거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엔 대형 서점 방문이 많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미술 관련 책을 발견했을 정도로 늘 신간코너에는 새로운 '그림 책'이 있었다. 그림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예술적 영감이나 창의성을 키울 때 큰 도움을 준다.

팬데믹 상황에서 불안한 독자들이 마음 안정을 위해 많이 찾았을 것 같다. 대형 서점 측도 독자들이 인쇄된 출판물로 그림을 직접 보면서 저자의 설명을 읽어나가면 아마 실제 전시회를 찾는 느낌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화가들은 작품을 그릴 때 열정이나 영감, 영혼까지 모두 그림 그리기에 바친다.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느낌을 받을 때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삶에 대한 의지가 솟아오르겠는가. 예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느낌 때문에 다른 일 제쳐두고 예술 감상을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독자도 예술을 좋아하고 많이 즐기지만 정식으로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늘 '수박 겉핥기식'이란 불만이 있다. 전시회의 경우 미리 공부해 가기도 하고, 전시회장에서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편이다. 그래도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거듭되면서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이제 거의 외울 정도는 됐다. 정확하게 맞힐 자신은 없지만 저 그림은 누구의 무엇(제목) 정도는 금세 머리에 떠오른다. 반복 학습의 결과다. 그러나 아직도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인 점은 인정한다.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보고 습득한 지식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지식만으로 그림 감상이 잘 될 리 없다. 한때 미리 많은 것을 알아야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품을 때가 있었다. 여러 작품 앞에서 알 수 없이 위축되어 온 독자들 축에 나 자신도 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랬다.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그림들을 보면서 간단한 해설로 부담 없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와 작가의 삶을 알게 된 후로 그림 대하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그림이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봐라. 그리고 감상이 끝나면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도 고민해보면 좋을 듯하다. 화가는 아니지만 감상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혼자만의 재미는 누릴 수 있는 일 아닉겠는가.

 


 

다시 [잠자는 큐피드]를 살펴볼까요? 누워 있는 자세가 전체적으로 어딘가 부자연스럽지요. 팔꿈치에 변형이 온 듯하고 얼굴도 아이의 모습치고는 병적으로 부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어떤 질병에 의한 부종으로 보입니다. 왼쪽 귀에는 청색증이 보입니다. 이런 근거로 볼 때 큐피드의 모델이 된 아이는 선천성 유전 질환을 앓으며 힘들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어쩌면 병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화가가 그림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요? 날개를 달고 화살을 쏘는 변덕스러운 사랑의 신 큐피드로 말이지요. 카라바조의 예술 세계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 「Day 19_시선을 사로잡는 빛과 그림자: 카라바조(1571-1610)」 중에서

 

클림트는 화가가 된 후 늘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1892년 클림트가 가장 사랑했던 예술적 동반자이자 지지자였던 두 살 아래의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가 뇌졸중으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연이어 아버지 또한 뇌출혈로 사망했는데, 이는 그에게 큰 상처로 남습니다. 그 후로 항상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았고 상당수의 작품 속에서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가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림트 역시 아버지와 동생의 생명을 앗아갔던 유전 질환인 뇌졸중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 「Day 48_이토록 찬란하고 관능적인 황금빛: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중에서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같이 이미 수많은 미술서에서 다뤄온 유명 명화뿐 아니라, 1913년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독일 화가 에밀 놀데의 장승 그림을 볼 수 있는 〈선교사〉처럼 참신한 작가의 새로운 작품까지 다수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베르트 모리조, 마리 로랑생, 테레즈 슈바르체, 헬레네 셰르프백 등 여러 여성 작가들을 포함함으로써, 화가가 될 기회가 남성 위주로 주어졌던 안타까운 시대에도 눈부시게 본인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간 소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도 조명하고 있다. 서유럽, 남유럽, 북유럽, 동유럽 각국의 여러 작가들과 더불어 데이비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현대적인 감각의 미국 작가 작품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저자 : 박광혁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 전문의다. 그는 청진기를 대고 환자 몸이 내는 소리뿐 아니라 캔버스 속 인물의 생로병사에 귀 기울인다. 미술과 만난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본령에 걸맞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이 된다. 의학자의 시선에서 그림은 새롭게 해석되고, 그림을 통해 의학의 높은 문턱은 허물어진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림에 담긴 의학과 인문학적 코드를 찾아 관찰하고 기록하고 책으로 남겼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거쳐, 내과 전문의 및 소화기내과 분과 전문의로 환자와 만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 소화기내과 자문 의사로 활동했고, 현재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간행이사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뜻밖의 화가들이 주는 위안』(공저), 『과학자의 미술관』(공저)와 『퍼펙트 내과』(1-7권), 『소화기 내시경 검사 테크닉』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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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 예술과 철학의 질문들
백민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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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소설가 백민석의 '미학'적 관점으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에 대한 비평 차원에서 쓴 에세이를 묶었다. 한마디로 지금 세상에서 일어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사회 · 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평서이다. 이 책은 저자 백민석이 세상에 던지는 예술과 철학의 질문들로 세계 곳곳의 사회, 문화적 현상에 주목해, 이와 연관된 철학 이론, 미술 작품, 도서, 영화 등을 자유롭게 연결 지어 예술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내면으로, 자유롭게 인문학적 사유의 폭을 확장해 나간다.

한 명의 소설가이자 동시대인으로서 저자가 세상을 읽는 독특한 시선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완성된 작품을 미완의 사회상을 읽어내는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학을 한층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예전의 미학은 여러 학문의 상위에 있는 미(美) 그 자체의 학문을 제창한 플라톤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 전통적 미학을 근간으로 한다. 이때의 미학은 초월적 가치로서의 미를 고찰한다. 미학이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이프니츠볼프학파(Leibniz Wolffische Schule)의 A. G. 바움가르텐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문으로 수립하고, 그것에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리고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근대 미학의 방향이 개척된 것이다. 고전 미학은 어디까지나 미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어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했다. 이에 반해 근대 미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 즉 ‘미적인 것(das Ästhetische)’을 대상으로 한다. 이 ‘미적인 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의식에 비쳐지는 미이다. 그러므로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미학은 자연히 미의식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칸트는 감성적 현상으로서의 미의식의 기초를 선험적(先驗的)인 데 두었지만, 의식에 비쳐지는 단순한 현상으로서의 미적인 것을 탐구하는 방향은 당연히 경험주의와 결부된다.(두산백과)



저자 백민석은 「작가의 말」을 통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아주 빨리 변했고 세상이 변한 만큼 예술도 변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더는 아름다운 것만을 좇지 않는다. 아름답고 추한 것의 기준도 빠르게 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추한 것의 구분을 더는 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자의 미학과 미에 관점을 밝힌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상에 대한 비평을 할 때 저자 백민석의 미에 관한 관점과 책들은 텍스트로 사용할 수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바뀐 미학의 개념을 모두 수용하고 발전시킨 '미'에 대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은 필연적으로 반대 개념인 추(醜)에 대해 주목한다.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의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탐색한 움베르트 에코는 그의 저서 『추의 역사』를 통해 악마, 마녀, 죽음, 괴물 등을 '추'의 한 현상으로 아우르고 일종의 문화, 역사 비평을 '추'의 기호학으로 구축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추의 이미지와 시대별로 특징적인 추의 현상들과 사회적 배경, 추에 대한 문화적 수용의 양상들까지 설명하는 텍스트들이 에코의 글과 탁월한 감식안으로 한 페이지 안에 나란히 실려있어 보다 쉽게 에코의 미학에 다가갈 수 있다. 백민석의 저서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에코의 미학과 플라톤, 바움가르텐, 아도르노의 미학을 모두 수용한 관점이라는 데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1995년 등단 이후 가장 낯설고 또렷한 시선과 문체로 1990년대 한국문학계의 독보적인 흐름 그 자체였던 저자는 10년의 침묵을 깨트리고 다시 돌아와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저작을 펴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전히 날 선 시선으로 혼란한 현대 사회의 면면들을 짚고, 문학, 영화, 철학, 미술을 넘나들며 작가적 시선으로 난해한 현대인들의 내면을 진단한다.

"인간증발 현상의 결정적인,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사태를 단순하게 보자. 그리고 점점 일본과 닮아가는 우리를 보자.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사는 게, 증발하거나 죽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해석하기 위해 호명된 여러 예술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독서의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의 글은 우리 삶 도처에 자리한 미학을 포착하고 예술과 현실 간의 소통을 위해 기존 관련 도서들의 권위의식을 대폭 낮춘 것이 특징이다. 완성된 작품을 미완의 사회상을 읽어내는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학을 한층 가깝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영화 〈소공녀〉에 대한 저자의 미학적 단상(斷想)을 살펴본다. 미소(여주인공)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월세방을 전전한다. 일은 하지만 월세가 부담돼서 기본적인 식비도 마련할 수가 없다. 친구한테 쌀을 빌리기도 하고, 자취방은 너무 냉골이라 남자친구와 잠을 자지도 못한다. 그녀의 부모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영화 안에서 드러날 만큼의 존재감이 없는 부모일 것이다. 그녀는 또 어떤 병을 앓고 있는데,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다.

영화는 미소의 가난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가난은 배를 곯게 하고 입을 옷이 없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남녀의 성생활까지 방해하고, 종국엔 그녀와 남자친구를 헤어지게 만든다. 그녀는 성실하게 일하지만 버는 돈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른다. (중략) 섹스와 술은 사실상, 가난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값싼 사치이자 가장 비용을 적게 들여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하지만 가난 탓에 미소는 섹스도 잃어버렸다. 이제 미소에게 남은 것은 술뿐. 그녀는 필사적으로 위스키라는 자신의 취향을 지킨다. 그녀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편안히 바에 자리잡고 앉아 맛을 보는 위스키 한 잔이 그녀의 행복이자, 꼭 지켜야만 할 존엄이자, 그녀의 실존을 증거하는 알리바이 같은 생각이 문득 든다. 가난은 추상이 아니다. 가난은 〈소공녀〉가 보여주듯 삶의 가장 디테일한 부분까지 옭아맨다.(pp. 35~40)




저자의 시선이 '재즈'로 옮겨간다. 11장 「많은 재즈 거장들이 요절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에서 저자는 어느 학부모와의 만남에서 말문을 연다. 그분은 외국에서 성공한 어느 디자이너의 예로 들며, 그 디자이너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 문화를 들었다고 했다. 아마 저자의 전작 『헤밍웨이(아르테, 2018)』에서 저자가 입시 경쟁 풍토를 비판한 대목을 읽고 온 것 같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그 책에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통과 의례는 입시 경쟁과 닮아 있고 예술에까지 등수를 매기려 든다."고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어 "남의 인생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밈주알고주알 따지는 일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한국병'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아무리 아닌 척해도 나 역시 한국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한국병 환자로서 어느새 홀리데이의 삶을 평가질하고 있는 것이다."고 고백한다.

또 F. 스콧 제럴드(1896~1940)는 소설가지만 재즈 음악 하면 꼭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1922년 『재즈 시대의 이야기』란 단편집을 내 곧 이어질 '재즈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가 유행시킨 '재즈 시대'란 말은, 재즈 음악이 크게 융성한 1920년에서 1930년 사이를 일컫는다. 재즈 시대를 그는 마치 자신을 위한 시대인 양 마음껏 누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사랑하는 연인 젤다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젊고 건강했던 그에겐 돈과 창작욕이 흘러넘쳤다. 자전적 에세이 『재즈 시대의 메아리』에서 피츠제럴드는 재즈를 이렇게 정의한다. "재즈라는 단어는 (···) 원래는 섹스를 의미하는 단어였고 그다음에는 춤, 이어서 음악을 가리키게 되었다. 말하자면 불안하거나 흥분된 자극의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저자는 차분하게 결론으로 이끈다. "베이커나 홀리데이의 전기, 피츠제럴드의 자전 에세이를 읽어보면, 어디에도 독자의 판단으로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재단선, 삶의 기준선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한평생이란, 그저 그 사람이 걸어온 짧고 긴 시간의 궤적일 뿐이다. 거기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술과 마약에 빠져 살았다고 마냥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술과 마약이 있어서 그나마 노래를 하고 트럼펫을 불고 소설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인생에 그마저도 없었다면 베이커나 홀리데이, 피츠제럴드의 인생은 더 비참하고 더 짧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하루를 백일처럼 산 사람들이라고,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애썼다는 말을 전하며 결론에 대한 독자들의 여지를 남긴다.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부끄러운 소설가로 살면서 나도 그렇게 소설을 써왔는지 모른다. 작가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되어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삶에 어느 정도 감정 이입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약자의 언어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차별적 관계가 끝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약자의 언어는 강자의 행위를 고발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가 그렇다. 일본이 ‘위안부’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역사에서 지워버린다면 피해 사실도 사라져버린다. 인권을 유린당한 식민지 여성이라는 정체성,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반인륜 범죄 피해자라는 입장도 함께 부정되고 지워져버린다. 이것이 일본이 그토록 ‘위안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이고, 언어가 가진 영향력이자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p. 70)

저자 : 백민석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문학과 사회』여름호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가장 낯설고 또렷한 시선과 문체로 1990년대 한국문학계의 독보적인 흐름이었던 그는 10년간의 침묵을 깨트리고 다시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며 오래도록 그를 기다려온 독자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표작으로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수림』, 『혀끝의 남자』,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러셔』, 『죽은 올빼미 농장』, 『공포의 세기』, 『해피 아포칼립스!』, 『교양과 광기의 일기』, 『버스킹』, 『플라스틱맨』 등이 있다.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러시아의 시민들』, 『헤밍웨이: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를 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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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모모푸쿠 - 뉴욕을 사로잡은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이 들려주는 성공하는 문화와 놀랍도록 솔직한 행운의 뒷이야기
데이비드 장 지음, 이용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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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집념과 요리에 대한 애정, 치열한 자기만의 철학으로 온갖 난관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저자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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