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보여행 50 - 마음이 가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이영철 지음 / SISO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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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觀光)과 여행(旅行)은 우리가 보통 혼동해 사용하지만 사실 엄격히 구분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 사전적 뜻으로는 관광의 경우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말한다. 유람을 위해 다른 곳을 돌아다닌다는 의미로는 같은 뜻이지만 일이나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 관광이라 하지 않고 여행이라 구별해 쓴다. 다만 우리가 혼동 사용해 관용적으로 굳어진 말에는 그냥 그대로 쓰는 것 같다. 예컨대 '신혼여행'은 관광에 가까운 목적이지만 '여행'으로 굳어진 대로 쓴다. 물론 큰 차이가 아니라 혼동해 쓴다 해도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중대한 결함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이 책 『세계 도보여행 50』은 국내는 물론 세계를 걸어서 '여행'한 저자가 그곳의 여러 가지 정보를 책으로 옮겨 쓴 것이다. 독자들에게 그곳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직접 가지 않고도 그곳의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어 지식과 정보 축적을 할 수 있다. 만일 그 여행지에 간다면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편리하고 자신의 여행 목적에 맞게 일정이나 경비 등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타인의 여행서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도보 여행은 여행의 참맛을 알기 위해 참 좋은 방법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건강이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해외를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여행서는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에 유익하다.



독자는 여행을 좋아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다만 '여행'이라 이름 붙일 만한 '도보 여행'은 국내에서 지리산 등 산에 오를 경우를 제외하고는 못해 본 것이 아쉽다. 해외 여행은 말을 못하니 도보 여행을 꿈도 꾸지 못했고, 나이 들어 언어에 조금 익숙해지니 이젠 체력에 자신이 없다. 수년째 천식을 앓고 있어 도보 여행을 꿈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짧은 일정이라도 도보 여행을 꿈꾸다가 의사가 천천히 폐기능을 키워나가야지 지금 상태로는 도보 여행은 무리일 것이라는 주의를 준 이후 도보여행 계획은 접었다.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 여행서를 읽고 여행 영상을 즐기는 식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저자 이영철이 도보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별스럽다. 13년 전, 직장생활의 답답함과 온갖 불안, 걱정으로 두통, 불면증과 씨름하던 어느 여름날에 14시간 동안 정처 없이 걸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전문 트래커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니 드문 예인 것 같다. 저자가 책을 처음 낸 것은 아니지만(2년 전 『세계 10대 트레일』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번 출간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다. 국내외를 두루 실음으로써 트레일이 무엇인지, 도보여행은 왜 의미가 있는지 등을 독자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쓴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유명한 길이 집중적으로 실린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된다.



몇 곳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이 책의 성격과 저자의 집필 의도, 그리고 도보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이나 국내도 해외처럼 좋은 도보여행지가 많다는 점 등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도보 여행지로는 경기옛길, 동해안 해파랑길, 제주 도심 트레일 등 다섯 곳이 실렸다. 저자는 우선 고대 유럽 대륙을 한반도로 압축해서 옮겨본다. 물론 상상으로... 화려한 역사보다는 애환으로 얼룩진 길이지만, 조선 시대 6대 간선도로가 로마 가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탈리아 반도의 한가운데 로마처럼 한반도의 한양을 중심으로 여섯 갈래의 길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간다.

평안도 압록강변 의주까지 의주대로, 한반도 동북단인 함경도 경흥까지 경흥대로, 강원도 강릉을 거쳐 경상도 평해까지 이어진 평해도로, 경상도 부산 통영까지의 영남대로, 남쪽 땅끝 해남까지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이어진 삼남대로, 그리고 강화도로 향하는 강화대로다. 저자가 한없이 걸으며 사유해낸 한반도 중심의 세계지도다. 저자는 "우리 땅 한반도에서 옛사람들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길은 이들 중 어딜까? 자문한다. 아마도 영남대로일 것이다. 신라 땅에 자연스레 점선처럼 생겨나던 길들이 실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초창기 영남대로는 통일신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번영의 시대를 함께한 길이었다."고 적었다. 저자의 사유는 길 따라 한없이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니 도보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더욱 크게 남는다.



저자의 눈은 한반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트래커들의 로망 안나푸르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밀포드 트랙 등 해외에서 사랑받는 도시, 마을 길 45곳을 이 책에 담았다. 각 지역에 읽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트래킹 여정에 재미를 주고, 가보지 않고도 한눈에 짐작해볼 수 있는 지도가 상상력을 북돋운다.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답답하고 의욕을 잃어갈 때 가까운 곳이라도 운동화를 신고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코로나 2년 동안 여행에 대한 꿈과 로망을 억누르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이제 집단 면역의 시대로 접어들며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끝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 곧 시작될 여행에 대한 준비와 예습에 들어간다. 예전에 갔던 여행지들에 대한 복기와 복습은 일부 이 책의 발간으로 마쳤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여행을 복기하는 것도 다 여행의 연장이라는 생각이다. 여행을 예습하는 건 현지에서의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주고, 여행을 복습하는 건 우리 일상의 마음속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게 저자의 여행 예찬론이다. 저자가 책을 낸 것은 복기이자 복습이고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옮기기 위해 시동을 거는 작업이다. 저자의 주문대로 독자의 가슴에도 여행의 계획이 가득 차 오른다.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 중 독자가 가본 곳도 있지만 못 가본 곳이 훨씬 많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듯 펼쳐지는 얘기에 푹 빠질 수 있다. 못 가본 곳 중에서 갈 계획을 세우고 못 간 채 결국 버킷리스트로 옮겨놓은 중국의 샹그릴라가 눈에 띈다. 책에 따르면 중국 대륙 공산화와 함께 티베트 등이 금단의 땅으로 변한 후 50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중국의 한 지방 정부가 '드디어 샹그릴라를 찾아냈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했다.

윈난성 디칭 장족 자치주의 3개 현 중 하나인 중덴 현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의 그 샹그릴라라는 것이다. 지리적 문화적 제반 요건이 소설과 일치하며 장기간에 걸친 엄격한 고증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피폐해진 일상에서 꿈속 이상향을 그리던 서방 세계 많은 이들의 시선이 중국 윈난으로 쏠렸다. 관광 수입과 외화 자본이 절실했던 중국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발표 4년 후인 2001년에는 중덴 현을 아예 샹그릴라 현으로 공식 개명해버렸다. 티베트 문화를 샅샅이 뒤져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찾아냈고 '샹거리라'라는 중국식 지명도 덧붙였다. 샹그릴라의 어원은 샴발라(Shambhala, 香巴拉)다. 불국정토인 피안의 세계를 일컫는 티베트 전설 속 이상향을 가리킨다. 티베트 인들 마음속에는 세상이 탐욕과 부패로 종말을 맞을 때 샴발라 불국의 왕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이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 현지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와 구전돼온 이야기가 흥미롭고 책의 내용을 풍요롭게 해준다.



남미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의 트레일 경험담도 소개해준다. 독자로서는 가본 적이 없어 더욱 눈에 잘 띈다. 단숨에 읽어내려간다. 여기에 저자의 글 그대로를 옮겨본다

"포말의 폭포수들이 여러 갈래로 밀림을 뚦고 나와 절벽 아래로 내리꽂히고 있다. 뭉게뭉게 피어난 뽀안 물안개가 폭포 주변을 신비롭게 감싸 돌고, 편안한 데크 길을 따라 폭포 아래 근처까지 온통 인파로 북적인다. 다음 날 아르헨티나 쪽을 둘러보면 전날 보았던 브라질 쪽 정경은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워낙 더 장엄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트레킹보다는 관광 분위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첫날 브라질 쪽에서 5시간, 둘째 날 아르헨티나 쪽에선 8시간 정도 걸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는 게 좋다.

16세기 중반 에스파냐 탐험가에 의해 이 폭포가 처음 발견되었다지만, 남미 인디오들에겐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다. 유럽인들이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뿐이다. 현재의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은 그 당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이주해와서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이들은 원주민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원주민 노예는 부를 축적하는 가축과 같은 수단이었다."(p252~253)



저자는 간단하면서도 쉬운 여행론을 다시 꺼낸다. "거창한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나면 어떤가. 먼 곳일 필요도 없다. 익숙한 길이 아닌, 조금은 낯선 길을 찾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보면 그곳이 어디든 여행지가 되기 때문이다. 길고 짧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우리 마음속엔 나무숲이 가득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파릇파릇한 새싹 정도는 돋아나 있을 것이다."

저자 : 이영철

오랜 직장생활을 끝낸 후 자유를 얻었다고 득의만만, 동서와 고금, 세상 곳곳 삶의 흔적들을 만나보고 싶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아들딸 쌍둥이 엄마의 남편, 도보여행서 7권의 저자. 저서로는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 자의 행복』, 『영국을 걷다, 폭풍의 언덕을 지나 북해까지』, 『투르 드 몽블랑』, 『죽기 전에 꼭 걸어야 할 세계 10대 트레일』, 『경기옛길과 함께하는 우리 동네 걷기길(2인 공저)』, 『제주올레 인문여행』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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