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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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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을 읽는 동안 채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 것이 보람된다. 원래 육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독자는 몸이 좀 약한 편이어서 의사에게 '잘 먹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바 있어 고기 섭취를 의무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것도 한달에 한두 번이지만. 그래서 콩을 많이 먹는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 '비건(vegan)'은 육식을 피하고, 식물을 재료로 만든 음식만을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먹는 음식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락토 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페스코 베지테리언,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의 단계로 구분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되는 단계나 구분이 이렇게 여러 가지인 줄은 정말 까맣게 몰랐다. 그나마 단어 자체도 '비건'과 '베지테리언'이라는 단어만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이쪽에 대해 문외한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 단계로 나뉘고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사전에 나온 분류를 여기에 적는다. 프루테리언(fruitarian)-극단적 채식주의자, 비건(vegan)-완전 채식주의자, 락토 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우유, 유제품, 꿀은 먹는 채식주의자, 오보 베지테리언(ovo-vegetarian)-달걀은 먹는 채식주의자,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동물에게서 나오는 음식은 먹는 채식주의자,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유제품, 가금류의 알, 어류는 먹는 채식주의자,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우유·달걀·생선·닭고기까지 먹는 준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아주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 독자는 어디쯤일까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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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수이자 작가, 책방 주인이자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인 전범선이 지리산 자락 산청집에서 열흘을 보내며 쓴 '비거니즘 에세이'다.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비건’ 옵션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빠른 속도로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있는 요즘, ‘비거니즘’은 단순히 채식주의라는 말로 정리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비거니즘은 채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물의 착취와 학대를 반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삶의 철학이다. 저자는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권, 페미니즘, 기후위기 등과 연결하여 비거니즘을 소개하고, 지금껏 자신이 인간, 그리고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누려왔던 특권을 돌아보며 반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키워드, '사랑'으로 귀결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기후생태위기를 목도한 지금, 더 이상 약육강식의 지배원리와 능력주의는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외친다. 기존에 인정되어왔던 정복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능력이 아니라 공감하고 경청하며 사랑하는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種)에 관계없이 모든 약자와 소수자를 돌아보는 비거니즘 철학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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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채식 위주의 식사와 산사에서 힐링의 삶을 유지하며 쓴 '치유 에세이'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들고 첫 부분 「여는 말」을 읽는 동안 생각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저자는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자유가 자신의 큰 가치였음을 인정한다. 저자는 공부를 잘해서 수재들이 들어간다는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인 민족사관고를 다녔다. 그때 한영외고 밴드부 드러머였던 조국 전 민정수석의 딸인 조민을 처음 알았고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먼저 털어놓는다. 그리고 따로 대학을 갔던지 친분 관계가 없다가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자신이 민족사관고를 다닌 것도 사실은 특권, 특혜를 받았다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친은 춘천에서 자동차 부품 대리점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에 의한 특혜는 아니지만 민족사관고를 다닐 수 있었던 자체를 자신이 받은 특혜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 유학도 하고,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압구정에서 학원 강사로 일한 경력도 있지만 자신이 〈SKY 캐슬〉과 멀지 않은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아이비 캐슬'이었다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저자는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한다고 했을 때 찬성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교가 사라지고 민사고 생활은 정말 행복했지만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기회이고 부모의 찬스를 쓴 것도 아니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지만 사회 정의에 비춰본다면 특혜와 특권을 없애는 편에 서고 싶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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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능력주의가 화두다. 진보와 보수가 한목소리다.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노력이 능력이 되고 능력이 재력과 권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력만으로 능력을 얻기 힘들다. 반대로 재력과 권력은 쉽게 능력이 된다. 능력주의의 가장 빤한 문제는 운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일단 부모의 재력, 권력, 능력은 완전히 운이다.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도 대부분 운이다. 각자의 능력 중 과연 몇 퍼센트가 순전한 노력의 결과인지 의문이다.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출발선이 같아도 문제다. 시합의 룰이 랜덤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인정해주는 능력의 종류가 임의적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컴퓨터 게임 하는 능력이 재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백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태생적으로 가진 능력과 사회가 원하는 능력이 겹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다시 말해, 운이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도 능력주의는 정의롭기 힘들다. 저자의 사유와 그 결과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 거칠 게 없다는 느낌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저자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운빨은 민사고와 다트머스와 옥스퍼드를 나온 것이 아니다"며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난 것,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난 것, 성소수자가 아니고 비장애인이라 차별 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특혜다"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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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사색은 동물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인간은 육식을 하기 위해 동물들을 비위생적인 환경에 감금하고 사육하며, 우유를 마시기 위해 소의 모성을 착취한다. 인간의 욕심에 비인간 동물들만 죽어나고 있다. 저자는 하루빨리 동물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아있는 동물과 죽은 동물을 구분하여 명명하거나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를 물‘고기’라고 부르는 육식주의적 언어를 지적하고 종 평등을 이루는 언어 습관을 들이기를 권한다. 실질적으로 학대당하고 도살되는 동물의 실상을 알려주는 것부터 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해져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종차별적인 단어를 삭제하고자 애쓰는 것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나 자신의 편의가 아닌 다른 동물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가진 특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갔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들이 내는 목소리의 울림은 오래도록 남아 천천히 한국 사회를 바꿔가리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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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외주의 문제를 언급한다. 바로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이 주로 담당한 살림 등의 노동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절하 당해온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미뤄두었던 가사, 돌봄 노동을 인정하고 자신의 몫을 찾아내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의 고통을 외면한 채 고기나 계란, 우유 등을 먹는 것 역시 동물에 대한 노예적 착취 구조임을 설명한다.
인간이 착취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한정된 자원과 자연 또한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다. 지금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기에 당장 생활 양식을 바꿔야 한다. 작가는 인간이 낳은 문제를 인간중심적인 사상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테니 비거니즘에 근거를 둔 생태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현재 지구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했다. 지구가 망해버리면 인류의 미래도 없음을 자각해야 하는 때가 왔다. 비정상적인 착취 구조를 없애고 모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시대, 그날이 어서 빨리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독자는 육식을 싫어해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육식을 좋아하거나 인간의 성장에 꼭 필요한 단백질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채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과연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사뭇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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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바꿀 말이 많다. 예를 들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거양득이다. 돌을 하나 던져서 새가 두 명이나 죽으면 그게 이득인가 손해인가? 방금 비인간 동물을 ‘마리’가 아닌 ‘명’으로 수식했다. 왜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쓰는가? 사전상 마리는 ‘짐승,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이름 있는 동물도 많은데 사람만 명이라고 세는 건 종차별이다.
- p.165,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중에서
생활양식과 사회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외주화에 대한 재고가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취하는 것이,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처럼,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인간이 지구로부터 받는 돌봄이, 어머니가 베풀어준 사랑처럼, 무한해 보이지만 유한하다는 사실. 더 늦기 전에 자각해야 한다
- p.215,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한다니」 중에서
저자 : 전범선
인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문 닫을 뻔한 서점을 인수한 책방주인이자 글 쓰고 노래하는 채식주의자이자 밴드 ‘양반들’의 리더.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학교 동기들이 전문직, 대기업에 취직하며 사회로 진출할 때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음악에 뛰어들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 이후 예술가 겸 사업가,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12년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하였으며,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사찰 음식점 ‘소식’ 대표를 맡았다. 현재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발행인으로 비거니즘 잡지 〈물결〉을 펴내고 있다. 저서로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역서로 《정면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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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