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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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자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능력이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채식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인간으로서 받은 특혜를 내려놓기를 저자는 진심으로 권한다. 단순 채식을 넘어 동물 착취, 성차별과 기후생태위기를 해결하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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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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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을 읽는 동안 채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 것이 보람된다. 원래 육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독자는 몸이 좀 약한 편이어서 의사에게 '잘 먹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바 있어 고기 섭취를 의무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것도 한달에 한두 번이지만. 그래서 콩을 많이 먹는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 '비건(vegan)'은 육식을 피하고, 식물을 재료로 만든 음식만을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먹는 음식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락토 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페스코 베지테리언,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의 단계로 구분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되는 단계나 구분이 이렇게 여러 가지인 줄은 정말 까맣게 몰랐다. 그나마 단어 자체도 '비건'과 '베지테리언'이라는 단어만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이쪽에 대해 문외한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 단계로 나뉘고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사전에 나온 분류를 여기에 적는다. 프루테리언(fruitarian)-극단적 채식주의자, 비건(vegan)-완전 채식주의자, 락토 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우유, 유제품, 꿀은 먹는 채식주의자, 오보 베지테리언(ovo-vegetarian)-달걀은 먹는 채식주의자,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동물에게서 나오는 음식은 먹는 채식주의자,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유제품, 가금류의 알, 어류는 먹는 채식주의자,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우유·달걀·생선·닭고기까지 먹는 준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아주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 독자는 어디쯤일까 가늠해본다.



이 책은 가수이자 작가, 책방 주인이자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인 전범선이 지리산 자락 산청집에서 열흘을 보내며 쓴 '비거니즘 에세이'다.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비건’ 옵션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빠른 속도로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있는 요즘, ‘비거니즘’은 단순히 채식주의라는 말로 정리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비거니즘은 채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물의 착취와 학대를 반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삶의 철학이다. 저자는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권, 페미니즘, 기후위기 등과 연결하여 비거니즘을 소개하고, 지금껏 자신이 인간, 그리고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누려왔던 특권을 돌아보며 반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키워드, '사랑'으로 귀결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기후생태위기를 목도한 지금, 더 이상 약육강식의 지배원리와 능력주의는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외친다. 기존에 인정되어왔던 정복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능력이 아니라 공감하고 경청하며 사랑하는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種)에 관계없이 모든 약자와 소수자를 돌아보는 비거니즘 철학을 제안한다.



독자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채식 위주의 식사와 산사에서 힐링의 삶을 유지하며 쓴 '치유 에세이'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들고 첫 부분 「여는 말」을 읽는 동안 생각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저자는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자유가 자신의 큰 가치였음을 인정한다. 저자는 공부를 잘해서 수재들이 들어간다는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인 민족사관고를 다녔다. 그때 한영외고 밴드부 드러머였던 조국 전 민정수석의 딸인 조민을 처음 알았고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먼저 털어놓는다. 그리고 따로 대학을 갔던지 친분 관계가 없다가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자신이 민족사관고를 다닌 것도 사실은 특권, 특혜를 받았다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친은 춘천에서 자동차 부품 대리점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에 의한 특혜는 아니지만 민족사관고를 다닐 수 있었던 자체를 자신이 받은 특혜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 유학도 하고,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압구정에서 학원 강사로 일한 경력도 있지만 자신이 〈SKY 캐슬〉과 멀지 않은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아이비 캐슬'이었다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저자는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한다고 했을 때 찬성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교가 사라지고 민사고 생활은 정말 행복했지만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기회이고 부모의 찬스를 쓴 것도 아니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지만 사회 정의에 비춰본다면 특혜와 특권을 없애는 편에 서고 싶었던 듯하다.



요즘 능력주의가 화두다. 진보와 보수가 한목소리다.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노력이 능력이 되고 능력이 재력과 권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력만으로 능력을 얻기 힘들다. 반대로 재력과 권력은 쉽게 능력이 된다. 능력주의의 가장 빤한 문제는 운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일단 부모의 재력, 권력, 능력은 완전히 운이다.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도 대부분 운이다. 각자의 능력 중 과연 몇 퍼센트가 순전한 노력의 결과인지 의문이다.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출발선이 같아도 문제다. 시합의 룰이 랜덤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인정해주는 능력의 종류가 임의적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컴퓨터 게임 하는 능력이 재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백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태생적으로 가진 능력과 사회가 원하는 능력이 겹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다시 말해, 운이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도 능력주의는 정의롭기 힘들다. 저자의 사유와 그 결과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 거칠 게 없다는 느낌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저자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운빨은 민사고와 다트머스와 옥스퍼드를 나온 것이 아니다"며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난 것,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난 것, 성소수자가 아니고 비장애인이라 차별 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특혜다"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사색은 동물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인간은 육식을 하기 위해 동물들을 비위생적인 환경에 감금하고 사육하며, 우유를 마시기 위해 소의 모성을 착취한다. 인간의 욕심에 비인간 동물들만 죽어나고 있다. 저자는 하루빨리 동물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아있는 동물과 죽은 동물을 구분하여 명명하거나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를 물‘고기’라고 부르는 육식주의적 언어를 지적하고 종 평등을 이루는 언어 습관을 들이기를 권한다. 실질적으로 학대당하고 도살되는 동물의 실상을 알려주는 것부터 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해져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종차별적인 단어를 삭제하고자 애쓰는 것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나 자신의 편의가 아닌 다른 동물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가진 특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갔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들이 내는 목소리의 울림은 오래도록 남아 천천히 한국 사회를 바꿔가리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저자는 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외주의 문제를 언급한다. 바로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이 주로 담당한 살림 등의 노동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절하 당해온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미뤄두었던 가사, 돌봄 노동을 인정하고 자신의 몫을 찾아내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의 고통을 외면한 채 고기나 계란, 우유 등을 먹는 것 역시 동물에 대한 노예적 착취 구조임을 설명한다.

인간이 착취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한정된 자원과 자연 또한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다. 지금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기에 당장 생활 양식을 바꿔야 한다. 작가는 인간이 낳은 문제를 인간중심적인 사상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테니 비거니즘에 근거를 둔 생태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현재 지구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했다. 지구가 망해버리면 인류의 미래도 없음을 자각해야 하는 때가 왔다. 비정상적인 착취 구조를 없애고 모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시대, 그날이 어서 빨리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독자는 육식을 싫어해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육식을 좋아하거나 인간의 성장에 꼭 필요한 단백질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채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과연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사뭇 의심스럽다.



동물해방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바꿀 말이 많다. 예를 들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거양득이다. 돌을 하나 던져서 새가 두 명이나 죽으면 그게 이득인가 손해인가? 방금 비인간 동물을 ‘마리’가 아닌 ‘명’으로 수식했다. 왜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쓰는가? 사전상 마리는 ‘짐승,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이름 있는 동물도 많은데 사람만 명이라고 세는 건 종차별이다.

- p.165,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중에서

생활양식과 사회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외주화에 대한 재고가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취하는 것이,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처럼,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인간이 지구로부터 받는 돌봄이, 어머니가 베풀어준 사랑처럼, 무한해 보이지만 유한하다는 사실. 더 늦기 전에 자각해야 한다

- p.215,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한다니」 중에서

저자 : 전범선

인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문 닫을 뻔한 서점을 인수한 책방주인이자 글 쓰고 노래하는 채식주의자이자 밴드 ‘양반들’의 리더.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학교 동기들이 전문직, 대기업에 취직하며 사회로 진출할 때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음악에 뛰어들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 이후 예술가 겸 사업가,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12년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하였으며,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사찰 음식점 ‘소식’ 대표를 맡았다. 현재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발행인으로 비거니즘 잡지 〈물결〉을 펴내고 있다. 저서로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역서로 《정면돌파》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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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보여행 50 - 마음이 가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이영철 지음 / SISO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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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觀光)과 여행(旅行)은 우리가 보통 혼동해 사용하지만 사실 엄격히 구분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 사전적 뜻으로는 관광의 경우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말한다. 유람을 위해 다른 곳을 돌아다닌다는 의미로는 같은 뜻이지만 일이나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 관광이라 하지 않고 여행이라 구별해 쓴다. 다만 우리가 혼동 사용해 관용적으로 굳어진 말에는 그냥 그대로 쓰는 것 같다. 예컨대 '신혼여행'은 관광에 가까운 목적이지만 '여행'으로 굳어진 대로 쓴다. 물론 큰 차이가 아니라 혼동해 쓴다 해도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중대한 결함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이 책 『세계 도보여행 50』은 국내는 물론 세계를 걸어서 '여행'한 저자가 그곳의 여러 가지 정보를 책으로 옮겨 쓴 것이다. 독자들에게 그곳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직접 가지 않고도 그곳의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어 지식과 정보 축적을 할 수 있다. 만일 그 여행지에 간다면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편리하고 자신의 여행 목적에 맞게 일정이나 경비 등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타인의 여행서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도보 여행은 여행의 참맛을 알기 위해 참 좋은 방법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건강이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해외를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여행서는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에 유익하다.



독자는 여행을 좋아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다만 '여행'이라 이름 붙일 만한 '도보 여행'은 국내에서 지리산 등 산에 오를 경우를 제외하고는 못해 본 것이 아쉽다. 해외 여행은 말을 못하니 도보 여행을 꿈도 꾸지 못했고, 나이 들어 언어에 조금 익숙해지니 이젠 체력에 자신이 없다. 수년째 천식을 앓고 있어 도보 여행을 꿈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짧은 일정이라도 도보 여행을 꿈꾸다가 의사가 천천히 폐기능을 키워나가야지 지금 상태로는 도보 여행은 무리일 것이라는 주의를 준 이후 도보여행 계획은 접었다.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 여행서를 읽고 여행 영상을 즐기는 식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저자 이영철이 도보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별스럽다. 13년 전, 직장생활의 답답함과 온갖 불안, 걱정으로 두통, 불면증과 씨름하던 어느 여름날에 14시간 동안 정처 없이 걸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전문 트래커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니 드문 예인 것 같다. 저자가 책을 처음 낸 것은 아니지만(2년 전 『세계 10대 트레일』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번 출간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다. 국내외를 두루 실음으로써 트레일이 무엇인지, 도보여행은 왜 의미가 있는지 등을 독자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쓴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유명한 길이 집중적으로 실린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된다.



몇 곳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이 책의 성격과 저자의 집필 의도, 그리고 도보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이나 국내도 해외처럼 좋은 도보여행지가 많다는 점 등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도보 여행지로는 경기옛길, 동해안 해파랑길, 제주 도심 트레일 등 다섯 곳이 실렸다. 저자는 우선 고대 유럽 대륙을 한반도로 압축해서 옮겨본다. 물론 상상으로... 화려한 역사보다는 애환으로 얼룩진 길이지만, 조선 시대 6대 간선도로가 로마 가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탈리아 반도의 한가운데 로마처럼 한반도의 한양을 중심으로 여섯 갈래의 길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간다.

평안도 압록강변 의주까지 의주대로, 한반도 동북단인 함경도 경흥까지 경흥대로, 강원도 강릉을 거쳐 경상도 평해까지 이어진 평해도로, 경상도 부산 통영까지의 영남대로, 남쪽 땅끝 해남까지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이어진 삼남대로, 그리고 강화도로 향하는 강화대로다. 저자가 한없이 걸으며 사유해낸 한반도 중심의 세계지도다. 저자는 "우리 땅 한반도에서 옛사람들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길은 이들 중 어딜까? 자문한다. 아마도 영남대로일 것이다. 신라 땅에 자연스레 점선처럼 생겨나던 길들이 실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초창기 영남대로는 통일신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번영의 시대를 함께한 길이었다."고 적었다. 저자의 사유는 길 따라 한없이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니 도보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더욱 크게 남는다.



저자의 눈은 한반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트래커들의 로망 안나푸르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밀포드 트랙 등 해외에서 사랑받는 도시, 마을 길 45곳을 이 책에 담았다. 각 지역에 읽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트래킹 여정에 재미를 주고, 가보지 않고도 한눈에 짐작해볼 수 있는 지도가 상상력을 북돋운다.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답답하고 의욕을 잃어갈 때 가까운 곳이라도 운동화를 신고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코로나 2년 동안 여행에 대한 꿈과 로망을 억누르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이제 집단 면역의 시대로 접어들며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끝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 곧 시작될 여행에 대한 준비와 예습에 들어간다. 예전에 갔던 여행지들에 대한 복기와 복습은 일부 이 책의 발간으로 마쳤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여행을 복기하는 것도 다 여행의 연장이라는 생각이다. 여행을 예습하는 건 현지에서의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주고, 여행을 복습하는 건 우리 일상의 마음속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게 저자의 여행 예찬론이다. 저자가 책을 낸 것은 복기이자 복습이고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옮기기 위해 시동을 거는 작업이다. 저자의 주문대로 독자의 가슴에도 여행의 계획이 가득 차 오른다.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 중 독자가 가본 곳도 있지만 못 가본 곳이 훨씬 많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듯 펼쳐지는 얘기에 푹 빠질 수 있다. 못 가본 곳 중에서 갈 계획을 세우고 못 간 채 결국 버킷리스트로 옮겨놓은 중국의 샹그릴라가 눈에 띈다. 책에 따르면 중국 대륙 공산화와 함께 티베트 등이 금단의 땅으로 변한 후 50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중국의 한 지방 정부가 '드디어 샹그릴라를 찾아냈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했다.

윈난성 디칭 장족 자치주의 3개 현 중 하나인 중덴 현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의 그 샹그릴라라는 것이다. 지리적 문화적 제반 요건이 소설과 일치하며 장기간에 걸친 엄격한 고증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피폐해진 일상에서 꿈속 이상향을 그리던 서방 세계 많은 이들의 시선이 중국 윈난으로 쏠렸다. 관광 수입과 외화 자본이 절실했던 중국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발표 4년 후인 2001년에는 중덴 현을 아예 샹그릴라 현으로 공식 개명해버렸다. 티베트 문화를 샅샅이 뒤져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찾아냈고 '샹거리라'라는 중국식 지명도 덧붙였다. 샹그릴라의 어원은 샴발라(Shambhala, 香巴拉)다. 불국정토인 피안의 세계를 일컫는 티베트 전설 속 이상향을 가리킨다. 티베트 인들 마음속에는 세상이 탐욕과 부패로 종말을 맞을 때 샴발라 불국의 왕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이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 현지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와 구전돼온 이야기가 흥미롭고 책의 내용을 풍요롭게 해준다.



남미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의 트레일 경험담도 소개해준다. 독자로서는 가본 적이 없어 더욱 눈에 잘 띈다. 단숨에 읽어내려간다. 여기에 저자의 글 그대로를 옮겨본다

"포말의 폭포수들이 여러 갈래로 밀림을 뚦고 나와 절벽 아래로 내리꽂히고 있다. 뭉게뭉게 피어난 뽀안 물안개가 폭포 주변을 신비롭게 감싸 돌고, 편안한 데크 길을 따라 폭포 아래 근처까지 온통 인파로 북적인다. 다음 날 아르헨티나 쪽을 둘러보면 전날 보았던 브라질 쪽 정경은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워낙 더 장엄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트레킹보다는 관광 분위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첫날 브라질 쪽에서 5시간, 둘째 날 아르헨티나 쪽에선 8시간 정도 걸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는 게 좋다.

16세기 중반 에스파냐 탐험가에 의해 이 폭포가 처음 발견되었다지만, 남미 인디오들에겐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다. 유럽인들이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뿐이다. 현재의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은 그 당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이주해와서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이들은 원주민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원주민 노예는 부를 축적하는 가축과 같은 수단이었다."(p252~253)



저자는 간단하면서도 쉬운 여행론을 다시 꺼낸다. "거창한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나면 어떤가. 먼 곳일 필요도 없다. 익숙한 길이 아닌, 조금은 낯선 길을 찾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보면 그곳이 어디든 여행지가 되기 때문이다. 길고 짧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우리 마음속엔 나무숲이 가득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파릇파릇한 새싹 정도는 돋아나 있을 것이다."

저자 : 이영철

오랜 직장생활을 끝낸 후 자유를 얻었다고 득의만만, 동서와 고금, 세상 곳곳 삶의 흔적들을 만나보고 싶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아들딸 쌍둥이 엄마의 남편, 도보여행서 7권의 저자. 저서로는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 자의 행복』, 『영국을 걷다, 폭풍의 언덕을 지나 북해까지』, 『투르 드 몽블랑』, 『죽기 전에 꼭 걸어야 할 세계 10대 트레일』, 『경기옛길과 함께하는 우리 동네 걷기길(2인 공저)』, 『제주올레 인문여행』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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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사용법 - HOW TO USE Latin America
에스피노사 벨트란 리엔.연경한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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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남미는 북미와 다른 라틴 민족의 지배로 오늘날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쓰는 ‘라틴아메리카‘ 불리기도 한다. 이 책은 그 원주민의 뿌리와 그들의 문명에 대한 작은 성찰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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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사용법 - HOW TO USE Latin America
에스피노사 벨트란 리엔.연경한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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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반적으로 대륙을 구분할 때는 자연 지리적인 구분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예컨대 아시아의 경우 동부, 동남, 남부, 서남, 중앙아시아로 나눈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도 당연히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또는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과서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교과서에서는 현재 이 방식 대신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로 나누는 방식을 채택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라틴아메리카’라는 말을 쓰라고 맨 처음 명령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였다는 것. 그는 아메리카에서 라틴 족과 라틴 문화의 지위를 더 높이고자 학자들을 동원해 이와 같은 땅 이름을 만들었다. 이 이름은 라틴 족인 프랑스의 지위를 높여 주는 효과를 가져왔으므로 프랑스에게 외교적 승리를 안겨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앵글로-색슨 족의 영국이 지배한 미국과 캐나다 지역은 앵글로아메리카로 부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라틴 족의 종교인 가톨릭을 믿고, 라틴 족의 문화와 사회 제도를 따르며, 라틴 족 언어에 속하는 포르투갈 어(브라질)나 에스파냐 어(그 밖의 나라들)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앵글로아메리카 지역은 영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국의 전통과 문화와 사회 제도가 들어왔으며, 주로 영어로 말하고 개신교를 믿는다. 따라서 이런 구분 방법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분에는 원주민의 역사와 존재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이름들은 콜럼버스 상륙 당시 이곳에 살고 있었던 8,000만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 눈감고 있다. 또한 강제로 끌려온 1,2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과 그 후손들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굳이 문화적 구분이 필요하다면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 대신 북아메리카와 중남아메리카로 나누면 된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 보여주는 대로 '라틴 아메리카'로 표기하고 있으니 서평은 책 표기대로 한다. 이 책 『라틴아메리카 사용법』은 한국인과 쿠바인의 눈으로 함께 바라본 라틴아메리카 이문화 해설서이다.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가급적 배제하고 언어, 문화, 종교 측면에서 바라본 중남미 지역의 생활상을 주로 살피고 있다. 스페인이 아니면서 스페인어를 쓰는 이유는? 유럽이 아니면서 기독교를 믿는 이유는? 한국인의 호기심으로 쓰고 쿠바인의 눈으로 읽었다. 콜럼버스의 한 걸음이 남긴 라틴아메리카의 오늘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다양한 일상 문화에 숨겨진 중남미 문화의 특성을 포착하였다. 학술서와 대중서의 중간쯤 되는 책으로 쉬운 말과 생각을 담아내었다. 콜럼버스의 흔적 기독교와 스페인어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근간이다. 이 책이 그 뿌리에 대한 작은 성찰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독자는 기대한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숨겨진 코드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유무형의 상징 속에 중세 유럽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기독교 미션의 깃발 속에 잔인하게 쓰러져간 고대 토착민들의 운명은 오늘날 과연 어디에서 빛나는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와 가치를 소개하는 두 명의 저자(에스피노사 벨트란 리엔, 연경한)가 나누어 소개한다.

두 저자는 각각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쿠바, 멕시코 등에 대해 각자 쿠바인과 한국인으로서 이문화를 바라보았고 이 책에 담아내었다. 저자인 에스피노사 벨트란 리엔은 하바나대학교를 졸업하고 부경대학교 석사를 졸업한 후 현재㈜유로중남미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자인 연경한은 성균관대학교 학사, 석사를 졸업 후 현재 ㈜유로중남미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유로중남미연구소에서 소개하는 남미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남미 대륙의 6개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6개 나라는 빛나는 태양의 문명 ‘멕시코’, 중남미의 가톨릭 대국 ‘브라질’, 중남미 최고의 매력 국가 ‘아르헨티나’,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중남미의 검은 다이아몬드 ‘콜롬비아’, 미완의 혁명 국가 ‘쿠바’다.



책에 따르면 중남미대륙의 대표적인 문명은 마야문명과 이를 계승한 아즈테카문명, 그리고 안데스 고원의 잉카문명이다. 그런 점에서 페루가 빠져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멕시코 국기의 ‘뱀을 물고 있는 호숫가에 앉아 있는 독수리’는 아즈테카 제국의 상징이다. 멕시코는 기원전 3천 년 경 과거 북미 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인디오 중 일부가 중미로 남하하면서 훗날 멕시코 인디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서기 1,300년부터 마야문명을 계승한 아즈테카 제국이 탄생했다. 이들은 마야문명을 계승했고 멕시코 중부의 호수 가운데 섬들을 연결해 ‘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했다.

멕시코시티는 지금도 수로와 운하를 이용해 배로 이동하는 곳이 있다. 멕시코 사람은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다. 미국이 대표적이고 현재는 한류 바람도 거세다. 자신의 문화를 축으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퓨전 문화가 발달해 다양한 문화를 보인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사람은 축구선수 메시와 체 게바라다. 체 게바라는 쿠바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과 대학생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여행이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는 체 게바라가 어떻게 혁명 전사로 발돋움하는지 보여준다. 중남미대륙에 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을 통해 하루하루 사는 모습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쿠바의 카스트로의 혁명 정신과 언변에 크게 감화되어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떠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본거지 쿠바로 향한다.

당시 쿠바에는 친미 정권 바티스타 정권이 있었는데 이들은 부패와 스캔들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주목할 점은 이때 미국 CIA는 미국이 원조하는 정권을 세계 곳곳에 지원하지만, 그들은 부패로 스스로 자멸했다. 쿠바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 사회주의화한다. 미국은 피그만 침공작전의 실패를 전후해 쿠바에 무역 봉쇄조치를 가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남북간 길이가 가장 긴 국가가 칠레ㅇ이다. 서울에서 부산이 대략 400㎞인데 칠레의 국토 길이는 약 4,300㎞에 달한다. 상하로 위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다양한 계절이 동시에 나타난다. 칠레는 우리에게 불의 고리로 잘 알려진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지진이 매우 잦다. 칠레의 남부에서는 파타고니아 빙하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최초 2004년 FTA를 맺은 나라가 칠레이다. 우리가 먹는 냉동 삼겹살은 독일에 이어 칠레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갱단, 마약이 떠 오르지만, 커피를 좋아하고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특히 살사를 매우 좋아하는데 ‘살사’ 자체는 중의적인 단어로 매콤한 살사 소스를 의미하기도 하고 유려하게 몸을 움직이는 살사 댄스나 살사 음악을 의미하기도 한다. 콜롬비아에서도 한류의 영향력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어 한국의 기업, 문화, 음식 등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싹트고 있다. 중남미 국가를 여행할 때 지참하고 다니며 쉽게 볼 수 있도록 핸디북 스타일의 작은 책이지만 필수적인 여행 정보들은 꼼꼼히 담았다. 문화와 현지 사람들의 문화나 일상 생활도 엿볼 수 있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와의 차이점 위주로 기술해 눈길을 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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