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악마 이삭줍기 환상문학 5
자크 카조트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림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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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과 지식욕으로 가득한 귀족 청년 알바로. 철저한 경험주의자인 그는 선배 동료의 신비로운 능력을 목격하고 그와 같은 마술적 지식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악마와 계약하는 데 성공한다. 환상문학의 탄생을 알린 획기적 작품이 18세기 후반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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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악마 이삭줍기 환상문학 5
자크 카조트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림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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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악마』는 문예사조 분류로서는 '환상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실주의와 환상을 섬세하게 표현한 자크 카조트의 대표작으로, '금속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복종시키는 과학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주인공 알바로가 악마와의 연애에 빠져드는 기이하고도 매혹적인 소설이다. 연금술에 의해 불려진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과정, 인간의 원칙과 열정이 그것과 투쟁하는 과정이 작품 속에서 그려진다. 이성과 감성, 합리성과 초자연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방황과 고통, 그리고 인내와 극복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주인공이 어느 정도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면서도 결코 그의 명예가 완전히 훼손되지는 않는 이야기의 모호한 흐름을 통해, 사건의 진위를 되묻는 묘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기본 사유원칙이었던 ‘회의(懷疑)’에 기댄 새로운 미학이었다.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이성의 합리성에 회의를 던지는 ‘지적 불확실성’의 미학적 효과를 겨냥하는 환상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린다. 환상문학의 시초라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특성은 카조트가 만들어낸 악마의 이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실패를 거듭하는 무기력한 희극적 존재로 그려지던 이전의 악마들과 달리, 카조트는 두려운 중세적 악마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그 위에 청순하고 순종적이지만 강렬한 욕망을 품고 있는 교활한 비온데타를 탄생시킨다. 비온데타의 이중성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태생의 근원에 두고 있으면서도 이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어머니가 심어준 도덕적, 종교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유혹에 저항하는 알바로에게, 사랑이 반드시 육체적 결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는 그녀의 논리는 너무도 정연하다.

어머니를 존경하는 것은 인간의 본연에 속하지만, 사랑하는 두 마음의 결합은 육체적 결합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것도 오직 당사자들의 의지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 알바로와 사랑하기 위해 정령의 세계를 떠나 육체를 갖고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여성이 되어버린 그녀의 주장은 육체(혹은 물질)의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당시의 유물론적이고 감각론적인 가치체계와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풍조를 흥미롭게 반영한다.

 


 

더불어 비온데타의 존재를 통해 끊임없이 발산되는 고혹적인 매력은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중세적 정서를 기억에서 들춰냄으로써, 이미 탈신비화되고 회의주의가 팽배해진 의식에 혼돈을 유발하여 독자들을 기이하고 불안한 느낌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작품의 경쾌한 어조에서 독자들은 악마의 치명적인 유혹에 대한 두려움이 불식되고 그것이 육체적 욕망을 환기시키기 위한 상상적 표현도구로 통용된 증거를 보게 된다. 카조트는 악마를 중심에 놓고 욕망에 대한 유혹과 절제의 중요성을 대립시킴으로써 그 시대의 자유연애사상에 새로운 뉘앙스를 드리운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환상문학은 18~19세기 서유럽문학의 주류였다고 여겨지는 리얼리즘 문학이 일단 고갈점에 이르고, 그 이전의 환상성을 풍부히 가진 문학이 재평가되는 기운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 문학 이후 기법상의 환상성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서 상징적 픽션성에 대한 관심이 깊어짐에 따라 종래의 리얼리즘문학과 구별되는 환상문학이라는 장르를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1719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난 자크 카조트는 마술적 분위기의 에피소드들로 주목받는 중세풍의 소설 『올리비에』(1763) 등을 발표했고, 1768년에는 디종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1772년에 발표한 『사랑에 빠진 악마』는 진지한 문학적 가치로 높이 평가받으며 ‘환상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태의 탄생을 알렸다. 환상문학이란 현실을 반영하는 요소보다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 등으로 상상력이 강조된 문학을 이른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초자연의 세계, 즉 천상에 사는 신들이 모두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인간적인 욕망을 지닌 상태에서 자연과 인간세계에 개입했었다. 그런 점에서 고대 신화는 리얼리즘과 환상 사이의 아주 자연적인 혼합을 허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중세 시기에도 고대의 신들과 대체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체계가 초자연과 자연을 하느님 아들의 부활ㆍ재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혼합시켜 주었다. A. 단테의 『신곡(神曲)』이 그러한 경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정신에서 싹튼 예술의 자연학화(自然學化)와 테크놀로지화 경향으로 17세기 무렵에는 초자연과 자연에 대한 뚜렷한 구분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시민사회가 탄생된 18세기에는 실리주의와 현실주의가 대두하였고 이후 두 세기를 압도하는 리얼리즘 장편 시대가 이어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1730년대부터 낭만주의가 대두하여 현실에 종속된 종전의 인간 존재에 대하여 픽션과 현실, 작품과 상상력, 이성인과 환상인 등 다양한 각도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또한 오성(悟性)에 대한 상상력의 우위를 내세우고 고대·ㆍ중세의 경이, 꿈ㆍ가공ㆍ희망 쪽에 인간성의 근원을 두는 문학이 제창되었다. 환상문학은 문학사적으로 구조주의자 토도로프에 의해 개념화되었다. 토도로프는 『환상문학 입문』(1970)에서 ‘드라큘라’류나 SF소설처럼 초자연적인 사건을 초자연적으로 설명하는 ‘경이문학’, 초자연적인 사건을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미스터리 문학’, 초자연적인 사건을 쓰되 그 해답을 독자에게 맡기는 ‘환상문학’으로 구분하고, 이 세 범주를 모두 광의의 환상문학이라고 정의하였다. 문학사전상에서의 환상문학은 초자연적 가공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라고 되어 있다.(출처 : 시사상식사전)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 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표현한 작품이 모두 환상문학은 아니다. 환상문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특성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환상문학의 특성으로 ‘단절과 공포감’, ‘애매성과 의혹’을 들 수 있다. 환상은 그 자체로 일상이란 현실 속에 단절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현실 세계의 느닷없는 단절은 자연스럽게 공포감을 유발시키게 된다. 공포를 유발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현상에 대해 어떤 추측만을 할 뿐, 뚜렷한 확신에는 이르지 못한다. 환상소설의 백미로 꼽히고 있는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독자와 작중인물들은 주인공이 끔찍한 벌레로 변한 현상에 대해 애매하게 인식하고 의혹 속에서 결말을 맞음으로써 환상효과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환상소설로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서구 환상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을 비롯하여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 리처드 바쿠의 『환상』,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미카엘 엔데의 『거울 속의 거울』, 도리스 레싱의 『생존자를 위한 비망록』, 스티븐 킹의 『다른 계절』, 매리 셀러의 『프랑켄슈타인』 등이 있다. 또한 영화화 면서 다시 유명해진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21세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환상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사랑에 빠진 악마』는 출판사 열림원의 '이삭줍기'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됐다. 이미 환상문학의 시대로 접어든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환상문학의 고전과 걸작들 중 아직도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을 소개한 것이다. 이 시리즈 기획위원 김석희는 "우리가 이미 깨닫고 있다시피,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또 하나의 대전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선적 역사 발전을 신봉해온 근대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과학주의 같은 지배 담론들도 그 권위를 의심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반면에 그동안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폄훼되어 문화의 비주류로 밀려났던 환상과 직관 같은 사유와 감성 체계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디지털 시대의 코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하여 발굴, 소개합니다.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의미한 텍스트들은 늘 새롭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고 출간 소감을 대신하고 있다.

 

“오! 비온데타, 난 사랑으로 충만해 있고 당신이 전혀 환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당신에 대한 나의 반항적인 소행들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확신하게 되었소. 하지만 당신은 나의 걱정이 근거 있는 것이었는지 그 진위를 알고 있어요. 포르티치 동굴 속에서 나의 시선을 괴롭혔던 그 기이한 환영의 신비를 내게 상세하게 설명해줘요. 당신이 도착하기 전에 나타났던 그 끔찍한 괴물과 그 작은 강아지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되었죠? 어떻게,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그 존재들을 대신하게 되었소? 그들은 누구였던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p.78)

 


 

“저는 나리께서 완전히 악마로부터 벗어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리의 적이 후퇴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나리를 유혹했습니다.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는 나리를 타락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나리의 의지와 가책이 나리에게 비범한 은총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온전히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악마가 주장하는 자신의 승리와 나리의 패배는 나리께도 그에게도 한낱 착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회개를 통하여 그것을 말끔히 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p.144)

 

저자 : 자크 카조트(JACQUES CAZOTTE)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자크 카조트는 1719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났다. 해군 행정관으로 일하던 그는 시골에서 집필에 몰두하여 마술적 분위기로 주목받는 중세풍의 소설 『올리비에』(1763) 등을 발표했고, 1768년에는 디종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그는 신비주의자 클로드 드 생마르탱의 제자들과 교류했는데, 발랄하고 명랑한 그가 몽상이나 신비주의적 환각에 빠져드는 것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라곤 했다. 왕당파였던 그는, 혁명의 공포가 휩쓸던 1792년 9월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익살스럽고 교훈적인 작품들』(1776)이라는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사랑에 빠진 악마』는 1845년, 낭만주의 작가 네르발의 감수성을 통해, 당시 성행하던 환상문학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역자 : 최애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LE VOYEUR A L’ECOUTE』가 있으며, 『문학 텍스트의 정신분석』(공역) 『아프리카인』 『칼 같은 글쓰기』 『꿈』 『충격과 교감』 『엿보는 자』 『환상문학 서설』을 우리말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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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순희 지음 / SISO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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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수많은 문장 속에서 찾아낸 빛나는 문구들. 우리의 마음에 닿아 콕콕 박힌다.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글들은 우리의 마음을 웃기고 울린다. 때로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보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가 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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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순희 지음 / SISO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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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다. 조그만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간단한 말로도 대중을 감동시키거나 부패한 권력자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평론가나 사회비평가들이 평론을 할 때 긴말이나 긴 글을 사용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짧은 글이나 말로 허점을 짚어내 상대를 무너뜨릴 때 이 말을 사용한다.

즉 위트나 재치 넘치는 한마디 말로 상대에게 큰 아픔을 주는 말이나 글에 이 말이 사용된다. 시인에게도 붙일 수 있고 방송 비평을 할 때도 자주 쓰인다. 이런 말이나 글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면 그 사람의 위트나 재치를 높게 평가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촌철살인의 독설가가 많이 출현한다. 대중은 부조리나 부패를 느껴도 간단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 이런 표현을 듣고 공감을 느끼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잘못 돌아가는 사회를 향해, 권력자를 향해 촌철살인의 비수를 던지면 대중들은 열광한다. 자신의 말을 대신해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촌철살인의 말도 잘못 사용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니 주의할 일이다.

 


 

직업적으로 간단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광고의 꽃'이라고 하는 카피라이터들이다. 카피라이터들은 소비자가 듣고 공감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말들을 만들어낸다. 상품 광고, 공익 광고 가릴 것 없이 훌륭한 카피는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단어 하나, 어구 하나로 상품을 기억해내면 성공한 카피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카피라이터들은 '광고계의 시인'이라는 별칭도 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 중에는 어원을 따라가보면 카피에서 비롯된 것도 많다. 가히 '국민 카피'로 대접받을 만하다.

이 때문에 카피라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언어에 관한 한 위트와 재치로 가득하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지나친 욕심으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말 사용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재치와 위트다. 그들의 글 센스는 탁월하다. 글 센스가 탁월하니 언어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창의력과 상상력 담긴 언어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언어의 마술사'로 비유되는 이유다.

 


 

이 책 『별말, 씀』의 저자 글순희는 카피라이터다. 몇 줄의 글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공감과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확 깨주는 기발함으로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이 책은 저자 글순희가 지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웃음을 주는 말들의 모음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은 저자만의 특별한 글센스가 한 장 한 장 넘기는 즐거움을 준다. 짧지만 긴 여운과 생각을 남긴다.

한 번 읽어서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읽게 되는 진흙 속의 진주를 찾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위로, 현실을 잊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저자의 문장 한 편 한 편은 일상을 살면서 불현듯 떠올라 여러 번 곱씹게 한다. 재치와 위트, 감수성, 기발함, 글센스가 가득한 카피라이터 글순희의 별의별 말들은 우리 독자들에게 미소를 되찾게 하고, 공감으로 카타르시스도 가져다 준다.

 


 

이 책은 한 면에 글자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단어들이 많지 않게 나열돼 있다. 어떤 것은 위로도 주고, 어떤 것은 슬픔을 느끼게도 하며, 어떤 것은 분노로서 공감하는 단어들이다. 대부분이 우리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이고, 애증의 감정이고, 그것들이 짧은 단어와 문구로 표현된 것들이다.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수많은 문장 속에서 찾아낸 빛나는 문구들이 우리의 마음에 닿아 콕콕 박힐 때마다 감정이 정화됨을 느낄 수 있다.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글들은 우리의 마음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때로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보다 “잘하고 있어, 수고 많았어”와 같은 진심이 담긴 한 마디가 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별말, 씀』은 응원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또는 오늘 하루를 잘 이겨낸 스스로에게 건네는 멋진 선물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의 구성도 독특하다. 흔한 1부, 2부도 아니고 1장, 2장도 아니다. 그러나 흔한 방법이 아니지만 한눈에 들어와 금세 머리에 박힌다. 그리고 독창성과 위트, 재치가 느껴진다. 그리고 기억된다. 카피라이터의 힘이다.

 

첫 번째 말, 씀_ 일상스럽게 쓰고 이상스럽게 쓰고

두 번째 말, 씀_ 나랑 너랑, 사랑 씀

세 번째 말, 씀_ 인생은 쓰니까 인생을 쓰니까

 


 

이 책은 서점 분류상 '에세이'에 속하지만 사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어휘력 높이기'에 가깝다. 언어는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하지 않은 언어는 '소리'이지 '말'이 아니다. 저자의 생각이 우리가 표현하는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 언어로 썼는데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독자 자신의 부족함에서 온다. 어휘력을 늘리기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필사책으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글자체를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가 어떤 뜻으로 왜? 거기에 쓰였는지를 생각해보며 필사를 하면 놀라울 정도로 어휘력이 늘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한 자 한 자 저자의 상상력과 연상력, 창의력과 적용력, 언어의 기능과 언어의 역할 등을 모두 역량을 짜내어 거기에 썼다. '말도 안 되는데' '문법에 맞지 않는데' '언어유희에 불과해'라고 생각해서는 이 책에 실린 글의 참뜻을 알기에 실패할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수련을 한 다음 글을 쓸 때 저자가 했던 식으로 단어와 문장을 만들어보면 얼마나 힘들게 나와 거기에 쓰였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글쓰기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감히 독자는 생각해본다.

 

저자 : 글순희

 

삶의 모든 순간을 찾아서

별의별 말을 다 쓰는 사람.

글을 가지고 노는 것이

정말 정말 즐거운 사람.

글쓴이, 글순희입니다.

인스타그램 @andwriter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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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워칭 유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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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수였다. 이제는 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기차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게 내숭 떠는 면이 있다는 생각은 그때까지 해본 적 없었다. 순진하다는 생각도. 그래, 뭐, 꽤 옛날식 교육을 받고 자라긴 했다. 온실 속의 화초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는 나이도 먹고, 배울 만큼 배웠다. 도덕의식을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그 소리에 충격을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정말 얌전한 애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설은 애나의 실종 당일, 엘라가 위험한 상황의 소녀들을 외면하면서 시작된다. 런던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매력 넘치는 소녀 애나와 세라를 보게 되고, 또래로 보이는 칼과 앤터니가 소녀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다 교도소에서 막 나왔다는 두 남자의 정체를 알고 그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도움을 주기로 결심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마음을 바꿔 그대로 지나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엘라는 기차에서 봤던 소녀 애나가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내가 개입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소설은 애나의 실종을 둘러싸고 목격자 엘라와 친구 세라, 아버지 헨리, 탐정 매슈의 시점이 교차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순수한 소녀라고 생각했던 세라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상황을 외면했던 엘라, 과거에 괴로워하면서도 애나에 대한 열등감을 잘못된 방법으로 이기고 싶었던 세라, 자신의 치부를 숨기고자 했던 아버지,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들을 관찰하는 한사람의 정체까지.

탐정 매슈는 유일하게 제3자의 시선에서 이성적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며 진실에 다가선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도 애나의 실종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번뇌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전개되며 사실감을 더한다. 애나 실종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칠수록 하나둘 드러나는 비밀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사건의 진실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애나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사람들의 비난과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엘라는 협박 메시지가 담긴 검은 엽서를 받게 되고, 그녀는 자신을 원망하는 애나의 엄마 바버라가 보냈다고 생각해 사설탐정 매슈를 고용해 조용히 경고를 하고자 한다. 바버라를 만난 매슈는 그녀가 엽서의 범인이 아님을 직감하지만, 애나의 가족들에게서 무언가 석연치 않는 느낌을 받는다.

실종 1주년 방송을 계기로 애나의 가족과 친구들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세라는 애나가 사라진 날 밤의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문자도. 애나의 아빠 헨리는 ‘역겨워···’라고 말하는 딸의 환청에 시달리며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던 중 유력한 용의자였던 칼과 앤터니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증명되며 사건은 또다시 미궁에 빠지고 만다. 불안에 떨던 세라는 언니인 릴리에게 그날의 진실에 대해 털어놓는데······

 


 

「조심해.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한편 칼과 앤터니의 혐의가 벗겨짐에 따라 애나의 실종과 관련이 없어졌음에 안도하던 엘라는 또다시 온 검은 협박 엽서에 공포에 빠지고, 이어 누군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애나가 사라진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엘라를 지켜보는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 뒤엉킨 거짓말 속 진실을 찾기 위한 수사가 계속된다.

 

이 소설 『아임 워칭 유』는 출간과 동시에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선정되고, 전 세계 22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1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각 인물의 시점으로 긴박하게 진행되는 서사와 섬세한 심리 묘사, 예측 불가한 결말은 ‘환상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평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라진 소녀, 죄책감에 시달리는 목격자, 뒤엉킨 거짓말, 모두의 거짓말 속 진실은 무엇인가? 독자들은 심리 스릴러의 요건을 두루두루 갖추고 저자의 유기적 구성 솜씨에 탄복라면서 이 스릴러 작품을 즐길 수 있다.

 


 

그때 무언가가 보인다. 익숙하지만 소름 끼치는 검은색 봉투. 얇고 허접하고 섬뜩한 봉투의 앞면에는 하얀색 주소 라벨이 붙어 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벽에 몸을 기댄다. 이제 다 끝났잖아. 나는 아무 죄가 없다. 칼과 앤터니 잘못이 아니면 내 잘못도 아니라는 뜻인데. 정말로.

심장이 쿵쾅거린다. 잠시 이성을 찾고 매슈가 알려준 대로 하자고 다짐한다. 주방으로 가서 경찰이 준 보호 장갑과 증거 봉투가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낸다. 봉투를 열지 말고 그대로 보관할까 생각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왜 아직도 내게 이 짓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니, 보낸 사람도 뉴스를 봤을 것 아닌가. 처음부터 칼과 앤터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 이러지? 왜?

장갑을 끼고 봉투를 찢어서 연다. 저번처럼. 이제는 내 숨소리가 들린다. 무의식적으로 복도를 통해 주방을 다시 살핀다. 뒷문은 걸쇠로 단단히 잠겨 있다. 다행히.

엽서는 다시 검은색이다. 잡지에서 글자를 오려 붙였다. 지저분하게. 줄도 맞지 않는다.

「내가 지켜보고 있어.」

글자를 뚫어지게 보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애써 호흡을 가라앉힌 나는 매슈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pp.342-343)

 

BBC TV 뉴스의 앵커로 활동하며 오랜 시간 범죄를 다뤄온 저자 테레사 드리스콜은 범죄가 무고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친구 그리고 목격자의 인생까지 잔인하게 뒤흔드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아임 워칭 유』에서 인간의 마음속 이기심, 욕망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잘못된 욕망이 사람을 어디까지 이기적이게 만들 수 있으며, 진실을 왜곡하는가. 외면한 진실 뒤엔 무엇이 남는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예상치 못한 결말에 놀라면서도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와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 테레사 드리스콜

15년간 BBC TV 뉴스의 앵커로 활동하고, 신문, 잡지 등의 저널리스트로 25년 넘게 활동하며 인생의 어두운 이면을 자주 접해 왔다. 오랜 세월 범죄를 다뤄온 테레사는 범죄가 무고한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족, 친구, 목격자의 인생을 뒤흔드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불안과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하며 집필한 작품이 바로 《아임 워칭 유》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큰 주목을 받았고, 전 세계 22개국과 판권 계약하며 10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현재 테레사는 아름다운 데번에서 남편, 두 아들과 살고 있다. 그녀의 SNS와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자세한 작품 정보를 알 수 있다. 국내 출간본으로는 《인생 레시피》가 있다.

트위터: @TeresaDriscoll

페이스북: www.facebook.com/TeresaDriscollAuthor

웹사이트: www.teresadriscoll.com

 

역자 : 유혜인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졸업했다. 글밥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바른번역에서 영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봉제인형 살인사건』 『꼭두각시 살인사건』 『인어 다크, 다크 우드』 『우먼 인 캐빈 10』 『위선자들』 『악연』 『세상의 주인』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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